松亭

 

 

조금 더 선명하게 행복하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잘 알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잘 원하고 싶었다. 행복이라는 녀석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나서 뒤따라오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가지러 가는 길에,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은 딱 그 순간까지만 옆에 있어주는 야속한 친구 같아서, 행복하기 위해 늘 내가 지금 어디에 무엇을 가지러 가는지를 선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답은 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인데, 내 마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만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마음들이 장마철 빗물처럼 들이쳐 뒤섞이는 난장판인 거라, 들여다볼 때마다 색이 변하고 윤곽이 흐려져 도통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삶의 어떤 시간을 통과하기 위해 다른 순간들을 가져와 버팀목으로 써야만 하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인 것을 알아도, 가끔은, 정말 아주 가끔은, 다른 순간에 나를 가져다 놓지 않고 오직 이 시간, 이 장소에만 있게 하는 장면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통유리로 된 벽 너머에 물방울이 무너지는 흰 바다가 펼쳐져 있고, 에어컨은 몹시 시원하고, 일곱 권의 책과 일곱 병이 넘는 술이 놓인 테이블 주변에 둘러앉은 다정한 사람들이 있는 장면 같은 것. 바다는 보는 것이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더니 막상 해변에 나가자 정신없이 첨벙거리고 노닥거리고 덩실덩실 춤도 추고 영혼이 탈곡되는 모양의 사진도 찍는 사람들이 있는 장면. 이제 내가 올라탄,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요놈의 길 위에서 나는 부단히도 저 장면들을 떠올리며 나를 위로하고 나로부터 위로받겠지만, 정말로 내가 떠올리고 싶은 것은 내게도 온전히 그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만 존재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내가 믿고 싶은 것은 앞으로도 그런 순간들이 종종 찾아올 거라는 순박한 추측이다.

 


 


기행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졌다아니비로소 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랄까타오르는 갈탄의 힘으로 한쪽 표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난로며좀체 귀에 와닿지 않는 변방의 사투리며도내에서도 손꼽히는 축산반을 자랑한다는 협동조합을 찾아간다는 사실 등등이 모두그때 그는 눈이 푹푹 나리는 밤 안에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었다그 밤과 마음이 지금 그와 함께 있었다.

김연수일곱 해의 마지막

 

나는 복원되지 않는다

무수하게 뚫고 메우다보면

처음의 벽은 이미 사라진 벽

우리는 어둠을 갱신하며 서 있다

최현우회벽부분

 

 

--- 읽는 ---

말의 서랍 / 김종원

수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다카하시 요이치

1년 안에 AI 빅데이터 전문가가 되는 법 / 서대호

마르크스 철학연습 / 한형식

성숙한 어른이 갖춰야 할 심리습관 / 류쉬안

90년생이 온다 / 임홍택

마흔 이후는 사람 공부 돈 공부 / 박길상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 이즐라

라이브 경제학 / 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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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8-08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이다... 사진 정말 근사하네요!

syo 2020-08-08 13: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뭔가 아련하다...

blanca 2020-08-0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시원해지는 페이퍼네요. 저긴 대체 어딥니까? 김연수 책은 저는 한번 읽어서는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다시 한번 읽어야 될 것 같아요.

syo 2020-08-08 13:33   좋아요 0 | URL
저긴 부산 송정해수욕장 앞입니다 ㅎㅎㅎ
저도 김연수는 두 번 세 번 읽는데, 읽을 때마다 좋지요^-^

반유행열반인 2020-08-0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여름이었네요.

syo 2020-08-08 13:34   좋아요 2 | URL
너무 좋은 여름이었습니다. 좋아요.

수이 2020-08-0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포토제닉이다!!

syo 2020-08-08 13:34   좋아요 0 | URL
포토제닉꺼리가 한두 개가 아니라, 저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잖아요?

건조기후 2020-08-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백만개 누르고 싶다는 관용구(?)를 오랜만에 쓰게 되는 페이퍼네요. :)

syo 2020-08-08 13:34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님도 되게 오랜만에 뵙네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0-08-08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죽이지만 사진이 참 죽인다, 하고 봤네요.
움직이는 그림을 벽에 걸어 놓고 있는 집 같아요.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 하는 집이네요, 저에겐.

syo 2020-08-08 13:35   좋아요 0 | URL
집 좋더라구요. 놀고 가기에도 좋지만 사는 것도 좋았겠어요.
당연히 못 사고 못 살겠지만...... ㅠㅠ

stella.K 2020-08-08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저 사진 속 총각이 스요님이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ㅋ

syo 2020-08-08 13:35   좋아요 1 | URL
저거 전데요 ㅎㅎㅎ

stella.K 2020-08-08 13:45   좋아요 1 | URL
헉, 정말요...?ㅎㅎㅎㅎ
전 스요님이 통통하고 귀여운 상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틀렸네요. 저 분노의 포도알갱이 때문인 것 같슴다.
게다가 나름 트릭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이래봐도 한 예민합니다. 그게 항상 맞지 않아서 그렇지.ㅋㅋㅋ
이렇게 슬림한 뒤태라니...!^^

syo 2020-08-08 19:36   좋아요 0 | URL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으하하하.

공쟝쟝 2020-08-08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syo 2020-08-08 19:37   좋아요 1 | URL
진짜 메피스토펠레스 튀어나올 뻔한 밤이었었지..

단발머리 2020-08-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사진도 너무 멋져요!!! 엄지척👍🏼

syo 2020-08-10 07:24   좋아요 0 | URL
사진사 엄지척 👍

비연 2020-08-0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 사람 아련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그대 쇼~

syo 2020-08-10 07:25   좋아요 0 | URL
아련함, 그것은 어쩌면 음주 때문에....

북다이제스터 2020-08-1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본인 뒷태세요?^^

syo 2020-08-13 23:00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ㅎ 제뒷입니다.

tintin2506 2020-08-1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모습보니 역시 인싸셨군요 ㅜㅜ

syo 2020-08-17 11:21   좋아요 0 | URL
뒷모습을 보고 그런 걸 알 수 있으시다니!
그렇지만 저는 특별히 인싸도 아싸도 되지 못한 인생인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