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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85가지 얼굴 - 후설 현상학의 주요 개념들
조광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안녕, 친구들? 철학 꼬꼬마들을 위한 숨은 명저 소개 시간이야. 나는 알라딘에서 분노의 포도알갱이를 맡고 있는 syo라고 해. 사람들은 나를 미친 개론서 덕후, 줄여서 미개덕이라 부르나 봐. 미개하고 좋은 별명이야. 신난다.
오늘 syo가 여러분에게 팔아먹을, 아차차, 소개할 책은 바로 조광제 선생님의 2008년 작, 『의식의 85가지 얼굴』이란다! 어때? 제목부터 섹시하지? 해리 포터 쌈 싸먹을 아광속으로 전 세계를 돌며 실컷 팔아먹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슬프게도 그 책과는 달라. 달라도 너무 다르단다. 조금이라도 비슷했다면, 그레이처럼 5페이지마다는 아니더라도 한 50페이지 정도에서 한 번이라도 해줬(?)으면, 그랬다면 친구들아, 친구들도 알았겠지, 이 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근데, 친구들, 어때? 몰랐지? 처음 보지, 이 책? 각설하고,
제목을 보면 무슨 심리학책이거나 정신분석학을 다룬 책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현상학’이라는 철학 분야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에 대한 개론서야. 현상학이란 말, 다들 한 번씩 들어봤지? 이런, syo가 우리 친구들을 너무 무시했구나. 이런 쪼다같은 질문이나 던지고. 당연히 다 알겠지, 현상학. 상식이잖아? 초등학교에서 구구단 9단까지 다 배우고 나면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9단까지 외웠으니 이제 현상학을 배워볼까? 하면서 다 가르쳐주시잖아. 구구단 배우고 현상학 배우고 나눗셈 배우잖아. 그 다음에 분수 배우고…… 표정들이 왜 그래? 내가 무슨 천하의 개소리라도 하는 것처럼…… 아, 안 돼. 농담이었어. 돌아와 친구들아! 각설할게…….
그럼 우리, 현상학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 볼까? 현상학이란 말이야, 현상에 관한 학문이야. 어, 친구야, 지금 노려봤어? 더 말해 줄게. 현상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태가 우리 의식에 뿅! 하고 등장한다는 뜻이야. 아야, 던지지 마. 더 말해 줄까? 그렇다면 Insert Coin…… 역시 농담이었어. 이제 안 가는구나? 그럼 우리 의식에 뿅! 하고 등장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뭘 배워야 하는 걸까? 그게 현상학의 핵심 질문이지. 예를 들어, syo가 코를 잘 파서 둥글고 노릇노릇한 코딱지 하나를 꺼냈다고 생각해 봐. 물론 실제로 파지 않았어. 믿어 줘. 못 믿겠다고? 맞아. 못 믿을 노릇이야. 내 앞에 파놓은 저 코딱지가 진짜 코딱지야? 코딱지라 부르기 위해 응당 갖춰야 할 것들은 무엇이지? 이 코딱지의 윗면, 아랫면, 좌우 측면을 확인할 수는 있는데, 코딱지의 전체적인 실체는 한 번에 지각할 수 없잖아. 그렇다면 내가 의식하는 코딱지와 지금 눈앞의 코딱지가 일치할까? 코딱지를 판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이지? 내 의식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방금 코딱지를 판 놈이 지금 나하고 같은 인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 뭐 이런 것들이 현상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질문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까. 재미없었지? 재미없으면 각설하자.
후설 선생님 같이 배운 분이 저런 고민들을 해결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걸 보면, 뭐랄까, 식자우환이랄까, 무서워서 코도 함부로 못 파겠어. 손가락에 묻은 코딱지를 보며 세 시간씩 사색에 잠기는 모습을 상상해 봐. 차라리 못 배우고 고민 없이 살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까지 해. 그렇지만 뜻밖에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저런 질문들은 수천 년을 이어온 핵심질문들이었나 봐. 그 질문들에 대해 독창적인 해석을 만든 철학자들이 모여 하나의 분야를 이루거든. 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분석철학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것들 있잖아. 그 가운데 하나인 ‘현상학’이 후설 쌤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엄청 위대한 사람 아니겠어? 데리다라는 사람 알아? 그거 아주 무서운 인간이야. 읽다 보면 책을 완전 해체해버리고 싶게 만들거든. 그 사람이 학위논문 겸 최초 저작으로 낸 책이 『후설 철학에서 발생의 문제』라는 제목이야. 레비나스라고 들어봤어? 데리다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철학자인데, 이 사람은 실제로 후설쌤 밑에서 배웠나봐. 이 사람은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이라는 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 사르트르라는 또 다른 유명한 사람이 있지. 어느 날 친구 레몽 아롱이랑 여친 보부아르랑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중이었는데, 이노무 레몽 아롱새끼… 아차, 미안 미안, 이 친구 레몽 아롱이가 자기보다 먼저 현상학이라는 것에 대해 배우고 거들먹거리더래. 자존심이 상해가지고 아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서점에 달려갔다지. 현상학에 관한 책을 싹 다 내놓으시오! 그랬더니 점원이 뭐지 이 찐따는, 하는 표정으로 서점을 뒤지고 뒤지더니 꼴랑 레비나스의 저 책 하나 주더래. 사르트르는 그 후 1년을 꼬박 현상학에 목을 맸대나 봐. 어지간히 지기 싫었나 봐. 헤겔, 후설과 함께 3H(반드시 3 Hell의 약자일 거야)이라 불린 하이데거가 후설의 조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유명하지. 후설 쌤의 위상이 뭐 이 정도야. 근데 우리 친구들은 후설 쌤을 잘 모르잖아. 그치? 헤겔이나 하이데거는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거야, 그치? 그런데 3H로 함께 묶인다는 후설 쌤은 왜 이렇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걸까? syo도 그것이 알고 싶어. 각설하기 전에,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말야, 아, 이제 내가 철학에 관한 책도 좀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 때가 오잖아. 그런 기분, 한두 번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마주칠 때마다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 오고 그러지 않아?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철학책 서가를 기웃기웃 거리게 되는데 말야, 책 고르기가 너무 어렵잖아! 철학자 고르기도 너무 어렵고! 누구를 읽으려면 누구를 읽어야 한다는데, 그 계본지 족본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 그럴 때 친구들아, 너희들의 곁에는 알라딘의 미개덕, 누가 미더덕이래? 알라딘의 미개덕, syo가 있잖아. 알려 줄게.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큰 관심은 없다, 손!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시간은 없다, 손!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의지는 없다, 손!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기본 소양이 없다, 손! 손든 친구들아, 개론서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해. 한국에서 개론서로 공부하기 좋은 철학자 세 명을 알려줄게. 바로 마니프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순서대로, 마르크스-니체-프로이트지. 마니프에서 시작하렴. 얘들 관련해서는 정말 배운 거 하나 없이 밑바닥에서 시작해도 꽤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많은 책들이 나와 있거든. 수준별 단계별 학습도 가능한 실정이야. 물론 이 세 명을 권하는 것이 단지 개론서가 많다는 이유 때문은 아냐. 자체로 중요한 사람들이거든. 철학사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위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세 명이지. 그래서 개론서도 많은 거고. 알겠지? 이 세 명에서 한 명을 더 덧붙인다면 우선 푸코를, 그리고 한 명 더 권할 기회를 준다면 후설 쌤을 추천할게. 푸코는 뜻밖에 푸코만 가지고도 웬만큼 읽어지고, 후설은 앞이 없거든. 후설이 시작이야. 현상학의 시작. 선행학습이 없어도 되는 철학자라는 게, 야매로 철학공부 하는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메리트 있는 특징이거든.
물론 눈을 가늘게 뜨고 찾아보면 후설 앞도 있어. 현상학을 똑바로 이야기하려면 후설에 앞서 브렌타노라는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더라. 브렌타노라니, 들어는 봤어? syo는 미취학 아동일 때 그런 이름의 상표가 붙은 티셔츠를 입었던 기억이야. 노랑색 갈색 줄무늬였는데, 참 아끼던 티셔츠였지……. 브렌타노 검색하면 책 한 권 나와. 의미 없다는 이야기야. 그게 의미 있는 사람들한테는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한테는 그 사람들조차도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야. 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어? 또 플라톤이야? 으, 생각해 봐. 내가 내 여친 하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단군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싸그리 사랑하는 게, 과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이겠냐고. 각설하고,
사실 후설에 대해 땅바닥부터 공부하기에 좋은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야. 후설 냄새 좀 맡아본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은 생각보다 탄탄하게 구비되어 있어. 심지어 후설의 자신의 저작은, 헤겔이나 하이데거보다 훨씬 더 많이 번역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주저라 할 만한 것들은 거의 다 번역이 되어 있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려줄까? 그 많은 후설의 저서들을 이종훈 선생님이 거의 도맡아 번역하고 있다는 거야. 검색해서 이걸 찍어도 이종훈, 저걸 찍어도 이종훈, 이종훈, 이종훈, 이종훈이야. 『사물과 공간』이라는 책만 빼면 전부 이종훈 선생님의 이름을 달고 있지. 이종훈 선생님께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올리고 싶은 심정이야. 왜냐고? 그 이유는 더 놀라워. 바로 후설이 범인이지. 후설은 생전에 4절지 크기 4만장의 원고를 남겼대. 음~ 4만 장. 하루에 한 장 쓰기도 빡센데. 2월 29일은 쉬어주고 하루에 한 장씩 쓰면 4만 장 쓰는데 109.589년이 걸리지. 심지어 4절지는 한 장 넓이가 A4지 3장도 넘어. 심지어 잡소리 없이 철학적 내용을 담은 원고로만 그랬대잖아. 지금 이 A4 3장정도 되는 뻘소리를 쓰기 위해서 syo가 얼마나 낑낑대고 있는지, 친구들아 아니? 지금도 세계 모처의 어둠 속에서 후설 전집이 30권인지 40권인지를 돌파하고 계속 간행되고 있대. 하늘이시여, 제발 이종훈 선생님의 120살 생신잔치에 축하 떡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해 주소서……. 각설하고 다시,
사실 후설에 대해 쌩판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좋은 책들이 그다지 없는 실정이야. 이 책 역시 그런 면이 있어. syo에게는 말야, 국내 출간된 이런저런 개론서들을 뒤지고, 그러다 개론서한테 뒤지고, 이해가 안 되는 개론서들을 내동댕이치고, 그러다 이해가 안 되는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정신이 들면 다시 또 읽고, 그러다 정신이 나가면 다시 또 울고, 이런 애달픈 반복을 통해 근본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확보해 놓은 후설에 대한 선이해가 있었어. 그 덕에 이 책 『의식의 85가지 얼굴』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를 느낄 수 있었지. 이 책은 후설의 개념들을 따박따박 개념 단위로 설명을 해 주거든. 뭐랄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참고서 같달까? 철학 분야에는 뜻밖에 그런 식으로 다소 유치할 정도로 조목조목 알려주는 개론서가 드물어. 일본에서 건너온 애들이 그런 건 잘하지. 이것이 핵심이다! 이것만 알면 5분 안에 철학사를 정리해서 발표할 수 있다! 이걸로 당신은 승진과 사랑을 모두 쟁취할 수 있다! 뭐 그런 멘트들이 표지나 띠지에 떡 박혀있는 책들 말이야.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어디서 약을 팔어 팔긴- 싶으면서도 사실 도움이 될 때가 있긴 하거든. 잘 모를 때는 더욱 그렇지. 이 책은 당연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후설이 사람 이름인줄도 몰랐던 친구들에게는 이 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거야. 그런 친구들은 준비운동이 조금은 필요해. 도서관에 가면 한 권에 여러 명의 철학자들을 짧고 간단하게 다루는 종류의 철학책들이 많아. 그런 책들에서 후설이나 현상학에 관련된 꼭지들을 발췌해서 읽으면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도서관에 들를 때마다, 잠깐씩 시간을 내서 한 꼭지 읽고 돌아오는 여유를 부리면 어떨까? 지금 이 글이 페이퍼였으면 그런 책들을 주욱 나열해 줄 텐데, 이 모양 이 꼴이라도 이게 지금 리뷰란다. 쏴~리~ 각~설~
이 글에서 후설의 이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개론해주기를 바랐던 친구들이 있다면, 반성의 댓글을 달도록 해. 그러지 않을 거야. 개론서를 개론하는 건 슬픈 일이거든. 그게 가능하다면 개론의 개론의 개론도 가능하겠지. 개론의 개론의 개론의 개론도 가능할거야. 그러다 결국 딱 한 줄로 줄어들어 버리면 좋을까? 아마 싫을 걸? 봐봐. 현상학이란 말이야, 현상에 대한 학문이야. 어때? syo가 아까 이렇게 말했을 때 친구들, 날 죽일 듯이 노려봤잖아? 이 말을 사전이 그러는 것처럼, 현상학은 세계와 그 내부의 다양한 실재적 또는 상상적인 대상의 존재를 세계가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그 구조를 통해서 연구해가는 학문이다- 라고 길게 말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친구들아. 나아지려면, 우리가 읽어야 해.
오늘은 이쯤에서 각설할까? 하도 여기저기 각설했더니 각설이라도 된 기분이야. 앞으로는 미개덕보다 각설이라고 불러줘도 좋겠다. 별명이 많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잖아? 야구판에는 별명이 하도 많아서 별명이 ‘김별명’인 선수가 있는데 말이야… 음, 각설할까?
그럼 철학 꼬꼬마 친구들, syo는 다음 시간에 다른 책을 팔러, 아니아니, 소개하러 다시 돌아올게.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처럼. 자, 인사할까? 친구들, 안녕~~~~~
나라고 해서 이렇게 살고 싶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