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보니 내가 닭인지 닭이 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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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먹고 잤는데 꿈에 닭이 나왔다. 손(?)에 치킨을 들고 있었다. 먹으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닭도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무서웠다. 나는 치킨이라면 누가 줘도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닭이 주니까 먹기가 무서웠다. 닭은 막무가내였다. 또박또박 말했다. 먹으라고. 부리로 쫄 기세라 잔뜩 쫄았다. 나는 울먹거리며 치킨 조각을 받아들었다. 그건 닭목이었다. 어, 나는 목은 안 먹는데. 닭을 올려다보았다. 먹어. 닭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목은 안 먹어. 나는 닭치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닭발 맛 좀 봐야 정신 차릴래? 닭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네 목은 안 먹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는 닭이 보는 앞에서 닭목을 바닥에 팽개쳤다. 이럴 수가..... 바닥에 뒹구는 모가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닭은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목은 안 먹는다고 그랬잖아. 왜 사람 말을 안 듣고 그래. 미안한 마음에 나는 되레 큰소리를 쳤다. 나쁜 놈. 넌 나쁜 자식이야. 난 똥집이 있는데 넌 양심도 없니. 닭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읊조렸다. 정말 내겐 닭똥집만한 양심도 없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닭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들썩이는 닭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리고 물었다. 저..... 혹시 다른 부위는 없니? 그러자 닭이 코(?)를 훌쩍이며 되물어왔다. 넌 어느 부위를 좋아하는데? 참고로 나는 퍽살을 좋아하는데...... 어! 나돈데? 나도 퍽살! 뜻밖에 취향의 일치를 확인하자 닭은 신이 났는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와, 너는 정말 닭을 먹을 줄 아는 녀석이구나? 와, 너 역시 닭 좀 먹을 줄 아는 닭이구나? 우리는 환희에 차 두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빙글빙글 빙글빙글. 만세 만세 퍽살 만세, 롱 리브 더 가슴살!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 핳 하 ㅎ......(페이드아웃)
이게 대체 무슨 꿈인지는 점심에 밝혀졌다. 엄마 핸드폰이 카톡카톡 난리였지만 엄마는 김치전을 부치고 있었다. 아들, 카톡 한번 봐봐. 동생이었다.
“엄마, 내가 닭가슴살 주문한 거 2시 전에 도착한대.”
김치전 두 판을 먹고나서, syo는 탈 만한 작두가 요즘 얼마씩 하는지 인터넷으로 가격 검색을 시작했다.


그렇다. 그것은 행동 규칙들이었다. 수도꼭지 위에 놓인 설거지용 행주가 그에게 무엇인가를 명령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깨끗하게 청소가 된 식탁 위에 놓인 맥주병 뚜껑 역시 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것 같았다. 그는 도처에서 이것은 하라, 저것은 하지 마라 하는 요구를 보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미리 작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양념 통이 놓인 선반, 방금 끓인 잼을 담아 놓은 유리 그릇들이 놓인 선반...... 그런 것이 반복되었다.
_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한 사회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 이들을 통해 식품을 생산하는 방식이 윤리와 공중보건과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준다면, 이는 당연히 공적인 비판과 감시, 규제의 대상이 된다. 개별 사안만 보면 개인의 선택이라고 해도, 이것이 모여 전체적으로 끼치는 결과가 공공 영역의 안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탁은 공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_ 김한민, 『아무튼, 비건』
2
지금 우리 세대에 결혼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잖아요. 뭔가 잘못된 건 알겠는데 어떻게 다르게 할지도 막막하고,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 있나요?
쉽지 않다는 건 알아요. 보통은 부모님, 친구들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또 돈 때문에 그렇게 못하죠. 가족들이 많은 경우에는 더 힘들어지죠. 그런 여러 가지 여건들 때문에 사실 자유로운 결혼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일 거예요. 왜냐면 포기해야 될 게 많으니까요. 뿌린 돈을 생각하면 돈 걷는 형식도 맞춰야 될 거고. 그러니까 사실 가장 쉽고 부모님한테 잔소리도 안 들어도 되고 가장 돈이 덜 드는 게, 또는 돈이 남는 게 바로 일반적인 결혼식이죠. 속 편하게 할 거면 그냥 해도 돼요. 근데 사실은 그거야말로 그 사람들에게 결혼식이 별 의미가 아니란 뜻이죠. 모두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만났고,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어떤 결혼식이 어울려'라고 생각했다면, 사실 이렇게 모든 결혼식이 다 똑같아지지는 않았겠죠. 정말로 자신들에게 이 결혼식이 의미가 있다면, 또 내 것으로 하고 싶다면 기꺼이 그만큼의 귀찮음과 어려움은 감수할 수 있을 거예요. 어른들 세대와의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최대한 우리 맘대로 하고, 그런 갈등들은 그냥 감당하자는 거예요. 그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서 대충 맞춰주는 식으로 넘어간다면, 결국 그 갈등을 우리 다음 세대가 지게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억압받고 맘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우리부터 거부를 해야 우리 다음 세대부터는 그게 좀 당연해지지 않겠나 생각해요. 말만 하면 입만 산 사람이 되는 거니까.
_ 이혜인, 정현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결혼생활탐구』, 58-59쪽
내 처지가 이래서 결혼식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길 수도 있다. 그러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장 담그는 꼴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김칫국도 못 마시랴 하는 오기로 가끔 이런 저런 결혼식에 대해 생각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부부들의 결혼식 혹은 결혼 생활 풍속도가 ‘요즘 것들’이라는 집단에서 정말로 대표성을 가지는지는 의심스럽다. 이 커플들에 집어넣으면 나와 여친은 어린 축인데, 그런 우리가 봐도 이들은 비범하다. 주변의 별처럼 많은 인간군상들이 나만 버려놓고 죄다 시집장가를 갔는데, 어느 하나도 이 책 속의 인물들처럼 결혼식을 올린 부부가 없다. 그럴 의지도 별로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바로 이 구역의 첫 번째 미친놈이 될 수 있겠다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쩐지 정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야말로 정말 준비된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뻑적지근한 결혼식을 하고 말 테다!
.......언제 인마, 언제...... 이 그지 깽깽아.....
3
그녀는 마침 비가 오기 시작하는 것 같으니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와야겠다고 했다. 그는 비가 오는 게 아니라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라며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벌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열어 둔 문으로 정말 비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셔츠 하나가 떨어졌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전부터 입구 옆에 깔아 놓았던 마룻바닥 깔개였다. 그녀가 식탁에 촛불을 켰을 때, 손에 든 초를 약간 기울여서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접시 위로 촛농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촛농이 깨끗한 접시에 떨어지자, 그가 "조심해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흘러내린 촛농 위에 초를 세우려고 한참동안 누르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초를 접시 위에 세우려고 그랬다는 걸 몰랐소."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그녀가 의자 없는 곳에 앉으려고 자세를 취하자, 블로흐는 "조심해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아까 돈을 계산할 때 떨어뜨렸던 동전 하나를 식탁 아래서 집어 들었다. 어린애를 보기 위해 그녀가 침실로 갔을 때, 그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고, 심지어 식탁에서 잠시 자리를 떴을 때도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_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102쪽
이 남자(블로흐)가 애초에 미쳐서 이러고 다니기 시작한 건지, 이러고 다니다 보니까 점점 미쳐가는 건지 알기가 힘든 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왜 알기가 힘든가 하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페터 한트케는 보여주는 작가다. 알아내는 건 독자의 일, 작가는 언어를 던지는 일만 하고, 언어가 언어의 일을 한다.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나 가즈오 이시구로의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 도전했다가 나가떨어진 경험이 있는(ex. syo)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 먼저 몸을 풀어도 좋겠다. 일단 저 두꺼운 놈들에 비해 몇 배는 얇다. 물론 카프카의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어, 잠깐, 이런 글은 월말 결산 때 쓰는 건데. 그땐 뭘 쓰지.....?
그나저나, 때마침 함께 읽던 위화 선생님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서 함께 적어둡니다.
루쉰과 셰익스피어가 묘사하는 광인들은 아주 조리 있고 분명하게 말할 줄 압니다. 이 두 작가는 이런 인물의 멀쩡하지 않은 정신 상태를 그들의 말에 담긴 의미를 통해 보여줍니다. 수많은 작가들은 광인의 정신 상태를 표현할 때 그 인물이 두서없는 말을 하게 하거나 중간에 문장부호를 전혀 넣지 않는 방식을 쓰곤 하지요. 이런 방법은 이미 일종의 공식이 되었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한 무더기가 새까맣게 뭉쳐 있는 것입니다. 이들 작가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몇 쪽, 심지어 몇 십 쪽씩 늘어놓기만 하면 독자가 이 인물이 광인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그들의 바람에 불과하지요. 독자가 미쳤다고 느끼는 것은 작품 속의 인물이 아니라 그것을 쓴 작가일 겁니다.
_ 위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301쪽
4
현대 세계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질 수 있다는 관대한 관념 위에 세워졌다. 여기서 가진다는 것은 물질이나 명예를 가진다는 말이 아니라 잠재적 가능성을 말한다. 우리 중에 누구도 이룰 수 있는 것에 한계는 없다. 지금 당장은 돈이 좀 부족하고, 명예가 낮고, 거절당한 상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은 일시적 어려움일 뿐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열심히 일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머지않아 이 어려움을 깰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노력하는 사람에 관한, 힘이 되는 이야기가 언제나 돌아다닌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별일도 없이 남아메리카를 5년간 돌아다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서 인생을 정리하고 회사를 차렸는데 그 회사가 이제는 어지간한 나라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식이다. 그 사람은 갑옷도 없고, 생김새도 마치 수학 선생님이나 공항에서 나를 태웠던 택시기사처럼 생겼으므로 평등이라는 개념을 강화한다. 세계는 언젠가는 성공이 어떻게든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_ The School of Life, 『인생 직업』, 177-178쪽
우리가 뭘 해도 슬픔과 좌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알고 보면 대부분 세상의 탓이라는, 훈훈하지만 이제는 다소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시종일관 펼쳐지는데도 지겹지 않고 재미가 있다. 그 재미는 역시 알랭 드 보통의 문체, 무엇보다도 넘나 맛깔나는 예시 창조 능력에서 나온다. 배울 수 있는 데까지는 배워야 할 기술이 아닐 수 없다.
--- 읽은 ---





인생 직업 / The School of Life 지음 / 이지연 옮김
딱 이만큼의 경제학 / 강준형 지음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 위화 지음 / 김태성 옮김
요즘 것들의 사생활 : 결혼생활탐구 / 이혜인 글.인터뷰 / 정현우 사진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페터 한트케 지음 / 윤용호 옮김
--- 읽는 ---






진심의 공간 / 김현진 지음
러시아 혁명사 강의 / 박노자 지음
프랑스어의 실종 / 아시아 제바르 지음 / 장진영 옮김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 / 다니엘 벤사이드 지음 / 양영란 옮김
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지음 / 김명남 옮김
경제햑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지음 / 김진원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