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바람구두 2004-11-01  

그러고 보니 11월이네....
11월은 도살자의 달이라고 했다더라. 옛날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랬다지. 겨울을 나기 위해 가축을 잡고, 물고기를 훈제하고 그런 걸로 그네들도 나름의 겨울나기 김장 같은 것을 했다는 거지... 우리네 처지로 보자면 "배추"를 도살하는 달인가? 흐흐.... 11월이다. 미칠광, 시시, 노래곡 해서 광시곡이 어울리는 달이지... 남은 건 두 달인데 우리 학교 출신들에게는 이상하게도 이 두 달이 넘기기 참 힘들더군. 잘 지내길 바란다.
 
 
선인장 2004-11-0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11월이로군요. 아, 도살자의 달이라구요. 김치를 담그고, 가축을 잡는 것뿐이 아니라,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음에서 잘라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겨울만 오면 도지는, 현실에서 유리되고픈 마음 따위들을 꽁꽁 동여매어 한 구석에 쳐박아 두어야 할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어제는 10월의 마지막 날이었군요.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을, 기다리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저는 10월의 마지막 날을 허비해버렸습니다. 아깝지도 않아요, 이런 가을 따위는, 그렇게 허비해버려도 말이지요.
오늘부터는 칼을 갈아야겠네요. 무언가, 도살하기 위해서는 날선 칼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잘 지내세요...
 


니르바나 2004-10-30  

事緣있는 詩. 먼저 소개합니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정 진 규-

바람,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었을 때 왜
나는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가고 있었을까. 기우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나무들은 바람 따라 따라서 가 주고 있
었는데, 세상의 물이란 물들이 흐르는 소릴 들어 보아도 그렇
게 그렇게 가 주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게 아니 되었을까. 진
실이란 어떤 것일까. 있는대로 있는대로만 따라가 주는 것
일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바람 바람이여 그 동
안 나는 꽃을 돌멩이라 하였으며,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바다의
깊이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와서 어둡게 어둡게 나를 흔
든다. 가슴을 친다. 알 수 없어라. 길 가의 풀잎에게 물어 보
았을 때 그는 바삭거리는 소리만, 바삭거리는 소리만 세상 가
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그가 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 그
런 모습으로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슴 깊이로부터 한 두레박의 물, 물을 길어 내게
건넸다. 나를 씻었다. 한 두레박의 차고 시원한 물, 이것이 바
로 영원이라 하였다. 빛이라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하루가 모자란다 하였다.
잠들 수 없다 하였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곳
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아픔, 열리지 않은 문, 그가 나의 문
을 열고 당도한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느님의 체온이 거기 머물고 있었다. 알
수 없어라. 내 가는 곳까지 아무도 바래다 줄 수 없다고 모두
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어
라. 그가 내게 당도하였다는 것은,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
의 꿈, 그런 꿈의 깊이에 우리는 함께 이르고 있었다.

 
 
선인장 2004-11-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에 딸린 사연이 궁금합니다. 시는 아무래도 도달하기 어려운 먼 곳 같아요. 그래서 시보다 사연에 더 마음이 동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 깊이에 이르려면 얼마나 먼 길을 가야할까, 늦가을 잠시 마음이 정처 없이 헤매입니다.
 


니르바나 2004-10-19  

再拜
선인장님,
니르바나 인사드립니다.
저의 서재에 글 올리기 전에는 여러분의 서재를 방문하는 순례자였습니다.
그런데 코멘트를 다는 일에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 몇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선인장님의 서재에선 이상하게 제 생각이 글로 옮겨지지 않는 경험을 하였지요.
꼭 가위눌리는 꿈 속같다고나 할까요.
이 마법을 한 번은 풀어주셔야 할 듯 싶었는데
저의 서재까지 오셔서 글을 남겨주시니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짧은 가을빛을 님의 서재로 나르고 싶은 날이 며칠 계속 되는군요.
그럼,
 
 
선인장 2004-10-2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향해 먼저 손내밀지 않는 버릇, 늘 머뭇거리는 버릇, 아마도 제 좁은 심성이 고스란히 이 공간에 묻어있기에, 님이 편하게 글을 쓰시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조금 자유로워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걸 잘 실천하지는 못하고 삽니다.
그래도, 님이 전해주실 가을빛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가을이 완전히 가기 전에, 한번쯤은 님이 주신 가을빛으로 이 곳이 환해질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hanicare 2004-10-01  

안녕에다 빛나는 장식 하나만 더
입술에 빨간 것 바른 날들이 이제 지나갔군요.색깔없는 날짜들이 오래 입어 편안한 외투처럼 반갑습니다. 전국을 강타한 행렬들. 너무 상투적이어서 지겹네요.저는 미덕의 강요가 싫으니까요. 늙으면 저런 축제에는 발을 빼고 어디 좋은 곳으로 내빼야지.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갈까요.석양이 너무 눈부신 곳으로 갈까요. 검정솔이란 선인장이 조금 커서 이제 가시가 났습니다. 죽은 듯이 검은 색으로 도사리고 있는 엄지손톱만한 저것도 살아서 가시를 밀어올립니다. 멋진 은퇴까지 멋지게 살아요.웃으면서.
당신의 기본형 코트같은 무덤덤한 안녕을 빌며 그 옷깃에다가 빛나는 장식 하나만 더 얹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인장 2004-10-0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솔이라는 선인장, 보고 싶네요... 나 대신 내내 안녕하기를 바랄 뿐이지요.
 


바람구두 2004-09-30  

추석 연휴 지내고나니...
추석 연휴 지내고나니...
추석이 마치 투석 같더이다.
뭔가 던져버리고 난 뒤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추석도, 가족도 돌 던지듯 던져버리고 나면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신장 투석하듯 견뎌야만 맑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대에게 추석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선인장 2004-10-0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가 중국에서 추석을 보내시는 관계로, 엄마가 중국에 가셨더랬습니다. 부모님은 중국에서, 여동생은 미국에서, 저와 막내는 한국에서 각기 외롭고 편안한 추석을 보냈지요.
나에게 추석은? 사실 그럴 생각할 새 없이 바쁩니다. 추석 당일날만 빼고 일했는데, 내일 마감일을 지키기가 촉박해, 오늘도 야근 모드입니다.
그런 관계로, 나의 추석에 대한 정리는 주말 이후에, 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