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러다 카페에 들어가서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 마셔도 그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이 된다. 외출을 하면 항상 책을 들고 나니는 터라 즉흥적으로 카페에 들어갈 때, 순간의 기분과 책의 호흡이 좋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카페에서 읽었을 때 정말 좋았던 혹은 카페에서 읽었으면 더 좋았을 책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1. 1cm+ - 김은주






깊은 밤, 책상에 앉아 작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읽다 만 책도 있었고 읽으려고 가져다 놓은 책도 있었다. 20권이 넘는 책들을 꺼내서 읽다 안 읽히는 책들은 도로 집어넣고 마음이 가는 책들은 계속 읽었다. 그러다 이 책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1cm art>를 읽고 좋아서 구입한 책인데 마음이 동하지 않아 계속 책장 신세만 지고 있었던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저 책은 정말 내 마음이 힘들거나 혹은 위로 받고 싶을 때 꺼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금방 읽힐 책이지만 아무 감흥 없이 쉽게 읽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간에 보답하듯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이 책을 담담히 읽고 있는 나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느긋하게 읽었지만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메모지를 붙이고 잠시 음미하기도 하고 혼잣말처럼 자책과 다짐을 되뇌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책 속의 말들이 내게 콕 박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격하게 남편에게 모두 쏟아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한 직후라서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 행위가 무척 부끄럽게 여겨지는데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서로 상처를 좀 받더라도 싸매고 있는 것보다 풀어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분노, 순간의 오해, 순간의 욕망, 순간의 좌절, 순간의 유혹...... 악마는 순간을 지배한다. 순간을 지배함으로써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을 안다. 반대로 순간이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곧 지나가 버릴 순간에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과 인생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17~18쪽)


  나의 순간의 분노를 곱게 포장하긴 했지만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다짐한 뒤 이 글귀를 보니 많이 부끄러웠다. 감정을 쏟아내기 직전에 나는 순간의 유혹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내 자신에게 순간을 참지 못해서 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순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심호흡을 하거나 잠시 공간을 이동한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조절해 보기로 했고 좀 더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현실보다 상상이다.(26쪽)’란 말에도 적극 공감하면서 머릿속에 온갖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당근과 채찍을 한꺼번에 받는 것 같아 하나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위로에 잠시 마음이 촉촉해지면 금세 이런 마음을 채찍질 한다. 내가 무언가에 회피하려 TV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거나, 쇼핑에 빠져 있는 행위를 ‘마음의 커튼’에 비유해서 공감시켜 주었고 그 커튼의 이면에 진짜 무엇이 있는지 정면으로 바라볼 시선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약간’ 해본 것, 성공, 기쁨, 만족, 사랑 등등에 위안 받지 말고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나쁜 버릇(소파 위 게으름, 인스턴트식품, 나쁜 뉴스, 거짓말 등)에 적응하는 것도 말이다.




2. 잘돼가? 무엇이든 - 이경미





책이 읽고 싶은데 도무지 읽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책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갔다. 평일 한 낮인데도 카페는 앉을 자리가 거의 없었다. 널찍한 책상에 겨우 자리를 정하고 앉았지만 내 앞자리까지 그야 말로 사람들로 빽빽했다.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평안한 상태에서 책을 펼쳤다. 그리고 얼마 안가 책을 덮고 천장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부디 내 앞에 앉은 여자가 날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길, 내가 웃지 않으려 천장을 보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않길 바랐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한 웃긴 장면에서 그야말로 나는 맥없이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다 무심코 터져 나오는 웃음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존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정말 싫은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도 아름다운 존중이다. 75쪽

영화감독인 저자의 이야기는 주제에 따라 우울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어둠으로 침잠하기도 하며,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의 글은 결코 독자의 감정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지 않는다.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고나 할까? 깊게 공감해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들지도, 너무 겉핥기만 하다 지나치지 않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감각적으로 잘 썼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고, 이래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빤하고 지난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도 어쩜 그렇게 솔직하고, 웃프고, 무언가를 자꾸 생각하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지! 저자의 의도야 어떻든 나는 이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 참 좋았다.

삶이라는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라고 밀란 쿤데라는 말했다. 90쪽

그러면서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모든 것을 깨달아 버린 혹은 정답이 없는 삶의 질문 속에서 여전히 헤매는 것 같은 공감 가는 말들이 나올 때면 여러 번 문장을 곱씹었다. 마치 내 경험인 듯, 과거에 그러했던 일들이 이제야 확인 받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쉽게 눈길을 떼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이상하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의 과거를 모두 되짚으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참 어리석었구나, 즐거웠구나, 다시 돌아가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여러 감정들이 솟구쳤다 사라졌다. 그런 감정들이 남긴 뒷맛이 일단 씁쓸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잠시 추억 속에 잠겼지만 결국 그렇게 여러 맛을 느낄 과거를 또 만들기 위해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분명 재밌게 읽었는데 이 모든 감정들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대단하지 않는 일들이, 대단하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것은 일단 내 안에 잠재해 있는 모든 감각의 총동원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말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에 따라 이야기가 갈리겠지만 나도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어떠한 형태든 시작을 해보고 끝을 보고 싶었다. 오래전 저자의 일기가 이 책에서 그런 역할을 했듯이 무언가 끼적거리더라도 남겨보고 싶었다. ‘잘 되고 있지 않아, 아무것도’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어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하나의 과정인 것을! 뭔가 엄청난 걸 깨달아 버린 것 같다.




3. 모던 라이프 - 장 줄리앙





나는 좀 까다로운 사람인데다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들도 무척 많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해대서 주위에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 되느니, 내 작업을 통해 이런 것들을 코미디로 바꿔보기로 했다.


짜증을 코미디로 바꾸려는 시도가 어떤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무심코 책장을 넘겼다가 나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급기야는 낄낄대다 박장대소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유머를 발견하려 애쓰는 일은 곧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짜증이 이 책을 보는 동안에는 깡그리 잊혔다. 양복을 입고 태연히 발표를 하고 있지만 아랫도리가 축축한 그림이나, 한 남자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반대편 남자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그림, 의자 괴물을 나타낸 그림들은 흔히 마주할 수 있지만 세심한 관찰이 아니면 코미디와 연결 지을 수 없는 센스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런 유머가 왜 즐거운지를 아는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 상황과 배경이 우리 정서와 좀 다를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얽혀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불편하고, 피곤하고, 짜증이 날 수 있는데 생각의 전환으로 별 일 아닌 걸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거나 시선이 두려워 해보지 못한 일탈(?)들로 인해 간접적으로나마 후련함을 느끼면서 불쾌한 감정들을 시원히 날려버리는 기분. 글이 거의 없는 그림으로 이런 기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또한 저자는 매일 아침 사무실에 도착하면 한 시간 남짓 주변 물건들을 갖고 논다고 했다. ‘창의력 체조’라 부른다고 하는데, 사물을 완전히 새로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세상 속의 예술가’라는 제목이 붙은, 앞선 그림들과 좀 더 다른 창작물을 보고 있으면 주변 사물들도 얼마든지 존재감을 뽐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커피가 들어 있는 머그 두 잔이 선글라스를 낀 사람으로 변할 때나, 하얀 붓이 수염과 머리카락으로 변할 수 있는 모습들은 기발했다. 내가 매일 마주 하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친구처럼 혹은 동지처럼 대할 수 있는 시선과 생각이 부러웠다. 그렇다면 나 혼자 늙어가는 게 아니구나(읭?), 혼자가 아니구나 하며 사물들을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생긴다면 일상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4.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젠 캠벨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책이 좋아질 때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 책 역시 그러했고 예상치 못한 행복이 찾아온 듯 푹 빠져 들어 한참을 웃다, 황당해 하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의심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작은 책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은 책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사실을 차지하고라도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제인 에어’가 쓴 책과 <안네의 일기> 속편이 있냐고 묻고, 제목을 정정해 주어도 자신이 태어난 해와 똑같아 정확히 기억한다며 <1986>을 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실수는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뒤로 갈수록 맘껏 웃을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씩 난감해졌다.


그런 생각이 점점 짙어진 건 서점에 전화나 방문을 해 항의를 하는 건지 괴롭히는 건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손님들 때문이었다. 무려 캐나다에서 전화를 걸어와 동화책 때문에 자기 딸이 악몽을 꾼다며 판매 중지를 요청하거나 책을 주문하고 몽땅 복사한 후 반품해서 서점에서 항의하자 자신이 예언자라며 종교 팸플릿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와 상식이 필요하지만 늘 그 기준이란 게 모호하다는 걸 느끼고 어려워 할 때가 많다. 서점에서 만난 다양한 손님들을 보며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가도 그런 기준이 다른 것인지, 이기적인 것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즐겁고 독특하다는 사실에 매료되었으면서도 사연이 심각해질 때마다 왜 서점에서 이런 요구들을 해대는 것인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뒷부분에 다른 서점의 이야기도 실려 있지만 독특한 손님을 대하는 저자를 보면 책을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주려 할 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래서 이런 손님들을 만날 때마다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이상한 질문과 요구를 하는 손님들을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그 이상은 없다. 개인적인 설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이후 상황을 독자가 모두 받아들여야 하니 마치 내가 서점 직원이 되어 그 손님을 응대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책을 읽어갈수록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뭐,’ 싶다가도 어느새 피로해지고, 왜 서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듯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을 견디고 버티고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보람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책이라는 방패막이 존재하는 서점이라는 공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대로 책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저자 또한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서점이라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 아님을 제대로 느꼈다고나 할까? 종종 책 속을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도, 종종 너무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이 책을 통해(자꾸 책을 언급할수록 ‘책’이라는 아이러니에 갇히니 서둘러 이 책 속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 이게 무슨 말이지?) 책 밖의 세상을 제대로 경험한 기분이 든다. 역시나 책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한 권의 책으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내가 서점 직원이라면 이런 손님들은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이 시간에도 다양한 손님으로부터 꿋꿋하게 서점을 지키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존경을 표해본다.




5.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정은우





여행이란 듣기에는 설레도 막상 해보면 대체로 고단한 것투성이다. 어쩌면 우리는 반짝이는 찰나를 위해 고단함도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여행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33쪽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준비부터 설렌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귀찮고 고단해서 쉽게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성향과 안 맞을 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정하자 더 이상 여행에 관한 글을 회피하지 않게 되었다. 여행서를 마주할 때마다 나도 가고 싶어 질까봐, 현재의 나의 상황을 한탄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자 여행서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고, 오히려 가보고 싶은 곳도 생겨났다. 틀에서 벗어나면 좀 더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경험한 셈이다.

여행자는 자신의 낯섦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일상과 맞교환한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을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여행 아닐까. 44쪽

그럼에도 종종 안전해서 평범한 나의 일상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일상과 맞교환’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혼자 여행하기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역시나 고단함을 이길 정도의 열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과 그림,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종종 유혹에 넘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특별함보다는 소소함에서 오는 느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할 일이 빼곡하게 적힌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뭔가를 보고 남겨야 하는 여행과는 무관한 빈둥거림을 우리는 원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때론 예기치 못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여행의 느긋함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때론 ‘지금 여기에 없는 답이 여행이라고 있을 리가.’ 있겠냐는 팩트를 날리고 ‘이국의 낯섦을 보는 것도 좋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것 역시 훌륭한 여행이 될 있다. 잘 알고 있다 여기던 것들을 새삼스레 살펴보고 새로운 사유만 할 수 있다면’ 서 사람들이 국내 여행을 잘 하지 않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여행을 간접으로만 경험한 나에게도 제대로 날아드는 말들이 잠시 혼란을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세계 많은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도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들려주는 게 좋았다. 작가나 책이 되기도 했고, 유명 인물이나 그림이 되기도 했다. 소소한 일상과 얽힌 여행의 느낌들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게, 때론 잔잔하게 흘러가는 글이 책 속으로 침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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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 100년 전, 안중근 의사와 일본인 재판관이 벌인 재판정 격돌, 현장 생중계! 재판정 참관기 시리즈
김흥식 엮음 / 서해문집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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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도 가지고 차도 한 잔 마시러 카페에 갔다. 다소 신난 음악을 들으며 그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데 나는 왜 하필 이 책을 가져갔을까?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장의 사진 앞에 멈췄고 순간 눈물이 날뻔 했다. 각자 나름대로 카페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나 또한 마음이 평안했고, 귓가에 흐르는 음악도 그런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외국어로 된 음악, 커피, 불특정다수들이 모여드는 카페.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들여다 본 사진은 하얼빈에서 암살을 앞둔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의 마지막 기념사진이었다. 의거 3일 전에 마지막을 예감하듯 이발소에서 머리를 단장하고 의식을 치르듯 찍은 사진이었다. 왜 이렇게 이 사진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눈물이 맺히고 마음이 울컥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이는 31세, 우덕순은 34세, 유동하는 19세 라는 나이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열린 재판장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이 책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일본 초대 총리이자 제1대 대한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재판 과정을 재구성한 책이다. 안중근 의사는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고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8일 동안 여섯 번의 공판을 받는다. 그 공판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고, 공판을 지켜보면서 안중근 의사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낱낱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동양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이 러일 전쟁을 일으킬 당시만 해도 동양 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토가 부임한 이후에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한 을사늑약(1905년 11월)과 행정권을 박탈한 정미 7조약(1907년 7월)을 강제로 체결하고 동양 평화를 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을사늑약 당시 황제의 옥새와 총리대신의 허락도 없이 체결했으므로 부당함은 불 보듯 뻔했다. 익히 알고 있듯이 일본은 우리나라를 기점으로 삼아 제국주의를 향한 야욕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안중근 의사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반도를 넘어 동양 평화에 위협을 가중시키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리고 ‘의병으로서 행한 일이기에 전쟁포로로 이 재판장이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국제공법, 만국공법에 따라 처리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두 변호사의 엇갈린 변호(사형과 무죄)에 자신의 주장을 정확히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죄’라고 주장하는 변호사에게도 ‘오늘날 모든 인간은 법률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다니 말이 되는가?’ 라며 자신을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까지 책임지는 모습에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자꾸 올라왔다.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의식이 깨어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고향을 떠나 3년 동안 활동하면서 ‘첫 번째는 한국의 교육을 꾀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한국의 의병으로서 나라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연설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조국에 대해 품은 사상은 오래 전부터였고, 러일전쟁이 일어날 무렵 더욱 절실해졌다고 했다. 그가 행동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을 넘어 동양 평화까지 생각하는 사람 앞에 불가능한 것이 없어보였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똑같은 상황을 겪고 보면서도 생각하는 바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행동만이 최선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뜻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기꺼이 조국을 대표했고, 형식적으로 이뤄진 재판에 순응하면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고 자신의 뜻 또한 굽히지 않았다는 사실도 말이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쓰기 시작한 <동양평화론>은 완성되기 전에 형이 집행 되는 바람에 미완으로 남아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이 힘을 합쳐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평화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는데, 100년이 지난 현재를 보면 안중근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동북아 국제 정세는 달라진 것이 없고, 더 적대적이며 여전히 전쟁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뻔히 보인다. 행동을 할 수 없다면 적어도 생각이 깨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역사 속에서 생각이 깨어 있고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어 (극단적인 예로 ‘헬조선’이라 부르는) 현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너무 뻔하지만 그게 사실인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걸 어떡해야 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의거를 치르기 전에 찍은 사진을 보며 눈물이 났던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귓가에는 당시에 들었던 외국어 노래가 흐르고 있다. 내 곁에는 커피가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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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를 버린 논어
공자 지음, 임자헌 옮김 / 루페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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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고 싶은데 내 역량이 되지 않아 읽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분야별로 다양한데 그 가운데 <논어>도 단연 상위권에 들지 않을까 싶다. 논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책이 지금까지 언급되는 게 궁금하면서도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실생활과 연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저히 자신도 없고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를 것 같은데 어떻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랬던 내가 <논어>를 읽었다. 가장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은 이 책의 번역 때문이었다. 논어를 완역한 책인데, 흔히 들어온 군자와 소인이란 단어가 없다. 그리고 ‘공자님 말씀’에 비속어, 유행어, 외래어가 섞여 있다. 즉 나처럼 <논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일단 읽을 수 있게 한 다음 논어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하는 번역자의 뜻이 보였다. 그리고 멋지게 먹혀들었다.


공자가 말했다. “「시경」의 시 300편을 한마디로 하면 이거다. 맑은 마음.” 32쪽

이렇게 <논어>의 해석과 함께 번역자의 생각과 느낌이 곁들어진 게 이 책의 구성이다. 「시경」의 ‘맑은 마음’에 대한 번역자의 느낌은 신박하다 못해 논어를 계속 읽고 싶게 만든다. ‘솔직의 탈을 쓴 직설, 독설 때문에 일상에 크고 작은 빡침이 있었다면 자, 맑은 시의 바다에서 잠시 쉬시면서 셀 위 댄스?’ 라고 말해준다. 그저 마음을 다스리라는 말보다 이렇게 공감해주고 알아먹기 쉽게 말해 주니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이런 말은 어떤가.

공자가 말했다. “이번엔 부모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해볼게요. 부모님이 잘못하는 것을 보게 되잖아요? 그럼 돌직구 날리지 말고 돌리고 돌려서 감정 상하시지 않게 부드럽게 일러드려야 해요.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부모님이 내 말을 따라서 고치지 않으시잖아요? 그래도 또 공경스럽게 대해야 하고 엇나가면 안 돼요. 물론 피곤하죠. 그래도 원망하면 안 되는 거예요.”

- 나를 낳고 길러준 고마움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막무가내 효도를 스스로 세뇌할 것인가? 공자는 부딪히라고, 부모님의 잘못된 생각에 끊임없이 부딪치라고 말한다. 대신 언성을 높이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돌려 말하라고 한다. 건강하게 집요해야 하는 것이다. (71~72쪽)

효도는 어렵다. 자식 된 도리도 어렵다. 그런데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평화롭게 살아간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부딪히는 모습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절하고 도리에 맞게 하라고 알려준다. 번역자 또한 ‘건강하게 집요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논어>가 고리타분하게 잔소리만 하는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공자가 말했다. “아, 어떡하지? 아, 어떡하지? 하며 전전긍긍 애쓰지 않는 인간한테는 나도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요.”


-발은 내가 떼는 거다. 좋은 선생님이 날 어떻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283쪽

꼭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그 선택도 내가 해야 하고, 선택에 따른 긍정과 후회의 몫도 모두 내 책임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나서서 해주기를,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내 뜻과 다르면 원망의 대상을 찾고 있는 건 아닌가 할 때가 많다. 현재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나는 내 스스로가 발을 떼어 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는 기대 없이 스스로 독립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발을 떼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알아먹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온전히 깨달았다. 그리고 번역자의 말마따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을 너무 낡은 언어로 마주하고 있었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알아먹지 못해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알아먹기 쉬운 말로 논어를 읽고, 번역자의 생각을 더듬다 보니 왜 <논어>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바람직함, 사람다움,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은 세월이 지나도 본질이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현대사회에 더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었다. 혼자 살아간다 해도 필요한 것이 사람다움인데, 하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다움을 잃어버리면 그게 잘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한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논어>에는 현인의 깨달음과 조언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일 뿐 <논어>는 결코 낡은 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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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는가? - 분노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길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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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지혜롭게 수용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지금 내 상황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분노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시선, 믿음의 시선으로 보면 다른 차원의 시각이 열립니다. 36쪽


이 구절을 읽다가 몇 달 전에 생겼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90일 통독 성경’을 꺼냈다. 늘 성경을 일독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펼칠 용기를 얻었다. ‘하나님의 시선, 믿음의 시선’으로 세상과 나에게 일어난 모든 상황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여호와 이레’, 준비 하는 과정을 만들고 나를 상황으로 이끄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몇 달 동안 신앙 서적을 읽으며 내게 부족한 지식을 채우게 하시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된 듯 꼭 읽어야 하는 하나님 말씀으로 나를 이끄셨다. 90일의 목표를 세워놓고 겨우 3일 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멈춰 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가인의 분노와 사라의 분노를 읽다가 성경을 펼쳤고, 통독하는 가운데 가인과 사라가 그대로 등장하는 부분을 읽다 보니 말씀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솔직히 성경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당당히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경의 배경지식을 알고, 성경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서는 가운데 성경을 펼치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말씀이 살아서 내게 다가온 기분이 들었다.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쓰셨는지를 깊이 알게 되면서 나를 많이 대입해 보았다. 흠 많은 나도 하나님은 똑같이 사랑하시고, 언젠가 알맞은 때에 쓰시기 위하여 연단하고 계신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요셉처럼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배움의 기회로 삼으면 하나님의 큰 그림을 성취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구원을 위한,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분노 때문에 인생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51쪽

고백하건데 분노도 나의 큰 고민 중 하나였다. 나는 잘 분노하지 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욱하는 마음이 올라와 임신과 출산, 육아 핑계를 대고 있었다. 분명 그 영향도 있지만 분노의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사실에 늘 마음 한구석이 어려웠다. 그리고 성경 속 인물들이 어떻게 분노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분노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결국에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불거져 나오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과 관계가 올바르면 하나님의 시선에서 분노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가인과 사울과 요나 같은 이기적인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왕이면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아무 때나 분노하지 않고,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 안에서 분노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의 분노를 내일까지 끌고 가지 않고, 나의 의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며, 정말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 욕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모두 고하고 고침을 받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의 감정적인 분노, 이기적인 분노, 경험적인 분노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처럼 분노할 수 있을까요? 주님처럼 사랑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하면 죄인이 아니라 죄에 대해 진정으로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181쪽

결국 사랑이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사랑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그리고 절대 내가 갚을 수 없는 죗값을 치러주시고 은혜 내려 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분노도 미움도 절망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연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늘 주님께 모든 걸 맡기며 죄와 가까이 하지 않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렇게 평생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삶이며, 그 가운데 믿음과 사랑이 밖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율법에 갇힌 행위가 아닌 사랑에 의한 실천. 내게 당면한 작은 어려움 하나라도 그렇게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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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갔다가 허수경 시인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찍은 사진이다.




페이스북을 잘 들어가지 않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눈 뜨자마자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글들을 보다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결국 돌아가셨구나. 위암으로 투병중이시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이런 소식이 부디 전해오지 않길 바랐다.



허수경 시인의 흔적이라도 발견하고 싶어 블로그를 뒤졌다. 약 4년 전에 우연히 찍은 사진이 나왔다. 듬성듬성 센 머리카락과 체크 목도리가 무척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나던 사진이었다. 이젠 정말 사진으로밖에 뵐 수가 없는 분이 되어버렸다.

 

 



책장을 뒤졌다. 2011년에 출간된 <박하> 책이 나왔다.

 



겉표지를 들추면 유난히 예뻤던 표지로 기억되던 책이었다.

 

 

 



그리고 무심코 책장을 열어보고는 놀랐다.

정말 잊고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사인본이 있을 줄이야.


사인본을 보고는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냥 참고 싶었다.

내가 울어버리면 정말 영영 이별일 것 같았다.



이미 읽은 작품이지만,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으로 다시 만날 것이다.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평안하시길!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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