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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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31쪽


 

1995년~1996년 사이에『주간 아사히』에 실린 저자의 에세이를 읽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물론 저자와 나는 나이차이가 있어서 공통된 주제와 기억은 거의 없었지만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 나에게 주어졌던 1995년~1996년의 기억들이 조금씩 올라왔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받은 느낌이었듯, 잊고 있었던 과거를 되짚어본 기분이랄까? 저자의 에세이는 모조리 읽었다고 여겼는데 숨겨진 이야기를 불쑥 발견한 느낌이었다. 반면 당시 중학교 2학년~3학년이었던 나의 모습과 추억들은 형체보다 기억뿐임에도(학교, 짝사랑, 고민, 번뇌, 진로, 독서 등) 사라져 없어졌다 다시 건져 올린 것 같았다.

 

물론 나이들어서도 상처받을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그 상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두고두고 곱씹는 건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125쪽

 

저자는 상처 받았던 일을 떠올리면서 상처 받지 않기 훈련을 통해서 많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쉽다는 건 젊은이에게 흔히 보이는 경향인 동시에, 그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리가 아닐까’란 말을 했다. 최근에도 상처받은 일이 있었던 나는 이 문장 앞에서 멈칫했다. 나는 현재 어느 단계일까? 나이의 의미가 상대적이긴 하지만 나이는 먹었으면서 젊은이들의 고유한 권리를 너그럽지 못한 마음으로 풀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두고두고 곱씹는’ 단계에 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면서도 결국은 그런 단계까지 가고 마는 연유를 생각하자 괜히 복잡해져 버렸다.

 

이렇게 마이너한 관심사에 취향이 통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꽤 유쾌해진다. 인생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가운데 하나다. 198쪽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소확행’이 저자가 가장 먼저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자의 웬만한 에세이를 읽었다고 여겼던 나는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마치 잊고 있던 저자의 이야기를 만난 것 같은 이 책에서 ‘소확행’ 단어를 만났다. 저자의 에세이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꼭 이렇게 대놓고 정의하지 않아도 저자의 일상에서 심심찮게 ‘소확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소확행’ 확장형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어떤 틀에 맞추는 건 아니다(만(저자도 마찬가지일거라 여긴다). 저자가 궁금한 걸 해소시켜가고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잘못된 것에 용서를 구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소신대로 생각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서 적어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억지로 이야기한다는 느낌은 없었다는 뜻이다. 저자 또한 동시에 작업한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 인터뷰집인『언더그라운드』가 상당히 무거워서 이 글들을 연재하면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좋은 기분 전환이 되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히다『언더그라운드』를 읽고 저자를 완전히 다르게 보고 다른 작품을 탐독했던 터라 비슷한 시기에 쓰인 이 글들이 하루키란 저자를 좋아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마음의 경계에 다시 걸터앉은 느낌도 들었다.

 

만약『언더그라운드』를 읽기 전에(작품의 비교가 아니라 작가에 대한 내 마음의 인식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에세이를 먼저 읽었더라면 과연 저자의 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별 고민 없이 ‘아니’라는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일찍 읽어버렸다면 분명 이 글들의 매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텐데, 약 24년이 지난 후에 읽게 된 느낌은 마치 잊고 있었던 일기장을 찾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열정적이면서 풋풋한 면이 없지 않지만 현재의 내 모습(저자에게는 그 이후의 작품들)의 중요하지만 서툴렀던 자양분을 발견한 기분이다. 다시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용기가 되는 행위. 이 글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시 중학생이던 내 기억들이 꼭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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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성숙인가 - 나를 바꾸는 예수의 가르침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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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처럼 변해라, 소금이 되도록 노력해라, 그렇게 부탁하시지 않습니다. 너희들은 소금이다, 그렇게 알려 주십니다. 35쪽

 

소금의 역할은 음식의 맛을 위해 반드시 녹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금의 형태가 사라져야 비로소 소금의 역할이 드러난다고 말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믿는 자녀로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소금의 역할을 그저 꼭 필요한 존재로만 인식했던 것 같다. 오히려 소금의 역할을 하겠다고 자처하고는 ‘짠맛’을 내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내가 녹아서 형태가 사라지지 않을 때가 많았음을 알게 되자 그저 부끄러웠다.

 

이 책의 제목『무엇이 성숙인가』를 곰곰 생각해보고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저자가 던지는 주제들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게 나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복음으로부터 소금과 빛의 역할, 살인, 간음, 기도, 재물, 염려, 비판 등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제대로 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고개를 들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면, 그 사실을 믿고 있다면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깊이 깨닫게 된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 경멸하지 말고 욕하지 말고 험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74쪽

 

살인의 형태가 여러 가지가 있음에도 나는 ‘살인’에서만큼은 자유롭다고 여겼다. 하지만 경멸, 욕, 험담도 살인이라고 하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내 입으로 죽였는지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살인을 저질렀음을 고백하고 책을 읽다 말고 바로 기도했다. 앞으로는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제 입술을 지켜’ 달라고 말이다. 간음에서는 또 어떤가! 음욕은 사랑이 결여된 충동적 욕구이고, 음란은 나를 예배하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음욕과 음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역시나 나도 음란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음을, 그리고 그 원인은 사마리아 여인이 자신의 음란의 문제를 예배를 끌고 가는 것을 보며 이 모든 문제가 ‘예배가 무너진 데서 나온 것임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슨 선택을 하건 돈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181쪽

 

쉽지 않은 문제다. 아무리 돈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고 해도 직업을 선택할 때,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돈이 기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말씀을 깊이 깨닫는다. 물질이 누구에게로부터 오는지를 알게 되면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분명 돈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충분히 경험했다. 그래서 유혹으로부터 넘쳐나고, 더 많이 가져야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기로 했다. 돈 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의미를 알면 알수록 절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들임을 통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지킬 수 없는 것들이니 포기하며 살아야 할까? 하나님은 정확하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나를 포기하라고, 하나님을 따르라고, ‘내 것’ 이라고 여기는 것들에서부터 벗어나야 진정한 자유가 온다고, 그 모든 걸 예비해 놓으셨다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이 왜 쑥쑥 자라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거나 되돌이표가 되는지 알려 주십니다. 첫째가 재물 때문이고, 다음이 불안 때문입니다. 염려와 걱정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209쪽

 

비판이 얼마나 쉽고 사람들과 있을 때 솔깃한 주제인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타인을 비판하는데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뼈저리게 인정했다. 매일매일 타인을 비판하는데서 자유롭지 못함을, 마음으로 죄를 품고, 입으로 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사람들이 마다하는 좁은 길로 가야 함을 깨닫는다. ‘본질적으로 세상적인 가치관이고 나를 추구하는 인생관과 다른 인생관’이 좁은길이라고 했다. 좁은길을 자처해서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고,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됨은 무엇일까? 내가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죽음과 그 이후의 삶까지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맡겼으니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 단순히 발자취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에 감사함을 가지고 따라가는 일이다. 어렵고 힘들고 때론 이유를 모를 때가 있을 테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면 두려울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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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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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아쉬운 마음에 저자가 참고했다는 자료와 연구 목록을 쭉 살펴봤다. 거의 다 모르는 책들이어서 실망감이 젖어들 무렵 아는 저자와 책들이 몇 권 보였다.『대소설의 시대』는 국학자들의 뛰어난 연구 성과에 힘입어 창작되었고, 특히 정민, 안대회, 정별설, 이지하, 장시광, 한길연 선생님의 논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정민, 안대회, 정별설 선생님의 강연도 듣고 책도 소장하고 있는 나에게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소설을 다 읽어버린 아쉬움, 다음 이야기이자 의금부 도사인 ‘나’ 이명방이 쓰게 될 소설을 기다리는 동안 반가운 이름의 선생님들이 남긴 책을 읽겠노라 다짐했다.


‘나’ 이명방은 절친이자 규장각 서리 김진에게로부터『산해인연록』의 임두 작가님을 뵙고 오라는 명령 같은 부탁으로 소설은 시작된다.『산해인연록』의 열렬한 팬이면서 임두 작가님을 뵙는 것이 평생소원인 이명방이지만 선뜻 뵙고 오겠단 말을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23년 째 대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임두 작가님을 뵌 사람이 없었고, 집필에 어떠한 방해가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떨리면서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어떠한 찬사로도 부족한『산해인연록』의 임두 작가가 지금은 할머니가 된 여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불같은 성격 앞에 당황한다.

모름지기 소설은 한가한 나날의 심심풀이지만, 뜻밖에도 슬픔을 견디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니까. 1권 82쪽

대작가 임두의 정체에 놀란 것도 잠시 이명방은『산해인연록』이 사도세자가 죽은 뒤 부인 혜경궁 홍씨가 직접 대소설을 짓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23년 간 쓰인 소설이 5개월 째 머물러 있고, 소설에 황족이 등장하면 꼭 요절하지 않도록 약속 했는데 소설 속 인물 창화 공주가 병상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 궁중에서 초조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연유를 알아오라는 게 이명방과 김진의 일이었다. 단순히 임두 작가가 큰 이유 없이 다음 이야기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소설을 구상할 때 결말까지 써둔 ‘휴탑’ 수첩을 둔 장소를 잊어버리고, 치매를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 임두 작가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자 문하의 두 제자 수문과 경문이 그 뒤의 이야기를 이을 처지에 처한다. 마마의 명령이니 도망갈 수도 없고, 임두 작가의 문하에서 오랜 세월을 연마했으니 부족하지만 마무리 짓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혹자는 처음부터 내가 백 권이 넘는 대소설을 쉽게 써 내려간 줄 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시가 천재들의 예술이라면 소설은 둔재들의 예술이다. 2권 91쪽

김진과 이명방은 ‘휴탑’ 수첩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첩 전에 임두 작가를 찾는 일과 수문과 경문이『산해인연록』을 이어쓸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하는 일까지 맡아야했다. 그러는 사이에 김진은 혼자서 탐문을 하면서 이명방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려준다. 또한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임두 작가의 손녀 임승혜에게 할머니에 관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다. 왜 23년 간 대소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왔는지,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 알수록『산해인연록』이 범접할 수 없는 소설이라는 것, 대작가 임두가 평생을 받쳐 쓴 소설임을 더욱 더 깨달아 갈 뿐이다.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그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만 봐도 소설의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있고, 그렇기에 더욱 더 작가의 행방과 소설의 완결을 염려하는 게 비로소 이해가 갔다.

어머님은 형편없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소설 쓰는 기쁨까지 앗아서는 안 된다고, 소설로 인해 상처 주거나 상처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2권 89쪽

기쁨으로 쓰는 소설은 독자에게도 그 기쁨이 전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임두 작가나 그의 제자들이 이 기쁨을 온전히 누렸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그런 순간을 느낀 적이 있을 테지만 계속 이어졌다고 볼 수 없다. 임두 작가가 칩거하고 있을 곳에서의 폭발과 시신 발견, 소설의 완성, 그리고 범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잔인했고 추악했기에 소설 쓰는 기쁨과 상처 받는 일에서 온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었다.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 정신없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을 바라진 않았지만 순리대로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럴수록『산해인연록』의 의미가 나의 생각보다 더 넓고 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의 말미에 임승혜가 김진과 이명방에게 준 선물의 의미와 이명방에게 남겨진 숙제가 그 세계를 더 경험하게 해 줄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궁중의 여인들이 임두 작가에게 앞으로도 300권이든 400권이든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를 쓰라는 잔인하면서도 칭찬의 의미가 담긴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백탑파 시리즈를 띄엄띄엄 읽어서 다시 주인공들을 만나고 싶었다. 저자는 백탑파 시리즈 준비과정부터 열권의 책이 채워지기까지 19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탐정은 여전히 20대 청춘인데 작가만 늙었다’며 한탄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모두가『산해인연록』에 바랐던 그 마음처럼,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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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의 가정 - 하나님과 동행하는
러셀 무어 지음, 김주성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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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정은 기쁨으로 충만할 수도 있지만 우리를 항상 고통에 취약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기쁨과 고통은 우리가 한 곳을 바라보도록 한다. 바로 십자가다. 17쪽


저녁을 먹는데 책을 보던 둘째가 뭐가 맘에 들지 않는지 소리를 질러댔다. 다른 때 같으면 즉각 반응을 해서 둘째에게 싫은 소리를 했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상담을 다녀온 터라 아무 반응을 하지 말자고 했다. 무관심하면 알아서 수그러질 거라고 하는데도 남편은 그 상황을 못 견뎌했다. 급기야 상담을 다녀서 뭐가 나아졌냐고, 소리 지르는 이유 하나 못 알아내면서 그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말에 숨이 턱 막혀 버렸다. 그걸 모르니까 상담을 다니는 거고 상담하는 곳에서 정답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고 그걸 알아가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둘째는 소리 지르는 걸 멈추지 않았고, 읽던 책을 가져와서는 어느 한쪽만 보면 계속 울고 있기에 들고 온 책을 북북 찢어버렸다. ‘이제 됐지? 안 울 거지?’ 물으니 둘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첫째는 왜 내책을 찢냐며 울어버리고, 가족 세 명이 나를 둘러싸고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 같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혹은 내가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거나.

가족은 영적 전쟁이다. 29쪽

순간 올라오는 기분대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까 하다가도 이 구절이 떠올라 멈칫했다. 첫째에게 책을 찢은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 주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주무르며 ‘미안해. 답답해서 그랬어. 답답해서.’ 라고 했다. 그 순간 ‘먼저 제자가 되지 않으면 가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생물학적 피가 아니라 십자가의 보혈로 이뤄진 가족의 일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기쁨과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제자 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고, 믿음의 가정이라고 하면서도 기쁨만 누리려 하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씁쓸해져 버렸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하나님 나라의 원리 속에서 생명을 발견하는 방법은 생명을 잃는 것이다(막 8:35). 이와 마찬가지로, 가족을 되찾는 길은 우리의 가족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93쪽

가족이 우상화 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면서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순간이 깨질까, 내가 쳐 놓은 울타리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원하는 가족을 되찾는 길이 가족의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거라니. 순간 멍해졌다.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은 가족의 가치가 얼마나 많은 잘못된 것들에 휘둘리고 있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그러다 가족 가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 가족을 버리라거나, 가족을 소중히 여기지 말라는 말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오히려 가족을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먼저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하기에 솔직하게 드러낸다. 지금껏 이렇게 적나라하게 가족의 의미를 내놓은 책도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반항적인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성경 위에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정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십자가 앞에서의 남자와 여자, 결혼, 성性, 이혼, 자녀, 부모에 대해서 거침없이 얘기한다. 거기다 현재의 문제를 절대 회피하지 않는다. 교회가 시대의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처럼 복음, 십자가, 가정, 교회, 공동체의 의미와 역할을 촘촘하게 엮어낸다. 그 이야기들은 내가 숨기고 싶고, 피하고 싶고, 마주하기 싫어했던 것들이어서 얼마나 가정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삶은 우리를 자유케 하여 가족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악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게 한다. 십자가에서 짐이 축복인 것을 볼 때, 우리는 가족을 짐으로 여기거나 싫어하지 않게 된다. 424쪽

가정과 연결 된 이야기는 방대한 분량이 되어버렸지만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함을 알게 한다. 복음을 깨닫는 것, 하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모습을 기억하는 것, 그럼에도 이런 나를 용서하시고 복음으로 자유롭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럴 때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는 물론 기꺼이 짐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앞으로도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고통이다.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임재의 징표라는 것을 배웠’으므로 기꺼이 사랑을 배우고 베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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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1
존 번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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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좋아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모든 걸 누리려고 하는 자들이지요.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와 같지요. 그들은 지금 당장 좋은 것을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입니다. 도무지 내년까지, 곧 다음 세상까지 기다릴 줄 모르지요. 63쪽


그동안에 나름대로 정욕을 다스리고 있다고 여겼다. 내 형편대로 살아가자고, 넉넉하지 않지만 형편대로 살고 있으니 내가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여유를 부려도 내 기준으로 멋대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절대 정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그동안 스스로 다스렸다 여겼던 정욕에서 결코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정욕을 좌지우지 한다고 여겼을 뿐 결국엔 스스로 합리화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군. 날씨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길을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지 뭐야. 나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네. 186쪽

‘사심’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 내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한 생각을 들켜버린 것 같아 뜨끔했다. 편안한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조금만 불편해도 투덜댔던 나의 모습이, 환경이 바뀌고 나에게 헌신과 봉사를 요구하는 일들이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하지 못했던 날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저 십일조 하고 주일, 수요 예배에 참석하면 내 할 일이 다 끝난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크리스천의 순례길을 따라가면서도 이렇게 만나는 이들이 모두 내 모습인 것 같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는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 모든 수고에 대한 위로를 받고 모슨 슬픔은 기쁨으로 변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왕을 위해 뿌린 모든 기도와 눈물, 고통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금 면류관을 쓰고 거룩하신 분의 ‘참모습’을 영원토록 볼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섬기고 싶었지만 육신의 연약함 탓에 온전하게 섬길 수 없었던 하나님을 찬양과 감사로 영원토록 섬길 것입니다. 288쪽

그럼에도,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결국 천성문에 들어오게 해주셨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면서 수많은 반성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도 결국 들어온 천성문 앞에서는 오직 감사함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뿐이지만, 마치 내가 순례길에 오른 것처럼 편한 과정이 하나도 없었다. 수없이 바뀌는 내 마음과 걍팍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결국 나를 천성문에 이르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저 감사하고 감사했다.

한 권의 책을 만날 때마다 이 시기에 나에게 이 책이 왔을까 곰곰 따져본다. 꼭 하나님에 내게 주신 메시지 같아서 허투루 읽을 수 없으면서도 읽는 동안 수많은 내가 만들어졌다 사라지곤 했다. 순례자의 길에 오른 크리스천이 내가 되었다가도, 그가 만나는 고집, 변덕, 세속현자, 신실, 무지가 누구의 모습인가 끊임없이 대입해보곤 했다. 깊은 반성과 탄성, 회개와 기도가 절로 나오면서도 마치 지금껏 나의 신앙생활을 낱낱이 되짚는 것 같아 많은 생각이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그리고 나의 미래까지 경험한 것 같았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스럽게 들어가고 싶지만,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들어올 수 있다 했지만 세상의 온갖 것들에 유혹당해 하나님 나라를 익히 알면서도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자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 나라를 명확히 보여주면서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알려 주면서도, 구원에 이르기까지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매일 온갖 것들에게 유혹을 당해 하나님을 등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려준다. 늘 실천이 어려울 뿐,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곁에 있는 분임을 ‘그리스도께서 벽 뒤에 서 계신 것은, 우리가 시험을 받는 동안에는 우리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은혜의 역사에 대해 알기가 힘들다는 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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