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팩트체크 - 기독교 핵심 질문에 26권의 변증서로 답하다
안환균 지음 / 두란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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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었을 때 칼 세이건의『코스모스』를 보름동안 완독했다. 우주의 광활함 앞에 꼼짝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면서도 살짝 겁이 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로움과 광활함을 경험하고 나니 오히려 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이 믿어졌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 우주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사실이 믿어졌냐고 묻는다면 똑 부러지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믿음을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코스모스』라는 서사의 끄트머리에는 하나님이 온전히 계셨다는 사실밖에 밝힐 수 없다. 그건 내가 가진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누군가 갖는 의문을 속 시원히 풀어줄 지식이 없다는 사실이 늘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결국에는 두루뭉술한 ‘믿음’으로 결론짓고 마는 나의 짧은 지식이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이런 나를 위한 듯 이 책은 26권의 변증서를 통해 ‘기독교 진리를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공통분모나 접촉점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실증적인 증거가 없이는 아무도 무언가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떻게 실증적으로 입증해 내겠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24쪽


얼핏 말장난 같기도 한 변증을 듣고 있으면 어렵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더디 읽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의문을 품었던 주제들에 대한 의문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내 안에도 새로운 믿음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면 내가 먼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변증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그 사실이 과연 믿어지는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변증을 다룬 책들과 수많은 의문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이 촘촘히 얽혀 들어가면서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이 토대를 이루었다. 무작정 믿음만을 강조하는 기독교가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무신론자들은 만들어진 우주 자체가 기적이며 자신의 존재 자체도 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우연을 창조주로 삼을지언정, 초월적인 신의 존재만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74쪽

총 5부로 나눠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서슴지 않는데, 하나님은 왜 인간의 고통을 못 본 척 하시는지, 성경의 창조론과 유신진화론이 양립할 수 있는지, 예수를 몰랐던 세종대왕은 지옥에 갔는지, 한 번 믿기만 하면 영원한 구원인지에 대한 의문들을 깊이 있게 다룬다. 다른 변증서들을 통해 변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랜 고민과 연구가 함께 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성경에서 지금 우리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는 분이 바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다른 종교나 신화들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바로 그분이시기 때문이다. 236쪽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은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증거들을 대면서까지 하나님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면박을 주고 선을 긋는 것은 아니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실들에 그저 조목조목 증거를 대고 있을 뿐,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님을 그저 만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고, 믿고, 맡기면 큰 틀은 흔들리지 않는다. 때론 믿음에 대한 자잘한 흔들림이 있고, 깊게 설명할 수 없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안에서 나의 본질과 모든 것의 계획하심이 보일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존재가 죄와 맞서도록 변화되었기 때문에 고백을 통해서라야 이와 같은 기본적인 정신 자세와 마음 자세로 돌아가게 된다는 인식’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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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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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이었다. 아버지 기일이라 친정에 가는 길이었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4학년 때 이미 분교가 되었고, 폐교된 지 오래되어 현재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지나치며 집까지 걸어갔던 길을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당시에 자동차가 다니는 큰 길은 멀어서 지름길인 산길을 통해 통학했다. 그렇게 불쑥 꺼낸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친정에 도착해서 제사 음식을 대충 준비해 놓고 언니네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그 길을 가봤다. 


그 길은 꿈에 자주 나타났다. 해는 떨어져 캄캄한데 나는 그 길을 혼자 걷고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족히 한 시간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 나는 막막해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왜 자꾸 그 길이 꿈에 나오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길을 좀 더 또렷이 기억하고 싶었다. 


그 길은 그 자체로 감격스러웠다. 뭉클해서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날 뻔 했다. 분명 내가 걷던 그 길은 엄청 넓고 끝이 없어 보였는데, 지금 보니 굉장히 좁고 나무들이 우거진 오솔길에 가까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5년 만에 와보는 길인데 그 길을 보자마자 모든 기억이 올라왔다. 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언니도 그 길로 학교를 다녔던 터라 내가 길 하나하나 더듬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자 언니도 자신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네 잎을 넘어 일곱 개나 달린 클로버를 찾았던 장소며(이건 진짜다), 다슬기와 송사리를 잡으며 올라왔던 개울, 집까지 한참이 남았는데도 용 발자국이 찍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에서 물놀이를 하고(그래서 통학길 이름은 용선골이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남의 텃밭에서 무와 고구마를 캐서 먹었다. 그때는 시골의 정이 비교적 넉넉했던 시기라 들켜도 어른들이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두메산골에서 자란 터라 양은 도시락에 점심을 싸서 다녔고, 겨울에는 일찍 도착한 사람이 난로의 맨 아래 도시락을 놓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도시락 통을 씻어 다슬기를 한껏 담아왔다. 그러면 그날 저녁 후식은 다슬기가 되었다. 엄마가 다슬기를 삶고 있으면 마당 울타리 탱자나무의 뾰족한 가시를 꺾어 그걸로 다슬기를 쏙쏙 빼먹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들과도 얘기가 통한다. 그리고 이런 추억이 가장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은 역시나 6년 동안 열심히 걸어 다녔던 용선골이었다.


존 밴빌의『바다』에서는 병든 아내를 잃고 50년 만에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쓸쓸한 한 남자가 나온다. 훌쩍 자란 딸이 있지만 온전히 혼자여야 하고 혼자인 것 같은 남자. 내면에 슬픔이 가득하지만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아내가 없는 낯선 감정을 처리할 수가 없는 맥스라는 남자다. 그래서 아픈 추억이 깃든 바닷가에서 그는 ‘그러고 보면 우리는 슬픔의 작디작은 배들이 아닌가, 어두운 가을을 헤치며 이 먹먹한 정적을 떠돌아다니는 작은 배.(72~73쪽)’ 라고 말한다. 마치 종류는 다르지만 이 슬픔이 자신만의 슬픔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기억은 움직임을 싫어한다. 사물을 정지된 상태로 유지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206쪽)’ 고 했다. 11년 전에 처음 읽고, 작년에 재독했던 이 문장의 의미를 용선골을 보며 비로소 이해했다. 25년 동안 나는 그 길을 완전히 떠나 있었지만 내 기억은 그 길 곳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겨우 그 길을 더듬었다 직접 마주하자 그제야 흩어져 있던 기억과 장소가 일치한 기분이 들었다. 미미하긴 하지만 내 기억도 움직임을 싫어하고 있었고, 비교적 크게 변한 게 없는 용선골의 길들은 정지된 상태에서 기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맥스는 모든 게 변해 버린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바닷가에서 천천히 그 여름을 떠올린다. 떠올리지 않아도 스스럼없이 드러나는 기억의 파편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것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고통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기억 중의 하나를,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게 내겐 용기로 보였다. 그 당시 자신의 이상을 편입하려 했던 그레이스 가족. 그 가족과 함께 하고 클로이에게 느꼈던 연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클로이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와 함께 여전히 클로이는 자신에게 어린 소녀였고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거기서 멈춰버린 듯했다. 


‘정말이지 기억하려는 노력만 충분히 기울이면 사람은 인생을 거의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151쪽)’며 그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한 때를 보낸 바닷가에서 아픈 과거를 들추었지만 맥스가 살아야 할 시간에는 현재와 미래도 있었다. 아내와의 추억과 그녀가 남겨준 것들과 딸과의 새로운 관계도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맥스는 아내를 잃었다는 상실로 인해 깊은 슬픔을 맛보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느새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맥스가 아픈 기억이 있는 바다를, 아내를 잃은 뒤 혼자가 되어 다시 찾은 이유가 오로지 과거의 기억 속에 자신을 감추려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국 과거란 현재였던 것,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그래도.(62쪽)’ 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그 아픈 기억을 다시 들춰내는 걸 보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려구나 지레짐작 했다.


마음만 먹었으면 진작 가볼 수 있었던 용선골을 25년 만에 가본 것도 내겐 큰 용기였다. 세월은 지났지만 오래전 그 길을 걸었던 내가 있었고, ‘한때 그랬던 것, 지나간 현재일 뿐’이라고 해도 내겐 큰 의미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미래로 나를 밀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여겨 늘 불안했던 나는 그 길에서 존재했던, 그리고 현재의 나와 연결된 또 다른 ‘나’를 만났다. 고작 어렸을 때 걸었던 그 길 하나로 뭐가 이리 거창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게 빨리 변하고 쉽게 잊히고 새로운 것만 찾게 되는 요즘에 그 길은 내 존재의 의미를 새삼 밀어 올려주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진짜 과거는 우리가 그런 척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148쪽)’는 말처럼, 맥스가 오랜 세월 후 마주하게 된 V양이 “그래서 지금도 여기 있는 거예요.”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까지.” 라고 고백하고 그녀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맺힐 정도로 잊힐 것 같던 오랜 기억에 대한 애잔함이 올라왔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미화된다는 것을 안다. 다행히 용선골은 비교적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거기 있었지만 좋은 추억만 있는 게 아니다. 함께 그 길을 둘러보던 딸아이에게 어렸을 때 엄마가 이 길을 혼자 걸어 다녔다고 말하자 아이는 바로 물었다.


“엄마, 무서웠어?”

“응. 많이.”

“그래서 울었어?”

“응. 울면서 집에 갔어.”

“많이 힘들었겠네.”


그렇지만 여전히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은 학급 도서에서 빌려온『충효사상대전집』을 읽으며 걸었다. 학구열이 뛰어났던 게 아니라 그 길이 너무 무료해 내 나름대로의 처방전이었다. 그 뒤로 공부 쪽은 영 소질이 없었지만 여전히 나는 책을 좋아한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 더듬어 보면 정확한 기억이 없어, 용선골을 걸으며 읽었던 『충효사상대전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야 그 경험과 기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이 낯선 곳에 우뚝 서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정체성 혼란이 올 때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재소환해준 게 지난 주말 다시 돌아본 용선골이었고, 당분간은 이 기억으로 버틸 힘을 얻은 것 같다. 누군가 그랬던가. 행복한 기억 하나만 있어도 살아갈 힘이 된다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말이 왜 이렇게 뭉클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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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바나나 패밀리 살림 3.4학년 창작 동화 11
이순미 지음, 모예진 그림 / 살림어린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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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말았다. 스스로도 계면쩍어 웃어버렸는데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 너무 내 얘기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감춰왔던 비밀을 들킨 것 같아 공감이 가면서도 격한 감정에 휘둘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다 울고 말았다. 형제가 많아 식구가 10명인 약용이도, 늦둥이라 부모님 나이가 많아 창피한 보석이의 마음을 다 경험했던 터라 감정의 둑이 터져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9남매의 막내다. 가족에 관한 에피소드라면 나 역시 넘치고 넘친다. 초등학교 때 새 학기가 되면 담임선생님께서 대놓고 가족 수를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손을 가장 늦게 드는 아이였다. 선생님께서 숫자를 말하면 아이들이 손을 들었는데, 식구가 너무 많아 손을 들 수 없는 나는 왜 너는 손을 안 드냐는 질문을 항상 받았다. 아직 우리 집 식구 숫자가 안 나왔다고 말하면 식구가 몇 명이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반응을 가늠하면서 11명이라고 말한다. 철없는 나는 식구가 많은 게 너무 싫고 창피했다. 고등학교 때는 잔머리를 굴려 결혼한 언니들은 빼고 얘기했는데도 7명이어서 별 효과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

중학생 누나부터 곧 태어날 동생까지 대가족의 가운데에 끼어 있는 약용이를 보면서 혼자 있고 싶은 기분, 학원에도 가고 싶고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마음도 십분 공감이 갔다. 언니들이 중학생만 되어도 읍내에서 자취를 해서 매일 대가족과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경쟁은 항상 치열했다. 먹을 거, 입을 거, 학교에 내야 할 돈이라도 있으면 부모님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말하는 버릇까지 나름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약용이가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식구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학교에 가족사진을 가져오기를 꺼려하는 모습까지 마치 내가 약용이가 된 것처럼 난감했다.

늦둥이로 태어난 보석이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가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여 놀림을 견디지 못하고 전학 온 터라 철부지에다 늘 시무룩했다. 담임선생님은 일부러 그런 보석이를 약용이와 짝꿍을 만들어 주었는데, 서로 티격태격하다 결국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가족 창피하면 꼬리표 돼요. 꼬리표는 숨기고 싶어요. 가족 사랑하면 이름표 돼요. 자랑하고 싶어요. 약용. ‘가족은 선물’이에요.” 라고 말했던 제이미 선생님처럼 약용과 보석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가족은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민 잔치 한마당에서 약용이가 동생을 위해 선물을 고르고, 참관 수업에 참여한 엄마를 보며 아프지 말라며 울음을 터트리는 보석이를 보며 가족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약용이나 보석이처럼 어릴 때 가족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가족이 많은 것이 꼬리표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그 꼬리표를 꽤 오랫동안 숨기고 살았다. 가족이 많기 때문에 서먹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일보다 힘을 합하고 위로가 필요할 때 가족이 많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나 역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전혀 창피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이 된다. 우리가 얼마나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어느덧 막내였던 내가 마흔이 되었고, 엄마는 여든을 앞두고 계신다. 보석이가 엄마에게 아프지 말고 오래 곁에 있어달라는 말에 눈물이 터졌던 이유가 우리 엄마를 보는 내 마음과 같아서였을 것이다. 쑥스럽지만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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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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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피의 글에서 구조는 단어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띤다. 일반적인 작가라면 직접 서술할 내용을, 맥피는 장과 장 사이에 여백을 두거나 문장과 문장을 독특하게 병치해서 표현한다. 마치 모스 부호 같다. 공백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 13쪽


서문을 읽으면서 글의 구조, 구조, 구조에 대해 역설해서 본격적으로 읽기 전부터 기가 빨려버렸다. 이러다가는 글의 구조를 생각하다 읽기 자체를 놓칠 것 같다 불안했다. 이런 독자의 걱정도 계획한 걸까? 막상 저자의 ‘강박적 집필의 과정’을 읽기 시작하자 글의 구조는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다만 저자의 글은 술술 읽히지만 저자는 결코 쉽게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글 자체에 대한 의문들이 몽글몽글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가 1975년부터 프린스턴에서 가르쳐온 글쓰기 강의록이라고 한다. 강의 중에는 집필을 하지 않는 저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두 과정을 이룩하는지 알 수 있었다. 독자가 이런 반응을 갖길 원하는 건 아니었을 테지만 강의록의 느낌을 남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내 글은 그저 쓰잘머리 없어 보인다. 굳이 쓰지 말아야 할 글을 남기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므로 내 글의 구조 같은 건 내버려두고 평범한 독자의 시선을 나눠보려 한다.

독자들이 구조를 눈치채게끔 해선 안 된다. 구조는 사람의 외양을 보고 그의 골격을 짐작할 수 있는 만큼만 눈에 보여야 한다. (…) 구조에 글감을 억지로 끼워맞추면 안 된다는 얘기다. 82쪽

모든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모으기, 검토하기, 분류하기, 집필하기 과정을 거치는데 저자는 거의 초인적인 수준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역설하는 글의 구조를 나는 절대 따라할 수 없을지언정 공감 가는 부분은 많았다. 예를 들어 강 여행을 하다가 회색 곰을 조우하는 순간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현재, 과거, 시간에 맞추는 것을 보며 분명한 차이를 보았다. 또한 글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들과 발행인, 인터뷰를 끌어내는 법, 참조 틀, 체크포인트 등 글이 완성되는 과정에 있는 다양한 시선과 형식으로 만나는 것도 흥미로웠다.

엘리너 굴드라는 22세의 배서칼리지 졸업생에 대한 소문이 특히 그랬다. 1925년에 갓 창간된『뉴요커』를 사서 읽고는 파란 연필로 교정해가며 다시 읽었고, 교정을 끝냈을 때는 잡지의 모든 페이지가 얼룩덜룩한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교정한 잡지를 초대 편집장인 해럴드 로스에게 우편으로 부쳤고, 이것을 받아본 로스는 “이 새끼 당장 찾아서 채용해!” 라며 고함쳤다고 한다. 이후 굴드가 하는 일을 뭉뚱그려 ‘교열’이라 했으며 문법 전문가라는 직함을 수십 년간 받아들였지만 굴드는 모니터하며 다루는 많은 부분의 기초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흥분된다. 대리만족을 넘어, 이상적인 꿈에 도달한 기분이 든다. 정말 저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이야기를 들으면 글을 읽는 것 자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글쓰기는 선별이다. 글을 시작만 하려 해도 언어에 존재하는 100만여 개의 단어 중에 한 단어, 딱 한 단어를 택해야 한다. (…)무슨 글을 쓸지에 대해 절대 시장 조사를 하지 마라. 가는 길에 도사린 온갖 중단, 재출발, 망설임, 기타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있을 만큼 흥미를 가진 주제에 대해 써라. 291쪽

글쓰기 강의록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도움을 받을 거란 희망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좋은 책을 만나면 늘 갖는, 글 쓰는 건 다른 이에게 맡기고 난 열심히 읽자는 생각이 역시나 이번에도 들었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겠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자가 어떠한 의도였던 간에 헤밍웨이의 생략 이론처럼 ‘창조는 독자의 몫’으로 이미 나에겐 색다른 결로 와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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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원고 - 논픽션 대가 존 맥피, 글쓰기의 과정에 대하여
존 맥피 지음, 유나영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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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구조, 구조, 구조에 대해서 역설해서 읽기전부터 따분해져버렸는데, 왜 재미있지? 저자가 말한 구조에 정신이 팔리지 않을 만큼 술술 읽힌다. 저자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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