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재능을 숨김 - 오묘한 제목학원 100 고양이의 순간들 1
이용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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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고 싶은 동물이 있냐고 물으면 고민 없이 바로 ‘고양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길에 있는 모든 고양이를 좋아하고 반겨하는 건 아니지만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고양이를 키울 수 없으니 고양이 책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다.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온 이 책을 보면서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듬뿍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니 어릴 때 직접 고양이를 키웠던 경험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정확히는 국민학교) 친구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한 마리 데려가라고 해서 엄마에게 허락을 맡고 직접 친구집에 가서 새끼 치즈냥이를 데려왔다. 친구집과 우리집이 멀어서 조그마한 종이가방에 새끼고양이를 넣어서 시골 버스를 타고 왔는데, 버스 안에서 고양이가 계속 울어댔다. 그 당시는 이렇게 동물을 데리고 타도 허용해주던 시기라 그렇게 데려온 새끼 고양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따로 내 방이 없어서 안방에서 고양이를 키웠고, 윗목에 볼일을 보면 그게 더러운지도 모르고 내가 치웠다. 잘 때는 이불 속에서 함께 잠이 들었고, 고양이의 그 ‘갸르릉’ 거리는 소리와 체온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학교에 갈 때가 가장 어려웠는데, 학교에서 고양이 생각이 나고 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몰랐다. 얼마의 시간동안 고양이와 함께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다녀오니 고양이가 없었다. 엄마 말로는 탈출해서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시골집이라 방문을 나가면 온통 산과 들이었다. 그렇게 고양이와의 짧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기억이 평생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우연히 찍힌 고양이의 숨겨진 재능들을 보다 보면 웃음이 난다. 귀엽기도 하고, 어떻게 이런 순간을 포착했는지 고양이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느껴진다. 모든 게 고양이로 시작되어서 고양이로 끝나는 책을 보고 있으면 행복했다. 고양이 세상에 인간이 잠깐 실례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고양이의 세계를 포착한 사진들은 헛웃음이 날 때도 있었고, 사랑스런 시선으로 고양이를 바라보게 만들 때도 있었다. 식빵굽기, 땅콩, 냥아치 등 고양이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들과 그런 상황을 나타내는 절묘한 사진들이 온통 고양이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영화 <파묘>가 상영될 때 ‘파묘’라는 절묘한 고양이 사진이 사랑받는 이유를 보고 나 또한 사랑스런 눈빛으로 보게 되었다. 이런 사진을 좋아하는 건, 그만큼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외모는 조금 다를지라도 습성이라던지 사람들이 고양이를 대하는 행동들이 비슷해서 고양이란 존재에 대해 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빵굽기’라는 표현에 대해서 일본에서 굉장히 신기해 하고, ‘법당 고양이’를 일본 잡지의 표지로 실을 만큼 고양이에 대해 이국적인 표현과 배경이 결국은 고양이를 더 돋보이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저자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이고, 절묘한 순간을 포착해 찍어낸 사진들을 너무 쉽게 보고 넘기는 것 같아서 가능하면 오래오래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이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길고양이들은 평균 수명보다 훨씬 짧다고 하는데 모든 고양이를 도와줄 수 없는 현실의 삭막함에 막막하기도 했다. 그게 고양이들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인간인 내가 고양이에게 해를 주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 또한 독자가 이렇게 무거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출간한 건 아닌 것 같았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잠깐이라도 웃음을 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을 뿐’이라고 했으니, 절묘하고 기묘한 고양이 사진들을 보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생명체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랑스런 눈빛만 보여줘도 그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와 지구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게 행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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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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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시를 두 번 읽었다. 피곤함에 찌든 일상이 버거웠고, 맘 편히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가난한 마음이 서글펐다. 시간을 내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낼 수 있는 시간 들이 항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를 좀 먹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분량은 짧지만 짧은 시간에 나를 가장 빨리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시집을 꺼내 들었다. 항상 머리맡에 있었고, 언제든 읽어달라고 나를 아련히 내려다보는 시집에는 내 마음을 ‘쿵’ 내려놓는 듯한 시들이 많았다.

조금 알면 오만해지고/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된다./거기서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무엇을 조금 알면」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해 보았던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나 자신과 오만하게 굴었던 수많은 시간 들과 잘난 척 질문했던 시간 들이 스쳐 지나면서 부끄러웠다. 진정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던 시간 들이 까마득했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더 까마득히 멀어져갔다.

뒤로 물러서 있기/땅에 몸을 대고//남에게/그림자 드리우지 않기//남들의 그림자 속에서/빛나기 「은엉겅퀴」 _라이너 쿤체

그간 나는 누구의 그림자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타인의 그림자에 머무르며 기대어 있었는지, 그림자에 숨어 기대어 살았는지, 아니면 그림자를 핑계 삼아 내 능력 밖의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경지인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가 과연 가능할까? 이 시집을 엮은 이문재 시인의 말처럼 이 시는 종결어미를 바꿔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내가 빛나게 하소서’라고 평생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시다. 지금까지의 삶이 남들의 그림자 안에서 이런저런 방황을 하고 횡포를 부렸다면 앞으로의 삶은 남들에게 내가 그런 그림자가 되어줄 수 있길 바랐다. 마더 테레사의 기도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아이들이 잘한 일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마음을 다해 칭찬하게 하여 주소서.

「어버이의 기도」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 중

나를 비난으로 몰아가지 않고, 반성은 하면서 부디 이렇게 되길 바랐다. 아이들을 서슴없이 칭찬하고, 습관처럼 읊조리는 기도문이 아니라 누구에겐가 품은 앙심을 털어버리길 원했다. 시를 읽는 이 짧은 순간에도 이 시가 나의 기도가 되어 신이 듣고만 있는 기도가 될지라도, 내 기도가 세상으로 나오길 바랐다.

이 기도에는 욕망을 줄여 마음과 몸을 간소하게 살고 싶다는 뜻도 있지만 ‘아무것도 빌지 않아도 될 만큼 평온한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큰 욕심도 있습니다. 「기도에게」 박준

시를 읽고 나니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피곤할 일상, 시 한 줄 읽을 틈 없이 가난한 마음들이 분명 휘몰아치고 있었는데, 시를 읽고 나니 내 마음이 부자가 되었다. 과거는 어땠는지, 미래는 어떨지 알지 못하지만, 현재의 나는 신께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할 만큼 깊은 어려움이 없다. 찾으면 분명 나올 테지만 일시적인 평안함일지라도 이 시집의 모든 기도가 내 기도가 되어 세상으로 흩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모두 빛나기를. 그 빛들이 모여 밝은 그림자가 되기를. 서로에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외롭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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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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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 여름 첫 휴가였다. 오롯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는 단 하루. 나름 계획은 세워뒀다. 아침에 운동만 하고 바로 카페로 달려가서 글도 쓰고, 책도 실컷 읽고, 거기서 밥도 다 해결하고 오겠다는 계획. 하지만 아침 일찍 수영장이 정전되어서 운영이 중단되었다는 문자를 시작으로 녹록치 않은 하루를 보냈다. 자잘하게 처리할 일들이 많았고, 모든 걸 챙겨서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쯤 되었다. 그 와중에도 읽고 싶은 책을 책장에서 고르는데, 마음이 급해서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새 책을 읽을까 하다가 읽다 만 책부터 완독하고 싶어서 이 책이 눈에 띄자마자 들고 왔다. 그렇게 호기롭게 카페에 왔건만 스마트폰 충전기를 가져오지 않아서 배터리는 간당간당하고, 글을 쓰겠다고 노트북도 챙겨와놓고 손톱을 깎고 오지 않아서 키보드 위에 내 손톱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불편함이 느껴졌다.

카페에 도착한지 30분쯤 지나자 스마트폰 배터리가 나가버렸고, 집에를 갈까 하다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카페같이 백색소음이 있는 곳은 복잡한 소설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에세이가 제격이다. 물론 혹시 몰라 소설책도 챙겨오긴 했지만 에세이를 먼저 읽고 싶었다. 그렇게 읽다 중단한 「번역: 황석희」를 꺼내 읽었고, 완독을 조금 남겨두고 너무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집에서 밥도 먹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면서 시간을 떼우다 보니 이대로 있다간 하루가 그대로 저물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일으키기 싫은 몸을 세워 다시 버스를 타고 카페에 왔다. 이번에는 충전기를 꼭 챙겨서. 그렇게 힘들게 와서 노트북을 켰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책도 그대로 들고 왔기에 다시 이 책을 꺼냈고 금세 읽어버렸다. 그런 뒤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남기고 싶어서 노트북을 열었지만 이미 저물어 가는 내 휴가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해 무슨 감정이 담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황석희 번역가에 대한 소문(?)은 듣고 있었다. <데드풀> 영화도 안 봤지만 ‘병맛’을 살린 번역가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몇 개의 짤을 알고 있었다(이 책을 읽다가 <데드풀 2>에서는 원문 속 ‘Pumkin fucker’를 표현할 말이 딱히 없어서 글자 크기를 이용해 표현한 적이 있다며 ‘씨박 새끼’란 번역을 보고 혼자 빵터져서 왜 사람들이 번역에 열광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대부분 글로 무언가를 정리하고 싶은 습관답게 저자의 번역으로 된 영화를 보려는 게 아닌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3~4쪽의 해당하는 분량의 글을 읽을 때마다 글의 양을 조절하는 저자가 대단해 보였다. 글을 쓰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을 때도 있고, 더 적을 때도 있을텐데 균일한 양의 글을 읽도록 하는 게 글을 조절하는 걸로 보였다. <띄어쓰기좀틀리면어때요>란 글에서 ‘공적인 문서가 아닌 이상 띄어쓰기를 갈캍이 지키려고 하지 않는다. (…) 자막에서 그러지 않는 건 스페이스를 한 칸이라도 줄여서 가독성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크다.’고 밝혔는데, 글도 그런 느낌이 들어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다.

좋은 번역은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 같아야 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진정 훌륭한 번역은 현실의 거울처럼 작은 얼룩들과 결함들이 있는 번역이다 100쪽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성격이라던지 성향을 파악해보기도 하는데, 황석희 번역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건 곁을 잘 주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일에 대한 정확함에 대한 고집도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소심하고 여린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주로 혼자 작업하는(‘혼자 하는 번역은 없다’란 제목의 글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특수함에서도 나름 자기 관리를 잘 하는 게 글에서 묻어났다.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건 이 책이 다이기 때문에 나의 느낌이 다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었고, 나중에 또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글에 따라 저자가 다르게 느껴지거나 여전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도 좋다. 저자와의 만남이 나로서는 처음이기 때문에 글로 만나는 저자가 어떨지 기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알고 싶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어를 못하지만 번역서를 나름 많이 읽어서 저자가 번역을 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에피소드들을 책 번역으로 대입해 보았다. 물론 두 분야는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새로 번역이 되어서 출간되면 다시 구입해서 읽는 것처럼 영화번역도 ‘못해도 5년은 숨이 붙어 있게 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완벽한 번역이 없다는 사실을 밝혔던 것처럼 짧은 대사 하나를 번역하기 위해 뉘앙스까지 고민하고 온라인상의 모든 밈을 수집하는 모습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한단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 정도가 되려면 정말 운명이든, 밥벌이의 목적이든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적절한 선을 지키며 자신을 드러낸 저자의 글에 나또한 나름대로의 선을 지키며 읽었다. 그 선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 느낌은 분명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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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오브 원더 레이첼 카슨 전집 4
레이첼 카슨 지음, 표정훈 옮김, 닉 켈시 사진 / 에코리브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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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래를 듣지 못한 채 아이가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아이의 새벽 단잠을 깨워서라도 바깥으로 나가보자. 100

 

새벽 6시에 일어나 깊이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서둘러 깨우고 텐트를 접었다. 새벽부터 잠들어 있는 인간에게는 시끄러울 정도로 새들이 우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거기다 텐트가 날아갈 것 같은 바람 소리와 마치 내 머리맡에서 출항하는 배의 엔진 소리까지. 잠은 거의 한숨도 못 잔 게 맞다. 그럼에도 이 시간에 일어나 본 게 얼마 만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비몽사몽해 하는 아이들을 겨우 차에 데려다 놓고, 남편과 텐트며 의자며 많은 짐들을 부지런히 정리했다. 여름 아침이었지만 꽤 쌀쌀했고, 아이들에게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노동의 댓가는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장소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대부분의 어린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잘 볼 뿐만 아니라, 그런 것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안다. 아마도 어른인 우리보다 작아서 땅과 더욱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87

 

도시에서 아이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발견해서 기쁨을 느끼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도시라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아예 그런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 바쁜 스케줄, 공부 등등 아이들이 흙으로 된 길을 보고 걸을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라도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데 오히려 평일보다 더 방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집에만 있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텐트를 비롯한 캠핑용품을 사서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는데, 수고롭지만 좋았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만족한다면 기꺼이 해도 되는 수고로움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는 데서 오는 평안함이 그 모든 과정을 힘든 줄 모르게 해치우게 했다.

 

늘 자연과 가까이하는 그러한 기쁨은 과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간직하고 있는 놀라운 생명의 경이에 자신을 기꺼이 내맡길 줄 아는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126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먼스 홈 컴패니언>이란 잡지에 기고한 글을 단행으로 펴낸 것이다. 제목을 의역하면 당신의 자녀가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라(Helping Your Child to Wonder)’ 정도라고 하는데 옮긴이는 ‘Helping’이라는 표현이 부모가 강요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레이첼 카슨도 이 글을 통해 아이들을 돕는 것, 거드는 것을 말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카슨이 조카의 아들인 로저와 집 주변의 숲과 바닷가를 거닐고, 밤에도 서슴없이 자연을 관찰하는 모습이 평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 책은 레이첼 카슨이 생전에 꼭 마무리 짓고 싶어 한 바로 그 책이다.’라는 초대의 글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이 책에 전념하면서 이 책을 접하는 어른과 어린이 들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풍부하게 기르기 바랐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생명 세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삼가리라 믿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이 뭉클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늘 자연을 파괴한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자연을 느끼고 싶은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가족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캠핑을 떠올렸고, 긴 수고로움이 될지라도 조금 더 자연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자연을 이용하는 경험이 아니라 자연과 융화되어가는 시간들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깊은 감수성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갖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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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나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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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서 밖을 보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1층이어서 그런지 풀 냄새가 가득 올라왔다. 얼마 전에 화단 풀을 깎은 듯한데 그래서인지 풀냄새가 더 좋았다. 간단하게 주방과 거실 정리를 하는데, 문득 '음악을 좋아하면 좋은 나를 위해 스피커를 사서 음악을 들어보라!'는 말이 떠올라서 책장 맨 아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디오를 꺼냈다. 오래전에 선물로 받은 중고 오디오인데 음악을 듣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스피커 소리가 좀 왔다 갔다 하지만 잘 맞추면 그럭저럭 들을 만했다. 오디오 세트를 거실 텔레비전 옆으로 꺼내서 음악을 틀었다. 오디오 안에 클래식 음반이 들어가 있기에 그대로 재생시켰다.

음악을 들으며 집안 여기저기 묵은 먼지를 닦아내니 나름대로 능률이 올라왔다. 간식을 조금 먹고 창가에 있는 책상에 앉아 이 책을 꺼냈다. 오래전에 읽다 만 책이었는데, 현재 모든 상황들이 이 책을 떠오르게 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이었는데도 마치 얼마 전에 읽다 만 책처럼 저자의 글은 친근했고 좋았다. 오래도록 관찰해서 식물을 세밀하게 그려내야 하는 저자의 차분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게 마치 식물 곳곳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하루처럼 어디선가 식물들도 제각각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기록들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한여름 숲속에서, 제각기 다른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힘을 얻는다. 작은 풀 한 폭의 기록 일지라도 세상에 무가치한 일은 없다는 것을, 긴 관찰의 여정에서 배운다. 107쪽

처음에는 저자의 직업이 생소했다. 식물세밀화가라는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식물을 세세히 관찰하고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자가 관찰하는 식물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누군가 나를 저렇게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해 준다면 부담스러울 것 같으면서도 존재감만으로도 충만할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 주는데 ‘식물을 소재로 사유를 담거나 아름다움에 목적을 두고 그린 그림이 식물화라면 식물세밀화는 과학 안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려지는 해부도라고. 그러니 오로지 식물의 형태에만 집중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그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내가 해부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식물들에게 배울만한 점이 많은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객관화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살아온 삶을 거리낌 없이 낱낱이 드러내는 반면, 내 삶의 오점들이 낱낱이 드러날 것 같은 기분에 자꾸 나를 식물화하는 혼란스러움이 우습기도 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겼다며 좋아하거나, 무섭게 생겼다며 기피하는 벌레잡이식물의 형태가 내게는 어쩐지 참 슬프게 느껴진다. 다른 식물들에선 보지 못했던 그들의 기이하고 생소한 형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166~167쪽

이런 면은 슬프게도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각자 누구나 있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내면의 몸부림은 각자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이 되었든, 습관이 되었든 나도 그런 모습이 하나쯤 있지만 식물처럼 매 순간 치열하지는 못했다. 기이한 형태가 될까 겁내거나 타인을 의식하느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식물 앞에서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항상 이렇게 부끄럽고 작아지는 기분만 들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참질경이에 대한 부분을 읽는데 잊고 있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저자가 작업실 근처의 질경이를 관찰하다, 잎맥이 특이해 잎을 반으로 자르니 그 안에서 다섯 개의 실줄기가 액체와 함께 나왔다고 했다. 시골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놀잇감이 없어서 자연에서 늘 찾곤 했는데, 질경이의 그 질긴 실줄기를 이용해 제기를 만들어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질경이의 줄기를 잘라도 실줄기가 나오는데 여러 잎의 실줄기끼리 엮으면 단단한 재기가 되었다. 누가 더 풍성하고 단단한 제기를 만드는지 내기도 하고, 잎이 시들때까지 반나절은 너끈히 놀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내 어린시절 한 부분을 차지해준 질경이가 고맙게 느껴진다.

저자는 식물만큼이나 인간도 다른 생물의 공격을 당하기 쉬운 수동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오히려 식물은 우리보다 강하며,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변화하여 지능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강구해낸다고 한다. 또한 밟히면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는 질경이에 저자는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직업의 특성상 저자와 나의 관점은 다르지만 다른 의미로 질경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공통점으로 충분히 위안을 얻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가장 잘 못하기에 바라는 점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것처럼 식물들도, 이 세상 모든 것들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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