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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이란 게 실체가 없는 거란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단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가 행복했구나’ 정도밖에 없잖아요? 170쪽
아이를 재워놓고 스탠드를 켜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옆으로 온다. 그리곤 잠을 자지 않는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각까지 계속 내 옆에서 독서를 방해한다. 그럼 아이를 다시 재우고 독서를 하면 되지만 아이가 혼자 잠들기를 기다리다 별거 아닌 행동에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화를 냈다. 아이는 서럽게 울고 감정 조절을 못하는 내 모습에 나도 한참 토라져 있다 겨우 아이를 달래서 재웠다. 늘 끝은 내 혐오로 끝난다. 화를 참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이렇게 엄마를 찾는 순간이 금방 지나갈 텐데 왜 좀 더 너그럽지 못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순간들을 누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후회가 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어려 나를 찾던 시기를 그리워하며 그때가 행복했다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21쪽
한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법은 단 한 줄이다. 누구나 동등하다는 법. 그렇게 여기면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이 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쉽게 일어나는 갈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의 제목처럼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곳이니 반대 개념의 상황도 훨씬 적다. 더불어 살아가는 데 이렇게 간단한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수많은 법과 규칙이 있음에도 더불어 살아갈 수 없는 도시의 모순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짧은 연작 소설이지만 나는 섬에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당연히 도시에서 세상에 적당히 묻혀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염두에 둔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나는 그 섬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부정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반성은 하지만 섬에서 살아갈 용기가 없음을 인정하는 건지도 말이다.
화산폭발로 인해 섬을 떠난 사람들이 잠시 육지에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특히 그랬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만족하는 삶을 추구하기에 도시 사람들이 외면하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만족을 느낀다. 오히려 도시 사람들이 삶의 방식이 다른 그들을 신기해하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겠거니 의심한다. 그들이 다시 섬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한 가족과 육지의 남자와 사랑에 빠진 쿠니라는 여자만 남게 된다. 그들이 그곳에서 겪는 일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모습이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아이지만 틀에 묶으려 하고, 그 아이는 그 안에서 흥미를 잃어버린다. 생소한 매력에 끌려 결혼했지만 다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혼자가 된 쿠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된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지만 나중에는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면서 더 성황을 이루는 모습이 씁쓸하기도 했다. 얼마나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공감하고 동조해 주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겨나는 걸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게 잘못된 거라는 것을 알고 있잖아요. 옳은 것을 지키는 것이 규칙이어야 하죠. 133쪽
절정은 화물선에 실려 섬으로 돌아가는 섬사람들과 선장의 갈등이었다. 섬으로 향하는 도중 거센 돌풍을 만나고 바닷길을 좀 더 알고 있는 섬사람들이 선장에게 조언을 하려고 하지만 만날 수도 없고, 선장이 내세운 규칙대로 행동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트린다. 결과는 처참했다. 섬사람들의 조언을 들었다면 가축들의 죽음도, 서로의 고통도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거센 폭풍보다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한 사람의 생각에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가려는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밀어 올렸다. 종교를 가지고 있어 좀 다르다고 말하지만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속도가 좀 느려지고 방향이 다르면 금세 불안해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미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것들에 젖어버린 내가 사람다워지기 위해 외딴 섬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섬사람들이 도시 사람들과 섞여 있음에도 자신의 본질과 방향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그럭저럭 내 방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익히 봤던 것처럼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어디서건 혼자서 적절한 방향을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