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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영성 - 내 마음의 주인 찾기
폴 트립 지음, 최요한 옮김 / 두란노 / 2019년 3월
평점 :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비추어 살지 않으면 우리는 돈을 원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고 해로운 버릇을 끊을 수 없다. 이 세상은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라고 만든 곳이 아니요, 개인의 욕심을 채우라고 돈을 만든 것도 아니다. 20쪽
고백하건데 이 책을 읽으면서 꼭 나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분명 완독하고 나면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돈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풀릴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돈에 얼마나 마음을 두고 있었는지, 나의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 합리화를 시켰는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합리적인 경제생활은 예산이 아니라 핑계를 대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겸손하고 정직하고 진심에서 우러나는 고백에서 시작된다.’는 말을 피하고 싶고,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과 마주하고 말았다.
합리적인 경제생활의 핵심은, 내가 지금 가진 돈은 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돈이며 하나님의 목적과 기쁨을 위해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 하는 것이다. 26쪽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그런 마음 바탕에는 ‘십일조는 세금처럼 납부한 뒤 혹시 돈이 남으면 헌금을’ 내고 나머지는 내 멋대로 써도 좋다는 마음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돈을 사용하는 방식보다 내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없다.’는 말 앞에 나는 그동안 어떤 정체성을 추구했기에 이렇게 돈에 허덕이는 건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은혜를 잊는 것과 재정 문제는 확실히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의 돈 문제는 대부분 몰라서가 아니라 거역해서 생긴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리의 욕망이 더 급해서 돈에 허덕이는 것이다. 62쪽
지금껏 크게 쓰는 것도 없는데 왜 항상 돈이 부족할까 생각해 보니 결국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것에서부터 ‘이것만 가지면’ 하는 마음으로 과분하게 빚을 내서 샀던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습관이 쌓여 여전히 내 욕망을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무관심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돈을 써야 한다면 꼭 교회뿐만이 아니라 교회 밖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충분한데도 성전을 쌓는 일, 내부적 소비가 주가 되는 교회라는 곳도 어쩌면 공간복음에 갇혀 있는 것이고 ‘(우리)교회의 욕망’에 더 급급한 건 아닌가란 생각이 자꾸 들어왔다.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면 우리 돈이 영원한 결과를 낳는 일에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 곧 구원에 쓰인다. 103쪽
‘돈을 어디에 쓸지 정확하게 알아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수 있다’고도 했다. 조금 다른 얘기일지 몰라도 그 동안 내 영광을 위해 돈을 써왔고, 그랬기 때문에 돈에 허덕였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도 그런 욕망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내가 낸 헌금을 교회가 제대로 쓰고 있는가에 대한 자만한 의문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십일조에 갇혀 충분히 구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데 그걸로 내 할 일은 충분히 했다 여기며 욕망만 쫓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고, 내게 이 책을 읽게 하신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재정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의 소망이 든든한 게 아니다. 우리의 소망이 든든한 이유는 하나뿐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은혜로 덮으셨고, 그런 것들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우리를 용서하고, 바꾸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171쪽
이 책을 읽는 초반에 책을 읽다 말고 깊은 기도를 했다. 재정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 방법을 알고 싶다고. 먼저 그 동안의 잘못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소비하느라, 자책하느라 허비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기도했다. 기도를 하면서도 이런 기도를 했으니 분명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명확한 방법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분명 해결하는 방법으로 인도할 거라 여겼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뒤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는데, 절대 이길 수 없는 스스로의 욕망과 싸우느라 방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음을 알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복음의 의미를 알고, 율법에서 자유로워졌을 때는 충격과 행복이라도 있었지만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서는 스스로에게 어리석었다고 타박밖에 할 수 없었다. 복음의 의미가 나에게 제대로 뿌리 내렸다면 결코 이렇게 내 욕망을 위해서 살지 않았을 거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내 욕망을 줄이고 하나님의 욕망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동참하는 재정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들었다. ‘정체성과 인생의 목적을 망각하면 영원한 유익보다 눈앞의 쾌락과 위로에 돈을 쓴다.’ 는 말처럼 그게 나에게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마음속으로 자꾸 돕고 싶은 분이 생각났다. 해외 선교사님이신데 곧 들어 올 계획에 없던 자잘한 수익을 그곳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수익을 보낸다 해도 그것이 내 만족감이 아닌, 이 돈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늘 든든하다는 안정감이 생겼다. 이런 안정감을 누려야 마땅했는데,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흐름에 내 욕망을 멈추지 못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소망을 두는 삶을 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내 전부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믿지만 내가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내 전부를 주님께 맡기고 나는 또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싶은 삶.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진정 그런 삶을 주님께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