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오늘을 사는 잠언 - 하나님의 지혜로 인생을 항해하다
팀 켈러.캐시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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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주제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데 있다면, 잠언의 주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에 있다. 7쪽


두 달 전에 성경 읽기를 다짐했으면서도 얼마 지키지 못하고 중단해버렸다. 마음의 짐을 해결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괴감이 나를 괴롭히지 않게 하려면 성경을 다시 읽으면 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일독하리라 마음먹고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던 중 잠언을 정말 깊이 읽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성경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지만 성경을 연결해서 읽는 소양이 부족해서 이 또한 늘 마음에 짐이었다. 그러다 ‘잠언은 전체 성경의 일부’라며 각 주제별로 분류하고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록한 이 책을 통해 말씀이 내 삶의 깊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예수님도 그분의 모든 행동의 기초를 성경에 두셨고, 성경을 인용해 자신의 죽음을 설명하고 맞이하셨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푹 잠기지 않고서 어찌 지혜로워질 수 있겠는가? 22쪽

잠언에 대해, 성경에 대한 기초가 부족하다고 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말씀을 접하면 그 말씀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옴을 느낄 것이다. 현재의 내 믿음에 따라, 고민과 현재의 상태에 따라 각각의 다르게 들어오는 것을 보며 성경이 살아 있는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인, 성경구절을 읽고 저자의 해설과 또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질문, ‘오늘의 마중물 기도’ 부분을 읽어 내는 것 자체가 녹록하지 않다. 이상하게도 짤막한 글을 읽음에도 자꾸 다른 생각이 들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사탄이 방해하는 것인지 나의 마음자세가 틀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하나님께 방해하는 세력을 없애게 해 달라고, 이 말씀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읽을 때마다 기도했다. 즉, 말씀을 읽는 것부터가 나와의 싸움이었다.

고난은 지혜를 자라게 하는 징계이기도 하다. 고난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져 더 강인하고 사랑이 많아질 수도 있고, 반대로 그분으로부터 멀어져 마음이 완고해질 수도 있다. 42쪽

아무래도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고난을 받고 있는지, 받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하는지 묵상하는 시간이 많았다. 성경 말씀에 대한 설명도 날카로웠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질문은 더 냉정하다. 그리고 마중물 기도는 정곡을 콕 찌른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 악하고 바르지 못한 것들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후련했고, 하나님께 올바르게 나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겼다. 그리고 마음이 굉장히 평안해짐을 느꼈다. 기복주의 신앙으로 보면 하나님을 잘 믿고, 열심히 일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살면 분명 하나님의 복이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유와 과정을 제대로 바라보면 내가 당하는 모든 일들 앞에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유독 시편과 잠언의 말씀을 마주하면서 더 명료해졌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말씀으로 인해 목적은 또렷해졌다.

그분은 자격에 절대 못 미치는 삶을 받으시고도 불평하지 않으셨는데, 우리는 왜 자격도 없이 무한히 나은 삶을 얻고도 불평하는가? 146쪽

이 말씀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이 책이 주제별로 말씀을 묶었던 것처럼 지혜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사람의 마음과 타인을 알게 하면서 나를 겸손하게 하고, 시대를 알고 삶의 현장을 깊이 알게 되면서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구성을 완독하고 나면 나에게 가장 와 닿는 말씀들이 남게 된다. 천천히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생각하며, 치열한 내 삶의 현장에서 위로와 해결책을 받았다. 특히 결혼, 성, 자녀 양육, 돈과 일에 대해 알려준 부분에서 많은 반성과 함께 가야 할 길을 부여 받은 기분이 들어 굉장히 든든하고 평안해졌다. 배우자에게 “당신은 항상”이나 “당신은 한번도”라는 말로 시작되는 잔소리가 다툼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라 얼마나 찔림을 받았는지 모른다. 자녀 양육에 관한 부분은 더 반성거리가 넘쳐났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히 키워야 함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었다.

돈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돈을 베풀수록 더 많이 번다는 약속은 아니다.(327쪽)’라는 말처럼 해석에 따라 말씀이 다르게 다가옴을 안다. 돈의 힘을 꺾으려면 ‘하나님께 철저히 드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후히 베푸는 것이 중대한 출발점이다.(325쪽)’라는 말처럼 서로 맞지 않는 말씀에서 오히려 많은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절대란 결코 없으며, 모든 걸 하나님의 뜻에 맡기되, 그것이 어떠한 계획인지 모르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사실이 답답하고, 비이성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다. 오히려 하나님께 모든 게 붙들려 있을 때 어떠한 두려움과 걱정, 악한 마음에 휩쓸리지 않음을 말이다. 이 책의 구성처럼 매일 매일 말씀을 묵상할 수 있다면 내가 정말 제대로 살아있음을 알게 될 거란 희망을 가져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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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저도 이 책 구매했네요~메리 크리스마스! 기쁜 성탄절 보내소서!

안녕반짝 2018-12-26 13:26   좋아요 1 | URL
이 책 새해에 읽기 좋은 구성이더라고요^^
새해에 잠언으로 더욱 은혜로운 한 해 되시길!^^
성탄은 지나갔으니 전 새해 인사 미디 드릴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닥터 지바고>가 문.동.세.문으로 출간되었다.

이렇게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1.~2. 닥터 지바고 1~2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무엇보다 표지를 보고 깜짝놀랐다.

원고를 읽으면서 느낀 분위기와 비슷하달까?

표지에서 책 속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서 정말 좋았다.


약 900쪽의 소설은 긴 호흡이 필요하지만

꼭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이다.

고통이 느껴지지만 꼭 알았으면 하는 고통이라면 이상할까?

굉장히 좋았던 소설이다.

 

 

부끄럽고 감사하게도 독자모니터로 참여해 이름이 실렸다.



이젠 리뷰를 써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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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터지바고 동화책으로 읽었는데도 가슴이 짠하던데 문동판으로 읽으면 아...어쩔까요! 독자모니터도 하시고 대단하세요! 문동이랑 민음이랑 위아래로 놓여 있어 아름답네요! 민음이랑 문동은 늘 붙여 배열하는 듯 합니다 고전이 너무 좋아요!

안녕반짝 2018-12-11 13:48   좋아요 1 | URL
정말 여러 감정이 들어요. 전쟁은 부부도, 자식도 아무렇지 않게 갈라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계문학전집은 붙여놓다 보니 문동과 민음사가 함께 있네요.^^

서니데이 2018-12-1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안녕반짝 2018-12-20 23:32   좋아요 1 | URL
앗! 기쁜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요 며칠 바빠서 못 들어왔는데 서니데이 님 덧글 보고 알았어요^^
부족하지만 올 한해 이웃이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앨리스 먼로의 <착한 여자의 사랑>이 출간되기 전 운 좋게 받아 본 티저북이다. 단편집이라 티저북에는 <착한 여자의 사랑>이 아닌 <자식들은 안 보내>라는 단편이 실려있다. 제목만 듣고는 가늠이 되질 않아 한참을 망설이다 읽었는데 처음에는 인물도 헷갈리고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그런 염려가 되었는지 출판사에서도 초반 부분을 잘 넘기면 새로운 내용이 펼쳐질 거라 안내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카페에 들고 갔다 읽기에 실패했다. 책은 얇지만 카페에서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책은 덮어두고 케이크와 커피만 맛있게 먹고 왔지만 이 책을 도대체 언제, 어떻게 읽어야할지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버티다 가장 바쁜 시간(남편이 퇴근하지 직전, 나는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의 귀찮음을 버텨야 하는 시간)에 책을 펼쳐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바쁜 시간을 홀라당 잡아먹고, 저녁 준비 시간도 완전히 늦추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 읽고 났을 땐 나도 모르게 "아, 이거 뭐지?" 라며 중얼거렸다.



 



이게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지금 브라이언이 누워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을 그 펜션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또한 그녀와 브라이언이 함께하는 삶의 표현이자 그들이 살고 싶었던 생활방식의 표현이었던 그 집과의 연결고리도 끊어졌다.


그녀, 폴린은 어느 바비큐 파티에 갔다가 연극에 출연해 보지 않겠냐는 제프리의 제안을 받는다.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는 입장에서 참여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대본을 외우고 연습에 참여한다. 그리고 폴린의 가족과 시부모님이 함께 휴가를 즐기던 중, 갑자기 찾아온 제프리의 전화를 받고 모텔로 돌아가 다시는 가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은 그 사실을 '대번에 믿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폴린과 제프리는 남편의 반응에 의아해 하면서도,


"그의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다들 그렇게 알잖아요."


라는 폴린의 말에 '그렇게' 체념한다.



 



그녀는 그럴 수 없는 온갖 이유를 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말을 하려고도 해봤지만,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삶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마댓자루를 뒤집어쓰고 끈으로 묶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고꾸라지고 있었다. 그녀도 눈이 맞아 달아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려 하고 있었다. 충격적이고도 이해할 수 없게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포기해버리는 여자가 되려는 것이다.


그녀는 어린 아이와 남편을 떠나 제프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안나 카레니나가 했던 것이었고, 마담 보바리가 하고 싶어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고, 브라이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자신을 받아줄 거라 확신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고꾸라지고 있었음에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마댓자루를 뒤집어쓰고 끈으로 묶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거라 여겼다.



지금 뭔가가 달려오고 있다. 트럭이다. 달려오는 것이 트럭만은 아니다-엄청나고 암울한 사실이 그녀를 향해 달려온다. 그 사실이 난데없이 와버린 건 아니다. 줄곧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뜬 뒤로, 심지어 밤중에도 줄곧 잔인하게 그녀를 찔러댔다.



'줄곧 대기하고 있'던 무엇. 그런 것을 담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 내가 폴린의 행동에 놀랐던 부분은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제프리에게 가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행동에 스스로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머리에 마댓자루가 씌워졌다.'며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이건 극심한 고통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만성적이라는 말은 영원하긴 하지만 한결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그 일이 그저 가슴 아픈 과거로만 남고 더는 현재의 것이 될 수 없을 때까지 그걸 끌어안고 살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나는 그녀의 행동을 단절로 보았다. '줄곧 대기하고 있'던 무엇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전의 삶과의 단절. 그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감내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려는 독단적인 '단절'로 보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마댓자루'를 써버리는 그녀의 단절이 가슴을 욱신거리게 했다. 그녀의 고통이 느껴졌고, 그 고통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각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스스로 모든 걸 등지는 모습이 슬펐다. 그러지 말았으면, 다시 돌아갔으면, 아이들 생각이라도 했으면 하는 섣부른 생각을 실을 수도 없었다. 그건 오로지 그녀만의 고독이자 단절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충고도, 아무런 걱정도, 아무런 안타까움도 내비칠 수 없어 가슴이 내내 욱신거렸다.



소설은 30년 전, 한 가족의 휴가지에서 시작해서 '그녀의 자식들은 성장했다'로 마무리된다. 그녀의 큰 딸 케이틀린과의 대화로 소설은 끝나는데, 폴린은 제프리와 '한동안' 살았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한 치의 망설임과 오차도 없이, 어떠한 환상이나 사랑의 달콤함 없이 극단적으로도 보이는 소설 <자식들은 안 보내>는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고 내게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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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2-07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거 좋아해요. 부드러운 생크림이 있어서요.^^

안녕반짝 2018-12-10 10:53   좋아요 0 | URL
그죠? 한 번 맛보고 나니 생크림 케이크만 먹게 되더라고요^^
딸아이 데려가면 혼자 저걸 다 먹습니다.^^
 

 

 

- 알라딘에서 2018년 통계를 내주었다.

어제 주문한 내역은 포함이 안 되었다고 해도 이렇게나 많이 주문했을 줄이야!


분명 요즘에 책이 너무 많아져서 최대한 늘리지 않고 있었는데,

통계를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7월 이후로 좀 애쓴 티가 보이지만 9월에는 왜 그리 많은건지!



노력해도 책 조절은 안 되는구나!

그냥 지금처럼 살자! ㅋ


내년에는 또 얼마나 사고 읽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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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1-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놓을 데가.....빌려 보자...로 바꿔타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카알벨루치 2018-11-2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0.5% 던가 그렇던데 이참에 확 질러서 0.1%로 달려볼까요? 싶지만....그것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의 격언을 떠올려봅니다 ㅎㅎ열독 응원합니다!!!
 
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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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아버지가 어린 학생에게 소리치는 것을 목격했다. 학생은 버스정류장 전광판에서 노선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전광판이 안 보인다며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학생은 무안해서 정류장을 벗어났고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한 아주머니께서 학생한테 나오라고 좋게 말하지 왜 그렇게 뭐라고 하느냐고 한 마디 하자 할아버지도 맞받아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광경과 내가 보아온 몇몇 일들이 겹치면서 노인들은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너그럽지 못하는지 내심 못 마땅했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 노인이 되겠지만 내가 보아온 노인들의 모습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스스로 살아 온 세월의 결이라 여겼다.


늙은이는 공격적이고 언제나 저기압이다. 81쪽

이 문장을 보며, 저자 또한 노인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하며 이유 없이 마음이 옹색해 지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일상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피로한데 의외로 정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놀랐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짐작하고 덤벼들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겼고, 생각하고 싶은 문장에 메모지도 붙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글이 너무 솔직해서 마음을 열게 되었고(그 나이가 되면 숨길 게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저자만의 개성일까?), 끼니마다 맛이 상상이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저자를 보면서 엄마 음식이 생각났다.

아, 무섭다. 이건 혹시 내가 노인이 된 증거가 아닐까? 늙으면 어제 먹은 음식은 까먹어도 어릴 적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진다던데. 53쪽

박찬일 작가는 ‘음식은 추억과 기억의 매개체인 게 분명하다.’고 했는데 이 문장과 함께 내 어릴 적 기억이 얽히면서 음식에 관한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해주던 팥묵이며 명절이면 집에서 만들었던 유과, 무조건 밥 말아 먹었던 시레기국까지. 임신 중에 엄마의 시레기국이 먹고 싶어 장장 7시간을 거쳐 친정에 내려왔던 일과 결국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던 일들이 떠올라 음식의 추억과 기억의 연관성과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저자 또한 일상을 꼼꼼히 기록하며, 성장과정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나이의 상관관계를 따지곤 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아아, 이런 게정신병이다. (187쪽)’ 스스로 성격이 안 좋다고 말하고, 변덕스런 내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 같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려는 모습 같기도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성장하는 것인지, 늙어가는 것인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183쪽)’ 는 문장 앞에는 30대 후반인 나도 확신이 없었다. 이런 기분이 나이 들어서까지 느껴진다면 노인이기에 스스로를 다스리고 너그러워져야 하는 건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글만 봐도 어떠한 환상을 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 더 나아가 우울하고 극단적인 모습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음을(혹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렇듯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며 내가 숨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이렇듯 쉽게 고백하고 시원해질 수 있는 것들을 붙잡고 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자는 암 선고를 받고 2년 남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랫동안 괴롭혔던 우울증이 사라지고 알차게 변했다고 했다. 우리의 수많은 고민도 어쩌면 불확실한 죽음 때문이 아닐까란 겸손한 마음을 가져본다.

반면 ‘인생은 번거롭고 힘들지만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날도 있고 하루를 때우듯 보내는 날도 있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완벽하든, 엉망진창이든 어쨌든 그것도 나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나로 살아가려면 어찌 되었든 나의 일상이, 사고가 진솔해야 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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