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1 : 혼세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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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퇴마록』세계편 3권에서 퇴마사들은 블랙서클을 물리치는 큰일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당한 부상을 치료하느라 대부분 미국에 남아 있었고, 연희만 백호와 함께 귀국했다. 크리스마스를 한국에서 보내게 된 연희는 블랙서클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알게 된 푸른 영의 정체, 리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블랙서클의 케인이 남긴 마음으로 혼란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리에 대한 추억과 마음을 쉽게 잊지 못한다. 그게「연희의 크리스마스」단편이고 이어지는「와불이 일어나면」은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관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천불천탑을 세워 나라의 균형을 맞춰 국운을 돌리려 했던 전설을 바탕으로, 그걸 복원하려는 일에 퇴마사들도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와불을 세우면 국운이 더 이상 새 나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안 좋은 기운이 일본으로 쏠릴 수도 있다는 전설. 그걸 알고 일부러 일본에 복수하려 했던 자들과 어떤 이유에서건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으려는 퇴마사들의 긴박함이 얽혀들어갔다. 내심 우리나라의 국운이 부활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퇴사마사들의 뜻을 거를 수가 없었다. 박 신부님이 늘 고민하는 ‘자신을 포함한 퇴마사들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가. 최선을 다하면서 처음에 지녔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데 대한 반성이고 성찰’이 있었기에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일본일지라도 그런 피해를 끼치게 놔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데 동의했다.

「하굣길」「터」「프랑켄슈타인」은 모두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대부분 함께 하는 퇴마사들도 우연히 어떤 곳을 지나가다 이상한 기운을 느끼거나, 주변 사람들의 부탁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준후, 현암, 박 신부님이 그랬는데, 나쁜 아이들에게 쫓기다 추락사한 아이, 부모님 묏자리에 콘도를 세우려 했던 불효막심한 아들, 죽어가는 여인을 살리고 싶어 위험한 실험에 끌어들인 남자의 이야기는 씁쓸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퇴마사들도 늘 고뇌하고 성찰하는 것처럼, 그들이 맞서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늘 현재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사실을 무시할 수가 없다.「그곳에 그녀가 있었다」는 일본의 각료계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러 퇴마사들이 모두 일본으로 건너간 이야기인데, 혼세편 2권 전체에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씁쓸함이 더 커지지 않을까 싶은데, 모든 것을 지켜보고 해결하는 퇴마사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내 추억이 잔뜩 담긴 책이고, 재미있어서 읽고 있는 시리즈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이런 씁쓸함과 허무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게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깊이 공감하고 빨려 들어가 퇴마사들을 놔주기가 힘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분량이 남아 있음에도,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마지막을 회피하고 싶어지는 마음. 다시 읽을 수 있지 않냐는 위로를 할 수도 있지만 점점 그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놔주는 것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이번에 완독을 하면 아마 다음에 또 읽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또 들 것 같다.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항상 긴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퇴마사들에게 깊이 이입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 소설 속에나 등장한다는 사실과 자꾸만 세상의 타락한 모습만 보고 듣는 내 시야를 부정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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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필코 서바이벌!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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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라는 건 원래 진실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17쪽


어느 날 갑자기 누명을 쓰고 왕따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참담함으로 모든 게 싫어질 것 같다. 아무런 의욕도 없고, 나를 도와주는 이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만으로도 절망감이 꽉 차 오른다. 평범한 여고생 장서란이 꼭 그랬다. 전학 간 친구 하늬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 아이 수첩에서 가해자인 것 같은 이름의 이니셜이 나왔는데 하필 JSR이었다. 이니셜이 같다는 이유로 장서란은 하루아침에 하늬를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는 사람 하나 없고, 서란을 몰아붙이자 스스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기로 한다.

그런 서란의 용기가 대단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좌절하거나 쉽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데 서란은 자신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모색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자신에게 악플처럼 쏟아진 종이비행기를 옥상에서 날리면서 결코 이 싸움에서 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서란이 눈물겨울 정도였다. 조금만 살펴보면 서란이 하늬의 전학, 교통사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소문은 자기가 믿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는 말이 참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경험하고 인지하고 있는 타인을 향해 다른 소문이 들려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했던가? 용기 있게 믿어주지 못했고, 우왕좌왕 하며 시류에 쓸려가도록 내버려둔 때가 허다했다. 그래서 서란의 용기가 당연한 건대도 대단하게 여겨졌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시영에게서 내 모습을 가장 많이 본 듯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부른다. 그래서 거짓말을 늘 패거리로 다닌다. 108쪽

서란이 왕따 당하는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하늬가 그렇게 된 이유를 캐가는 과정은 한 편의 추리소설 같았다. 여자아이들과의 만만치 않은 밀당부터 시작해서 구슬리고, 정보를 알아내고, 과감히 시도하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까지, 정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절절하게 배어났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서란의 그 고독한 싸움이 아니었다면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을 보며 섬뜩하기까지 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회피한 상태에서 반성은커녕 서란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웠다. 그게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 가장 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는 과정까지 또 다른 피해자인 서란이 동분서주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했다. 그럴 용기도 없고, 문제를 정면 돌파 하지 못하는 통찰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서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일에 거짓말이 보태지고, 부풀려지고 사람들이 소문으로 믿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른들조차도 도와주지 못했고,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마지막에 아이들을 화해시키러 나오는 과정에서도 매끄럽지 못했다. 자식을 키우고 있다면 가장 기본적인 생각,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다른 아이도 귀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좀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서란이 동분서주해서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아이들이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음에도 결국엔 어른들의 손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학교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임에도 개인을 탓하고,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또한 이런 상황이라면, 내가 학부형이었대도 뚜렷한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막막했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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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읽은 책

28.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_544쪽 _6,021쪽

29. 기필코 서바이벌! - 박하령 _184쪽 _6,205쪽

30. 자전거 도둑 - 박완서 _184쪽 _6,389쪽

31. 최민식 - 최민식 144쪽 _6,533쪽

32. 강아지 복실이 - 한미호 35쪽 _6,569쪽

33.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 176쪽 _6,745쪽

34. 도쿄 셀렉트 북 _312쪽 _7,057쪽

35. 멋진 서커스 32쪽 _7,089쪽

36.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 피터 홀린스 _192쪽 _7,281쪽

37. 예수는 누구인가? - 조정민 _152쪽 _7,433쪽

38. 변신, 카프카 단편선 - 카프카 190쪽 _7,623쪽

39. 퇴마록 세계편 3 - 이우혁 _560쪽 _8,183쪽

40. 퇴마록 혼세편 1 _이우혁 _504쪽 _8,687쪽

41. 내일을 여는 창 언어 -실비 보시에 132쪽 _8,819쪽

42. 동물들의 장보기 -조반나 조볼리 32쪽 _8,851쪽

 

43.~4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 도스토옙스키 _1,604쪽 _10,455쪽

46. 율법과 복음 - 김형익 _232쪽 _10,687쪽

 

 

-4월에는 정신없이 읽은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니 4월이 다 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4월에는 5,210쪽을 읽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독자모니터로 먼저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새롭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앵무새 죽이기>와 같은 고전을 읽을 수 있어서 뭔가 후련했다.


<퇴마록>을 다시 시작했지만 감기로 두 권 읽고 의욕이 꺽여버린 상태고, 신앙 도서를 읽고 싶어 두란노 서포터즈에 선정되어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모두 내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굉장한 책들이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월초가 되면 책을 주문하는데 어제 미리 주문을 해뒀다. 5월에는 또 어떤 책들을 읽게 될지, 어떤 책을 읽을지 기대가 된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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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읽은 책

 

1. 어쿠스틱 라이프 4 - 난다

2. 우리가 좋아했던 것 - 미야모토 테루

3. 산소리 - 가와바타 야스나리

4.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 유선경

5. 눈먼 자들의 국가 - 김애란 외

6. 반 고흐 인생수업 - 이동섭

7. 미성년 하 - 도스또예프스끼

8. 파랑이 진다 - 미야모토 테루

9. 나란 무엇인가 - 히라노 게이치로

10.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파트릭 모디아노

11.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 파트릭 모디아노

12. 십이국기 1 - 오노 후유미

13.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박정은

14. 십이국기 2 - 오노 후유미

15. 마음을 톡, 톡툰 - SHYboy

16. 외로울 때마다 너에게 소풍을 갔다 - 강은경

 

 

 

- 1월에는 16권의 책을 읽었다. 12월에 <환상의 빛>을 읽고 좋아진 미야모토 테루의 국내에 나와 있는 작품을 모두 읽었고 신간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히라노 게이치로, 파트릭 모디아노와 작가는 낯설지만 에세이 신간들과 <퇴마록> 이후로 관심이 가는 장편 장르소설 <십이국기>도 읽었다. 이 소설은 끝까지 완독해 보고 싶다.

1월에는 책장에 오랫동안 묵혀두고 있는, 읽다 만 책들을 몽땅 꺼내서 읽고 싶었으나 겨우 3권을 꺼내서 읽었다. 그러나 이 3권을 읽는 동안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 또 읽기를 중단한 책들이 많이 생겨버려서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2월 독서에 대한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여러권을 동시에 읽기 보다 1~2권을 번갈아가며 읽으며, 읽다 만 책들을 계속 줄여나갔으면 좋겠다. 2월에도 1월달 만큼 독서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점점 다가오는 출산의 압박에 계속 책을 읽을 것 같긴 하다^^ 2월에도 좋은 책들이 내게 와 닿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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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읽은 책 중에서 열 권의 책을 뽑아봤다.

 

 

 

1. 에브리맨 - 필립 로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책 읽는 기쁨을 다시 상기시켜 본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꼭 그랬다. 필립 로스란 작가에 대해 익히 알고 있고 그의 작품을 읽었지만 이 작품에 대한 정보는 없어 그냥 읽었다. 책 제목처럼 보통 남자, 죽음을 맞이했고 젊은 사람도 아닌 노인의 내면이 드러나고, 때론 삶에 분노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너무나 덤덤하게 이어갔던 이야기들. 왜 나이든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 했는지, 나도 늙어가고 있는데 왜 부정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미 생을 마감한 남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정신 팔지 않아서 씁쓸하면서도 덤덤한 심정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영화가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책장에서 얼마나 묵혀 있었을지 모를 책이다. 100페이지 넘게 읽다가 만 책이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 영화가 내리기 직전이라 만삭에 가까워져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음에도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관객이 별로 없어서 더 느긋하게 볼 수 있었고 바다 위에서의 영상은 백미였다. 보통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이미지가 박혀 상상이 가지 않는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일러스트와 비교하자 더 생생하게 다가와 풍부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태평양을 호랑이와 건널 수 있을 거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바다 위에서의 공포와 좌절, 절망이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졌지만 주인공도 말했듯이 리처드 파커가 없었더라면 절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린 리처드 파커의 뒷모습이 내게도 아직 생생하다.

 

 

 

3. 샬롯의 거미줄 - 엘윈 브룩스 화이트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그나마 여기에서 큰 서점에 가는 일이었다. 막상 가보니 서점은 더 크기가 작아졌고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읽고 싶은 책이 없었다. 서가를 몇 바퀴 돌다 지켜 나올 때쯤 어린이 책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싶었던 터라 냉큼 집어왔는데 정말 마음이 뭉클해져서 혼났다. 윌버를 최고의 돼지로 만들어 주기 위한 샬롯의 눈물겨운 사투와 우정이 가슴속에 여전히 맴돈다. 혼자라고 느낄 때 누군가 다가와 손 내밀었던 적이 있었을까? 분명 있었을 텐데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소중하고 특별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허투로 살아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샬롯 앞에 서면 꼭 그런 느낌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떠난 샬롯. 돼지와 거미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정말 훈훈하고 가슴 찡한 이야기다. 

 

 

 

 

 

4. 양을 쫓는 모험 - 무라카미 하루키

 

 

작년 3월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만 읽어댔다. 지인과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초기작이 읽고 싶어졌고 그렇게 시작된 읽기가 절정에 달해 9일 동안 9권의 책을 읽어 버렸다. 임신중독증으로 인한 갑작스런 출산이 아니었다면 아마 모든 작품을 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지만 크게 공감가거나 좋아지지는 않았다. 지인의 애정 어린 추천으로 초기작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 <1Q84>의 시작을 본 것 같았다. 이 작품에서의 독특하고 흡인력 있는 상상력이 <1Q84>에서 절정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란 작가와 첫 대면을 해서 내게는 썩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그 뒤로 몇몇 작품을 읽어도 첫 대면의 충격은 크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초기작을 통해 하루키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보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고 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 이 작품이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1Q84>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5. 그저 좋은 사람 - 줌파 라히리

 

 

단언컨대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조금만 읽어본다면 단박에 마음에 들 거라 장담한다. 이상하게도 여류작가는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을 꼽을 수 없었는데 줌파 라히리는 단박에 좋아졌다. 이민자의 삶을 주로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을 보고 있으면 이질감과 동시에 누구나 한번쯤 집을 떠나 느꼈을 그 낯섦과 적응,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저자처럼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도록 섬세하게 쓰는 작가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 생각들, 너무 빨리 스쳐지나가 버려서 잡을 수 없었던 생각들을 군더더기 없이 그려내고 있다. 그 섬세함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6. 여덟 단어 - 박웅현

 

저자는 두 달여 간 이십여 명의 20,30대와 함께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놓았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었는데 30대의 나에게 와 닿는 것이 무척 많았다. 얼핏 보기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주제일지 모르나 막상 저자의 글을 만나보면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에 촘촘히 박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그 모든 것을 다 갖추며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다는 생각이 들므로 이 가운데 나에게 와 닿는 몇 가지만이라도 건져내서 집중한다면 조금은 풍부한 마음을 가지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음악도 찾아보게 되고 집필한 다른 책을 검색하게 될 정도로 호소력 있는 문체에 반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글쓰기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음을 알기에 더 애정이 가는 책이다.

 

 

 

 

 

7. 모래 그릇 - 마쓰모토 세이초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음에도 저자의 작품은 여태껏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두 권임에도 쉽게 놓을 수 없는 흡인력과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배경은 1960년대라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발로 뛰는 수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검색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전화도 발달하지 않았고 다른 경찰서에 협조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굉장히 느린 수사임에도 끈질긴 인내를 가진 형사 이마니시로 인해 끝끝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 자극적인 사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밋밋할 수도 있지만 오랜만에 완성도 높은 장르소설을 만나서 정말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

 

 

 

 

 

 

8. 도자기 박물관 - 윤대녕

 

 

해외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국내문학 작품에 많이 소홀하고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번역체에 지칠 때면 국내문학을 읽곤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글의 익숙함과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오랜만에 마주한 윤대녕 작가의 단편집을 읽고 보니 그간 국내문학을 소홀히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질 정도였다. 우리 문학의 단편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고 문체의 편안함 속에 진정한 이야기를 만난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작품을 통해 단면이나마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박에 저자의 글에 반해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 몇 권을 구비해 놓았다. 우리 문학이 그리워질 때 이 느낌을 잊지 않고 만나 보려 한다.

 

 

 

 

 

 

 

9.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 이런 책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어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마주했는데 정말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글들을 만났다. 그림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설 작품과 문화,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가 부담스럽지 않고 좋았다. 내가 읽은 작품들이 다르게 해석되고 대입되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작품이라고나 할까? 천천히 느긋하게 읽고 싶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어 버린 게 아쉬울 정도다.

 

 

 

 

 

 

10. 징비록 - 유성룡

 

그간 나는 임진왜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겨우 이순신 장군의 활약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그대로 알게 해주었다. 당시의 재상 유성룡이 보고 느낀 임진왜란은 너무나 처참했다. 관군들이 자신의 자리를 조금만 더 지켰더라면 일본군이 수도를 탈환하는 데 그렇게 짧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나라를 지키겠다는 백성들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아니었더라면 훨씬 더 처참했을 전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화도 나고 안타깝고 한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자연스레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책 속에 등장한 여수의 지명에 괜히 더 마음이 찡해진다. 임진왜란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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