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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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거나 읽거나 만들거나 하는, 어쨌거나 ‘책환자’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책 만드는 일에 진심인 이은혜 편집자의 자기 일에 대한 태도는 꽤 존경스럽기까지하다. 나의 일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고, ‘글항아리’ 출간 책들을 더 주의 깊게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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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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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분량인데도 며칠에 걸려 읽어야 했을만큼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인정욕구 때문에 광대를 꿈꿨으나 전쟁영웅이 되고 만 말케의 비극. 말케를 그렇게 몰아간 사람들과 또 그 시대 광적인 분위기를 음울하게 돌아보며 나치에 어떤 식으로든 동조한 독일 사회의 죄의식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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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4-03 21: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흠.
이거 참. 어떻게 읽기는 읽어야겠는데, 엣다 모르겠다, 하여간 저는 빨라야 5월이고 아마 6월쯤일 거 같으니 일단 아몰랑, 그러거나 말거나 기다릴 뿐입니다. 아, 이 냥반 책은 읽을 때마다 뭐 면벽참선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있지도 않은 심지를 다잡아야할 거 같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럼에도 나 참, 눈에 보이면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읽고나서 나 이거 읽었다, 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도무지 멈출 수가 없단 말이지요.
저 옛날 옛적에 독일 남자 하나가 비행기 타고 회계감사를 나와 명함을 주는데 하, 이놈이 독일놈이라, 저도 모르게 대뜸, 아이고, 당신 독일에서 왔어, 귄터 그라스의 나라? 이거 진짜 엉겹결에 나온 얘긴데, 그 독일 아이가 벙 쩌서 바라다 보는 눈길이라니 말입죠. 저 아시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쬐그만 나라의 봉급쟁이가 귄터 그라스를 알아? 나도 이름만 들어봤는데? 하는 눈길,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4-03 21:54   좋아요 1 | URL
오~~일년에 책을 200권 넘게 읽으시니, 저라도 외국인 만나면 그 나라 유명 작가와 자연스럽게 연결지어 첫인사 할거같아요~~

‘나 이거 읽었다‘ 정말 이 맛에 읽는거 맞아요. 이 책 읽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좋은 거...저는 이 느낌 너무 늦게 알아 후회막심이지만, 그러나 지금부터 화이팅! 이에요.

잠자냥 2021-04-03 22:12   좋아요 2 | URL
하 증말 귄터 그라스 책 읽으면 깜깜한 방에서 안대까지 쓰고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찾는 기분입니다.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4-03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께서 쉽지 않다고 하면 이건 진짜네요 ㅋ 전 귄터 그라스 이름만 들어본....표지에 정감이 안가서~근데 갑자기 읽어보고 싶네요 ^^

잠자냥 2021-04-03 22:30   좋아요 3 | URL
ㅎㅎ 표지 그림은 귄터 그라스 작품입니다. 귄터 그라스는 판화와 조각을 전공한 화가로도 유명했습니다. 전 그라스 그림도 좋아해요. (진정 재능이 철철...-.-) 암튼 저도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 아리까리하여 섣불리 추천은 못합니다만.... <고양이와 쥐>는 그라스의 ‘단치히 3부작’중 하나로 그 유명한 <양철북>을 먼저 읽으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새파랑 2021-04-03 22:33   좋아요 2 | URL
양철북 접수하겠습니다 ㅋ (낚시는 아니겠죠? ㅎㅎ)

미미 2021-04-03 23:09   좋아요 2 | URL
오 <양철북>저도 접수합니다!👍👍

유부만두 2021-04-03 23:13   좋아요 4 | URL
양철북 ... 무서운 책이에요, 여러분. 맘 단단히 붙잡고 읽으세요. 영화도 있어요오우~ 잘못하면 꿈에 그 얼라가 나와요오오오~

미미 2021-04-03 23:20   좋아요 1 | URL
헉..더 궁금해요!!!

잠자냥 2021-04-03 23:31   좋아요 3 | URL
영화 <양철북>도 정말 명작입니다.

잠자냥 2021-04-03 23:32   좋아요 2 | URL
유부만두 님/ 그 얼라 정말 인상 깊죠. 아주 예전에 본 영화인데도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 얼라....
 

그 명성에 비해 토니 모리슨을 너무 늦게 읽기 시작했다. 아직 그의 작품을 다 읽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산문집이 출간되니, 마음이 갑자가 다급해져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잉크>에는 토니 모리슨의 여러 글들이 실려 있다. ‘에세이라고 하면 왠지 가벼운 산문 위주일 것 같다. 나 또한 얼마쯤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는데 첫 장부터 조금 당황했다. 글도, 내용도 어투도, 주제도 하나 같이 모두 묵직하다. 이 책에는 소설가이자 영문학자, 편집자, 비평가로서 토니 모리슨의 모습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에세이와 강연, 연설들이 묶여 있다. 그 주제도 다채로워서 문학은 물론 사회, 문화, 예술 문제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사유의 흔적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띠는 것은 인종’, ‘흑인’, ‘여성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출판편집자, 영문학 강사로 일하면서 마흔이라는 어찌 보면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한 토니 모리슨. 그는 끊임없이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학 작품을 세상에 선보여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때문에 그가 미국 흑인 문학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렇기에 인종차별이나 젠더 갈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며, 아니 펼치기 전에 흑인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쓰여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100%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당신도 토니 모리슨의 사유의 깊이가 이토록 깊을 줄은 예상치 못했을 터이므로.

 

여러 글들이 인상 깊지만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잉크>는 토니 모리슨 작품의 창작 배경을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토니 모리슨의 팬이라면, 그래서 그의 모든 작품을 섭렵한 이들이라면 이 책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토니 모리슨 정도의 작가에게조차 사람들은 무례하게 이렇게 묻는다. “언젠가 백인에 대해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흑인 작가라는 말이 끔찍하지 않으신가요?”(37) 등등. 다른 작가들에게는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기이한 질문이다. 한편, 이 질문은 어느 여성 작가에게 언젠가 남성에 대해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니까?” “여성 작가라는 말이 끔찍하지 않으신가요?” 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때로 이렇게 질문으로도 폭력을 가한다. 이런 불쾌한 질문에도 토니 모리슨은 진솔하게 답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가능한 한 방해받지 않는 동시에 가능한 한 책임지길 원했다.’ ‘문화적으로 특수한 동시에 인종에서 자유로운 세계를 빚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구 혹은 유럽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인종에서 자유롭거나 인종을 초월한다고 믿으며, 그렇게 믿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토니 모리슨이 보기에 진실은 우리 모두 인종화되어있을 뿐이다.

 

서구 혹은 유럽 작가들이 가진 자주권을 토니 모리슨 또한 원했기에 자신의 소설, 자신과 그 작품, 자기의 능력을 해방하는 방식으로 창작하고 싶었다. 토니 모리슨에게도 선택의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는 인종을 무시하거나 인종을 언급하지 않고 2차 세계대전이나 가족 사이의 갈등을 쓰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자기의 존재와 토니 모리슨 그 자신의 지성에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를 지워버리는 방법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 인종 갈등이나 화합에 대해 쓰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 또한 그렇게 하면 중심 위치에 있는 기존 생각에 무대 한복판을 내어줘야 할 수밖에 없고 주제는 언제나 영원히 인종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다. 상상력을 인종이 지우는 부담과 한계로부터 해방하는 동시에 그것의 중심 위치가 토니 모리슨이 주제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과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탐구하는 것이다. 토니 모리슨은 여기에서 일단 역사보다는 기억에 의존하고 기억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한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자전적이어서(자전적이고 싶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가 매우 인종화된 사회에서 글을 쓰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이런 사회에서 상상력은 절룩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하는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책임은 (시대가 어떻든) 세상을 바꾸는 일, 자신의 시대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그게 너무 야심에 차 보인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96)

 


여기서 말하는 기억이란 단순히 한 개인의 기억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역사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토니 모리슨은 흥미롭게도 과거가 미래보다 더 무한하다’(206) 말하는데, ‘시간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데이터 양의 측면에서는 분명히그렇다는 그의 주장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한걸음 뒤로 갈수록 하나의 세상이, 또 하나의 세상이펼쳐진다. 과거는 무한한 것이다. 때문에 토니 모리슨은 도처의 흑인 예술에서 강렬하게 나타나는 신화적 특성을 글에 담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흑인 여성의 이야기 <빌러비드>는 실존 인물인 노예 마거릿 가너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1983년에 <빌러비드>를 처음 구상할 때 토니 모리슨은 역사와 복잡한 관계가 있었기에 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한다. 역사의 정보성 때문에 역사적 기록에 의존했던 그이지만, 그 기록 역사의 삭제와 부재, 침묵을 예리하게 의식했던 토니 모리슨은 삭제된 어떤 것에서 그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가너는 농장에서 탈출한 직후 아이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을 살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삶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죽이는 쪽을 죽이려고 시도하는 쪽을 시도한다. 그렇지만 죽이지 못했고 노예폐지론자는 가너의 사건을 크게 문제 삼았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토니 모리슨을 괴롭힌다. ‘제 자식을 자신의 일부라고 할 수 없는 노예 여성, 너무 사랑해서 죽일 수 있는 여성, 너무 사랑해서 사랑하는 것이 더렵혀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의 용기, 자책, 자기 처벌, 자기 파괴를 상상할 수 있는가?’(207)

 

한편으로 <빌러비드>는 한 신문 스크랩과 함께 개략적 질문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그 질문의 핵심에는 여성 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자유-동일 권리, 접근권, 임금 등 이외에- 어떤 자유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무렵인 1980년대 초,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가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이었다. 많은 여성은 그 통제권이 아이를 낳을 선택과 이어진다고 확신했다.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이 결함이 아니며,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선택이 자유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시기이다. 여성 운동의 또 다른 측면은 여성이 여성을 지지하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여성의 관계를 남성과의 관계에 종속시키지 말자고 했으며 여성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보내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토니 모리슨은 여성의 중요한 우정<술라>에서 다룬다. 그러나 첫 번째 문제, 내 몸의 주인이 될 자유, 자유의 표식으로서 아이 없는 삶은 토니 모리슨을 깊이 사로잡았고, 여성 노예의 관점(여기서도 역사적 기록의 침묵, 논쟁에서 소수 집단이 주변화된 상황이 그의 주의를 끌고 탐구의 대상이 됨),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닌 아이를 갖는 것, 어머니로 불리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자유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를 낳도록 요구당하는 것이 아니라(젠더, 노예 신분 때문에, 수익을 얻기 위해) 아이를 책임지기로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번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모가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미국 노예제도 아래에서 이런 주장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고 반정부적이었다. 또한 용인되지 않는 여성의 독립선언이었고 자유였다. 만일 이런 권리 주장이 영아 살해로 이어진다면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가져올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랬(101). 이렇게 역사적 기록의 빈틈에서 토니 모리슨의 상상력이 더해져 <빌러비드>가 탄생한다.

 

그뿐만 아니다. 그의 첫 소설 ‘<가장 푸른 눈>1963년 한 인구집단이(토니 모리슨이 속한) 역사책과 문학에서 도매금으로 무시당하고 있다는 데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창작된다. 토니 모리슨이 보기에 연민의 감정으로든 멸시의 감정으로든 예술적 검토 대상이 된 모든 인물 가운데 특히 부재가 두드러진 이들은 취약한 흑인 소녀였다. 그들은 문학 작품에 등장해도 그저 웃음거리, 동정의 대상, 이해의 노력이 결여된 동정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가장 푸른 눈>에서는 인종주의를 개인적 사회적 정신이상의 원인, 후과 그리고 발현으로 보았고 <술라>에서는 인종적 맥락을 넣었을 때 놀라운 의미를 획득했던 젠더 문화, 정체성의 날조에 몰두했으며, <솔로몬의 노래>에서는 공동체와 개별성에 대한 로망에 대한 인종이 끼치는 영향을, <빌러비드>에서는 인종의 안경을 끼고 바라본 육체와 정신, 주체와 객체, 과거와 현재의 대립이 무너지고 매끄럽게 연결될 때 역사 서술의 가능성에 관심을 두었다. <재즈>에서는 인종적 가옥에 대한 대답으로 현대성을 발견하고자 했다.’(150)

 

나는 내가 누구이고 나의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히 아는 능력이 부족 내에서 혹은 가족, 국가, 인종, 성별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밀접하게 엮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명확성은 자아의 평가를 위해 필수적이고 다른 부족이나 문화와의 어떤 생산적 교류를 위해 필수적이다. (.....) 쓰고자 하는 갈망 심지어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은 흑인으로서 나의 자각, 흑인과 하는 경험, 심지어 흑인을 향한 경외심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질에서 온다. (45)

 

이렇듯 <보이지 않는 잉크>에서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고자 아주 자세하게 자기만의 창작 노트를 공개한다. 앞서 말했듯 그의 문학을 아끼고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 인해 그 세계를 한결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글을 쓰려는 그의 모든 시도가 결국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자기 존중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토니 모리슨의 석사 학위 논문은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가 다룬 소외된 이들 Virginia Woolf's and William Faulkner's treatment of the alienated>이다. 이 책에서도 그는 포크너로부터 받은 감동을 언급한다. 토니 모리슨이 포크너에게 깊이 감명한 이유는 이 나라에 대해 그리고 역사책에 나오지 않지만 예술을 통해 드러난 이 나라의 과거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니 모리슨은 때로 역사가 거부하는 일을 예술과 소설이 해낼 수 있다. 역사는 과거를 인간 중심으로 볼 수 있지만 아주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에서 종종 그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몇몇 작가는 한 시대의 탐사를 통해 그 시대를 분명히 드러냈고 포크너는 그 탐사의 절정에 있었다.’(203) 말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제 저 포크너가 들어갈 자리에 토니 모리슨의 이름을 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모리슨은 끊임없이 개인의 기억과 역사적 기억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어 붙여 공통의 흑인 기억을 만들고자 애써왔다. 그 자신이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잉크를 알아본 독자였으며 행간에, 그리고 안팎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발굴해 상상력으로, 문학으로 재창조한 사람이다.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하기를 촉구하는 토니 모리슨 자신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 진솔한 기록들은 어떤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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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3-31 16: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솔로몬의 노래 재미나게 읽었어요!!!
근데 이 책은 안 읽을 거 같아요. 에세이엔 어째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잠자냥 2021-03-31 17:00   좋아요 4 | URL
네 폴스타프 님 낚으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리 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3-31 17:1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아 다행이다. 이번엔 옆구리 좀 남아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3-31 16: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빌러비드> 읽기를 미루다가 어느 순간
토니 모리슨 작가의 모든 책들을 읽어
야지 싶어서 도전에 나섰던 기억이 나네
요.

이제는 모두 절판된 들녘 버전의 책들
을 구하느라 원정 뛴 생각이 나네요 :>

소설 중에서 아직 번역이 안된 책이
있더라구요.

잠자냥 2021-03-31 17:02   좋아요 3 | URL
<가장 푸른 눈> 그래서 구하셨습니까? ㅎㅎ
토니 모리슨 전작 읽을 만한 작가입죠. 그렇습니다. 암요. (그러면서 저도 아직 다 못 읽음 ㅋㅋ)

레삭매냐 2021-03-31 19:43   좋아요 2 | URL
네 바로 그 책 사러 수원까지 갔다 왔답니다.

유부만두 2021-03-31 20:10   좋아요 2 | URL
가장 푸른 눈, 개정판 나오겠죠?

전 위의 네 권 다 읽었어요!! 최애는 술라고요, 솔로몬의 노래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래도 최고는 역시 빌러비드... 맘이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역시 최고에요.

잠자냥 2021-03-31 23:39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 님/ 네 <가장 푸른 눈>은 개정판 나오리라 믿습니다. 토니 모리슨 작품 많이 읽으셨네요. 저도 곧 다 읽겠습니다!

mini74 2021-03-31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빌러비드 밖엔 읽은게 없군요 ㅠㅠ잠자냥님 추천보고 도서관 예약 신청했는데 빨리 보고싶네요 *^^*

잠자냥 2021-03-31 18:23   좋아요 2 | URL
ㅎㅎ 어여 미니 님 손에 도착하기를~!

미미 2021-03-31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냥님 믿으니까 읽어보려구요! 일단 <소녀,여자,사람들>과 <초조한마음>이 급함ㅋㅋ

잠자냥 2021-03-31 23:39   좋아요 1 | URL
ㅎㅎ 요즘 읽고 싶은 책 너무 많아서 발동동 아닙니까!

다락방 2021-03-31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만년전에 재즈 읽었던 것 같아요. 역시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저는 이미 가지고 있는(!!) 빌러비드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이 페이퍼를 읽으니 ‘사유가 깊다‘는 걸 저도 느껴보고 싶어져요. 저는 그런 여성 작가들에게 진짜 크게 감동하거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훗.

잠자냥 2021-03-31 23:40   좋아요 1 | URL
저도 빌러비드는 가지고만 있어요. 올해는 꼭 읽어야겠어요. 암튼 요즘 여성 작가들의 깊은 사유 속에 빠지는 일 너무나 행복합니다.

han22598 2021-04-01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 불운은 없다. 백인들이 있을 뿐이다˝ 빌러비드에 씌여진 글인데, 흑인들의 깊은 빡침의 표현인데...희한한게..소설 안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레 토로되는 느낌. 신기한 느낌이었어요. 저는 토니 모리슨의 다른 작품들...아껴두고 천천히 읽고 싶더라고요.

잠자냥 2021-04-01 09:55   좋아요 1 | URL
아껴두고 천천히 읽고 싶은 마음도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2021-04-12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이지 않는 잉크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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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면 강연, 연설이면 연설, 에세이면 에세이 뭐 하나 흘려 들을 내용이 없다. 인종차별과 젠더 갈등, 문학과 교육, 세계화의 위험 등등 다룬 주제도 다양하다. 소설가로서만이 아니라 문학을 가르친 영문학자이자 비평가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어쩜 이렇게 지성미 철철인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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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3-30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성미 철철 너무 영접하고 싶네용!! 읽고 싶은 책장에 꾸욱 담아갑니당~

잠자냥 2021-03-30 13:26   좋아요 1 | URL
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3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습니다. 잠자냥님은 지성미에 흠뻑흠뻑 빠지지는 흠뻑녀^^;;

잠자냥 2021-03-30 17:23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러게요 제가 좀 지성미에 약하네요. 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3-3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중에 중고서점에 뜨면 만나 뵙는
것으로...

잠자냥 2021-03-31 16:09   좋아요 0 | URL
오우, 네 꼭 읽어보세요~
 

네이딘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을 읽고 완전 반해서 집에 있는 고디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고 있다. 주로 단편들. 그이의 단편이 실린 책들도 대부분 절판 상태이다. 단편 <최고의 사파리 The Ultimate Safari>는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에 실려 있다. 고디머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왕은철 번역가가 ‘<최고의 사파리>를 중심으로 본 타자 재현의 문제-네이딘 고디머에 대한 애도를 겸하며’라는 논문을 쓴 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이 작품을 좀 더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거짓의 날들》은 문체가 유려하고 서정적이었던 데 비해 <최고의 사파리>는 투박한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놀랐다. 그러나 곧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작품 화자는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날 밤 어머니는 가게에 간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모르겠다. 아버지도 어느 날 집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간 것이었다. 우리도 참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직 어렸기 때문에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같은 신세였다. 우리에겐 총이 없었다. 정부가 늘 노상강도라 부르던 아버지의 적군은 사방을 마음대로 다녔으며 우리는 개에게 쫓기는 닭처럼 도망 다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는 식용유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가게에 갔다. 식용유를 맛본 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행복해했다.’

시작 부분을 이렇게 길게 소개하는 까닭은 이 길지 않은 문장에  작품의 주요 상황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쟁터에 나가 부재하는 아버지, 식용유조차 쉽게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식용유 한 병을 구하려고 가게에 간 뒤 돌아올 줄 모르는 엄마. 정부가 늘 노상강도라고 부르는 약탈꾼들의 존재, 남겨진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다. 소녀의 엄마는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노상강도들이 세 번이나 마을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이제 마을에는 남은 것이 없다. 강도들이 불을 질러 소녀네 집 초가지붕은 무너져 내렸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지붕이 없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에 그 약탈꾼들은 소녀의 집에 오지 않았다. 겁에 잔뜩 질려 아이들은 밤을 지새운다. 소녀의 오빠는 부러진 나무 조각을 한 손에 쥔 채로 다 타 버린 집 기둥에서 밤을 지새운다. 노상강도에게 들켰을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학교도, 교회도 모두 파괴되었으므로 소녀와 남동생, 그리고 오빠는 시간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는 채 어머니를 줄곧 기다린다. 그러나 끝내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고, 아이들만 남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와서 손주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도 한 달 가까이 엄마를 기다리지만 엄마는 돌아올 줄 모른다. 할머니의 집도 사정은 형편없어서 굶주림이 날마다 이어진다. 할아버지에겐 전에 소와 양이 있었지만 그 또한 노상강도들이 모두 빼앗아갔다.

굶주림 속에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자 할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은 떠나게 되어 기쁘다. ‘어머니가 있지 않은 곳’, ‘항상 배가 고픈 곳에서’ ‘노상강도도 없고 음식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은 떠나고 싶었다. 집을 떠나 할머니가 목표로 삼은 ‘그곳’에 가려면 크루거 공원을 지나야만 한다. 아이들은 크루거 공원을 잘 알았다. ‘동물들만 사는 거대한 왕국, 코끼리, 사자, 자칼, 하이에나 하마, 악어, 모든 동물이 사는 곳’이다. 마을에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동물들이 이었는데, 노상강도들이 코끼리를 잡아 상아를 팔고, 사슴을 다 먹어 치웠다. 소녀는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마을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지 동물의 왕국은 아니’라고. 크루거 공원을 잘 아는 이를 안내자 삼아 소녀의 가족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떠난다. 크루거 공원에서는 울타리를 돌아 더 먼 길로 돌아가야 한다. 울타리를 손으로 만지는 순간 살이 타들어서 죽기 때문이다. 말이 ‘공원’이지, 소녀가 묘사하는 내용을 유추해 보면 크루거 공원은 ‘사파리Safari’임을 알 수 있다.

공원에서는 모닥불을 피울 수가 없다. 연기 때문에 그들이 공원에 있다는 사실이 탄로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과 공원 관리인이 이들의 존재를 알면 그들을 돌려보낼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그들은 ‘동물들 사이에서 동물처럼’ 움직인다. 소녀는 이곳에서 코끼리, 수사슴, 멧돼지 등을 맞닥뜨린다. 동물들의 뒤를 쫓다가 물웅덩이를 발견하면, 동물들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물을 마신다. 소녀가 볼 때마다 동물들은 풀이나 나무나 뿌리를 먹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인간이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할머니가 가져온 곡물 가루도 이미 다 떨어졌고, 소녀는 개코원숭이들이 먹는 음식이나 겨우 먹을 수 있다. 인간이면서도 이곳에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 마찬가지인 그들은 그렇다고 ‘동물처럼 행동하기’도 어렵다. 소녀는 날씨가 아주 더운 낮에는 누워서 잠든 사자들을 본다. 자신도 사자처럼 눕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누워 잠들면 사자에게 먹힐지도 모른다. 남동생은 점점 더 야위어 가고, 오빠는 어느새 말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여행은 지속되어 그들은 낮에도 밤에도 걷는다. 야영지에서 백인들이 요리하며 피우는 모닥불을 본다. 연기 냄새와 고기 냄새에 이끌려 일행 중 한 여인이 그들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자고 한다. 여인은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을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말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안내자는 크루거 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를 도우면 그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우리를 봐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이 본 건 단지 동물뿐’이라고. 크루거 공원을 지나는 동안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볼일을 보기 싫었는지 풀숲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일행들은 길을 떠나야 한다고 재촉하고, 할머니와 소녀와 오빠는 할아버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굶겨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결국 일행을 따라 길을 나선다. 할아버지는 어딘가에 남겨둔 채. 아빠와 엄마에 이어 할아버지마저 사라진 것이다.

드디어 소녀 앞에 저 멀리 아주 큰 천막이 보인다. 파랗고 하얀 천막이다. 소녀의 고향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 진료소 수녀의 말에 따르면 아기들을 제외하면 그 수가 200명쯤이다. 각 가족에게는 집 대신 큰 자루나 종이 판지 등 찾을 수 있는 것들로 사방을 막은 작은 구역이 주어진다. 이 공간이 자신의 것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이다. 문도 창문도 지붕도 없지만 이 공간에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문도, 창문도 지붕도 없기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남의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일종의 사파리와도 같다. 진료소에서 나눠 준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배급을 받고, 옷을 얻어 입고 소녀와 오빠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지만 남동생은 또래 아이들처럼 놀지 못한다. 할머니는 진료소를 찾아가고, 수녀는 남동생이 충분히 먹지 못해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한다. ‘전쟁 때문에,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크루거 공원에서 굶주렸기 때문에 남동생은 종일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 있거나 할머니한테 기대어 있기를 좋아한다.’

시간은 흐른다. 천막에서 얼마나 오래 생활했는지 소녀는 열한 살이 되었고, 동생은 세 살이 다 되어 간다. 동생은 여전히 몸집은 작지만 머리는 크다. 몸이 건강한 할머니는 일자리를 구했고, 소녀네 가족들은 굶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크루거 공원에서처럼 천막 안 공간도 비좁아 서로 가깝게 누워 있어야 할 만큼의 자리밖에 없다. 어느 날 백인들이 천막에 사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러 왔다. 그들은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한 백인 여자가 소녀네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백인 여자의 말을 알아들은 어떤 사람이 그 말을 통역해서 되물어 준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고 있나요?
이곳을 말하는 겁니까? 할머니가 말했다. 이 천막에서 이 년하고 한 달 살았어요.
앞으로 바라는 것 있어요?
아무것도요. 여기에 있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요?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 좋은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기를 바랍니다.
고국으로, 모잠비크로 돌아가고 싶나요?
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이곳에 머물지 못할 텐데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는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할머니가 그 백인 여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백인 여자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최고의 사파리>,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389쪽)


이 짧은 단편에서 가장 압도적인 장면이 아닐까. 이 년 넘도록 천막 안에서 지내는 소녀의 가족. 남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자루나 종이 판지 등으로 사방을 막아도, 문도, 창문도, 지붕도 없기에 누구라도 마음먹으면 집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을 백인이 ‘영화’를 찍는다면서 ‘비집고’ 들어와 자기들의 언어로 질문을 퍼붓는다. 그러고는 소녀네 가족을 향해 ‘미소’ 짓는다. 야생동물의 생활 터전에 마음대로 들어가 그들의 생활을 염탐하고는 제멋대로 그 삶을 낭만화해 미소 짓거나 즐거워하는 사파리 관광객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크루거 공원을 지날 때 백인들의 음식 냄새에 이끌려 도움을 청하자고 했던 여인에게 안내자가 했던 말도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보여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그들. 크루거 공원에서 그들은 동물처럼 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동물보다 그 존재가 뚜렷하게 인식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동물은 타인의 눈에 보이는 존재여도, 이들은 결코 보여서는 안 된다. 할머니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집도 없다고 말하지만 소녀는 할머니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전쟁이 끝나고 노상강도도 없어지면 집에서 엄마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기에 다시 크루거 공원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는다. 소녀의 이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파리Safari'는 잘 알다시피 야생 동물을 놓아기르는 자연공원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차 안에서 구경하는 일을 뜻한다. 원래는 스와힐리어의 ‘여행’이라는 뜻으로, 사냥을 하기 위해 사냥감을 찾아 원정하는 일을 이르던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 <최고의 사파리 The Ultimate Safari>라는 제목은 작품 내용과 어우러져 무척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늘 ‘노상강도’라 부르던 아버지의 적군, 코끼리를 잡아 상아를 팔고, 사슴을 몽땅 먹어 치운, ‘노상강도’들은 그저 단순히 아프리카의 또 다른 종족들을 말하는 것일까? 만지는 순간 살이 타들어서 죽는 울타리를 크루거 공원에 친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이 아프리카 땅에서 사냥은 누가 했으며 진짜 사냥감은 누구였을까. 한쪽에서는 그렇게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들에게 천막을 제공해주는 하얀 얼굴의 백인들이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난민의 삶을 영화로 만들겠다며 다정히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대며 미소 짓는 백인들도 있다. 차 안에 편히 앉아 유리창 너머로 사파리를 돌아보는 관광객이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난민의 삶을 담고 전시하는 백인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삶을 ‘사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아프리카에서 긴 ‘여행’을 할 것이 분명한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네이딘 고디머의 시선과 통찰력은 이렇게 짧은 작품에서도 빛이 난다. 그렇다고 고디머의 작품이 아프리카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단편 <발견>(《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에서는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해, 여자라면 환멸을 느끼게 된 남자가 홀로 바닷가 휴양지로 떠나 겪는 일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작품들을 읽노라니 당연히 네이딘 고디머의 작품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절판된 책들도, 그리고 아직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그 많은 작품들도 속히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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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2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읽었어요. 옛날 옛적에요. ㅎㅎㅎ 그래서 기억 안 나요. 암튼, 저도 예전 제 글을 보면서 제가 나딘 고디머를 잠자냥님처럼 엄청 좋아햤더라고요. ㅋㅋ 암튼 <보호주의자> 주제넘게 추천합니닷! 읽으시고 멋진 글 써주세요. (근데 정말 우리 취향 비슷해요!!😅)

잠자냥 2021-03-29 21:45   좋아요 0 | URL
<보호주의자>는 현재 절판이라 구할 수가 없네요. 나중에 읽게 되면 꼭 리뷰 남기겠습니다.

다락방 2021-03-3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읽었다는 기억은 나거든요. 그래서 혹시 뭔가 써놓은게 있나 싶어 검색해봤더니, 2014년에 밑줄긋기 단 한 건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문장이 나딘 고디머의 것은 아닌듯 합니다.

잠자냥 님의 글로만 봐도 참 좋은 단편일 것 같은데, 어째서 이렇게 기억은 전혀 없을까요. 대체 책은 왜 읽는 걸까요... 하아-

잠자냥 2021-03-30 10:06   좋아요 0 | URL
단편은 금방 잊히긴 하죠. 제가 이 책 링크 하느라 옛 리뷰들 좀 찾아보니 다락방 님은 페이퍼를 몇 개 쓰셨더라고요. 그때 이 책에 실린 <아들의 죽음>을 인상 깊게 읽으셨나 봅니다. 물론 지금은 기억 못하시겠지만...*힐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3-30 12:06   좋아요 0 | URL
페이퍼도 썼어요, 제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독서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021-04-12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21-04-2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의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저 책 대학생 시절 밀란 쿤데라 단편 때문에 빌려 읽었던 책이네요. 원래 쿤데라 단편 제목이 [히치하이킹 게임] 인데 왜 이상한 제목을 갖다 붙였을까 의문스러웠던 기억만 나고 쿤데라 소설 외 다른 소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네요..십수년전 읽었던 책 표지를 보니 기분이 묘해요.

잠자냥 2021-04-21 09: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견딜 수 없는....> 이 책 제목 참 이상하죠. 단편 모음집의 단점이라면, 몇 년 지나면 그 안에 실린 단편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ㅎㅎ 하긴 요즘 저는 장편도 좀만 지나면 아주 강렬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희미해집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