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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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는 일이 늘 선이라고 믿는 착각의 위험을 ‘세상에서 가장 쓰디쓴 것’으로 일깨워준다. 그런데 세상의 수많은 요르다니들은 그 교훈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콧방귀만 뀔 거 같아 답답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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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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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염세적이다. 인간관계도 좁고 사람에 대한 희망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사회에 대한 희망도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세상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이런 나를 알기에 언젠가 엄마는 진지하게 내게 편지를 써서, 이 세상에 그래도 무언가 하나쯤은 남겨두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무언가’란 바로 아이였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그로써 자기의 핏줄, 자기의 대를 잇는다. 나는 이 세상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고 그것이 나를 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케르테스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읽는 내내 인간이 자기의 핏줄을,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남기고 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별다른 큰일을 겪어보지 않은, 그저 다만 염세적인 사람도 이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살아가게 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하물며 케르테스야 어땠을까 싶어진다. 그는 잘 알려졌다시피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작가이다.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삶이 과연 제대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 그중에서도 가장 참혹하다는 유대인 ‘절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케르테스는 그 참혹한 기억들을 고스란히 글로 남겼다. 이른바 ‘운명 4부작’ 시리즈를 통해 살아남았으나, 여전히 살아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고발한다. <운명>에서 나치의 절멸 수용소에서 겪은 끔찍한 기억들로 고통받는, 그리하여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십대 소년은 어느덧 노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면서 작가로서 명성도 얻는 등, 사회적으로는 그럭저럭 한 사람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얼핏 보면 이제 고통은, 참혹한 기억은 그의 삶에서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어느 날, 한 늙은 철학자의 질문, 정말 무심하게 던진 질문이 그의 삶을 뒤흔든다. 철학자는 그저 그에게 아이가 있는지 무심코 질문을 던진 게 전부이다. 어떤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줄 전혀 모르는 채 사적인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들처럼, 그 철학자 또한 아이가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런 질문도 어찌 보면 무례한데, 거기에 그는 또 덧붙인다.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일종의 의무태만 행위’(18쪽)이라는 생각이 든다거나, ‘이 땅에서 개인적으로 또 초인적인 일을 제대로 해냈든지 아니 오히려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하다면 대를 잇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19쪽)라거나 ‘삶에 반해서 매우 현실적인 인간의 의무라는 것은, 스스로를 불구이자 쓸모없는 존재로 궁극적으로는 생식 불능의 인간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것’(19쪽)일 거라는 말들….

철학자의 이런 말에 그는 생각해 본다. 자신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떠올려본다. ‘혹시 네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딸아이로 태어나지는 않을까? 너의 작은 코 주위에는 주근깨가 엷게 흩어져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네가 고집 센 아들인 것일까? 너의 눈은 회청색 조약돌처럼 근사하고 힘찰까?-물론 나의 삶을 너의 존재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말이다.’(25~26쪽) 그날, 그는 밤이 새도록 오로지 이 생각에 골몰한다.

왜 그는 아이가 없을까? 그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대부분의 독자는 그 까닭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지옥 같은 현실을 겪고 살아남았는데, 그런 세상에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하는 생각. 한편으로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으니 아이를 낳아 그 예쁜 웃음을 보며 이 세상 시름을 잊는 것은, 그러니까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안 돼!”를 말한다. “인간의 가장 큰 범죄는 태어난 것”(133쪽)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아내에게.

그와 아내는 열정적으로 사랑한 사이였다. 그럼에도 그 두 사람의 결혼은 실패로 돌아가 둘은 이혼한 사이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아이, 아니 아이로 치환할 수 있는 그의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이다. 아내는 그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는 단호히 “안 돼!”라고 말한다. 심지어 태어나는 것이 가장 큰 인간의 범죄라니….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 이런 말은 독약과도 같을 것이다. 화목했던 관계에 금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집을 사거나 가구를 사거나 등등 어떤 소유물에 관한 취향 때문에 다툼이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아주 큰 차이. 아내 입장에서는 아이를 갖는 것이 삶에 대한 본능의 발현인데, 그는 그것이 곧 범죄라고 하지 않는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싶은데 그의 처지에서 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는 유대인 절멸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이전부터, 세상이 한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추악한 곳인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의 부모도 그가 어릴 때 이혼했으며, 왜 이혼하느냐는 아이의 질문에 부모 누구도 납득할 만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기숙학교에서도, 그 이후의 아우슈비츠에서도 사람들은 누구하나 믿을 수 없었고 혐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살아가는 동안 내내 ‘학살자들, 삶을 훼손한 자들이 큰 소리로 스스로를 생명의 길로 선언하는 것을 질리도록’(127쪽) 목격한다. 그런 일들은 지나치게 자주 반복되어 그 안에서 반항심을 다시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지경이다. 끔찍한 일이지만 그는 “삶을 훼손하는 자들 때문에 삶을 혐오”하게 돼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인간, 자연 그리고 그 자신과도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기울이지 않게 된다. 변변한 주거지를 마련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다. ‘소유물, 모두를 살게 하고 모두를 움직이며 모두를 미치게 만들기도 하는 소유물’(85쪽)은 사실상 실재하지 않으며 실재한다 해도 오로지 부정적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수용소 생활에서 셋방살이로 생활이 연장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치욕을 직면한 채 살아야 하는 것일까?’(135쪽)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삶 속에서 그는 오로지 글을 쓰며 살아갈 뿐인데, 거기에서는 하나의 실낱같은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은 오래전 수용소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려움에 떨며 구덩이를, 무덤을 파고자 삽질을 하던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구름 속에, 바람 속에, 허공에 파기 시작했던 저 무덤을 계속 파는 일, 끝까지 파야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170쪽)을 깨닫는다. 때문에 그것은 그에게 은밀한 발버둥이자 은밀한 희망이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아내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태어났다. 그런데도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는 아우슈비츠라는 표상 안에 있다. 그녀의 부모님도, 고모와 같은 친척들도 아우슈비츠를 거친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성장하는 내내 유대인의 감정들과 유대인의 생각들로 들어찬 또 다른 ‘게토’ 아닌 게토에서 살아간다. 이 또한 힘겨운 일이 아닐까. 아내는 유대인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그곳에서 잠시 자리를 뜨곤 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만난 사람이 여전히 아우슈비츠에서의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유대인이라니, 그녀의 인생도 어찌 보면 가련하다. 게다가 아이를 낳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안 돼!”라고 단호히 말하는 남편이라니…. 그의 고통도 그녀의 고통도 모두 이해되기에 이 부부의 헤어짐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헤어진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그녀가 현재의 남편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은 이 부부의 그간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마음이 아파온다.

‘절대로 나는 다른 한 인간의 아버지, 운명, 신이 될 수는 없’다고,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일을 또 다른 한 아이가 겪게 해서는 안 된’다고 끝끝내 울부짖는 그. 그는 정말 철학자의 말처럼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의무태만 행위’를 저지른 것일까? 철학자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아우슈비츠는 어떤 말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에게 아우슈비츠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일평생을 ‘독일인들은 언제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이런 형별과도 같은 삶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그의 절절한 외침, 고통스러운 절규가 머릿속에 오래도록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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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3-31 10:4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것도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작가의 뜻이 아닌가 싶어요.
아우슈비츠 뿐만아니라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도 한 몫했군요.
케르테스 책은 표지들이 다 이런 분위기에요. 읽기 전부터 숙연해지는...

잠자냥 2022-03-31 13:24   좋아요 5 | URL
네 기숙학교에서의 경험도 그렇고 이 작가는 인간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ㅠㅠ

새파랑 2022-03-31 11:0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요 책도<케르테스>의 자전적 이야기 같군요~ 저런 비극을 경험하면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절대 안생기겠죠 😅 이 책도 상당히 괴롭게 느껴질거 같아요~

잠자냥 2022-03-31 13:24   좋아요 6 | URL
네, 이 책도 완전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읽기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 문장 자체가 의식의 흐름…..

2022-03-31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3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04-01 1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진짜 범죄 같은데… 가끔 금쪽같은 내새끼 보면 생각 없이 번식하는 어른인간들 다 절멸시켜버라고 싶어요… 는 다행이도 이시대에 태어나 그걸 보고 있는 나니까 그런거고…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숭고해지려고 하는 모습도 대단한데.. 꼭 인간이 숭고해져야하는가… 암튼 저는 뭘 남길 생각은 거의 없고 쓰레기나 좀 덜남기고 가야할텐데…. (염세주의자2)

잠자냥 2022-04-01 14:37   좋아요 3 | URL
엄훠, 내가 쓴 댓글인 줄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4-01 20:2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속닥속닥) 우린 어쩔수 없나바..

독서괭 2022-04-01 1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제목이 그런 의미였군요.. 마음 아픕니다 ㅜㅜ 저는 어릴 때부터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살기를 꿈꾸던 사람인데도 이번 코로나 겪으면서, 이걸 미리 알았다면 애를 안 낳았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물며 아우슈비츠를 겪은 사람이라면..
잠자냥님은 남기고 가셔야 할 거 하나 있습니다. 책이요, 책.

잠자냥 2022-04-01 14:40   좋아요 3 | URL
ㅎㅎㅎ 그래도 또 이렇게 힘든 세상에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낳고 돌본다는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전 도무지 그럴 자신이…. 제 괭이들 돌보는 것도 때론 엄청 지치는데 말입니다. ㅎㅎㅎ 책! ㅎㅎㅎ 남길 만한 책을 남겨보도록 애써보겠습니다~

mini74 2022-04-01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여러 이유로 딩크인데 그 어머님이 똑같은 말씀을 하셨대요. 그래서 친구가 난 사리를 남길태니 엄마는 탑을 하나 쌓아줘 ㅠㅠ 했다가 머리 밀릴뻔 했지요 ㅠㅠ 전 지금 운명 읽고 있는데 이 편도 읽고 싶네요 ~

잠자냥 2022-04-01 16: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진심 크게 웃었습니다. 친구분이 정말 명언을 남기셨네요! ㅋㅋㅋ <운명> 읽고 이 책 읽으면 더 잘 이해되실 것 같아요!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읽고 싶어진 것은 순전히 동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때문이다. 궁금했던 작품인데 이제야 만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관심 없던 원작이 무척 궁금해질 정도로 훌륭했다. 영화는 시작부터 두 남녀의 정사 장면을 보여준다(그래서 훌륭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의 정사가 조금 남다르다면, 섹스를 마친 후 여자는 자신이 쓰고 있는 드라마 이야기를 남자에게 들려주는데, 완성작은 아닌지 남자도 여자의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을 덧붙인다. 인생의 주름이 희미하게 자리잡은 얼굴, 중년에 접어든 남자와 여자는 누가 봐도 부러울 만큼 다정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 드라마 작가인 여자와 유명한 연극 연출가인 남자, 그리고 그들이 함께 지내는 집의 크기나 구조 등을 보건대,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그러니까 어느 모로 보나 주위의 부러움을 살만한 커플이다.

 

남자의 이름은 가후쿠, 여자의 이름은 오토- 이 남부러울 것 없는 커플을 지켜보노라니 함께 지낸 세월에 비해 너무 다정해서 두 사람은 결코 부부가 아니라, 아마도 나이 들어 만난 연인인가 싶은데.... 놀랍게도 그들은 부부가 아닌가. 이런 설정에 문득, 영화가(또는 하루키의 원작이)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닌가 싶어진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날, 가후쿠는 국제 연극제에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로 출장을 떠나게 된다. 그날 아침 완전 다정하게 아내와 작별인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신나게, ‘마이 카를 타고 도착하니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한다. 러시아에 눈이 심하게 내려 연극제 일정이 미뤄졌으니 공항 근처 숙소에서 머물거나 하는 등 출발을 미루라는 문자이다. 그러나 가후쿠는 조금 전 헤어진 아내가 보고 싶은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빨간색 앙증맞은 마이카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순간 내 심장은 두근두근. 왠지 그가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될 것 같다. 집에 가면 왠지 에, 그러니까 아내가 다른 남자랑 신나게 한판 놀고 있을 것만 같다..... 드디어 도착한 집, 가후쿠는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연다. 들려오는 음악소리.... 그리고 그 음악소리에 뒤섞여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 그렇다 그것은 아내의 신음소리이다. , 그러니까 집으로 오지 말고 공항 근처 숙소에서 머물라니까!! 아내와 웬 남자가 가후쿠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한참 정사에 몰입해 있는 게 아닌가. 가후쿠는 잠시 얼어붙지만 조용히 문을 닫고 집을 나온다. 그러고는 마이 카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아내나 남편 또는 연인의 불륜(그것도 정사)을 바로 눈앞에서 본다면 대부분 어떻게 행동할까? 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머리끄덩이를 붙잡거나 물건을 던져버리거나 등등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가후쿠처럼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라면 아마도 일단 그 자리를 떠날 것 같은데 그래도 나는 그 후 상대에게 모든 걸 봤노라 따지고 묻고 헤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후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길로 공항 근처에 호텔을 잡고 하룻밤을 보내고, 그 늦은 밤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영상 통화로 받을 때도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에 무사히 도착한 척 연기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러시아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다정히 아내를 끌어안고, 떠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아내와 정사를 벌인다. 아내는 아내대로 정사를 마치고 나서는 늘 그렇듯이 이야기 타래를 풀어놓는다. 이 부부는 계속 이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저런 관계가 정말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뜻밖에도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가후쿠는 홀로 남는다. 하루키 원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여자 없는 남자들에 실려 있는데, 가후쿠 역시 여자 없는 남자가 되고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아내 없이 덤덤히 살아가던 그는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받아 작품 연출을 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고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한 미사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면서 그녀와 가까워진다.


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 거야. (<드라이브 마이 카>, 여자 없는 남자들, 37)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속속들이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예요. 상대가 어떤 여자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가후쿠 씨만의 고유한 맹점이 아닐 거예요. 만일 그게 맹점이라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맹점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드라이브 마이 카>, 여자 없는 남자들, 50)





그토록 아끼는 '마이 카'를 과연 미사키에게 맡길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어느 정도 하루키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전반부가 그러한데, 영화 중후반부를 지날 때쯤에는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가후쿠는 연극 연출가로서 직접 연기도 한다. 그는 아내가 죽고 난 뒤 <바냐 아저씨>바냐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데 그의 대사(즉 체호프의 대사)에 지나치게 몰입해 바냐 역할을 할 때면 심적으로 몹시 힘겨워한다. 종종 바냐역을 맡았던 그는 아내가 바냐의 대사 부분을 제외하고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를 녹음한 테이프를 차 안에서 들으며 연기 연습을 하기에 이 바냐 아저씨와 체호프의 대사는 그에게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그가 연출을 맡아 무대 위에 올리게 되는 작품도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이다. 이 연극은 좀 특별한데, 아시아 각국의 배우를 초청해 대사를 그 역할을 맡은 배우의 모국어로 연기한다는 점에 있다. 옐레나 역을 맡은 대만 출신 배우는 옐레나의 대사를 중국어(만다린어), 바냐 역할을 맡은 일본 출신 배우는 일본어로, 아스트로프 역할을 맡은 한국 출신 배우는 한국어로, 심지어 소냐는 한국어 수어로 대사를 한다. 이게 가능한가 싶은데 놀랍게도 가능하다. 세상살이에 지친 바냐가 절망에 빠져 비탄에 잠겨 있을 때 그런 바냐에게 그래도 살아야한다고 용기를 주는, 소냐의 대사는 수어로 구현됐을 때 더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건 아마도 소냐(이자 극중 이유나’) 역을 맡은 한국 배우 박유림의 연기도 크게 한몫한 것 같다.

 

'바냐 아저씨'를 저마다의 언어로 연습하는 배우들



한국 수어로 소냐의 대사를 전달하는 박유림 배우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공교롭게도 <바냐 아저씨>를 다시 읽었던 터라, 영화 속에서 전해지는 체호프의 대사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바냐 아저씨>바냐는 죽은 누이의 남편인 세레브랴코프를 위해 그의 영지를 관리하며 반평생 헌신한다. 이제 교수직을 은퇴하고 돌아온 세레브랴코프와 그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 옐레나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 바냐의 가족들- 바냐는 자기도 모르게 매부의 새 아내에게 반하고 그 옆에서 매부의 허울뿐인 실체를 보며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깊이 회의감을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매부가 죽은 누이의 소유였고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시골 영지를 팔아 별장을 사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고, 이 제안에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이 든 바냐는 분노에 미쳐 급기야 세레브랴코프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바냐는 그런 자신의 거짓과도 같은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이렇게 읊조린다. “과거는 하찮은 일에 바보같이 닳아 버렸다. 현재도 무섭도록 허망하다. 바로 이게 나의 삶이고 나의 사랑입니다. 그걸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내 감정은 구멍으로 기어든, 햇빛처럼 헛되이 사라집니다. 나 자신도 사라집니다.” (<바냐 아저씨>, 171, <벚꽃동산>) 영화 속 연극에서 바냐 역할을 맡게 되는 가후쿠도 줄곧 바냐의 대사를 읊조리곤 한다. 그 대사들은 가후쿠의 거짓된 삶, 상처와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 바냐에게 소냐는 이렇게 말한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도록 해요.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겠지요. 그리고 아저씨와 나는 밝고 훌륭하고 꿈과 같은 삶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우린 기쁨에 넘쳐서 미소를 지으며 지금 우리의 불행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드디어 우린 편히 쉴 수 있을 거예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인, <바냐 아저씨> 연극 장면



영화에서 소냐는 이 대사를 수어로 말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바냐 아저씨>의 힘인지, 체호프의 힘인지, 수어로 이 모든 감정을 절절히 전달한 연기자 박유나의 힘인지, 이 영화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힘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힘인지 알 수 없지만 좋은 문학과 영화가 빚어낸 이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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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3-29 15: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제가 쓰지 못하고 넘어가 마음에 늘 걸려있던 페이퍼를 보니 넘 반가워요. 이 영화 저는 작년말에 보았어요. 하루키의 책은 몇 년전에 읽었고 체호프 희곡선집 시공사 것으로 바냐아저씨 읽었고. 연극도 오 년 전인가 혜화동 체호프 전용관에서 보았거든요. 뭔가 여러가지로 합체되는 좋은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막 그려졌어요. 누구나 다하지 못하고 삼켜둔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루키 원작소설보다는 영화가 훨씬 풍부하게 잘 살려낸 케이스랄까. 아무튼 영화 좋았어요. 제대로 화를 냈어야 했었다고 주인공이 눈물 흘릴 때 어느새 저도 눈물을 흘리고 있더군요. 원래는 노란 차인데 영화에서 붉은색으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준 것도 나쁘지 않았고 다국어 연극 참 인상적이었어요. 말씀대로 특히 수어를 하는 박유림 배우 좋았습니다. 그 남편 역의 배우도요. 이 페이퍼 좋아요 열 번 누르고 싶네요.

잠자냥 2022-03-29 15:05   좋아요 5 | URL
아니, 왜 안 쓰고 지나가셨어요! 영화 깊이 읽으시는 프레이야 님의 페이퍼였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을 텐데요! 아쉽습니다. ㅎㅎㅎ 전 코로나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봤는데 극장 가서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하루키의 단편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냈다는 말씀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물론 하루키의 원작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이 작품은 원작에 체호프에 영화가 빚어낸 앙상블이 정말 최고입니다!

새파랑 2022-03-29 15: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 좋았는데 영화가 나왔군요 ㅋ 제가 상상한 남주 보다는 좀 많이 젊어 보이네요 ㅋ 영화가 아주 좋았나 봅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 책도 좋고 <벚꽃동산>도 아주 좋았어요 ^^

잠자냥 2022-03-29 17:01   좋아요 3 | URL
네, 좋은 작품들이 만나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유부만두 2022-03-29 17: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보다 말았어요. 한국 출신의 남자 배우/연출가? 의 집에서 저녁 식사 장면까지 봤는데 영 따라가기 힘들더라고요. 책도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안나고요. 잠자냥 님 페이퍼를 읽었으니 다시 도전해 볼까요?

잠자냥 2022-03-29 20:16   좋아요 1 | URL
거기까지 보셨으면 많이 보셨는데요?! 영화는 한번 끝을 보시죠~ ㅎㅎ

햇살과함께 2022-03-29 17: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오늘 체호프 단편선 꺼내다가 몇년 전에 벚꽃동산이랑 갈매기 연극 봤던 생각나서,, 갑자기 연극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바냐 아저씨도 찾아봐야겠어요!

잠자냥 2022-03-29 20:17   좋아요 1 | URL
바냐 아저씨도 연극으로 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mini74 2022-03-29 17: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소설만 읽었어요. 일본에선 이 영화 성공이 좋으면서도 하루키 원작이라 우익들이 대놓고 자랑질도 못하는 묘한 상황이란 기사 봤어요 ㅎㅎ 체호프 읽고 영화를 봐야겠어요. 자냥님. 그래서 훌륭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는 쓰지 마시지 그러셨어요 ㅎㅎㅎ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

잠자냥 2022-03-29 20:18   좋아요 2 | URL
ㅋㅋㅋ 하루키 단편 여러 개를 좀 참고한 거 같더라고요. 영화는 정말 그래서 훌륭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eBook] 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5년 7월
평점 :
판매중지


영화로 유명한 작품을 원작으로 뒤늦게 만났다. 시기, 질투, 열등감, 동경 그 모든 인간의 복잡한 심리가 톰 리플리, 그 한 사람에게 담겨 있다. 분명 나쁜 인간 톰 리플리인데, 왜 자꾸 그의 범죄가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까? 인간 모두가 리플리의 심리에 얼마쯤은 동조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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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2-03-29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가면 갈 수록 그 마음이 더 강해져서 엄청.. 딜레마가 옵니다. ㅎㅎ 꿀잼!

잠자냥 2022-03-29 14:19   좋아요 1 | URL
네, 저 이거 이제 겨우 1권 남은 2~5권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바람돌이 2022-03-29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플리 하면 자동으로 알랑들롱이 떠오르는 저, 좀 더 젊은 사람들은 맷 데이먼을 떠올릴까요?
영화만 알고 있었는데 원작이 이 책이군요. 왠지 책이 더 좋을듯합니다. 물론 알랭들롱의 그 잘생긴 얼굴이 자꾸 떠올라 리플리를 미워할 수 없겟지만 말이에요. ^^

잠자냥 2022-03-29 14:19   좋아요 1 | URL
전 엄청 웃기게도 리플리는 알랑들롱 얼굴로, 디키는 주드 로 얼굴로 상상하면서 읽고 있다니까요. 마즈는 기네스 펠트로.. ㅋㅋㅋㅋ

다락방 2022-03-29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맷 데이먼의 영화로 보면서 엄청 쫄았던 생각나네요. 거짓말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그런 영화입니다. 으휴.. 저도 영화 보고나서 책 볼까 했는데 책이 길더라고요...

잠자냥 2022-03-29 14:21   좋아요 2 | URL
전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 둘 다 봤는데요- 영화도 둘 다 재밌어요. 일단 알랑들롱, 주드 로 다 너무 잘 생겼을 때 찍어서리 ㅋㅋㅋ
책 너무 길어서 엄두를 못내다가, 전자책으로 5권까지 왕창 사서 출퇴근 길에 읽고 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3-29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궁금하네요.
잠자냥님의 백자평도 궁금한데 여러분들의 댓글도 궁금증을!!!!^^

잠자냥 2022-03-29 14:21   좋아요 2 | URL
이건 영화도 책도 둘 다 명작~

책읽는나무 2022-03-29 14:44   좋아요 3 | URL
왓챠 그냥 들어갔는데 마침 리플리 제목 뜨면서 보겠냐고 묻길래..이건 무슨 우연? 하면서 한 시간 정도 봤어요. 아직까진 조마조마~ 왜 저럴까? 하면서 보고 있어요.

잠자냥 2022-03-29 15:06   좋아요 2 | URL
오모나 정말 무슨 조화!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3-29 15:47   좋아요 2 | URL
저도 놀래서 북플 다시 들어와 제목 재확인 했었어요.
신기한 일이롤세~
전 잠자냥님이 명작 한 번 보라고 알고리즘 빵~ 쏘아 주신 줄!!ㅋㅋㅋ

독서괭 2022-03-29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예전에 단편집 한권 봤는데 그때 오열했던 기억 뿐..^^;; 항상 더 읽어보고 싶은데 못 읽고 있네요~ 리플리 궁금합니다!

잠자냥 2022-03-29 14:21   좋아요 2 | URL
헉, 무슨 작품인데 오열했어요?? 궁금해요!!!!

다락방 2022-03-29 14:35   좋아요 2 | URL
저도 궁금해요 알려주세요!!

독서괭 2022-03-29 15:05   좋아요 2 | URL
<동물 애호가를 위한 잔혹한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코끼리가 주인공이었는데.. 당시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 그렇게 울었던 건지 작품 자체가 그렇게 슬픈 건지 아리송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잠자냥 2022-03-29 15:13   좋아요 2 | URL
아아아, 저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아마 못 읽었던 거 같아요... 근데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 절판이네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읽을 자신은 없군요....;

독서괭 2022-03-29 15:26   좋아요 3 | URL
동물애호가이신 잠자냥님 오열하신다에 한표..☝️

책읽는나무 2022-03-29 15:45   좋아요 3 | URL
제목부터가 벌써부터 오열 준비, 곽티슈 부여잡고 읽어야할 것 같군요!!^^
일단 제목 찜해 두겠어요.
도서관엔 있으려나요??^^

독서괭 2022-03-29 16:51   좋아요 1 | URL
ㅎㅎ 나무님 도서관에서 구해 읽으시면 감상 알려주세요~!^^

유부만두 2022-03-29 1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랑들롱의 “태양은 가득히” 정말 걸작이죠!!!

잠자냥 2022-03-29 20:13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세월이 지나고 다시 봐도 명작! 진정한 미남자 알랑들롱!
 
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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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 중 《회색 여인》과 《사악한 목소리》두 권을 먼저 읽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조금 실망하고 심드렁 하던 참에 이디스 워튼의 《석류의 씨》를 읽기 시작했다. 표제작인 <석류의 씨>부터 읽을까 하다가 순서대로 보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단편 <편지>를 읽기 시작하고 몇 쪽 지나지 않아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아, 역시 이디스 워튼이구나, 참 잘 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묘하게 비아냥대는 듯한 문장! 소설의 즐거움은 단지 줄거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역시 문장의 맛에도 있지! 이디스 워튼, 그녀는 어쩜 이렇게 심리 묘사에 탁월할까, 그런 생각들이 든다. 게다가 <편지>는 어쩜 이야기도 이렇게 재미난지.
 
리지 웨스트는 가정교사로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여인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은 유명한 미국 화가인 빈센트 디어링 씨의 딸 줄리엣을 가르친다. 줄리엣을 가르친 지는 2년 째. 그런데 아이는 리지의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아이의 부모는 화가인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딸의 교육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견디다 못한 리지는 그래도 딸에게는 관심이 있어 보이는 디어링 씨에게 어느 날, 큰맘 먹고 줄리엣에 관한 교육 상담을 신청한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가르치는 일의 힘겨움을 토로하다가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아니 그런데, 그 틈을 타 이놈의 디어링 씨는 갑자기 리지의 손을 잡으며 그녀를 위로하려 드는 게 아닌가! 여기서부터 웬만한 독자들은 오, 안 돼 리지! 그러지 마! 하는 심정이 들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이 여자가 또 불구덩이로 들어가는구만 혀를 쯧쯧 찼다. 아니나 다를까, 이 디어링 씨는 이윽고 흔한 래퍼토리를 읊는다. ‘어린 줄리엣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위층의 어머니 때문’이며 ‘자기 아이에게 무익한 충격만 주고 그런 충격을 다독일 적절한 돌봄을 베풀어주는 것조차 아까워한 어머니’라는…. 물론 아내가 “병자” 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면서 아픈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며, 걱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그놈 말에 따르면 결국 딸의 교육이 엉망인 것은 다 아내 탓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디어링 씨의 아내는 왜 위층에만 있는 것일까? 왜 아픈 것일까? 혹시 그녀도 집안에만 갇히다시피 한 건 아닐까? 그녀가 아픈 건 디어링 씨 때문은 아닐까? 원치 않는 결혼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이런 것들과 담을 쌓고 싶어서 위층에서 내려오지 않는 건 아닐까, 아니 내려 올 수 없는 상태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그렇기 때문에 디어링이라는 남자와 리지가 더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독자의 걱정을 저버리고 안타깝게도 리지는 디어링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왜냐하면 그는 잘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가 화가라서 예술을 알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말도 잘 통해! 그러니 먹고사는 것에 급급해서 가정교사로 이집 저집 떠돌며 일하느라 연애라고는 해보지도 못했던 리지가 이 남자에게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독자는 아무래도 디어링에 대해 못미더운 감정이 가시지 않는다. 게다가 리지, 도망쳐 이 여자야! 하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 또 한 번 더 찾아온다. 딸과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빈센트 디어링! 그동안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리지는 빈센트가 돌아오자 기쁜 마음으로 그의 집을 찾아가는데, 이상하다! 딸과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무거운 얼굴로 아내가 사망해서 상속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닌가. 아내가 죽었는데 어린 딸은 친척 집에 맡겼다?! 아내는 왜 급작스럽게 죽었을까? 아무리 병을 앓고 있었다하더라도 너무나 뜻밖의 일이다. 게다가 딸은 왜 그대로 놔두고 와? 정상적인 상태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모든 정황이 이상하다고 한번쯤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리지는 그를 사랑했기에, 그의 잘 생긴 얼굴에 폭 빠졌기에 빈센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를 미국으로 떠나보낸다. 편지해요, 꼭 편지해.....!

리지는 그에게 편지를 수없이 보낸다. 그러나 그로부터 답장은 점점 뜸해지더니 이윽고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이해해보려 애쓴다. 아내의 사망 때문에 정신이 없겠지, 어린 딸을 홀로 돌보느라 힘겨울 거야. 미국에서 다시 정착하기 어려울지도 몰라 등등. 때로는 분노에 차서 냉정하게 거의 헤어지자는 투로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답이 없다. 그래, 이렇게 끝인 거로구나. 리지도 체념하기에 이르고, 독자들도 그 희멀건한 남자 빈센트란 놈은 그렇게 젊은 처자를 농락하고는 미국으로 튀었구나 한심한 놈, 하고 혀를 차면서 이렇게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나는가 보다 싶다. 이 무렵 리지의 마음 상태를 이디스 워튼은 이렇게 쓴다.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또 한 번 워튼에게 감탄한다.


자신의 고뇌에 마음껏 빠져들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사념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서 일을 해야 했다. 세탁부에게 요금을 치르고, 마담 클로팽의 청구서대로 매주 돈을 지불해야 했고, 검소한 습관에도 감당해야 할 온갖 소소한 ‘잡비’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언젠가 병들고 일할 능력이 없어질 날이 온다는 두려움이 일할 수 있는 동안 일하도록 그녀를 몰아댔다. 그런 두려움 없이 지내본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 단조로운 불행 속에서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들고 ‘자기 한 몸 거둘 수 없게’ 되는 데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편지>, 《석류의 씨》, 35쪽)


가난한 처자는 애인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다. 먹고살아야하는 공포가 그녀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다가 그에게 버림받고도 그 슬픔에 폭 젖어 있기보다는, 이제 또 혼자라는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언젠가 병들고 일할 능력이 없어질 날이 온다는 두려움’이 그녀에게는 더 크다. 그 먹고사니즘의 공포는 그녀를 압박하지 않은 적이 없다. 리지는 그런 ‘두려움 없이 지내본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보다도 언젠가 병들고 ‘자기 한 몸 거둘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욱더 크다. 그런 공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100여 년 전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제 한 몸 돌봐야 하는 여성들의 공포를 뉴욕 상류층 출신의 이디스 워튼이 이처럼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포는 10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여성들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일 절대 공포이다.

어쨌든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리지는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을 얻는다. 아, 물론 리지가 로또를 산 건 아니다. 이 무렵 가난한 처녀나 청년에게 로또란 얼굴도 모르던 부자 친척이 갑자기 죽으면서 그녀 또는 그에게 유산을 남기는 일이다. 리지에게도 뜻하지 않은 그런 행운이 주어지고, 그녀는 이제 물질적으로 더는 쪼들리지 않는다. 먹고사는 것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부유하게 지내다 보니 주변에서는 괜찮은(?) 남자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리지도 이제는 다즐링인지 디어링에 관한 기억도 서서히 잊혀가, 그 새 남자를 만나볼까 싶어진다. 그런데 그는 아, 너무나 잘 생긴 다즐링과 비교가 된다. 그의 이름은 벤.... ‘어깨가 좁고 각진 체형’에 ‘희미한 감정의 흔적에도 전혀 변치 않는 둥그런 얼굴’, ‘아기 같은 뺨과 직각의 칼라 위로 드러난 푸른 사각턱’ 등등 리지에겐 너무나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벤 씨..... 리지는 그래도 ‘기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눈과 귀에 집중’(40쪽) 하려고 한다. 나는 이디스 워튼의 이런 문장에서도 포복절도한다. 아무튼 그런 찰나에 리지 앞에 다시 나타난 그 썩을 놈의 다즐링! 그는 예전과 달리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그 잘생긴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았다(어디 좀 가지 좀...). 그리고 리지는 그가 자신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지 않았음을, 답장도 씹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렇게 또 다즐링의 늪에 폭 빠져서는... 결국 독자들의 온갖 만류와 잔소리와 반대와 결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국 결혼하기에 이른다. 리지는 ‘항상 물질적으로 너무나 가난했기에 잔돈까지 세어가며 여윳돈을 계산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적어도 감정을 아낌없이 쓰는 즐거움은 알았’고 ‘부자가 물 쓰듯 돈을 쓰듯이 자신의 마음을 아낌없이’(26쪽) 다즐링에게 줘버리고 결국 그와 결혼까지 하고 만 것이다! 그 후 그녀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 작품의 가장 큰 반전이자 재미는 디어링(이라고 쓰고 다즐링이라 부르고 있는 그 남자)과 리지의 행복해 보였던 결혼 생활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는지, 그 ‘나락’의 계기가 되는 사건에 있다. 디어링은 여러 차례 이상한 놈이라는 신호를 리지에게 보냈다. 한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위층에만 있는 병든 아내, 딸의 교육에 관한 상담을 하는데 느닷없이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남자, 엄마가 죽었는데도 딸을 친척집에 그냥 놔두고 오는  남자, 갑작스레 아내의 죽음을 핑계로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편지 한 장 없는 남자. 이런 단서만 조합했어도 다즐링은 충분히 멀리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아니 다시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리지는 벤 씨의 ‘어좁’에 ‘아기 같은 얼굴’ 대신 어디지 음울해 보이는 잘생긴 예술가형 다즐링을 선택하고 만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고 박차고 나갈 수 있었음에도, ‘집이 무너지면 폐허에서 도망’(66쪽) 친다는,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저앉고 만다. 그 무렵 여성이 무너진 집, 폐허가 된 집을 떠나기 쉽지 않았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제 폐허 위에서 거짓된 삶을 살아갈 리지의 인생에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편지>는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가장 현실적이다. 살인이 일어나지도 않고, 유령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나머지 세 작품보다 이 작품, <편지>가 가장 무서웠다. 현실에서 너무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리지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갈 것이다. 그런 남자와 함께, 그런 남편과 함께. 그 삶이 더 공포이지 않은가?

<석류의 씨>, <하녀의 종>에서도 이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그다지 권장하기 어려운 남자들을 남편으로 맞아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 남자들에게는 숨길만한 과거가 있거나(<하녀의 종>의 ‘브림프턴 씨’), 굳이 숨기지는 않지만 불쾌한 과거(<석류의 씨>의 ‘케네스 애슈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전처이거나 현재의 아내들은 병을 앓거나 그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그 아내들과 가까이 지낸 사람들은 결국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 남자들로 인해 병들었거나, 세상을 떠난 아내들로 인해 현재 고통 받는 사람들은 또 공교롭게도 현재의 아내(<석류의 씨>의 ‘샬럿 애슈비’)이거나 그 아내를 모시는 하녀(<하녀의 종>의 ‘하틀리’)이다. 여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안정적인 삶과 보호를 받지만, 사실 그 보호는 속박일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자유를 감금당한 고립과 유폐라는 것을,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끔찍한 삶은 이 여인으로부터 저 여인에게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석류의 씨》의 세 단편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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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25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디스 워튼 책이라니 읽어봐야 겠습니다 ^^ 수수께끼 이야기 같아요 ㅋ

유령보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그것은

사람이겠죠? 옷장에서 갑자기 귀신이 나오는것 보다는 사람이 나오는게 더 무섭다는 애기를 어디서 들어본거 같습니다 ^^

잠자냥 2022-03-25 14:09   좋아요 2 | URL
네, 역시 재미납니다. 유령보다 귀신보다 잘못 만난 사람이 더 무섭죠! 현실에서도 그렇고, 소설에서도 그렇더라고요- ㅎㅎㅎ

다락방 2022-03-25 16: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말이죠, 제가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리뷰를 봤다면, 이 리뷰만 봐도 너무 재미있어서 기꺼이 책을 샀을것 같습니다. 후훗.
저는 그 남자 특유의 게으름과 무심함이 진짜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자신은 비록 유부남이지만 사랑에 빠져 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어쩐지 어깨 으쓱해지는 그 감정도 너무 잘 전해지더라고요. 너는 이런 사랑이란 감정, 남자와의 사이에 오고가는 이 교류 잘 모르지? 하는 그 어떤 젠체함 이랄까. 하여튼 재미납니다. ㅎㅎ 저도 이디스 워튼 워낙 재미있게 읽긴 하지만 이 책도 참 재미있네요. 후훗. 저는 아직 단편 두 개 더 읽어야 해요.

잠자냥 2022-03-25 16:38   좋아요 1 | URL
네, 정말 몰입도 최고에요! ㅎㅎㅎ
어우 그 남자 정말....... 휴 그 남자에 관한 묘사도 정말 압권이죠. ㅎㅎㅎㅎㅎ
나머지 두 편도 재미나게 읽으세요. 전 마지막 단편도 정말 재미나더라고요. 짧은데 강렬!

다락방 2022-03-25 16:51   좋아요 2 | URL
저는 읽으면서 <징구>랑 <로마의 열병> 생각도 나더라고요. ㅎㅎ

mini74 2022-03-25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썩을 놈의 다즐링! 에서 자냥님의 분노가 느껴집니다 ㅋㅋ 자냥님 리뷰 읽음 다 읽고 싶어집니다 ㅋㅋ 저 자냥님 글 보고 금색 사서 읽고있어요 ~~

잠자냥 2022-03-25 17:54   좋아요 1 | URL
ㅋㅋㅋ 다즐링 좋아하는 분들께는 좀 죄송하네요. ㅋㅋㅋㅋ 이 책 재미나요! 언제 읽어보세용~

독서괭 2022-03-26 08: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 너무 재밌어요!! 은근슬쩍 다즐링이라고 이름 바꾸신 것도 넘 웃기고요ㅋㅋㅋㅋ 읽으면서 느끼신 감정들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전 이디스워튼 순수의시대 사놓기만 하고 계속 못 읽고있는데 얼른 읽어봐야 할텐데요..🙄

잠자냥 2022-03-26 11:58   좋아요 2 | URL
깨알 웃음 포인트 알아봐주셔서 감사해요! ㅋㅋ 책은 더 재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