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보부아르의 서한집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 “연애” 편지이므로 음악 들으면서 가볍게, 별 생각 없이 전철에서도 읽기 좋아서 전자책으로 천천히 보는 중이다. 이 책의 종이책 사양은 무려 972쪽에 달한다. 17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니, 보부아르는 미국의 작가 넬슨 올그런과 17년간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이 책에는 올그런의 편지는 실리지 않았다. 보부아르가 그에게 보낸 304통의 편지만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1947년부터 1964년, 보부아르가 서른아홉부터 쉰여섯 살까지 이어졌던 사랑의 기록.
읽다 보면 먼저 놀랄 수밖에 없다. 잘 알려졌다시피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보부아르가 스물하나, 사르트르가 스물넷일 때 만났고, 그들의 사랑은 사르트르의 제안에 따라 2년간의 ‘계약’으로 시작된다. 흔히 ‘계약 결혼’으로 불리는 그들의 관계는 ‘결혼’이라는 용어로 불렸을 뿐, 어떤 형식도 서면 계약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신뢰를 바탕으로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켜 나간다. 사르트르는 여성편력이 심했다. 보부아르라고 가만히 있었을 리 없었을 터. 그녀 또한 몇 번의 뜨거운 연애를 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중에서도 넬슨 올그런과의 관계는 가장 깊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렇다 한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에 서슴없이 “나의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렇다면 사트르트는?!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나의 남편’이라는 표현은 사르트르에게는 거의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프랑스 여자와 미국 남자가 어떻게 만났을까? 보부아르는 1947년에 강연 일주 여행을 제안받고 처음 미국을 방문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였던 그 무렵 상황 상 미국 여행 자체가 큰 행운이었던 만큼 보부아르는 기대와 흥분에 가득 차 있었는데, 그곳에서 예기치 않게 넬슨 올그런을 만나고, 즉시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곧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 보부아르는 서른아홉, 올그런은 그녀보다 한 살 아래였다. 보부아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영혼, 가슴, 육체가 일체가 된 사랑”이다. 편지를 보면 그들의 관계가 매우 빠르게 깊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극존칭으로 “올그런 씨” 하면서 시작된 편지는 어느 순간 “나의 남편”이 되더니 이윽고 보부아르는 올그런을 “나의 사랑하는 악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은 “개구리”라고 지칭한다. 사랑에 빠지는 이들은 “상대의 특징들을 의식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했던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상대의 특징들을 의식하면서 우리에게는 서로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사랑은 사랑이 만들어내지 않은 이름을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은 태어날 때 부모가 준 이름이고, 여권과 등록증에 공식적으로 적힌 이름이다.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독특함을 찾아낸다는 것을 고려할 때,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이름으로 그 독특함을 표현하고 (비록 간접적이라고 해도)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p151
사랑에 빠진 보부아르는 천생 여자다. <제2의 성>을 쓴 그 냉철하고 강인한 여성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얌전하게 있을 거고 설거지를 하고 비질도 하겠어요”라고 말하는 보부아르의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이런 구절을 읽노라면 그녀의 반 페미니즘적인 모습에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사랑이 저지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싶어져 그조차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넬슨을 악어라고 부르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에 빠진 개구리’리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사랑이 인간에게 불러일으키는 그 놀라운-때로는 황당하리만치 당황스러운- 만행에 쓴웃음을 짓게 되기도 한다. ‘개구리’란 옮긴이 주에 따르자면 미국인이 프랑스인을 경멸적으로 표현할 때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악어 앞에서는 상냥한 작은 개구리가 되기를 꺼리지 않았던 보부아르. 보부아르는 넬슨을 “나의 사랑하는 악어”라는 표현 말고도 “내 친구, 내 남편, 내 연인, 나의 토박이 젊은이, 나의 넬슨” 등등의 이름으로 언제나 애정을 가득 담아 부른다. 그리고 자신은 “영원히 당신의 아내”라고 말한다.
저는 저 혼자만의 방 하나를 쓸 수 있겠고, 당신은 조용히 일하고 원할 때는 혼자 있게 될 거예요. 저는 얌전하게 있을 거고 설거지를 하고 비질도 하겠어요. 달걀과 럼주 케이크를 사러 갈 것이고 허락 없이는 당신의 머리, 뺨, 어깨도 만지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아침 우편물이나 다른 이유로 기분이 영 좋지 않을 때는 슬퍼하지 않도록 할 거고, 당신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을 거예요…….
사르트르가 없었다면, 사르트르라는 존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보부아르는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사르트르와 맺은 계약 결혼 같은 파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전통적인,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기를 꺼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부아르의 편지는 오롯이 사랑, 그 자체이다. 넬슨의 사진이 담긴 책 표지를 보면서 “실물하고 전혀 다른 당신의 흉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면서, 그런데도 “그 책을 훔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고 털어놓기도 하고, “제가 엄청 좋아하는 당신 책을 다 읽었”다며 늘 넬슨의 작품을 치켜세우고 그를 북돋는다. 또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자 애를 썼음에도 어쩔 수 없이 치솟는 질투의 감정에 고통스러움을 털어놓기도 한다. 올그런의 피부와 입술에 독을 바르겠다는 보부아르의 고백에는 이 여자에게 이런 귀여운 면도 있었구나 싶어져서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의 거의 모든 편지는 “헤아릴 수 없는 키스, 또 키스”로 이어진다. 온통,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이 그립다는 말로 끝나는 편지들.
제가 글자 그대로 당신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도 저를 놀린 것과 진지하게 여기지 않은 것은 대단히 모욕적인 처사라고 비난받을 만해요. 좋아요, 저는 당신의 자유를 간섭할 것이고, 워반지아 주위에다 전기 울타리를 설치하고 당신의 피부와 입술에 독을 바르겠어요. 그래서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지면 그 여자가 즉사하게 할 거예요.
저는 당신이 준 반짝거리는 빨간색 작은 만년필을 사용하고 당신의 반지를 끼고 있어요. 제가 반지를 끼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서 파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몹시 놀랐답니다. 당신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며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당신의 입술, 당신의 두 손, 따뜻하고 강한 당신의 몸 전체, 당신의 얼굴, 당신의 미소, 당신의 목소리, 당신이 너무나도 그립군요. 그건 좋은 거예요. 당신은 꿈이 아니라 존재하고 살아 있으며, 당신을 다시 만날 거라는 걸 강하게 느끼게 해 주니까요. 일주일 전에 우리는 뉴욕의 한 방에 함께 있었어요. 우리가 재회하기까지는 오래 걸릴 거예요. 당신의 소중한 얼굴과 달콤한 입술을 가장 깊은 애정의 키스로 덮습니다.-당신의 시몬
“내 사랑은 아주 멀리 있으나 나는 매일, 온종일 그를 생각하네. 나는 다시 만날 때까지 그를 생각할 거야. 그러면 더 이상 그를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는 나를 두 팔에 안을 것이며, 우리의 입술이 닿을 것이고, 우리가 행복했던 것처럼 행복할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더욱더 사랑할 것이기에 그보다 더 행복할 거야. 그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속에 살고 있으므로 그보다 더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의 이름은 넬슨 올그런.” 당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기에 그 의미가 있답니다. “사랑해요, 당신에게 키스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하면 더 사랑스럽지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 해도 당신은 알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저는 우리의 재회를 기다리면서 살고 있어요. -당신의 시몬
넬슨, 내 사랑, 이 모든 것을 냉철하게 쓰고 있지만, 사실 당신을 보고 당신을 만질 생각을 하면 현기증이 나고 가슴이 터져 버릴 듯해요. 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면, 때로는 참을 수 없이 격렬하게 목이 메고 입안이 바싹 마르지요. 그것은 한 달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될 거예요. 넬슨, 그게 어떤 일일지는 당신도 알고 있어요.
넬슨 내 사랑, 지금 저는 당신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고 있어요. 당신이 저를 사랑하고 저를 갈망하는 한 저는 제가 나누어야 할 것을 당신과 함께 나누기 위해 뭐든지 할 거예요. 당신의 편지를 기다리고 봄과 우리의 인생도 함께 기다려요. 믿음과 희망을 품고, 행복이기도 한 고통과 함께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의 두 팔에 저를 안고서 달래 줘요, 내 사랑.” 저는 당신의 상냥한 작은 개구리예요.
그러나 모든 편지가 이처럼 “사랑해요”, “키스해요”로만 이루어졌다면 이 편지의 수신인인 넬슨 올그런이 아닌 먼 나라의 독자로서는 무척 지루하기만 할 것이다. 그래도 보부아르의 이 편지들이 나 같은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 시절의 수많은 작가들, 예술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사르트르와 카뮈처럼 보부아르가 매일처럼 만나던 이들의 실생활에 관한 묘사는 물론 보부아르가 그즈음 읽던 책들에 대한 단상-그녀는 올그런의 영향으로 미국 작가들의 책을 탐독한다-들을 매우 진솔하게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넬슨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말한다. 잭 런던을 읽었는데 그중 특히 <마틴 에덴>을 좋아한다고, 피츠제럴드 <밤은 부드러워>를 읽었는데 사실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더 좋아한다고, 이디스 워튼에 대해서는 가벼운 선입견을 품고 있었으나 <이선 프롬>만큼은 너무나 좋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소로의 <월든>을 읽고 나서는 “시야가 좁고 에스프리가 편협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말하기도 하는데 “소위 채소만 먹고 여자들을 삼가야 한다는 그의 말은 헛소리일 뿐”이라며 “당신이 그 말을 따른다며 참담할 거예요! 지루한 책이에요.”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카슨 매컬러스의 작은 소설들은 “지나치게 여성적이고 시적이며 예민하고 비밀스러운 의미로 가득차” 있지만 마음에 든다는 표현도, 그에 덧붙여 “그녀의 못생기고 민감하며 이상한 얼굴”이라는 표현에서는 이 글들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내는 가장 내밀한 편지이기에 이토록 솔직할 수 있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000하고 한 번 잔 적이 있는데 그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사람이라면서 그 후 줄곧 그에 관한 험담을 하는 부분에서는 인간 보부아르를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의 편지들에는 문학뿐만이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의 감상 및 비평, 프랑스와 그 무렵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여행과 정치 상황, 그리고 그녀가 만난 수많은 작가와 예술인 및 지식인 등에 대한 공적·사적 자리에서의 일화들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요?! (안 알랴줌....) 저 사람 작품 왠지 읽기 싫어지......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은 부분에서도 보부아르의 사랑의 편지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개구리와 미국의 악어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 책은 17년 내내 사랑의 편지로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올그런은 보부아르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하고(사르트르에 대한 의리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보부아르는 거절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지 못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올그런이 먼저 결별을 선언하고 이 사랑은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편지는 여전히 이어진다. 결별을 선언한 이후로도 10여 년이나 계속……. 이때의 사랑을 과연 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과의 내밀한 일들을 보부아르가 작품으로(<레 망다랭>, <상황의 힘> 등) 담았다면서 격하게 분노한 넬슨 올그런은 그 이후 기나긴 침묵에 잠기고 결국 그 사랑은 멀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 <연애편지>에도 올그런의 편지는 끝끝내 실리지 못했으리라. 그럼에도 어딘가에 넬슨의 편지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랑의 기억과 추억은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