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육체의 노화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허리이다. 작년부터 허리가 아팠는데 참고 참다가 올봄에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 초기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통증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일주일마다 병원에 갔는데 상태가 좋아짐에 따라 이주에 한번, 이제는 삼 주마다 한차례 병원을 간다.
병원에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가만 앉아있노라면 이토록 많은 이들이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구나 싶어 새삼 놀란다.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환자들이 많은데 내 또래로 보이거나 그보다 어린 사람도 드물지 않다. 허리가 아픈 사람, 무릎이 아픈 사람, 어깨가 아픈 사람, 목이 아픈 사람, 손목이 아픈 사람 등등 통증 부위도 다양하다.
치료받기 위해서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환자들은 모두 치료에 꼭 알맞은 옷으로 갈아입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들 핸드폰을 보고 있다. 옷을 갈아입어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핸드폰이다. 비단 통증 병원뿐만이 아니다. 올봄에 병원 다닐 일이 많아 이 병원 저 병원 그 환부에 특화된 병원을 찾아가서, 또 거기에 알맞은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다들 하나같이 환자복 차림에도 핸드폰은 꼭 들고 있다. 나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온다. 시술실에 들어가 엎드린 채 허리에 주사 치료를 받는다. 치료는 10분을 넘지 않는다. 그동안 핸드폰은 침대 머리맡에 둔다. 주사를 맞고 나오면 어지럼증이나 저림 증세가 나타날 수 있어 회복실에서 10분에서 30분쯤 누워 있다가 가야 한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조금 아까웠다. 끝나고 나서 약속이 있거나, 예약 환자가 많아서 병원에서 오래 기다린 날은 더 그랬다. 치료 뒤 바로 걸어서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간호사들은 꼭 10분 이상 누웠다가 가라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누워서 할 일이 없으니 또 핸드폰을 본다.
어느 날이었던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가 사물함에 핸드폰을 깜빡 두고 나왔다. 다시 갖고 나올까 했는데, 다른 누군가가 탈의실에 이미 들어간 터라 그만 뒀다. 그날도 치료를 받기까지 오래 기다렸다. 할 게 없으니 심심했다. 주사를 맞고는 회복실에 가만히 눕는다. 주변은 고요하고 그곳엔 나 말고 다른 생명체는 아무도 없다. 핸드폰도, 책도, 음악도, 고양이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다. 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그 고요 속에 잠겼다. 머릿속에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편안했다.
하루 중 이렇게 모든 생명체로부터 동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까지 늘 무엇인가를 듣거나, 보거나, 읽거나 했고 주변에는 거의 늘 사람이 있다. 사람이 없으면 고양이라도 있다. 내 고양이들은 이른바 ‘개냥이’라 이 녀석, 저 녀석 늘 나를 따라다닌다. 그런데 통증 병원 회복실에서는 비록 10분에서 15분 사이이지만 온전히 나 혼자 뿐이다. 스마트폰도 없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전화도, 메시지도, 뉴스도, 트위터도, 인스타도 없다. 그 순간만큼은 온 세계가 침묵이다.
그날부터 나는 병원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면 스마트폰을 챙기지 않았다. 회복실에 누워서 10분이 아니라 15분, 20분씩 머물다 나오곤 한다. 요즘에는 증세가 꽤 좋아져서 3주에 한 번 병원을 가는데, 일주일만 지나도 회복실에서의 고요와 침묵, 고독함이 그리워진다. 아마도 내가 허리 통증이 다 나아서 병원을 그만 다니게 된다면, 회복실에서의 이 10분은 영영 그리울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소설>에 실려 있는 ‘눈(雪)’이라는 작품에는 해마다 신년이면 홀로 조용히 어느 호텔방을 찾아가는 이가 등장한다. 주인공 ‘노다 산키치’는 정월 초하루 저녁부터 3일 아침까지 가족들을 떠나 도쿄의 고층 호텔에 혼자 숨어 지낸다. 몇 해째 그렇게 보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호텔에는 멋들어진 이름이 있지만 그는 이 호텔을 ‘환상 호텔’이라 부른다. 실제로 그는 호텔에서 3일 동안 환영과 함께 지낸다. 그가 머무는 방은 매년 정해져 있다. 눈(雪)의 방이다. 이 또한 산키치가 자기 혼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그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방의 커튼을 치고 곧장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리고 두세 시간 안정을 취한다. 분주했던 한 해의 피로와 초조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려는 모습이다. 그렇게 쉬다 보면 초조함은 가라앉아도 피로는 오히려 솟구치는데, 그 피로의 밑바닥에 끌려들어가 머리가 저려올 즈음 환영이 나타난다. 방에 눈이 내리고, 눈은 그만의 것이 된다. 산키치는 소리 없는 조용한 함박눈에 감싸인다.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뜨면 방 벽이 온통 눈 풍경이다. 나목이 대여섯 그루 서 있을 뿐인 드넓은 벌판에 함박눈이 내리고, 집도 사람도 없는 쓸쓸한 풍경이지만 그는 눈 쌓인 벌판의 차가움은 느끼지 못한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그는 과거에 자신을 지나쳤던 사람들을 만난다. 눈 내리는 풍경 속에서 어린 자신을 안고 서 있는 아버지가 나타나기도 하고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환영의 눈 속에서 산키치는 지난날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을 마음껏 불러낸다. 새해 첫날 저녁부터 3일 아침까지, 그는 그렇게 도시의 어느 호텔 방에서 커튼을 치고 식사도 방으로 가져오게 하여 내내 침대에 드러누운 채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참으로 멋진 방법이지 않은가. 허둥지둥 정신없이 한해를 고생한, 그리고 또 그런 한해를 살아갈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조용한 호텔 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기고 그렇게 환영 속에서 그리울 법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혼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과 함께 정신없이 새해를 맞이하는 것보다는 한결 좋아 보인다. 이 작품을 읽고 나 또한 언젠가 꼭 해봐야지 마음먹었지만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작은 호텔방이라고나 할까. 15분 남짓의 회복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 회복실은 허리 통증보다 일상의 통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그 눈(雪)의 방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