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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정래 장편소설 《서리꽃 1》 서평 I 차가운 세상에서 피어나는 뜨거운 사랑
오래 전 로마인 이야기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일본 시오노 나나미 할머니 책으로 1년에 1권씩 집필 15권으로 15년이 걸린 셈이다. 이 책으로 이탈리아 로마 역사를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여기 조정래 작가도 우리나라 오래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와 광복과 6.25전쟁 이후 이야기까지 100년의 역사에 대하여 획을 그으신 분이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생각하면 먼저 "아리랑"으로 일제 강점기 배경으로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 즉 일제의 토지 수탈과 인력 강제 동원으로 피눈물을 36년 동안 흘렸다. 그 어려운 환경에 붉은 완장을 찬 같은 민족의 횡포가 더 심하였으니 어디에 가서 말을 못하는 입장이다. 그 완장의 후손은 지금도 할아버지 땅을 내 놓으라고 정부와 싸우고 있으니 부끄러움, 창피함도 모르니 장지연이 이날을 목 놓아 통곡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태백산맥"은 해방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로 익의 갈등, 여순사건과 분단의 아픔과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받았던 평범한 민중의 삶과 사랑, 가족, 인간의 신념을 깊이 있게 담겨져 있다. 전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으로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분단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 조정래 작가의 대표작이다.

"한강"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산업화와 민주화의 격동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그린 전 10권의 대하소설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향한 사람들과 노동자, 기업인, 지식인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이면에 존재했던 희생과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리랑, 태백산맥과 함께 조정래의 한국 근현대사 3부작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떤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여기 "서리꽃"은 단순히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소설로 사랑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디까지 품을 수 있는지 묻는 작품에 더 가깝다. 이재이와 윤소인 두 사람의 인연은 대학 시절 시 동아리 글밭의 시화전에서 시작 이재이가 쓴 시에 윤소인이 그림을 그리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재이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미국으로 떠나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윤소인은 그가 기억하던 모습과 너무나 달라져 있다. 가족에게 닥친 불행과 막대한 빚을 감당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본질이 조금씩 드러난다. 사랑은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 보내는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대가 가장 힘들고 초라해졌을 때도 곁을 지킬 수 있는가, 그의 고통을 자신의 문제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이재이 앞에 놓인다.

그는 윤소인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으면서 까지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려 한다. 연인 뿐 아니라 친구가 겪는 어려움까지 끌어안으려는 그의 행동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커진다. 나는 이 지점에서 조정래 작가가 서리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시작하며, 때로는 손쉽게 관계를 끝내기도 한다. 편리함은 커졌지만 관계가 깊어질 시간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마음이 맞으면 만나고 힘들어지면 헤어지는 사랑이 익숙해진 시대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바라보며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
작품에서 말하는 사랑은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상대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마음이다. 작가는 이를 자신을 내려놓는 부처의 마음과 생명을 품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까지 확장한다. 결국 남녀의 사랑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제목인 서리꽃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서리꽃은 추운 겨울밤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사라진다. 오래 존재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차가운 순간에 피어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과 닮았다. 세상이 따뜻하고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의 사랑보다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특히 반 고흐의 그림과 시가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조정래 작가는 이를 제대로 소설에 담기 위해 직접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미술관을 찾아 취재했고, 그 기록을 작품 속 여행으로 녹여냈다. 팔순을 넘긴 작가가 한 편의 소설을 위해 현장을 직접 찾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작품에 쏟은 열정을 짐작하게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에 빠졌을 때 함께 아파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서리꽃1 이 보여주는 사랑은 요즘 빠르고 가벼운 관계와 더욱 선명하게 대비된다. 차가운 겨울에 피었다 사라지는 서리꽃처럼 삶은 짧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가 누군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함께했던 시간은 더욱 귀하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묻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어떤 마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품어야 하는지 물어 보는 작품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까지 함께 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감사합니다. (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