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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에서 잔까지 - 차의 마음을 담은 소수민족의 땅, 중국 귀주성 차 기행
이은주 지음 / 대경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잎에서 잔까지
차라고 이야기하면 중국이며 우리나라에도 보이차로 매우 유명하다. 보이차의 생산지는 윈난성으로 중국 남쪽 지방에 위치, 차의 나무를 재배 생산에 종사를 하는 사람이 많으며 이 지역은 대도시의 공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오래된 풍습과 소수 민족이 차를 생산하고 있다. 조용한 땅에 차라는 식물이 어떻게 사람의 삶과 문화를 엮어내는지 세심하게 추적을 해 놓았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자연이 준 시간의 언어라는 사실을, 귀주 지역은 그 언어를 아직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여행기이면서도 인류학적 기록이며, 동시에 오래된 향기에 대한 사적인 철학을 담아낸 독특한 기행문이다. 귀주라는 지역을 설명할 때면 흔히 산과 안개를 떠올리지만, 저자는 그 풍경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움직임과 숨결을 우선으로 담아냄으로써 차 기행이라는 테마를 귀주 전체의 문화적 맥락으로 확장시킨다. 귀주 지역을 이해해야 차를 알 수 있으며 그곳 사람들의 오래된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두 번째 흐름에서는 차가 어떻게 귀주성의 소수 민족 문화 속에서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해 왔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찻잎이 돋아나는 계절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 농사와 제다를 동시에 수행하며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방식 그대로 잎을 다루는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 차를 나누는 행위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의례 작용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특히 저자가 만난 묘족과 동족 공동체의 이야기는 이 책의 밀도를 결정짓는다. 이들은 차를 농작물 이상의 존재로 생각을 하고 있으며, 한 잎에도 땅의 온도가 들어 있고, 잎을 따는 순서에도 조상의 지혜가 스며 있으며 찻 물의 빛깔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의미가 담긴다.
작성된 글의 내용이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이지만,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받아 적는 듯한 따뜻함이 있다. 귀주 차 문화의 핵심은 고급스러운 취향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활 방식에 있다. 낭만이나 신비로 포장하지 않고, 현실과 역사 속에서 체화된 생활의 지혜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전통적 제다 과정이 긴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겸손이 고스란히 문장에 배어 있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차의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이 여행기 특유의 흥미를 더한다. 산길을 오르고, 습한 안개 속을 걷고, 깊은 골짜기 속 마을을 찾아다니며 잎이 어떻게 자라고 가공되고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버텨내는지 몸으로 기록한다. 귀주성의 산지는 고도 변화가 심하고 날씨가 변덕스러워 차 나무가 자라기에 까다로운 환경을 제공하지만, 바로 그 조건이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저자는 잎을 씻는 물의 성질부터 찻잎의 채취 시점, 덖음 방식, 발효의 시간, 저장 방식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며 차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긴 여정을 독자 앞에 펼쳐 보인다.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마시는 차 한 잔이 사실은 수많은 계절과 노동과 땅의 숨결이 농축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그 사실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되풀이되며 차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한층 더한다. 특히 제다 장인들이 묵묵하게 불 앞에 서서 잎의 상태를 손끝으로 느끼며 시간을 조절하는 장면들은 이 기행문이 여행을 넘어 한 인간의 성장 기록에 가깝다는 느낌까지 준다. 그 장면에서 차를 배우는 동시에 기다림의 가치를 배운다. 차를 만든다는 것은 시간을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표현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로 자리 잡는다.
네 번째 단락에서는 차를 둘러싼 사회적 변화가 중심이 된다. 귀주 차 문화가 오랜 전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정체성을 유지하려 하는지 잘 드러난다. 대량 생산과 관광 산업이 가져온 변화, 전통 제다 방식과 현대 기술의 충돌, 젊은 세대의 이탈과 귀향의 문제까지, 이 책은 단지 아름다운 풍경과 고즈넉한 차 문화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귀주라는 지역이 세계적 차 시장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있으며, 그 선택이 공동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깊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파헤친다.

전통이 반드시 옳고 산업화가 마냥 나쁘다는 이분법을 피하고,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변화 속에서 공동체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짚는다. 이 균형 잡힌 시선은 책을 더 풍부하고 믿을 만한 기행문으로 만든다. 차 문화가 단순히 향기로운 취미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지역 경제와 공동체 정체성 전체를 구성하는 중요한 기반임을 독자는 이 장에서 확실히 깨닫게 된다.
마지막 단락에서 저자는 차를 통해 자신이 배운 것을 정리를 하며 귀주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취재나 여행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다시 재 조정하는 계기였다고 고백한다. 차는 그에게 자연 앞에서 겸손을 알려주었고,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잠시 멈추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를 통해 만난 사람들, 그들이 지켜온 방식, 그 느리고 고요한 삶의 결 독자에게도 오래 남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화려한 문장이나 과장된 극적 구조 없이도 차가 가진 시간의 미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 미학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고 단단하게 만드는지 담담하게 전달한다. 잎에서 잔까지 이어지는 그 길이 단순한 제조 과정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하나의 생명력임을 깨닫게 해 준다. 귀주성이라는 지역이 가진 조용한 품속에서 탄생한 이 기록은 독자에게 잠시 멈추어 바라보는 시간을 선물하는 책으로 생각이 된다. 감사합니다.(제네시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