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살다 보면 가끔 현자의 시간이 찾아온다.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한 상태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내가 깔끔함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녀석들이 방바닥에 흘린 똥이나 구토를 치우고 닦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게 된다. “으이그, 이놈들아 내가 돌봄 노동이 싫어서 결혼도 안 했는데 애를 셋이나 키우고 있어! 똥 덩어리 자꾸 흘릴 거면 기저귀 채운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깨끗하고 깔끔한 걸 좋아하지만 녀석들은 자기도 모르게 똥을 달고 나와 바닥에 흘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악명의 똥스키(집사들은 알리라)를 타기도 한다. 고양이도 개도, 영원히 자라지 않는 세 살 정도의 어린이와 같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정말 공감 간다.
그런데, 결혼도 안 한 내가 아이 셋과 사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침내 시아버지까지 모시게 될 줄이야.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우리 둘째가 지난 10월 한 달 동안 뭔가 나에게 기분이 상했거나, 삐쳤거나, 몸이 안 좋아서 나를 멀리하고 집안 구석탱이(주로 커튼 뒤)에서 혼자만의 은둔 시간을 보낸 것은 아시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예: 홉스 집사 공쟝쟝). 사실 그때 녀석이 뭔가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답답해서 병원을 데려갈까 싶기도 했는데, 고양이 집사라면 녀석들이 병원 가기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는 것을 또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우리 둘째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녀석은 우리 집 냥이들 중 보기와 달리 몸이 가장 약해서 셋 중 병원을 가장 자주 들락거렸다. 올봄만 하더라도 장염&췌장염&HCM(고양이 심장병) 의심 증세로 5일 가까이 입원했더랬다(그 봄, 나의 지갑은 텅텅.... 그날 이후 둘째의 별명은 ‘돈데렐라’). 그 이후로도 HCM증상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가 심장초음파와 엑스레이 검사를 했는데 이게 또 갈 때마다 검진비용만 20만원을 훌쩍 넘는다(어디에도 보험료 청구할 수 없는 우리의 돈데렐라~).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지난 9월에 최종적으로 녀석의 심장은 정상이라는 판단을 받고 날 듯이 기뻤지만 문제는 둘째 녀석의 병원 스트레스.
고양이는 엄청 예민하고 똑똑해서 뭔가 병원 갈 낌새가 조그만 보여도 어딘가 숨어서 나오지를 않는다. 독심술이라도 하는지 쟤, 병원 좀 데려가 볼까? 생각만 했는데도 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둘째가 추측하기에 자신이 올봄에 병원을 가게 된 것은 구토(밤새 구토했음)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녀석은 자기가 구토만 하면 세상 다 잃어버린 표정으로 구석으로 도망가서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녀석에게는 ‘구토=병원(입원)’인 것 같다. 지난 9월에 마지막으로 병원을 다녀오고, 10월쯤 구토를 한 번 거하게 했는데, 애가 그때부터 겁을 먹고는 나를 피하고 구석에만 짱 박혀 있던 것 같다. 병원 가기는 싫고 뭔가 자기 몸은 안 좋은 것 같고 등등. 첫째나 셋째는 구토를 해도 집사야 치워라~하고 냅다 도망 가버리고 본인들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나도 심드렁하게 치우고 말기는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둘째의 구토는 나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10월부터는 녀석이 구토를 하는 횟수와 시간 등등을 일일이 적어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놈은 아무래도 다른 녀석들보다 췌장이나 장이 약한 게 아닐까, 한 번 아프고 싹 낫는 게 아니라 계속 관리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검색을 통해 소화를 돕는다는 보조제(소화효소제)와 다른 영양제들을 이것저것 사서는(역시 돈데렐라~)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먹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녀석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유산균이나 가끔 먹이고 말았는데, 애들이 나이도 들고 그러니까(8세, 8세, 6세) 아무래도 관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매일 약을 제조하는데 기본은 고양이 유산균+소화효소제+플루멕스 3종이고, 여기에 다른 영양제 2개 정도를 더 섞는다. 우리 둘째는 플루멕스(집사들은 알쥬?)를 잘 먹는 편이라 다른 영양제를 섞어도 아주 크게 거부감 없이 먹일 수 있었는데.... 첫째는 극악하게 싫어해서 도망 다니기 바쁘고 말 잘 듣고 순한 셋째는 약을 코앞에 내밀면 먹는 척 허공을 연신 핥다가 요즘은 그래도 싹싹 다 먹기는 한다. 아무튼 다시 둘째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한 달 넘게 먹였더니 이 녀석, 정말 웃긴 게 고양이들의 마약 간식인 츄르보다 영양제를 더 좋아한다(우리 둘째는 츄르를 안 먹는다!!!). 그런데 너무 어처구니없게도, 녀석은 이 영양제를 먹고 자기 몸이 좋아졌다고 깨달았는지 요즘은 약 내놓으라고 호통을 친다는 것이다. 보통 나는 밤 10시쯤 영양제를 제조해서 먹이는데, 혹시라도 그 시간에서 조금만 늦어지면 녀석은 날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한다. 마치 이러는 것 같다. “애미야, 너 오늘 뭐 잊은 거 없냐? 너 그 영양제 말이다. 냉큼 대령하지 못하겠니?” 이 녀석 생활 패턴은 저녁 먹고, 욕실에서 털 그루밍(내가 해줘야함), 그 후 영양제 섭취 3단계인데, 이 3단계 중 어느 하나라도 빼먹으면 큰 호통이 날아온다. 진짜..... 시아버지 같은 놈. -_-;;
영양제 먹고 기운이 얼마나 넘치는지 요즘 너무 캐발랄해져서 6키로가 넘는 거구의 몸으로 시도 때도 없이 뛰어다닌다. 야! 새벽에는 안 돼! 그런데다가 얼마 전 어쩌다 보니 바깥의 길냥이(암컷)를 안아서 옮겨야 할 일이 있어서 옮긴 후, 집에 돌아와 옷을 걸어뒀는데, 우리 냥이들 세 마리가 다 눈이 동그래져서는 코를 킁킁, 그 옷을 탐색하는 게 아닌가. 근데 우리집 시아버지 둘째, 이분 어째요. 이 녀석은 평소 겁이 많아서 높은 장소에 잘 올라가지 않는다(고양이 맞음?) 묘생 8년차인데, 여지껏 캣타워도 맨 아랫단 위로는 올라간 적이 없고, 가장 높이 올라가는 게 내 책상 위이다(책상은 널찍하니 떨어질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그런데 이 녀석이 그날은 어머나?! 걸어둔 옷 냄새를 맡으려고 무려 장롱 위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닌가! 오오, 위대한 로맨스여! 그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버님, 영양제 드시더니 기운이 불끈 나십니까? 그런데 아버님, 아버님도 그 바깥 처자도 서로 아무것도 할 수 없.......;;; 아무튼 이 녀석 건강해져서 좋긴 하다.....만 무슨 야옹이가 츄르보다 영양제를 더 좋아해?!

시애비 주특기 - 영양제 다 드시고 내 자리 차지하고 쿨쿨 주무시기

"저기요 아버님, 거기 제자리인데요. 좀 비키세요.....;" (못들은척)

며칠 전 서울에 눈 많이 온 날........... 나 이러고 혼자 놀이 달인 INTJ

너무 뚱냥이라 몸을 좀 더 깎아보려했으나... 급 허리 아파서 포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귀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다능! ㅋㅋㅋㅋㅋㅋ

몇 년 전 사줬던 크리스마스 특집....집...... 헨젤과 그레텔처럼 다 뜯어먹었다능!!!

편들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