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불쌍한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고 싶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 팔순이 가까운 노모가 우는 것을 보기란 쉽지 않다. 엄마는 육이오 전쟁통에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친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외적인 상황만 보자면 뭔가 외롭고 슬펐을 것 같지만, 3명의 고모와 삼촌이 있었다. 엄마의 집안은 꽤 크게 농사를 지은 부농 축에 속했다. 집은 늘 친척들의 왕래로 붐볐다. 어린애라고는 엄마 혼자여서 엄마는 언제나 가장 대접받았다. 당시에 여자들은 따로 식사했는데, 엄마는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겸상했다.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할머니는 아들 셋이 전쟁통에 모두 소식이 끊기는 변고를 당했다. 그러니 부모 잃고 혼자 남은 어린 손녀가 유독 눈에 밟혔을 것이다.

  엄마는 결혼하고 나서 친정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의 할머니는 꽤나 혹독하게 시집살이를 시켰다. 남편, 그러니까 나의 부친은 그런 면에서 좀 무심할 때가 많았다. 애 셋을 키우면서 시집살이에 엄마가 몸도 마음도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그러던 중에 엄마의 할머니가 세상을 뜨셨다. 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다. 내 증조모께서는 아흔이 넘게 사셨으니 나름 장수하신 셈이다. 그렇다 해도 엄마는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셨을 것이다. 그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애도의 감정이 이제 노인이 된 엄마의 마음에 흘러넘친다.

  "아이고, 엄마 울지 좀 말어.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은 거야?"

  나는 엄마한테 크리넥스 티슈를 두어 장 뽑아서 준다. 그러고 나서 유튜브로 엄마가 들을 만한 노래가 뭐가 있나 찾아본다. 그래, 배호 노래나 듣자. '누가 울어'가 이상하게도 이 상황에 잘 맞는 노래 같았다. 배호(1942-1971)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비운의 가수이다. 이 가수의 노래는 듣다 보면 슬픔과 이별, 고통의 정서가 진하게 베어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지병을 가지고 있던 데다가 가수로서 한창 잘 나갈 때에 무리한 탓에 배호는 서른도 되기 전에 삶을 마감했다. 나는 아빠의 차에 있었던 배호의 골든 히트송 테이프를 기억한다. 그 테이프 겉면의 사진 속 배호는 전혀 이십 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병색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배호가 사십 대의 중년 가수라고 생각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엄마는 울면서도 배호의 노래를 한 소절씩 따라 불렀다. 나는 우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노년의 어느 날에 우리 엄마를 보고 싶다고 울까? 영화 'The Father(2020)'에서 치매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 분)는 요양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앤서니의 곁에는 요양원의 직원이 있을 뿐이다. 엄마는 걸핏하면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내가 알던 사람들, 하나 둘 다 갔어. 이젠 내 차례야."

  엄마의 인지능력은 요즘 들어 더 빠르게 손상되고 있다. 상업 고등학교를 나와서 그 누구보다도 셈에 빨랐던 엄마는 11 빼기 4가 얼마인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을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손가락을 세어서 엄마에게 답을 알려준다. 매일, 나는 최선을 다해서 엄마의 인지학습을 함께 한다. 그림 그리기, 오리기, 퍼즐 맞추기, 숫자 계산 등등. 나는 나중에 내가 치매 환자들을 위한 학습서라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엄마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공부는 더 오래 하지 않았다. 엄마는 공부가 끝났다는 말에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다. 휴지에다 코를 탱, 하고 풀더니 배가 고프다고 하신다. 나는 간식을 좀 챙겨드렸다.

  "엄마, 인제 그만 울기다. 할머니 보고 싶다고 또 울지 말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울었어? 왜 울었지?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참 이상하네."

  나는 속으로 엄마의 광속 같은 망각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때로 어떤 상처나 괴로움을 저렇게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쩌면 엄마의 머릿속에는 노년에 곱씹을 회한과 고통의 기억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물을 짓게 만드는 누군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엄마가 생의 마지막까지 지니고 사셨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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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2년마다 1번씩 받는 국가 건강 검진을 받고 왔다. 정말이지 건강검진은 생각만 해도 싫고 미루고 싶은 마음만 든다. 이번에 검사받고 무슨 안 좋은 소리가 나올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힘든 위내시경 검사 받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처럼 건강검진을 연말로 미루는 모양이다. 공단에서는 나한테 벌써 여러번 문자를 보내서 검진받으라고 독촉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미 나는 한 달 전에 검진을 예약해 두었다.

  내가 예약한 병원은 대학 병원 부설의 건강검진 센터이다. 2년 전에도 그곳에서 받았다. 신축 건물이라 깨끗하고 넓었다. 그 당시에 검사도 순탄하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좀 달랐다. 정말이지 다음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이었다.

  채혈실의 진단의학과 직원은 무뚝뚝하기가 이를 데 없다. 별다른 인사말도 없이 팔부터 내놓으라고 말한다. 무슨 대단한 친절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피를 뽑는다'는 상황 자체가 좀 무서운데, 인사도 없이 무턱대고 팔 부터 내놓으라니. 피 뽑은 자리에 알코올 솜 대놓고 테이프로 팔 한바퀴 돌려서 감아준다. 이제까지 채혈하면서 이렇게 후처치를 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해놓은 꼬락서니가 한심하다.

  위내시경 검사는 최악이었다. 보조하는 간호사가 어찌나 거친지, 내 머리를 붙잡고 마구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시경이 목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제일 괴로운데, 그런 상황에서 내시경이 잘 들어가질 않았다. 의사는 아무 말도 없이 내시경을 뺐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고 두 번째에서야 겨우 내시경이 들어갔다. 진짜 내가 이해가 안 가고 짜증스러웠던 것은 간호사보다도 의사였다. 지금 위의 어디 부분을 본다든지, 이제 검사가 거의 끝나간다든지, 이런 말은 하지도 않는다. 무슨 말 못 하는 병이 있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내시경으로 들쑤시고만 있었다. 환자와 소통하지 않는 이런 의사는 정말 최악이다. 검사 끝나고서 겨우 한마디 할 뿐이다.

  "정상입니다."

  위내시경 학회에서는 내시경 의사들 보수교육(補修敎育)때 환자들과의 소통 기술이나 좀 가르쳤으면 좋겠다. 비수면으로 하는 위내시경 검사는 나름대로 고통스럽다. 의사는 그 과정에서 환자의 불안과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내 위내시경 검사를 한 의사는 그런 점에서 수준 미달이다. 환자를 자신의 내시경 검사 케이스 쌓는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 같다. 최악의 의사에 마구잡이로 보조하는 간호사까지. 오늘의 내시경 검사는 아주 진저리 쳐지는 경험이었다.

  왜 사람들은 건강 검진을 연말로 미루는 것일까?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자기 몸이 어떤 도구로 취급되는 느낌은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피를 뽑고, 내시경 같은 기구가 몸에 들어오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의사와 의료 기사가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진자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배려는 보기 어렵다. 개인 검진이 아닌 국가 건강 검진의 경우는 뭔가 더 형식적이고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영양과 운동 처방 같은 것은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 의미가 없다. 구강 검진은 그야말로 몇 초 안에 끝난다. 그러니 돈 더 들여서 비급여 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니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검진 결과서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건강 검진은 지난 2년 동안 내가 살아온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나름의 평가서 같다. 음식을 제대로 잘 챙겨 먹지도 않았고, 근력 운동도 안 했다. 올해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때도 많았다. 결국 질병이란 자신의 유전적 소인과 생활 습관의 결합이다. 이렇게 병원을 다녀오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근원과 현재 삶의 방식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된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지를 받게 될까? 결과 통보서가 우편함에 꽂히는 날을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두근, 쫄깃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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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즈 핏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입을 게 없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있는 옷이나 다 입자, 하고서는 새 옷을 사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옷을 좀 샀다. 그런데 옷을 고를 때마다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점이 있다. 요새의 패션 흐름이 루즈 핏(loose fit)이라 도무지 사이즈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상품 페이지에 기재된 실측 사이즈를 참고해서 옷을 주문해도 받아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셔츠는 제일 작은 사이즈를 골라도 어깨선이 내 어깨에서 손가락 크기만큼 내려와 있다. 옷이란 딱 맞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이런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싶다. '그냥 입자'와 '반품하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귀찮아서 놔둔다. 올해 들어서 산 옷들이 거의 이렇다.  

  바지도 사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내 기준에는 넓어도 너무 넓은 통의 바지는 도저히 소화해 낼 자신이 없다. 저런 바지를 입고 다니다가는 거리의 먼지를 다 쓸고 다닐 것만 같다. 너무 몸에 붙지 않는 레귤러 핏의 바지는 찾기가 너무 어렵다. 그렇다고 스키니 핏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거리에서 이젠 스키니 핏 바지를 넘어서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이들도 본다. 아, 솔직히 내게는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난여름에 산책할 때 입을 바지 하나를 샀는데, 이것도 좀 통이 넓은 편이었다. 상품 소개 페이지에서 봤을 때는 좀 통이 넓겠네, 하고 짐작은 했었다. 받아보니 통이 넓기는 했다. 그래도 입어보니 편하고 좋았다. 이런 편안함 때문에 사람들이 통바지를 입는구나. 새삼 루즈 핏 옷의 유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 그 바지의 상품평 댓글에 '스님 핏'이라고 적어놓아서 웃었다. 통 넓은 한복 바지가 주는 여유로움이 거추장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시대. 어쩌면 사람들은 이 팍팍한 불경기에 옷에서라도 넉넉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택배 기사에 대한 단상

  가끔 지나가면서 택배 기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일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기사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택배 박스를 이리저리 나르면서 바쁘게 다녔다. 택배 배송이 워낙 고된 일이라 나는 택배가 좀 늦어지거나 해도 이해했다. 배송과 관련해서 내가 기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최근에, 집에 택배 배송을 해주는 기사들이 좀 바뀌었다. 이전 기사들의 배송은 꽤 무난한 편이었다. 분실되거나 택배 물건을 거칠게 던져놓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D 택배사의 기사는 항상 물건을 현관문 옆에다 얌전하게 두고 갔다.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똑바로 두었다. 길쭉한 상자의 택배는 잡기 쉽게 세로로 세워놓았다. 매번 택배 상자를 집에 들여다 놓을 때마다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을 했다. 배달해야 할 물건은 많은데, 하나의 물건에 그렇게 마음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택배 기사가 그만두었다. 그 기사가 뭔가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E 택배사의 기사는 나이가 좀 있는 분이다. 내 기억으로는 10년 넘게 그 일을 하고 있는듯하다. 이분은 배송하고 나서 늘 확인 메시지를 보낸다. 물건은 잘 받았는지, 분실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는지 꼭 알려달라는 문자였다. 적어도 나는 그 기사님이 배송하는 내 택배 물건에 대해서는 안심하게 된다. 10여 년을 넘게 그 고된 택배 일을 하면서 기사님이 보여준 성실함이 내게는 참 인상적이었다. 

  F 택배사의 기사는 새로 일을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다. 지나가면서 보니 이 기사는 매우 젊었다. 나이가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이 기사가 다른 집에 물건을 배송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택배 상자를 바닥에 내던지고 가는 것이었다. 복도 중간에 내팽개쳐진 상자가 참으로 볼썽사납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다 지난주, 쌀과 생수를 시킬 일이 있었다. 그 택배를 담당한 이가 바로 F 택배사의 기사였다. 택배가 완료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와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있는 대로 힘을 주어 문을 열고 보니 기가 막혔다. 기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물건을 현관문 앞에다 밀어놓고는 가버린 것이었다. 쌀 10kg과 생수가 문 앞에 있으니, 현관문이 밀어 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다음 날, 나는 택배사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택배사 고객센터의 상담사와 전화가 연결되기란 진짜 하늘의 별 따기 같다. 1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상담사와 연결이 되었다. 나는 담당 택배기사가 물건을 현관문 '앞'이 아니라 '옆'에 두길 바란다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 오늘, F 택배사 기사가 배송한 물건을 받았다. 두유 상자는 이번에는 문 앞이 아니라 문 옆에,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상자를 집에 들여놓는데 상자 밑바닥이 젖어 있다. 느낌이 안 좋았다. 현관에서 택배 상자를 뜯어보니 두유 하나가 터져 있었다. 이 두유가 배송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터져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나는 이제 F 택배사가 배송사인 상품은 당분간 주문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기분이 나빴다.

  왜 저 기사는 자기 일을 저따위로밖에 하지 못할까? 저렇게 할 거면 왜 저 일을 할까? 나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렇게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일이 있다. F 택배사 기사가 이런 식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일을 할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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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집에서 입을 내 추리닝 바지를 하나 사려는데, 순면 소재로 된 것을 찾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쇼핑몰에서 검색을 해보면 죄다 합성섬유(주로 Polyester)가 혼방이 된 상품들이 주르륵 떴다. 합성 섬유의 혼용 비율이라도 좀 낮으면 좋으련만, 면은 50%도 안 되는 비율로 섞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00% 순면 소재의 옷은 내구성과 복원력이 혼방 섬유에 미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폴리에스터 혼방 옷을 피하는 이유는 피부에 닿는 감촉도 좋지 않고, 세탁 시 미세 플라스틱이 계속 나온다는 점 때문이다. 예전에도 순면으로 된 추리닝은 좀 찾기가 어렵기는 했다. 하지만 요즘은 순면 소재의 홈웨어를 거의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추리닝뿐만 아니라 티셔츠의 경우에도 순면 제품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특정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합성 섬유를 혼방한 의류들은 넘쳐나는데 천연 소재의 옷들은 씨가 말라버린 듯 했다.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보니 그런 현상 뒤에 가려진 산업적 배경을 대략 유추할 수 있었다. 문제는 면섬유를 만드는 면화 가격의 상승에 있었다. 면화는 매우 돈이 많이 드는 작물이다. 특히 이 작물을 재배하는 데에는 엄청난 '물'이 소모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면화는 결코 환경친화적이지 않다. 노동집약적이며 환경 파괴적인 이 작물의 가격이 이전부터 낮게 형성된 데에는 그 주된 재배 지역이 중앙아시아라는 점에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수자원을 빨아들이며 면화 생산지는 늘어갔다. 우리가 이전에 흔하게 입었던 값싼 면 티셔츠는 그런 이유로 가능했다.

  하지만 '물'은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화수분이 아니었다. 호수와 지하의 수자원이 고갈되어 감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면화 생산 지역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에 더하여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직격탄을 면화 재배 지역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전체적으로 면화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재배 면적의 감소와 더불어 물류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자, 면화 가격이 이전에 비해 급등했다. 의류 생산업체들이 예전의 가격으로 면 의류 제품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당면한 현실이었다. 소비자들은 가격 상승에 민감하다. 그러니 생산자들도 머리를 쓸 수밖에 없다. 가격이 오른 면섬유를 쓰는 대신에 값싼 화학 섬유를 혼방해서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내가 순면 소재의 추리닝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입던 질 좋고 값싼 옷들을 이제는 구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것도 같다. 이것은 단지 의류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제품의 생산 원가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석유를 비롯해 원재료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더불어 인건비도 오를 수 밖에 없다. 일상을 엄습하는 고물가의 공포는 이미 Covid-19의 대유행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내가 Shadow Inflation이 미국을 덮치고 있다는 뉴욕 타임즈의 글을 읽은 것이 2021년 10월이었다(https://www.nytimes.com/2021/10/10/upshot/shadow-inflation-analysis.html).

  나는 당시에 그 기사를 읽으면서도 인플레이션과 물가 인상은 남의 나라 일이려니 했다. 그러던 것이 작년과 올해 들어서 말도 못하게 뛴 물가에 놀라고 있다. 식료품값은 체감상 30~40%, 어떤 것들은 50%가 넘게 오른 품목들이 있다. 전기 요금을 비롯해 가스 요금과 같은 공공 요금, 개인 서비스 요금도 함께 올랐다. 오른 가격을 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그러니 요새는 장을 볼 때, 뭔가 좀 저렴한 가격에 나왔다 싶으면 물건을 쟁여놓는 습관까지 생겼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보면 때로 허탈할 때도 있다. 이전보다 제품의 중량이 줄어들었거나, 재료가 달라졌거나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제조사들도 갑작스런 가격 인상이 부담스러우니 그런 꼼수를 쓰면서 생존의 묘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먹고 사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지금의 정부에게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념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대통령의 정치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작정이다. 그저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면서 이 길고 힘든 고물가의 터널을 지나야겠다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 순면 추리닝 바지를 왜 구하기 힘든지 그 이유를 찾는 여정은 이렇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용어 설명

그림자 인플레이션(Shadow Inflation):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과 양이 이전에 지불했던 동일 금액에 대비해서 떨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 예를 들어 당신이 즐겨찾는 음식점이 있다고 하자. 음식값은 오르지 않았는데, 그곳의 음식이 언제부터인가 양도 적어지고 재료도 부실해진 것을 당신은 알아챈다. 그렇다. 그것이 그림자 인플레이션이다.
 
Shadow Inflation: the phenomenon of decreasing quantity or diminishing quality of goods and services compared to a comparable purchase that previously had more value at the same price point: Does your favorite restaurant suddenly have smaller portions, cheaper ingredients, or fewer servers, for the same old price? Blame the economy for this shadow inflation(출처: www.diction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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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에 엄마를 산책시키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 입구를 지나가는데, 거기에 못 보던 소식지가 있었다. '**구 노인회 소식지'라고 적힌 4쪽 자리 신문이었다. 엄마가 공원 벤치에서 깔고 앉으면 좋겠네, 그런 마음으로 한 부를 집어 들고 왔다. 뭐 노인회 회원들 공치사나 적혀 있겠지 싶어서 별로 읽을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첫 페이지의 글이 유독 눈에 와서 박혔다. 글쓴이는 치매 노모를 둔 사람이었다.

  얼핏 보기에 그 글은 시 같았다. 단문으로 띄엄띄엄 줄을 바꿔가며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매우 간결하게 써 내려간 그 글의 행간에는 치매 간병을 하느라 9년을 보낸 이의 고통이 베어져 있었다. 처음에 글쓴이는 노모의 간병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집에 보냈다. 모친은 요양보호사가 집안 물건을 훔친다면서 욕하고 헐뜯었다. 외부 사람을 집에 들이기 싫어하니, 글쓴이와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모친을 보살폈다. 그런데 워낙 강골의 성격을 지닌 어머니는 병증이 심해지면서 자식들을 꽤나 들들 볶았던 모양이다. 긴병에 효자없다고 자식들은 간병에 넌더리를 내기 시작했다. 글쓴이의 형제들은 논의 끝에 모친을 요양원에 보내려 했다. 노모가 안가겠다고 버티며 실랑이하는 사이에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제 요양원에서 지내는 모친은 글쓴이가 면회 갈 때마다 그곳에서 자기를 빼달라며 울며 매달린다고 했다.

  '부모 잘 모시는 것을 자식의 도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저는 어머니 돌아가시기만을 바라는 패륜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그 글귀에 이르자 글쓴이의 어려움과 슬픔이 절절히 느껴졌다. 스스로를 패륜아로 지칭한 글쓴이를 그 누가 비난하고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나는 새삼 '좋은 글'의 요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오늘 읽은 이 짧은 산문은 무슨 대단히 박학다식하거나 유려한 문체로 쓰인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글쓴이의 진심은 글의 투박한 외면을 뚫고 전면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때로 진심, 우리가 진정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문체(style)가 주는 즐거움과 감동을 뛰어넘는다. 자기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하는 개방성이야말로 좋은 글쓰기의 기본 요건이 된다.

  나는 오늘도 엄마를 모시고 아침 공원 산책을 다녀왔고, 낮 동안에 엄마를 보살펴 드렸다. 이렇게 지낸 지가 어느덧 2년째이다. 엄마는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하고, 방금 했던 이야기를 고장이 난 테이프 틀어놓듯 반복한다. 그렇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이 밀려있다. 최근에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메일 박스에 쌓이는 뉴스 레터와 외국어 공부를 조금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같은 일상이 다시 반복된다. 이건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다.

  "아이구, 이 사람 정말 힘들겠구나."

  엄마는 내가 깔고 앉으라고 준 노인회 소식지를 읽고 나서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을 바람에 공원의 나무들은 우수수 낙엽을 떨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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