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Lepage, "Andersen Project"의 처음과 끝. 환영으로서의 극장.

1) 2007년 9월 7일 저녁 8시, LG아트센터,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 연출 <안데르센 프로젝트(Andersen Project)>의 국내 첫 공연. 배우 이브 자크(Yves Jacques)가 흐드러질 정도로 '구성진'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를 쉴 새 없이 내뱉는 아르노(Arnaud)를 연기하는 시점에서부터, 한국어 자막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공연 사고'로까지 말할 수 있을 이러한 해프닝은,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언어를 다루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 자막이 등장인물의 '지독한 프랑스어 억양이 섞인 영어'를 따라잡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시점에서부터, 언어는 두 조각, 아니, 세 조각이 난다. 그러나 이 '언어'들은 사실 이미 '원래부터' 조각나 있던 것, 그러므로 굳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언어의 조각난 조각들이 사방으로 피 튀기듯이 튀기면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르는 관객들의 웃음이 그 적절한 '폭발'의 시점을 잡지 못하고 무대와 관객석 사이를 겉돌기 시작하면서부터, 진정한 '희극'은 시작된다. 따라서 이 장면은 그 자체로 '이땅에서' 삼중의 희극적 재미로 화하게 된다. 첫째, 가장 일차적으로, 지독한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가 안겨주는 희극적 재미. 둘째, 한국어 자막과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가 서로 따로 놀고 따로 돌아다니는, '어이없는 사고'로서의 어긋난 희극적 재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따로 노는 한국어 자막과 프랑스어 억양의 영어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발생하는 무대 위의 배우와 무대 아래 관객들 사이의 '거리감', 그 '웃음의 시차(時差)', 그 촌철살인의 시간차 공격이 선사하는, 말 그대로 지극히 '연극적'이고 '상황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희극적 재미. 이 세 가지의 희극적 재미들은 서로 중첩되면서 그 자체로 '한국 공연만이'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희극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Robert Lepage, "The Far Side of the Moon"의 두 인물, 이브 자크의 일인이역. 
    달의 이면(裏面), 이면(二面), 혹은 이면(異面). 

2) <안데르센 프로젝트>가 던지는 '형식적' 질문은 간단하다: 일인극, 혹은 모노드라마란 무엇인가? 일인극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적' 장치와 효과는, 관객이 그 모든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가 '물리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같은 사람이자 단 한 사람임을 안다는 인식, 바로 그것에 놓여 있다. 경이로운 일인다역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 이브 자크에 대한 찬탄도 결국 이러한 우리의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 이러한 점에서 <안데르센 프로젝트>는 지난 2003년 한국에서ㅡ그리고 같은 장소에서ㅡ공연되었던 르파주의 <달의 저편(The Far Side of the Moon)>을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욱 확장시키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달의 저편>이 보여주었던 '시적 테크놀로지'의 세계는 내 기억 속에 아직까지 여전히 강렬한 형태로 남아 있다). 두 작품 사이에서 우선 표면적으로 목격되는 공통점은 무대 공간의 '횡적' 구성과 '착시적' 원근법의 구도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일인다역'이라고 하는 '일대다대응 함수' 관계가 지닌 매력이 두 작품의 '횡적' 연결 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먼저 주목되어야 한다. 특히나 이 '착종된' 안데르센 이야기에서 왜 이러한 함수 관계가 중요한 것인가 하는 물음은 중요하다. 결국 안데르센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혹은 르파주가 '안데르센'이라는 인물에게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작가'라는 주체의 발견이며ㅡ이 문제는 연극 속의 인물인 라푸앵트(Lapointe)에게서도 오버랩되며 반복되고 있는 주제인데ㅡ, 이는 곧 푸코적 의미에서 '자기 배려'로서의 양생법(養生法, diététique)이라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작사가 라푸앵트가 농지거리하며 말하듯, 그것은 안데르센의 성적인 깨우침(sexual awakening)에 다름 아닌 것. 이러한 주체의 '발견'과 '깨달음'에 있어 장애가 되는 결핍임과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은 자위(masturbation)이다(또한 이러한 '자위'는 포르노 비디오방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가장 '개인적인' 행위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안데르센의 '자위'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일인다역'으로서의 자기 증식, 자기 반복은 아닐 것인가? 이 문제는 결국 안데르센의 '그림자' 이야기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자신의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학자의 이야기, 그것은 곧 안데르센과 그의 분신 라푸앵트의 이야기에 다름 아닌 것. 연극의 한 장면을 차용해보자면, 앵발리드(invalides)가,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mais pas sans valeur"라는 그래피티로 조롱되고 있는 상황에 다름 아닌 것. 이러한 '그림자'로서의 주체의 여정은, 때로는 조각상을 애무하고 사랑하는 '피그말리온적' 테마로(또한 여기서 라푸앵트와 드라이아드는 서로 중첩되고 있는데), 그리고 때로는 '식민지'와 '신대륙' 출신 작가가 '대륙'에 대해 갖는 뒤틀린 동경과 열등감의 테마로(또한 여기서 파리라는 도시, 그리고 '안데르센 프로젝트'는, 라푸앵트에게 하나의 '카프카적'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기능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반복되고 있다. 라푸앵트가 피씨방에 들어가 디디에(Didier)에게 쓰는 이메일의 내용과 그 '수정'의 행위를 보자. 디디에의 애완견 파니(Fanny)의 상태에 대한 술어는 "in shape"에서 "in good shape"로 '강조'되었다가 다시금 "pretty much in shape"로 한층 '강화'된 후 마치 고백하듯 "pregnant"로 최종 수정되어 마무리된다. 이 에둘러 가는 '수정'의 여정은,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라푸앵트 혹은 안데르센이 보여주는 '자기 의식'의 여정이 되고 있는 것.

       

Robert Lepage, "Andersen Project"의 몇몇 장면들. 
    라푸앵트-아르노-안데르센, 르파주의 '페르소나'로서의 이브 자크. 

3) 동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동화의 자리는 어디인가? 동화 속에서, 교훈(morale)은 남고, 이야기는 사라지는 것인가? '이야기'란 교훈을 남기기 위한 하나의 과정, 곧 하나의 방편(方便)일 뿐인가? <안데르센 프로젝트>가 가장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바로 이것이다. 연극은 순수하게 내러티브적인 것으로 해소되지도 않고 용해될 수도 없는 어떤 '잔여물'을 남긴다. 그런데 이 '잔여물'이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아님은, 최소한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한데, 라푸앵트는 물론이고, 아마도 안데르센 역시 아이들을 '혐오'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공연 중에 목격한 바로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애꿎은' 공연에 따라왔다가ㅡ아마도 이 어머니는 '안데르센'이라는 이름에 매혹되어 단지 어린 아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겠지만ㅡ자신의 '불량한' 관극 태도 때문에 어머니에게 계속해서 꾸지람을 들었던 한 어린아이에게도, 이 연극은 아름다운 '동화' 한 자락 따위의 '재미나고 신나는' 자리는 아니었던 것(그렇다면, 또한 곁가지로 물어보고 싶은 물음 하나는, 몇 달 전에 역시나 LG아트센터에서 보았던 마틴 맥도너의 작품 <필로우맨>과 이번 <안데르센 프로젝트> 사이에서 공히 느껴지는, 이 '동화'의 자리에 대한 착종된 혐오와 애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인데)! 덧붙여, 그 '잔여물'이 교훈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이야기가 '남긴' 그 잔여의 자리에 있는 것이 어떤 '내러티브'의 잔향이라는 것, 그것도 어떤 '흔적'으로서의 내러티브라는 점은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예술-사유의 재료일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연극의 '결말'이 말해주는 것처럼, 인간의 '권선징악'이거나[혹은, 아니거나, 분명, 아니겠지만], '잔여물'로서의 동물들이 남아서[혹은, '남겨져서'] 행복하게 영위하는 어떤 '삶', 그것뿐일 것으므로('psychologie canine'을 위한 진료소에 가서는, '개의 심리 상담'은 고사하고, 말 그대로 '개 같은 심리 상담'을 받게 되는 라푸앵트의 경험은, 단순히 '환자'의 저항이나 전이로만 해석할 수 없는 신랄하고 역설적인 '동물-되기'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데, 저 '사이비-개-치료사(pseudo-dog-therapist)'가 한 명의 온전한 정신분석의로 변하는 '경이'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교훈은 또한, 모든 이야기와 동화는 교훈을 구하고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자체에 대한 경고, 그러므로 일종의 '자기 파괴'에 대해 내리는 하나의 경고일 것이므로(디디에가 개에게 주던 '마약'을 자신의 주머니에서 발견하게 된 라푸앵트가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그 약을 입속에 털어넣고 일종의 '기차-트랜스(train-trance)'를 펼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좌절된' 프로젝트로서의 '안데르센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좌절됨'으로써, 그리고 '완성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완성되고 성취되는' 프로젝트인 것. 이 '프로젝트' 안에서 르파주는, 라푸앵트ㅡ혹은 안데르센ㅡ의 이야기를 통해 율리시즈 이야기의 '여벌'을 한 벌 더 만들어내고 있었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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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10-0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보고싶잖아요.

람혼 2007-10-0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ris에도 좋은 공연 많을 텐데요...ㅎㅎ^^
 



▷ Martin McDonagh, The Pillowman, London: Faber and Faber, 2003.

1) 내가 LG아트센터에서 마틴 맥도너의 연극 <필로우맨>을 본 것은 2007년 5월 18일 금요일이었다. 내가 굳이 이렇게 나의 경험에 시간의 레테르를 붙이는 것은, 연극이라는 것이 나날의 공연마다 그 모습과 느낌을 달리하는 하나의 유동하는 '생물'이라는 점을 새삼스레 강조함으로써 관극의 경험이 지닌 저 일회성과 유일성이라고 하는 [연극]교과서적인 특징을 유독 부각시키려 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간의 레테르를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서 나에게는ㅡ내 자신에게조차도ㅡ하나의 '반례'가 필요한데, 예를 들어 그 반례의 한 작은 사례는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다. 내가 모극장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지우개 머리>ㅡ왜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올랐을까, 세간의 비유를 따르자면, 오히려 퀜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떠올렸어야 하지 않을까ㅡ를 본 것은 모년 모월 모일 모시였다, 라는 예시문이 그것.

2) 휘발성을 지닌 시간예술의 이러한 상대성은 역설적으로 하나의 '절대성'을 상정하고, 또한 요구한다. 그러므로 요는, 매체의 가변성 또는 부동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예술의 시간경험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 그 예술의 시간은 사실 극장의 시간이 아닌 삶의 시간이라는, 다분히 고답적이고 환원론적인 실존철학적 미학의 물음이 문제라는 것, 그러므로 예술의 경험이라는 것은 언제나 회상의 형식과 결합되어 있다는, 후기 낭만주의의 찌꺼기 같은 이기적이고 자족적인 체념의 형식이 문제라는 것. 그런데 그 회상이 만들어내는 어떤 우연과도 같은 필연, 필연이라는 착각과 오인(誤認)이 사실은 진짜 문제라는 것. 이것은 또한 내가 이해하는 바의 '기억의 연극(Theater der Erinnerung)'에 대한 잡설의 설법과도 같은 해명, 부정성과 귀류법을 통해 우회해 내리는 '운명'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다.



3) 내가 런던에서 마틴 맥도너의 연극 <The Leenane Trilogy>를 본 것은 1997년 8월 9일 토요일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담배를 피워물고 가던 레스터 스퀘어의 어느 골목에서 한 영국 여자에게 담뱃불을 붙여주었고, 워털루 다리가 보이는 템즈 강둑의 어느 벤치에서 한 영국 할아버지의 잔소리 같은 일상사를 귀담아 들으며 물끄러미 앉아 있었다. 음침한 날씨의 대명사라고 주입받았던 영국의 날씨는 벌써 며칠째 화창하게 맑음이었다. 그 며칠 전 나는 <The Leenane Trilogy>의 공연 티켓 3장을 구입했고, 아일랜드 방언이 섞인 영어 대사를 알아듣지 못할까 두려워 3부작의 희곡을 모두 구입하여 밤을 새워 읽어내려갔다. 당시 20대였던 작가 마틴 맥도너와의 첫만남은 그러한 독서의 끔찍하고도 짜릿한 전율 속에서 이루어졌다. 1997년 8월 9일 토요일은, 그의 3부작을 대낮부터 한밤까지 연속으로 상연하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장소는 세인트 마틴 가에 위치해 있는 로열 코트 극장(Royal Court Theatre). 첫 작품의 공연 후반부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내 옆자리의 한 영국 할머니는 두 번째 작품 시작 전에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내게 첫 번째 작품의 결말을 물어왔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매우 흥미로워했다. 관객들은 딸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의 의자가 객석을 향해 돌아감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우연찮게도 그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었던 남편과 함께 참전하여 간호사로 일했던 경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이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얻을 수 있던 정보였다. 두 번째 작품이 끝나고 난 저녁을 먹으러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마지막 작품을 보기 위해, 어떤 알 수 없는 열기에 휩싸인 채로, 부랴부랴 다시 극장으로, 늦지도 않은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늦은 밤, 3부작의 모든 공연이 끝나고, 토요일만의 특별한 커튼콜이, 마치 하나의 독립된 작품처럼 무대 위에 올려졌다. 3부작에 등장했던 모든 배우들이, 공연을 마친 배우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그 어떤 이완의 표정도 없이, 말 그대로 어떤 표정도 없이, 마치 무대의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듯이,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 듯이, 그렇게 무표정하고 완고하게, 서 있었다. 막이 올라가면서, 그들의 머리 위로, 거짓말처럼, 우울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관객이나 객석이 아니라 다른 어떤 곳, 다른 어떤 무언가를, 멍하게 혹은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고, 그들 위로는, 집요할 정도로 계속해서, 느린 비가, 그렇게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그 비 내리던 무대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나는 다시 마틴 맥도너와 만났다, 연극 <필로우맨>을 통해서.

       

▷ Martin McDonagh, The Beauty Queen of Leenane, London: Methuen, 1996.
▷ Martin McDonagh, A Skull in Connemara, London: Methuen, 1997.
▷ Martin McDonagh, The Lonesome West, London: Methuen, 1997.

4) <The Leenane Trilogy>는 이후 맥도너 작품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연극 세계를 이미 탄탄히 구축하고 있는 초창기 작품들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일독을 권한다. 현재는 위의 독립된 세 판본은 따로 구할 수 없고 세 작품이 함께 묶여진 희곡집으로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작품은 몇 년 전에 다른 제목을 달고ㅡ아마도 익숙치 않은 국외 지명인 'Leenane'이 제목에 들어간다는 이유 때문인지 원제와는 다르게, 특히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번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제목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ㅡ배우 이영란 씨의 주연으로 국내에서 초연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관극은 하지 못했다.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작품을 어떻게 풀었었는지 항상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 더 궁금한 것은, 맥도너 작품의 그 국내 '초연'이 큰 화제가 되지 못했던 이유가 당시 맥도너의 낮은 지명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작품의 질 때문이었을까 하는 점이기는 하지만.

   

▷ Martin McDonagh, The Cripple of Inishmaan, London: Methuen, 1997.

5) 내가 연극 <The Cripple of Inishmaan>을 본 것은 1997년 8월의 어느 밤, 런던의 왕립 국립 극장(Royal National Theatre)에서였다. 그러므로 그때 난 맥도너의 작품 4개를 한달 안에 다 봐버린 셈이었다. 물론 어떤 극작가에게도 이러한 데뷔는 다분히 파격적이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작품의 공연은 위의 3부작이 지닌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했고 또한 왕립 국립 극장의 대극장(Lyttelton Theatre)이라는 무대에 비해 다소 왜소하게 느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아주 매력적인 '병신'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국내 <필로우맨> 공연의 팸플릿에 박천휘 씨가 "1998년에 런던 웨스트엔드에 27세의 청년 마틴 맥도너의 작품 네 개가 동시에 상연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라고 쓴 부분은 인쇄 오류이거나 글쓴이의 착각인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의 작품 4개가 런던에서 '최초로' 동시에 상연되었던 해가 1998년이 아님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6) <필로우맨>의 한국 공연 대본[번역]에서 단 두 가지 점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두 점 모두 아주 세부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첫 번째 경우는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조금 불만족스러운 것이라 하겠다. 카투리안이 필로우맨을 묘사하면서 '동그란(round)' 베개라고 말한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며 마이클이 '원형의(circular)' 베개라는 표현이 더 좋다고 말하는 부분이 첫 번째 경우이다(The Pillowman, p.43). 필로우보이가 죽음을 결심한 후 필로우맨에게 "엄마한테 오늘 밤엔 차를 마시지 못할 거라고 말해줄래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누락된 것이 두 번째 경우이다(The Pillowman, p.47). 첫 번째의 경우ㅡ나는 여기서 "circular"라는 단어를 한자어에 대응시키고 "round"라는 단어를 한글에 대응시킨 이 번역이 마음에 드는데ㅡ왜 마이클은 '동그란'보다 '원형의'라는 말을 더 좋아했을까? 사실 이 부분은 지나치기 쉬운 세부이긴 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대사들로 이루어진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극의 기억으로는, 공연에서 이 대사가 거꾸로 되었던 것 같다. 카투리안이 '원형의 베개'를 말하고, 이를 마이클이 '동그란 베개'로 정정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 부분이 '원형의'라는 딱딱한 말보다 '동그란'이라는 보다 말랑말랑한 단어를 더 선호하는 마이클의 '순수한' 성격을 잘 포착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을까? 이 부분에서 어떤 '착오'가 개입했던가? 물론 이에 대해서는 따로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기억은 그리 정확한 것이 되지 못하기에, 하지만 또한 동시에 인상과 감응은 그보다 더 정확한 것이기에. 두 번째는 보다 '메타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누락된 부분은 세부이지만, 그 세부는 또한 단순한 세부가 아니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부차적'인 세부의 누락이 절창(絶唱)의 누락이 된 것 같아 매우 안타까운 경우이기 때문이다. 필로우보이는 놀러나갔다가 저녁때까지는 꼭 차를 마시러 집에 들어오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고는 필로우맨에게 저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누락된 다른 많은 세부들 중의 단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또한 희곡과 상연 사이에서 이러한 누락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부의 누락은 일반의 그 '일반성'을 침식하고 잠식하며 또한 탐식한다. 물론 최민식, 최정우, 이대연, 윤제문, 네 배우의 연기는 아주 호연이었고, 음악 또한 아주 좋았음을 부기해둔다. 하지만 이것이 박근형의 연극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남는다.

7)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방. 그 두 개의 방은, 서로 이웃해 있었지만 동시에 격리되어 있었던 어린 시절의 그 두 방들이기도 하고, 또한 현재 두 사람이 위치한 두 개의 취조실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방은 과거와 현재에서 완벽하게 반복되며, 또한 동시에 단순한 반복을 넘어 증식하고 변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구연'하는 1막과 2막의 끝부분에서 '구현'되고 있는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방, 이는 가로의 축이며 또한 과거의 축이다. 그리고 카투리안의 취조실이 되었다가 다시 마이클의 취조실이 되는 하나의 공간, 두 개의 방은, 세로의[세로로 상정된] 축이며 또한 현재의 축이다. 이 가로와 세로, 과거와 현재의 시각적 교차는, 가로와 세로를, 과거와 현재를 교란시키면서 상당히 매력적인 그림을 선사한다. 한때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대척점에는 부모가 있었지만, 지금은 투폴스키와 애리얼이라고 하는 형사들이 있다. 이 두 개의 방, 네 명의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집요하게 되새겨봐야 할 물음은, 내 생각에 다음과 같다: 누가 감금되고 누가 해방시키는가, 또는 누가 감금시키고 누가 해방되는가. 이는 일견 단순히 능동과 피동을 치환한 일종의 문형 연습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또한 일반적인 구원의 문제로 쉽게 환원될 수 있는 문제의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 도착의 문제에 더 근접한 것이다.

8) 연극이 하나의 약속이자 약호이듯, <필로우맨>은 약속에 관한 집요한 도착을 보여준다. 마이클은 카투리안에게 아이들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맹세를 하지만, 이는 이미 일어나버린 모든 일에 대한 사후적인 약속일 뿐이다. 예를 들어 투폴스키 또는 애리얼과 카투리안 사이에서 지속되는 권리(right)에 관한 끊임없는 수다를 보라. 진실을 말한다는 조건으로 카투리안의 작품을 보존해주겠다는 권리의 약속은, 카투리안이 말한 '진실'이 결코 진실이 아니었음이 확인되는 순간 작지만 커다란 불구덩이로 변한다. 결코 만인에게 공개된 적이 없었던 이야기들의 분서갱유, 이는 곧,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책들의 무화(無化)라고 이름할 만하다. 이 연극이 던지는 마지막 약속은, 결국 카투리안의 작품들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마음먹는 애리얼의 결심 속에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 마지막 약속은 나에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는, 저 근대 예술미학의 모든 약속들을 가장 극단적이고 도착적인 방식으로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에. 근대예술의 이상이 살인 혹은 죽음과 만날 때, <필로우맨>은 그 끔찍하도록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을 상연하고 있다.

9) 이러한 만남으로부터 행복한 결말, 곧 '해피 엔딩'이 찾아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와 작가의 형'이라는 이야기는 수정되고 가필된 또 다른 '필로우맨' 이야기와 다시 만난다. 결국 이야기들은 남는다. 하지만 카투리안이 죽기 직전 머리 속으로만 생각했던,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야기는 어디에 남게 되는 것일까. 그런데, 만약 이야기가 남았다고 한다면, 그것도 단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면, 그 이야기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닌, 카투리안의 머리 속에서 마지막으로 서술된 그 마지막 이야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 최후의 이야기, 최후까지 남은 이야기의 끝은, 관객인 나를 소름 돋을 정도로 '행복하게' 만들었던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었다. 되돌릴 수 있다는 환상과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사이의 만남은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해피 엔딩을 출산한다.

   

▷ Martin McDonagh, The Lieutenant of Inishmore, London: Methuen, 2001.
▷ Lilian Chambers, Eamonn Jordan(eds.), 
    The Theatre of Martin McDonagh: A World of Savage Stories, Dublin: Carysfort, 2006.

10) 마틴 맥도너의 다른 연극 작품으로는 2001년에 출판된 <The Lieutenant of Inishmore>가 있다. 역시나 일독을 권한다. 지금까지 맥도너의 연극 세계를 조명한 해설서는 불과 몇 권밖에 출간되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압권은 역시 위 오른쪽의 책이다. 다양한 평론뿐 아니라 신문과 잡지의 리뷰와 공연 기록까지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은 현재 나와 있는 맥도너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볼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더 많은 책이 나와야 하고 또 나오겠지만. 이러한 상황은 사실 콜테스(Koltès)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ㅡ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콜테스에 관한 책으로는 비당(Bident)의 책이 가장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인데, 위베르스펠드(Ubersfeld)의 책도 있긴 하지만 그 책은 다소 연대기적인 성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ㅡ콜테스에 대해서는 후일 따로 글을 마련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맥도너와 콜테스를 함께 이야기하는 데에는 몇 가지 학술적이고도 정서적인 이유들이 있지만, 지금은 어쨌거나 바로 이 두 작가가 내가 가장 주목하고 아끼고 싶은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고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를 둘러대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2007. 5. 21.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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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필로우맨에 관심이 가네요. ^^
람혼님 소개글 잘 읽었습니다 :)

람혼 2007-09-09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
체셔 님이 잘 읽으셨다니, 왠지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14) 그러므로 바타이유가 말하는 '불가능한 것(l'impossible)'의 개념은 단순한 저항성의 상징이나 진보에 대한 순진하고 낙관적인 믿음을 넘어선다. 진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있다고 해도 한계와 불가능의 확인과 완성 과정의 진전 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 직선적인 역사관은 순환적인 것으로, 금기와 위반의 반복이 그려내는 원환으로 변용된다. 따라서 바타이유가 위반이라는 개념을 통해 겨냥했던 것은 단순히 무조건적인 전복이나 낙관적인 진보가 아니라 '불가능'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인간과 사회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직시에 다름 아니다. 이성과 그에 따른 철학의 전 체계에 대항할 수 있는 방식, 즉 '코기토' 철학과 상품 형태의 물신에 대해 위반의 '불경'을 저지를 수 있을 신성모독의 방식은, 그러므로 그러한 체제에 대해 단순히 반대의 대립항을 설정하는 즉물적인 저항의 방식이 아니라, 그것들이 그 자체로 지니고 있는 한계, 그것들이 결코 자신 안에 포착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 재현의 철학이 결코 동질화할 수 없는 이질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타이유는 초현실주의자의 낭만주의와 유토피아주의를 경멸하고, 저주하며, 넘어선다(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칸트적 '비판(Kritik)'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 혹은, 연대적 순서를 따라 『순수이성 비판』 후에 『판단력 비판』을 읽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판단력 비판』을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읽는 행위에 해당할 터).

   

Georges Bataille, L'expérience intérieure, Paris: Gallimard(coll. "Tel"), 1978.
Georges Bataille, Œuvres complètes. Tome V: la somme athéologique I
    Paris: Gallimard, 1973.
*) 바타이유의 『내적 체험』은 그의 '무신론 대전(la somme athéologique)' 3부작의 첫째 권을 이루는, 가히 바타이유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아직 국역된 바 없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초역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갖고 있지만 마땅한 출판사를 아직 찾지 못했다.

15) "지성 속에는 하나의 맹점(tache aveugle)이 존재한다. 그것은 눈의 구조를 연상시킨다. 눈 안에서처럼 지성 안에서도 우리는 그 맹점을 어렵사리 찾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의 맹점이 보잘것없는 것임에 반해 지성은 본성상 자신의 맹점이 그 안에 지성 자체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를 원한다."
ㅡ 바타이유, 『내적 체험』, 전집 5권, p.129.
지성이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 바로 이 "맹점"은 불가능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의 지성은 그 맹점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지성의 한계를 표시하고 언제나 지성의 표상 작용으로부터 벗어나며 불가능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 바로 이 맹점인 것이다. 따라서 바타이유의 맹점은 곧 지성과 철학, 경제와 제도의 한계를 표시하는 지표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포착될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이러한 불가능성이 존재의 '진리'이자 인간의 '실상'이 되고 있는 것.



Renata Salecl, Slavoj Žižek(eds.), Gaze and Voice as Love Objects
    Durham/London: Duke University Press, 1996.
*) '시선'의 문제는 사르트르(Sartre)나 라캉에게뿐만 아니라 바타이유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데, 그에게서 이 문제는 '송과선 눈(œil pinéal)'이라는 주제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다. 이 '눈'의 문제는 사실 데카르트(Descartes)의 '시각론' 혹은 '광학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문제인데, 이에 관해서는 차후에 다른 글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그리고 '재미있게') 다뤄보기로 하겠다. 다만 레나타 살레츨과 슬라보이 지젝이 함께 편집한 위 책에 두 번째로 수록된 알렌카 주판치치(Alenka Zupančič)의 글 "Philosophers' Blind Man's Buff"가 이 문제에 관련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만을 언급하고 지나가기로 한다.

16) 이러한 맥락에서 상징적인 것을 이끌어가는 환상과 이데올로기의 작용에 불현듯 상처와 균열을 내어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주는 라캉(Lacan)의 실재 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바타이유적인 불가능성의 개념과 많이 닮아 있다. 인간은 상징적 질서로의 편입을 통해 비로소 하나의 '주체'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라캉이 말하는 상징계란, 사회 안에서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 우리가 하나의 주체로서 '정상성'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코드와 제도와 규칙의 장을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를 의미한다. 상징계 안에서 우리는 언어로 소통하며, 모든 것을 언어적으로 코드화된 질서 속에서 파악하고 포착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계는 이성적인 표상을 통해 포착 가능한 세계, 곧 통제와 예측이 가능한 질서로서의 세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상징적 세계의 안정성은 사실 라캉이 의미하는 바 "환상(fantasme)"의 효과에 다름 아니다. 상징계의 환상은 불현듯 그것의 표상 작용과 상징화 작용을 언제나 초과하여 노출되는 어떤 혼란, 코드화되지 않고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잉여적이고 외부적인 것에 의해서 상처 입고 균열이 가게 된다. 또한 이러한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균열에 대한 방어 기제로서 다시 환상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게 되는 것.

   

▷ Jacques Lacan,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Le séminaire, livre XI, Paris: Seuil(coll. "Le Champ freudien"), 1973.
▷ Jacques Lacan, Les quatre concepts fondamentaux de la psychanalyse.
    Le séminaire, livre XI, Paris: Seuil(coll. "Points essais"), 1990.
*) 이 세미나 11권은 일전에도 박상륭에 대한 글을 차용해 잠시 소개했던 적이 있다. 특히 이 책은 라캉의 세미나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들 중의 하나로 1990년에 문고판으로도 다시 간행된 바 있다.

17) 그러므로 실재라고 하는 것은 상징계의 제도적이며 코드화된 질서로써는 포착될 수 없는 어떤 '바깥'의 경험, 현실의 전부라고 여겨지던 언어적 구조로서의 상징계가 맞닥뜨리게 되는 일종의 "기묘한 현실(l'étrange réalité)"(세미나 11권, p.57)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재라고 하는 '전혀 다르고 낯선' 이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상징적인 세계가 조화와 질서와 언어에 의해서 코드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혼돈의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바타이유의 불가능성과 마찬가지로 라캉의 실재 개념은 상징적인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가 결코 현실의 '전체'가 아님을, 우리의 이성적인 언어와 의식이 미처 다 포착할 수 없는 어떤 이질적인 '외부'가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따라서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세계가 은폐하고 있던 한계를 끈질기게 재확인시켜주는 어떤 트라우마와도 같은 것이 우리 존재의 '근원'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라캉이 "전체가-아님(pas-tout)"이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순적으로밖에는 규정될 수 없는 이러한 '상처(Trauma)'로서의 존재 사태이다.

18) 그러나 이러한 불가능성과 실재의 개념은 단순한 허무주의 또는 패배주의적 순응성의 산물로 보일 수 있다. 직선적인 진보를 상정하는 역사관에 입각할 때 이러한 트라우마적이고 무질서한 규정될 수 없는 심연에 대한 '절대적인' 인식은 분명 '보수적'이고 무기력하며 '반동적'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바로 이러한 생각을 통해서 바타이유와 라캉의 사유는 초현실주의자들을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진보'에 대한 신념과 대립하고 결별한다. 바타이유의 불가능성과 라캉의 실재 개념이 공히 머금고 있는 의의는, 불가능 또는 실재에 대한 환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은폐 작용이 결코 완벽하게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보여줬다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의식은 의식을 초과하며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실재는 끊임없이 의식의 장으로 넘어오면서 상징계라는 질서의 공간에 흠집을 낸다. 그러므로 '전체가-아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이러한 부단한 변화에 대해서 항상 개방되어 있는 공간을 의미하고 있기도 한 것. 이러한 '불가능'의 세계, 멈추지 않는 실재의 침입으로 파악되는 세계는 분명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불가능성과 실재의 개념은 순진한 이상주의와 진보에 대한 신념을 상정하지 않으며 초현실주의자들보다 존재 사태의 '실상'과 '현실'에 더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게다가 비록 그것이 우리가 처해 있는 세계의 '잔혹성'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유라 할지라도, 그리고 또한 그것이 진보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의 '혁명적' 성격 뒤에 감추어진 순진성과 물신성을 들추어냄으로써 향후 모든 '급진적인' 이론과 운동의 진정성을 '상대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이데올로기와 환상의 효과가 종국에는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는 심층적이고 불가해한 존재의 심연을 우리 앞에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바타이유와 라캉의 사유는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 극단에 서 있는 것인지 모른다. 특히나 이러한 종류의 '진보주의'는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예술의 '순진한' 신념에 대해 바타이유의 인류학적이고 반(反)유토피아적인 '정치 철학'이 갖는 변별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Denis Hollier(éd.), Georges Bataille après tout, Paris: Belin, 1995.
Les Temps modernes n° 602, Décembre 1998 - Janvier-Février 1999.
*) 위의 두 책은 최근 10년간의 바타이유 연구에 있어 중요한 논문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여기서도 결국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이항 대립을 넘어서는 '진보'의 힘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더욱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전복'을 위한 사회 운동의 메타적인 심급은 어디일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하는 정치적인 물음이 될 것이다. 바타이유 사후, 특히나 바타이유의 '정치 철학', 특히 '공동체(communauté)'와 관련된 그의 사상이 지속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정치 철학'의 계보에 마슈레(Macherey)와 낭시(Nancy)의 이론적 작업들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Louis Althusser, Écrits sur la psychanalyse. Freud et Lacan
    Paris: STOCK/IMEC, 1993.
Louis Althusser, Psychanalyse et sciences humaines. Deux conférences
    Paris: Librairie Générale Française/IMEC, 1996.
*) 정신분석에 대한 알튀세르의 책으로는 위의 두 권을 추천한다. 첫 번째 책의 몇몇 글은 예전에 국역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아마도 윤소영 선생의 번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 책은 아직 국역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얄궂은 것은, 이 책이 더 쉽고 재미있다...). 알튀세르 '유행'이 한물간 지금, 이 책의 국역본이 나올 수 있을까? 어쨌든 언제나 번역을 고대하고 있는 책들 중의 하나.

19) 이러한 맥락에서 라캉의 정신분석과 마르크스주의의 접점을 그 누구보다도 빨리 간파했던 이는 알튀세르(Althusser)였다. 그의 이데올로기론 자체가 라캉의 실재 개념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며, 또한 "중층 결정"이라는 개념 역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라캉 이론 전반과 사회 철학, 그리고 독일 관념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보다 더 세밀한 논의를 제시해주고 있는 이는 지젝(Žižek)인데, 그는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현실을 왜곡하는 환상과 은폐의 장치로서만 파악하는 평면적인 마르크스주의의 대척점에 라캉을 위치시킨다. 우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임의적인 환상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에 근거하여 현실을 현재의 상태로 구성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실재를 '모르기' 때문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재를 '모르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현실적 차이들을 사상함으로써만, 즉 모든 노동을 인간 노동력의 지출이라는 공통적인 성격으로 환원시킴으로써만"(디츠판, pp.87-88/김수행 번역, 93쪽) 물신 숭배의 기저에 숨어 있는 폭력적이고 임의적인 동질화 과정이 가능해진다고 말했을 때, 동등한 것으로 교환될 수도 없고 동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도 없는 노동이 바로 상품 물신성의 배후에 존재하는 '실재', 곧 우리가 그러한 교환 과정 안에서 '알고자 하지 않는' 실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바로 이어 마르크스가 "그들은 이것[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생산물들을 교환을 위해 가치로서 동질화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Sie wissen das nicht, aber sie tun es)"(디츠판, p.88/김수행 번역, 93-94쪽)라고 말했던 것은, 곧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하는 행동'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며, 이는 행위/실천(praxis)의 층위에서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실재를 '알고' 있지만 마치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양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Slavoj Žiž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p.33)는 것.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행위 그 자체이다. 실재를 알면서도 그것을 직시하거나 인식하고자 하지 않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작용과 심리는 또한 앞서 위에서 살펴보았던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페티시즘과도 맞닿아 있는데, 그 작용의 메커니즘이 상징적 세계가 결코 전체가 아니며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즉 '실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Verleugnung)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페티시즘의 '전형적인' 양태에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Slavoj Žiž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London/New York: Verso, 1989.
Slavoj Žižek,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 London/New York: Verso, 1991.
*) 지젝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도 이곳저곳에서 열광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거의 확신하건대,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지젝을 읽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젝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위의 두 책을 추천한다. 지젝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들을 제시하고 있는, 일종의 '지젝-프로토콜'로서의 책들.

20)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대립항으로서의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는, 그것이 부르주아 예술관을 '대체'하는 듯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금 '무관심성'의 근대적 낭만주의 미학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더욱 근본적으로는, 그것이 실재를 은폐하려는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전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안에 속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타이유의 불가능성 개념과 라캉의 실재 개념이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과 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지점은 바로 '혁명'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개인의 '내적인' 혁명이 될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일 텐데, 직선적인 진보에 대한 순진하고 낙관주의적인 믿음과 불가능성과 실재에 대한 비선형적이고 반유토피아주의적인 사유 사이에서 드러나는 양자의 차이점이 그러한 '혁명'의 가능 조건들을 전혀 상이한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을 요한다고 하겠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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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9-0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습니다.^^ 그러니깐 거칠게 요약하자면 초현실주의나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진보가 낭만주의적 유토피아 혹은 페티시즘일수 있고 바타이유의 불가능성개념과 라캉의 실재개념이 이것에 대한 비판일수있다라는 내용이네요. 그런데 라캉의 실재개념에 대한 이해나 정치적 혁명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으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바뀌셨는지요.

p.s. 람혼님의 바타이유번역본..저도 어서 보고싶어 집니다. 조만간 출판하실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

람혼 2007-09-07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onta 님, 언제나 꼼꼼히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천한 '변화'에 관해서 거칠게 말씀드리자면, 일단 라캉의 실재에 관해서는, 그것을 단지 어떤 '외부'나 '근원'으로 더 이상 이해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겠지요. 혁명에 관해서는, '내적인' 혁명을 넘어서 '순간의' 혁명[만]을 의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같습니다. 예술과 혁명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애정'도 많이 식었다는 것도 있겠고요. 자세히 살필 만한 가치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 쑥스럽군요. 바타이유 번역본은, 조만간 보실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yoonta 2007-09-07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캉의 실재개념에 대해서 저도 간략하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 (http://blog.aladdin.co.kr/yoonta/1258634) 혹시 이 내용과 비슷하신 건가요? ^^

그리고 람혼님으로 인해 그동안 잘 몰랐던 바타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음..바타이유가 말한 진보는 불가능성에의 경계를 직시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무척 신선하게 들립니다. 혁명에 대한 낭만적 환상이 자본주의에 대한 패티시즘이나 물신성에 다름아니라는 표현..바타이유가 지적한 것처럼 진보는 단지(오히려)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이다라고 하는 지적은 오늘날의 진보진영이 처한 어떤 역설적 상황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삶에 항상 들러붙어서 따라다니는 이러한 지긋지긋한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 그런데 그런 불가능성의 경계를 (지젝처럼) 돌파하는 것이 과연 가능/불가능한가라는 의문도 동시에 들면서 말이죠.

람혼 2007-09-07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yoonta 님의 글과 소견이 비슷한 부분도 있습니다. 세미나 7권 <정신분석의 윤리>였던가요, 기억이 그리 확실치는 않지만, 그리고 아마도 yoonta 님은 이미 읽으셨을 부분으로 생각되지만, 라캉이 'das Ding'을 청중에게 설명하면서 그것이 실은 칸트의 'Ding an sich'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떠오릅니다. 그 외에도 칸트 철학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려는 라캉의 '의식적'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 몇몇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쨌거나 그러한 노력이 칸트에 대한 라캉의 '무의식적' 의존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던 기억도 새삼 새롭군요. 라캉의 "Kant avec Sade" 등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리고 또한 지젝이 곳곳에서 주장하듯이(가장 '선언적'으로는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에 붙인 서문에서), 이른바 '칸트의 편'에 서 있는 라캉의 상(像)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만한 매력적인 주제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그의 칸트론에서 강조하고 있는 초월적 주체의 자리 X 역시 이러한 칸트-라캉의 이론적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것이 유효할 것으로도 생각되고요.

말씀해주셨듯이, 저 10년 전의 글에서 '건질 만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페티시즘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분석과 적용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단지 서두의 운을 뗀 것뿐이고, 아마도 더 굴착해 들어가봐야겠지요... (도와주세요~ ^^;)

바타이유는, 이미 개인적으로 10년 이상을 읽었고, 가끔씩 자괴감과도 비슷한 혐오와 몰이해에 빠지면서도, 개인적으로 지극히 '페티쉬'적인 애착을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분들께 일천한 제 독서 경험으로나마 그의 다양한 면모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의 논리적 비약이나 불친절하고 잠언적인 문체, 혹은 더 나아가 그의 사상 자체가 지닌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계시지만, 그것은 흔히도 피상적인 '정리' 내지 '뛰어넘기'의 모습만을 취하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저는 다만, 언제나 묵묵히 읽고, 가끔씩 내뱉을 뿐이지만, 어쨌든 틈 날 때마다 바타이유ㅡ라기보다는 하나의 지독한 '심연'으로서의 한 '인간'ㅡ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yoonta 님의 따뜻한 응원과 관심, 그리고 날카로운 지성에 감사드립니다.
 

*) 예전에 갈겨쓴 글 뭉치들을 이리저리 정리하다가ㅡ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초고(草稿/礎稿)는 수고(手稿)로 '수고스럽게' 작성하는 '악습(惡習)'을 갖고 있는데ㅡ대략 10년 전쯤에 쓰고 처박아두었던 초현실주의와 페티시즘에 대한 글을 발견했다. 지금 읽어보면, 저맘때쯤의 내가 지녔던 다소 격앙된 어조의 치기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그때는 내게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던 '지젝'의 이름을 다소 '생경하게' 발견하는 재미도 느끼게 된다. 현재와 비교해볼 때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진 구석들도 있지만(자잘한 변화들은 말할 것도 없이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라캉에게 있어서의 '실재'의 의미나 정치적 '혁명'에 대한 생각 등등이 그런 '변화된' 부분들이겠지만), 가장 일차적으로는 '기록'의 차원에서, 또한 페티시즘에 관한 몇몇 사항들을 통해 최근의 사유에 거름을 준다는 의미에서, 사이사이에 책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을 첨언하여, 특별한 수정 없이 옮겨본다.

1) 초현실주의자들이 취한 '정치적인' 선택은 광인의 복권(復權), 정신병자의 권리장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병증을, 특히나 히스테리를 단순히 어떤 병리적인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대신 그것을 하나의 온전한 주체, 여러 다른 가능한 주체들 중의 하나로 파악하는 것이다. 브르통(Breton)이 프로이트(Freud)를 '발견'한 이후 초현실주의는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합리성' 중심의 이른바 '정상성'의 예술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예술사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예술계 안에서 이러한 운동의 발생은 '평행적으로' 마르크스(Marx), 니체(Nietzsche), 프로이트 이후 이른바 '코기토(cogito)'라는 명제에 대한 회의와 재검토의 사상사와 그 궤도를 같이 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차라리 상식에 가깝다. 사람들은 과거 이러한 예술 운동을 가리키기 위해 군대용어를 차용하여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흡사 군대의 전위 부대를 연상시키는 파괴적이고도 저돌적인 힘, 그리고 이 힘이 촉발시킨 혁명의 시급성은, 이제껏 흔히 '정상'이라고 상정되어 오던 것을 상대화시키고, '산술적' 이성에 의해 배제되었던 감성과 상상력을 복권시킴으로써, '정치적'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아방가르드 역시 이미 하나의 정치이다, 아마도 내재적 의미와 외재적 의미 모두에서.



▷ 트리스탕 쟈라, 앙드레 브르통, 『 다다/쉬르레알리슴 宣言 』(송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7.
*) 차라(Tzara)의 다다 선언문들과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들을 모아서 번역한 책. 1987년에 출간된 국역본이니, 이런,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2) 그래서였을까?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보다 더 '극단'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운동에 정치적 진보성과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정당성을 확보해줄 수 있는 새로운 주체가 필요했던 것. 여기서 '광인'이 이 역사적인 예술 '혁명'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들은, 말하자면, 광인을 '추대'하기에 이른다. 이 영웅은 실로 이미 '고전적'이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이 이미 국민교육헌장만큼이나 진부해졌을 정도로:
"정도야 어떠하든 광인이란 상상력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는 바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상상력은 광인을 어떤 규칙 위반으로 몰고 가는데, 규칙 밖에서는 양식이 목표 대상이 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광인에게 가하는 비판과 또 그들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교정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가 표시하는 깊은 초탈(détachement)은 그들이 상상력으로부터 커다란 위안을 얻고, 또 망상이 그들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망상을 충분히 음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 환상환각 같은 것은 하찮은 즐거움의 원천만이 아니다. 가장 잘 조직된 관능성은 이 원천에서 자기 몫을 발견하게 된다."
ㅡ 『다다/쉬르레알리슴 선언』, 113쪽.

3) 광인을 치료와 격리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고 이성적 주체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또 다른 주체로 파악하는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초현실주의를 위시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대의에 해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복권, 죽었던 자의 귀환. 그러나 문제는 초현실주의들 자신은 광인이 아니라는 것, 어쩌면 광인에 대한 그들의 예찬과 연민은 단순한 짝사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쩌면 우리는 브르통의 애절한 서약 밑에 깔려 있는 얄팍한 순진성을 읽어낼 수도 있을 터, 바로 이 지점에서 초현실주의의 저 유명한 선언문에 대한 독해는 '징후적'인 것이 된다:
"광인의 비밀, 나는 이 비밀을 캐내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 광인이야말로 지나치도록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이다."
ㅡ 『다다/쉬르레알리슴 선언』, 113쪽.

   

▷ Immanuel Kant, Kritik der Urteilskraft(hrsg. von Karl Vorälnder), 
    Hamburg: Felix Meiner, 1990[7. Auflage].
▷ 칸트, 『 판단력 비판 』(이석윤 옮김), 박영사, 1974.  
*) 『순수이성 비판』과 『실천이성 비판』은 최근 백종현 선생의 번역으로 새 국역본이 아카넷에서 출간된 바 있다. 『판단력 비판』은 아직 새 국역본이 출간되지 않은 상태인데ㅡ최재희 선생의 『순수이성비판』 국역본만큼이나ㅡ오랜 시간 동안 이석윤 선생의 번역본이 통용되어 오고 있다. 이석윤 선생의 국역본 역시 위의 카를 포를랜더 편집판을 그 저본으로 하고 있다. 

4)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낭만주의'이다. 사실 초현실주의의 '광인 예찬'은 칸트(Kant)가 『판단력 비판』으로 열어 놓은 여러 방향성들 중 하나의 방향성, 곧 낭만주의 미학이라는 줄기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칸트에게 있어 천재란 기존의 규칙과 질서에 입각하여 그에 따라 예술을 제작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에 [새로운] 규칙을 부여하는 재능"(포를랜더 편집판, p.160, §46)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이 '낭만주의' 안에서 어쩌면 칸트의 저 '천재(Genie)'가 브르통의 '광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음인 것? 기존 예술의 규칙을 위반하여 새로운 규칙의 예술을 창조하지만 그 자신은 그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는 칸트적 천재의 그림자가 브르통의 광인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따라서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automatisme)은 이러한 '낭만주의적'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규칙의 창출 과정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규칙을 만들어내는 천재의 작업 방식에 가장 성공적인 형태로 부합하는 것이며 이성의 논리와 질서로 통제될 수 없는 꿈의 힘에 대한 초현실주의의 '낭만주의적 낙관주의'를 가장 흐뭇한 방법으로 만족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아방가르드의 파괴적이고 비전통적인 기조와 그 반(反)-미학적인 성격이 어떤 계보 위에서 가능했는지를 보여준다. 미학을 파괴하는 미학이라고 하는 이상은 규칙에 대한 위반으로써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예술의 이상, 곧 칸트의 천재를 통해 이미 예고되었으나 가장 일반적이고 일차적인 '위반'에 대한 규정에 머무르고 만 예술의 방향성이었다. 광인으로 변신한 이 새로운 낭만주의적 주체가 바로 반-미학의 예술가가 되었음 역시 주지의 사실이다.

5) 여기서 우리는 광인이라는 새로운 예술 주체가 부르주아적이고 이성적인 예술 주체와 대비되고 있음에 또한 주목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마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부르주아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예술 제도에 대한 하나의 대립항으로 설정된 광인이라는 주체가 그러한 경제 또는 제도와 '무관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초현실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짧고 황홀했던 '동침'의 파국도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무관함'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른다. 사실 초현실주의가 기본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무관심성의 자율주의 미학을 떠올려볼 때 어쩌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수 있다. 부르주아적 질서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광인 주체는 '더러운' 것으로 상정된 시장의 논리와 계산적인 체계로부터 초탈해 있는 '외부'로 그려진다. 브르통이 말하는 광인의 "초탈/무관심(détachement)", 이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에 대한 초연한 무관심, 곧 새로운 낭만주의로서의 초현실주의가 표방하는 저항성의 기표이자 도덕성의 증거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역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어떻게 사회주의자들과 '그토록 쉽게' 연대할 수 있었던가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서로 구체적인 지향과 이상에서는 달랐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와 부르주아적 예술 제도라는 공동의 적(敵)을 갖고 있었던 것. 따라서,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말을 차용해 말하자면, 초현실주의를 작동시키는 힘은 '희망의 원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광인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예술 주체의 자유와 그것이 불러올 꿈과 상상력의 유토피아를 그려낸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사회주의자와 공유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공통성은 '진보'에 대한 이러한 믿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현실주의가 열어놓은 아방가르드 운동의 기저에는 기존의 규칙을 위반하면서 새로운 규칙을 창출하는 칸트 식의 천재론의 변형된 형태인 '광인-천재론'과 함께 새로운 유토피아주의가 동시에 꿈틀대고 있는 것.

6) 그러나 사실 자율적인 미학을 갖고 있는 예술가와 그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라는 개념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 체제의 산물이며 역사상 가장 특수한 형태의 경제 체계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제한 경제. 바로 여기에 또 다른 모습의 물신 숭배, 초현실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공히 혐오할 만한 보다 심층적인 의미에서의 물신 숭배가 은폐되어 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라는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 이러한 물신 숭배를 통해서 초시간적이고 초역사적인 절대성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는 '광인처럼' 세속의 질서에 대해 초연할 수 있었고 '진정한' 예술 작품의 가치는 시장의 논리를 '초탈'하여 '황금처럼' 영원한 것으로 남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는, 근대적인 '금본위(金本位) 예술 제도'의 탄생이었던 것. 이에 나는 결국 아방가르드의 유토피아주의가 오히려 그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는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물신성에 더욱 가깝게 밀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이르게 된다.

7) 물신성의 심층, 페티시즘의 부활. 아방가르드 예술의 특징인 개개인의 개인적인 규칙, 각각이 하나의 독립된 창조주인 '예술가'의 개념, 서로 환원이 불가능한 복수의 예술 규칙들 사이에서 공통된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른바 '공통성'과 '공약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은 차치하고라도, 아방가르드 예술의 등장 이후 예술을 제작하거나 평가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문법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공통적인 제작 규칙이나 평가 규준을 상정할 수 없는 아방가르드 미학의 기본적인 성격을 생각해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인과 꿈의 질서, 그것은 곧 무질서의 질서, 무의미의 의미를 가리키고 있는 것. 그런데 바로 여기에 또 다른 형태의 페티시즘이 숨어 있다고 한다면?

           

Sigmund Freud, Werke aus den Jahren 1925-1931. Gesammelte Werke Band XIV, 
    Frankfurt am Main: Fischer, 1991[7. Auflage]. 
▷ 프로이트, 『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김정일 옮김), 열린책들, 1996.
▷ 프로이트, 『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김정일 옮김), 열린책들, 2003.
*) 소장하고 있는 프로이트의 전집은 피셔 출판사에서 간행된 연대순 전집판이며, 색인을 포함한 18권에 유고 1권을 더해 총 19권으로 이루어진 판본이다. 열린책들의 프로이트 전집은 '전집'으로서는 불완전하지만 프로이트의 주요 저작들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별 이의가 없다. 구판의 편제를 다시 정리하여 신판이 나온 바 있다. 지나가는 길에 번역의 문제에 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꽤 오래 전부터 독일어 'Fetischismus'의 번역에 대해 몇몇 언급을 해왔는데, 그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절편음란증'이라는 번역어는 병리적으로 과도한 '편견'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다른 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2. 같은 단어가 마르크스의 번역에서는 '물신주의' 혹은 '물신 숭배'라고 번역되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두' 용법에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ㅡ'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ㅡ서로 연관되는 번역어를 창안할 필요가 있다.  

8)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의 페티시즘은 흔히 '절편음란증' 또는 '대상성 성욕이상증' 등으로 번역되곤 하는데, 이는 부인/거부(Verleugnung)라는 심리 작용과 관계가 있다. 페티시즘 안에는 여성의 거세를 인정하는 동시에 거부하고 있은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설명이 바로 그것:
"절편음란물(Fetisch)은 단순한 페니스의 대체물이 아니라, 절편음란증(Fetischismus) 환자의 어린 시절에 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가 나중에 상실되어 버린 아주 특별하고 구체적인 페니스의 대체물이라는 것이다. [...] 절편음란물(Fetisch)이란 남자아이가 한때 그 존재를 믿었던 여성의 페니스, 혹은 어머니의 페니스의 대체물이다."
ㅡ 프로이트, 전집 14권, p.312.
*) 번역은 국역본의 것을 따랐다. 국역본 전집 구판 9권, 28쪽/신판 7권, 320쪽. 신판에서는 "페니스"를 모두 "남근"으로 바꿔 번역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의 번역은 다소 부정확한데, 앞 문장의 "구체적인 페니스의 대체물"에서 "페니스"의 원어는 "Penis"인 데 반해 뒷 문장의 "남자아이가 한때 그 존재를 믿었던 여성의 페니스"에서 "페니스"의 원어는 "Phallus"이다. 다른 두 단어를 "페니스" 혹은 "남근"으로 똑같이 번역하고 있는 것. 물론 프로이트에 있어서는 이 두 단어의 번역이 라캉에게서만큼이나 '현격한' 차이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의 '섬세함'이랄까 '세심함'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까.

9) 초현실주의는 자본주의를 벗어나고자 한다. 초현실주의는 예술이 상품이 되어버리는 부르주아적 예술 제도를 거부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초현실주의가 말하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은 다시 시장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또 힘을 얻는다. 곧 초현실주의자들은 예술의 시장성을 회의하고 거부하지만, 다시 거꾸로 그들의 예술은 지극히 부르주아적인 관념인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라는 형식과 이름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노출한다. 어떤 것이 '예술'이라고 말할 때 그러한 발화와 명명의 행위는 이른바 예술이라는 개념이 빚지고 있는 '자본주의적' 예술 제도를 이미 전제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 그러므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라는 개념의 존재 진위를 의심하면서도 또한 동시에 그것들을 전제하고 또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적 예술관은 또한 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 페티시즘의 형태를 띠게 된다.

10) 페티시즘의 또 다른 축 하나. 아방가르드 예술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페티시즘적 성격을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드러내주는 것은 아마도 마르크스적인 의미에서의 페티시즘 분석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물신 숭배'에 대한 논의는 초현실주의가 쉽게 잊어버렸던, 그러나 그것이 예술이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을 사회적인 장으로서의 교환 경제라는 심급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치환에 의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되며, 감각적임과 동시에 초감각적 물건으로 된다. [...]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Fetischismus)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부착되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ㅡ 『자본론 I[上]』(김수행 옮김), 91-92쪽.

   

Karl Marx, Das Kapital. Erster Band. Marx Engels Werke Band 23
    Berlin: Karl Dietz, 1962. 
Karl Marx, Le capital. Livre I, sections 1 à 4(traduit par J. Roy), 
    Paris: Flammarion, 1985.

   

▷ 마르크스, 『 자본론 I[上]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1991[1차 개역판].
▷ 맑스, 『 자본론 제 1권(1) 』, 백의, 1989.
*) 소장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베를린 디츠 출판사의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의 제 23, 24, 25권, 플라마리옹 출판사의 불역본(1권의 일부 번역, 알튀세르의 서문을 싣고 있다)과 김수행 선생의 국역본들, 그리고 조선노동당사에서 간행한 판본을 백의 출판사에 다시 펴낸 국역본들이다. 특히나 백의 출판사 국역본은 1989년에 내가 처음으로 구입했던 『자본론』이라 아직도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애착이 가는 책인데, 그 번역의 질은 지금 봐도 감탄을 연발케 한다. 또한 독일어 원문과의 비교 독해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 책. 김수행 선생의 번역도 이 판본을 상당히 참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위에 인용한 부분을 백의 출판사 판본의 번역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비교해보시라(84-85쪽):
"상품형태의 신비성은 다만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으로, 그 물건들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속성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사회적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도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물건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전환(quid pro quo)에 의하여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감각적인 동시에 초감각적인 물건 즉 사회적인 물건으로 된다. [...]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성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서 생산되자마자 거기에 붙으며 따라서 상품생산과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 벤 파인, 알프레드 새드-필호, 『 마르크스의 자본론 』(박관석 옮김), 책갈피, 2006. 
Peter Osborne, How to Read Marx
    New York/London: Norton, 2006[American Edition].
*)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마르크스 또는 『자본론』에 관한 읽을 만한 (동시에 '가벼운') 개설서로는 위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피터 오스본의 책은 얼마 전에 국역본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번역의 질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11)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심급, 예술의 '제한 경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란 개념은 그러므로 또한 마르크스적인 의미에서의 '물신(Fetisch)'이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보다 더 '건강한' 사회주의 예술이 될 수도 있었을 초현실주의 예술은 그것이 광인과 꿈의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와 부르주아 예술 제도로부터 '초연'하려고 하면서부터 오히려 이러한 물신으로 '전락'한다. 초연한 척 눈을 가리는 것과 실제로 초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터. 초현실주의가 자신의 '순수한' 저항성을 통해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치부는 이러한 종류의 물신성의 개입, 기존의 부르주아적인 예술계를 탈피하려고 하면서도 다시금 그 울타리 안으로 포섭되고 편입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 다름 아닌 것.



Georges Bataille, Œuvres complètes. Tome II: écrits posthumes 1922-1940
    Paris: Gallimard, 1970.

12) 사실 이러한 물신 숭배의 기저에는 어떤 종류의 '신학적' 착각이 깔려 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연적인' 사물을 마치 '신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오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신 숭배의 기원에 대한 거부의 한 형식으로 '신성모독'이라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이가 바타이유(Bataille)이다. 먼저 바타이유는 기본적으로 낭만주의적 정조를 지닐 수밖에 없는 유토피아주의를 거부한다. 그에게 있어 낭만주의란 기본적으로 '패배주의적' 정서를 띤 것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일종의 '낙관주의'를 통해서 가능했던 '진보'에 대한 믿음이 바타이유에게서는 사라지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진보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패배주의'가 낙관적인 낭만주의로서의 초현실주의를 오히려 '패배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게 되는 '신비적이고도 정치적인' 전도가 일어난다. 바타이유는 초기에 「D. A. F. 드 사드의 사용 가치 (1)(La valeur d'usage de D. A. F. de Sade (1))」라는 글에서 인간을 적응(appropriation)과 배설(excrétion)이라는 두 가지 충동의 대립 구도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그에게 있어서 사회적인 저항과 위반의 운동은 바로 배설이라는 충동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질론(hétérologie)은 세계에 대한 어떤 동질적인(homogène) 재현과도, 다시 말해서 어떤 철학적인 체계와도 대립되는 것이다. [...] 이를 통해 이질론은 적응의 도구였던 철학적 과정을 배설 작용에 봉사하는 것으로 이행시키고 사회적 존재가 내포하고 있는 격렬한 만족에의 요구를 드러내는 완전한 전복을 행하게 된다."
ㅡ 바타이유, 「사드의 사용 가치 (1)」, 전집 2권, pp. 62-63.

           

Georges Bataille, L'érotisme, Paris: Minuit(coll. "Arguments"), 1957.
Georges Bataille, Œuvres complètes. Tome X, Paris: Gallimard, 1987.
▷ 죠르쥬 바따이유, 『 에로티즘 』(조한경 옮김), 민음사, 1989.
*) 위의 두 판본은 이미 소개한 바 있고, 조한경의 바타이유 번역이 갖는 취약성 또한 두세 번 정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직접 다시 번역하고픈 책 중의 하나. 

13) 바타이유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계급적이고 사회주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리학적 또는 인류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말하는 적응과 배설의 대립 구도가 단순히 순응과 저항이라고 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심급에서의 개념 틀이 아니라 오히려 에로스와 타나토스, 리비도와 죽음 충동이라는 프로이트적인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의 충동에 있어서 적응과 배설의 작용은 두 극을 이루는 것이며 그 둘의 공존과 순환에 의해서 전체 사회가 운용되고 또한 파악된다. 이러한 이분법은 바타이유가 자신의 일생 동안 끈질기게 추구했던 문제, 곧 성(聖)과 속(俗)의 관계, 혹은 신성한 것과 더러운 것의 근접성, 혹은 동질적인 것(l'homogène)과 이질적인 것(l'hétérogène) 사이의 '변증법'에 대응하는 또 다른 도식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바타이유가 "위반(transgress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운동은 인간의 한계와 금기를 극복하고 파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단지' 확인하고 가늠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위반의 '진정한' 의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한계에 대한 확인 과정, 금기의 '존재 증명', 불가능의 경계를 그리는 '작도법'에 있는 것일 터:
"위반은 금기의 부정이 아니라 금기를 통과하여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ㅡ 바타이유, 『에로티즘』, 미뉘판, p.71.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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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07-12-0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다다/쉬르레알리즘 선언> 저도 가지고 있어요.
제가 어릴때(87년이면 제가 고1때네요.) 사서...거의 몇 페이지나 읽었나?...그냥 소장만 하고 있는 책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람혼 2007-12-04 01:18   좋아요 0 | URL
이네파벨님 반갑습니다.^^ 최근 들어 내공 높으신 고수 이웃분들을 계속 만나뵙게 되는 것 같아 정말 즐거운 마음입니다. 저도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그나저나 격동의 87년에 고1을 보내셨으니, 한참 선배시군요. 반갑습니다.^^
 

1) 지난 7월 28일 토요일, 용산에 드넓은 둥지를 튼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회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의 세계'를 관람하기 위한 것(이런 행운이, 그날은 무료관람일이었던 것!). 옛 중앙청 시절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은 처음이라 약간의 회상 어린 격세지감 또한 느꼈던바, 어린 시절부터 불화 혹은 탱화와 관련된 전시회는 거의 빠짐없이 다녔던 개인적 전력에 비추어볼 때, 특히 이번 전시회는 과거 1993년에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 고려불화 특별전('高麗, 영원한 美') 이후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다는 고백 한 자락. 현재 리움 미술관의 조명 또한 그러하지만, 당시 호암갤러리의 조명은 마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회랑'에 들어온 듯한 어둡고도 차가운 종교적 신열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는데ㅡ예를 들어,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에 있는 로스코의 방을 떠올려보라ㅡ, 이러한 '종교성' 앞에서, 낮은 조도의 조명이 실은 훼손되기 쉬운 유물들의 보호에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는 '과학적' 조치라는 사실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번 사경변상도 전시회에서도 이러한 '어둠'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즐거운 고백 한 자락. 이번 전시는 몇 가지 '기본적' 장점들을 지니고 있는데, 일단 '사경'과 '변상도'라는 개별적이고 독특한 주제로 구성된 기획전시회라는 점, 서체와 도상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 등이 그렇다. 전시 기간은 2007년 9월 16일까지, 나들이를 빙자한 일람(一覽)을 권한다.



▷ 통일신라시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사경의 일부. 사진은 그 중 발원문 부분이다. 정갈한 서체는 발원의 염(念)을 '반영'한다.

2) 사경은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미 삼국시대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 전하는 최고(最古)의 사경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서기 754년에서 755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며, 과거에는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리움에 소속되어 있는 귀한 유물이다. 사경(寫經)이란, 말 그대로, 경전을 베껴쓰는 작업을 뜻한다. 서양 중세의 필사본과 일종의 '기이한' 상동성(相同性)을 갖는 이러한 사경의 특징은 그 '발원'의 염(念)에 있다 할 것이다. 사경은 그 말미에 발원문이나 발원의 염을 담은 게송을 첨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박상국 문화재위원의 말을 차용하자면, 사경 자체가 '공덕경(功德經)'으로 불리는 것에는 어폐가 있으나, 그것이 기복(祈福)을 위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한에서, 곧 부처의 '말씀'을 옮기고 널리 전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목적을 갖는 한에서, 그것은 곧 공덕이요 수행이라 할 수 있으며, 사경 말미의 발원은 그러한 마음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는 것(박상국, 『사경』, 대원사, 18-19쪽 참조). 개인적으로 가끔씩 지인들에게 정갈하지 못한 글씨에 어설프기 그지없는 그림이나마 '사경'과 '변상도'를 흉내 내어 제작한 '괴작(怪作)'을 선물하곤 하는데, 아마도 그 '발원'에 어떤 뜻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러한 '선물(膳物)'의 염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 한 자락 남기고 지나간다.



▷ 한밤의 사찰 초입, 그곳에 우뚝 서 있는 신장(神將)들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떤다... 사진은 고려시대 불공견색신변진언경(不空索神變眞言經)의 사경에 수록된 신장상(神將像).

3) 신장(神將)이란 본래 인도의 신들에 그 유래를 두고 있다. 이는 불교가 토착종교로부터 보편종교 혹은 세계종교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신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일어난 모종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인도의 신들이 부처의 '말씀'에 감화되어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모습으로 화(化)했다고 하는 담론 자체가 이미 '상징적' 권력의 층위에서 그 '변화'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이러한 역사적인 '감정이입'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면서, 나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던가, 예를 들자면, 이런 일은 비단 인도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닐진대, 한국의 어느 사찰을 가도 만날 수 있는, 대웅전 뒤에 숨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산신각(山神閣)의 모습만 해도, 그것은 결국 '토착적인' 도교(道敎) 신들이 이루어낸 '성공적인' 불교화의 한 사례가 아니었던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특히 13세기 초 몇몇 고려 사경에서 발견되는 뛰어난 필력의 신장상들을 다수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좋게 평가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신장상들, 사경에 담긴 '말씀'을 수호하는 그 신장의 모습들 속에서, 나는 단순한 권두화(券頭畵, frontispiece)의 기능과 외형을 뛰어넘는 일종의 '메타적인' 성격을 발견했던 것. 그러므로 '말씀'이란, 얼마나 가깝고도 먼 것이며, 또한 얼마나 친숙하면서도 두려운 것인가. 그리고 그림이란, 이 얼마나 '마력적(魔力的)'인 것인가.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곧 법화경(法華經)은 보통 7권의 첩장본(帖裝本) 한 질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8권으로 이루어진 희귀한 첩장본 또한 선보이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고려시대인 서기 1332년에 제작된 8권짜리 첩장본 표지들, 위의 사진은 1353년에 제작된 7권짜리 첩장본 표지들로서, 모두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이다.



▷ 한 장의 그림 안에 담을 수 있는, 신들의 전쟁. 1334년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의 변상도.

4) 도상의 위력은 가히 마력적인 것. 비로자나불이 설법을 펼치고 있는 장면 왼쪽으로,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용들의 모습, 그리고 아수라(阿修羅)와 제석천(帝釋天) 사이의 전투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말구름' 안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이 기이한 형국은ㅡ회화의 역사를 거꾸로 되짚어 올라가는 듯한 이러한 '가역적(可逆的)' 인상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보지만ㅡ시간 진행과 공간 전개의 '병진(竝進)'을, 유래와 진행과 종착의 '병치(竝置, juxtaposition)'를, 단 한 폭의 그림으로, 단 한 순간의 시간에, 보여준다. 아마도 도상의 마력이 지닌 어떤 비술(秘術)이 여기 숨어 있을 터, 이에 신계(神界)의 싸움을 담고 있는 이 그림 앞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는, 고백 한 자락 남겨본다. 연상의 고리를 따라 단번에 다다른 곳은, 다름 아닌 단테(Dante)의 『신곡』 삽화들이다. 이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하다 할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삽화들의 일람을 추천한다. 그의 '신곡 삽화'들을 보고 있자면, 언제나 피부 아래로부터 돋아오르는, 나의 친숙한 소름들. 아래 책은 도버 출판사에서 간행된 도레의 '신곡 삽화' 화집이다. 조용히 펴보고 있자면, 문득 품에 안고 싶은 책.



▷ The Doré Illustrations for Dante's Divine Comedy, New York: Dover, 1976.

   

▷ 땋은 머리를 한 귀여운 뒷모습의 선재동자 앞쪽으로 자애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얼굴의 보현보살이 앉아 있다. 1334년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사경의 변상도와 그 한 부분. 선재동자의 이야기는 구법(求法)의 여정에 대한 하나의 은유이다. 이 은유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은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린아이'의 은유일 것이다. 니체의 낙타는, 어떠한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사자를 지나 어린아이로 화(化)하는가. 또한 예수의 어린아이(마가복음 10장 13-16절, 마태복음 19장 13-15절, 누가복음 18장 15-17절)는, 이 선재동자와 어디서 헤어지고, 또 어디서 만나지는가. 이러한 '접붙이기' 또는 '흘레붙이기'는 과연 가능한가, 아니 가능할 수 있는가, '유희'로 읽혀질 것을 무릅쓰고 '적확히' 말하자면, 가능할 수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 이러한 열주(列柱)의 형식, 반복의 형식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발원과 염원의 순수함과 집요함의 끝을 바짝 따라붙는, 마치 등이 붙어버린 쌍둥이처럼 따라붙는, 몸 입음의 경박함과 지난함, 살아짐[사라짐]이라는 축복과 저주이다.



▷ 14세기 중엽의 대방광불화엄경 사경의 변상도 부분. 윤회, 돌아가는 바퀴.

5)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윤회상(輪廻像)을 종종 헤겔의 저 '매개(Vermittlung)' 개념과 연관 짓기를 즐긴다. '직접성' 혹은 '무매개성(Unmittelbarkeit)'은, 매개를 거쳐ㅡ혹은 '반성(Reflexion)'을 거쳐ㅡ'매개된 직접성'의 형태를 띠며, 이러한 '변형'의 과정은 다시금 일종의 나선형 원환을 그리며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윤회의 바퀴에 대한 '서양철학적'인 해설은 아닐 것인가. '순수한 직접성'은 어쩌면 논리적이거나 형식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며, 모든 '직접성'은 이미 [한 번 이상] '매개된 직접성'에 다름 아닌 것, 그러므로 매개란 그 어떤 것/곳에도 편재(遍在)하는 것ㅡ행여 '편재(偏在)'는 아니겠는가ㅡ, 그래서 곧 매개란 이미 '형식적으로' 그리고 '위치적으로' 이미 하나의 불법(佛法)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 하는 망상 한 자락. '상동적(相同的)으로' 말하자면, 윤회란 결국 저러한 '매개된 직접성'의 집단적 몸 입은[肉化된] 형태, 그 반복적 형식이 취하는 전체적 도상(圖像) 내지 조감도(鳥瞰圖)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한 자락. 이러한 일종의 '접붙이기' 내지 '흘레붙이기'는 호프마이스터(Hoffmeister)의 편집본과 임석진 선생의 국역본을 통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고생스럽게 읽었던 나의 개인적인 독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나, 이러한 경험이 비단 '한국사람'으로서 헤겔이라는 '서양철학'의 거인을 읽는 '독특한' 경험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일종의 '민족적 보편성' 위에, 오히려 이 지극히 '한국적인' 경험의 '독특성'이 놓여 있다는 느낌이다. 다시 한번 묻지만, 이는 과연 '가능한' 형식일 수 있을 것인가.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rsg. von Johann Hoffmeister), Hamburg: Felix Meiner, 1952.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rsg. von H.-F. Wessels und H. Clairmont), Hamburg: Felix Meiner, 1988.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Hegel Werke Band 3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6.
*) 소장하고 있는 『정신현상학』의 독일어 판본은 세 가지이다. 이 중 가장 오래 된 호프마이스터의 편집본은 정본이 아닌 복사본인데, 낡고 색이 바랜 표지가 그리 얼마 되지도 않는 세월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대학에 갓 입학했던 해의 어느 봄날, 광장서적의 한 구석 서가에서 구입했던, '내 자신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자 '과제'였던 셈. 실은 나의 선배들도 1952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의 복사본을 돌려보며 헤겔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 호프마이스터의 편집본은 현재까지도 '일독'은 거쳐야할 만큼 권위 있는 판본으로 남아 있다. 이후 1988년에 다시 마이너 출판사에서 베셀스와 클레르몽의 편집으로 새로운 판본도 출간된 바 있다. 현재는 주어캄프 출판사의 20권짜리 헤겔 저작집(그 중 3권이 『정신현상학』) 또한 빈번히 이용되고 인용되고 있는 추세.



▷ 헤겔, 『 정신현상학 I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88.
▷ 헤겔, 『 정신현상학 II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88.
▷ 헤겔, 『 정신현상학 1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5.
▷ 헤겔, 『 정신현상학 2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5.
*) 임석진 선생의 무쇠 같은 학자적 끈질김에 대해선 더 이상 첨가할 말이 없다. 일독을 권할 뿐이다. 과거 분도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온 이후, 1988년에는 지식산업사에서, 2005년에는 한길사에서, 각각 개역판이 출간된 바 있다. 소장하고 있는 판본은 지식산업사판과 한길사판.



▷ 김상환, 『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 창작과비평사, 2002.

6) 예를 들자면, 사실 이러한 종류의 '접붙이기' 또는 '흘레붙이기', 일종의 상동성(相同性)에 대한 확인으로서의 '동서접합'은 의외로(?)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는바, 김상환 선생의 저서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가 드러내고 있는 이러한 접합의 '기본적 시각'에 대해 소량의 희열에 따라붙는 다량의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저러한 [민족적 상황의] '독특성'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ㅡ그렇다면 이 '본능'이란 '코스모폴리탄적'이라고 할 텐가?ㅡ반발심 내지 방어심리 때문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일례로 김상환 선생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궁극의 존재론적 사태가 어떤 끈운동이라는 예감, 우리는 그 예감의 저편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단정할 수 없는 사태가 묘하게 동서 존재론을 함께 엮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 사태에서 예감되는 끈을 존재론적 계사라 이름한다면, 동서 존재론의 역사는 모두 그 계사를 재전유해온 역사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오늘날 물리학 분야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계획으로 출현한 초-끈이론도 이 재전유의 계보에 속하는지 모른다."(8쪽) 김상환 선생은 여기서 최소한으로 따져도 세 가지나 되는 끈들ㅡ동서의 계사 존재론, 그리고 초끈이론ㅡ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보려는 어떤 실마리ㅡ이 역시 '끈'의 비유가 아닌가ㅡ를 잡아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평가는 물론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다만 떠오르는 잡생각 한 자락을 미친년 머리 풀 듯 풀어놓고 지나가자면, '계사(繫辭/繫絲)'라고 하는 단어 자체 역시 이미 저 '끈'의 은유가 취했던 '성공적인' 재전유의 한 사례가 아니었던가. 말하자면, '대통합이론'을 갈구하는 이데올로기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는, 숨겨진 물음 한 자락, 드러내놓기.

       

▷ 『 사경변상도의 세계: 부처 그리고 마음 』, 국립중앙박물관, 2007.
*) 위 사경변상도 사진들의 출처이기도 한, 이번 전시회의 두툼한 도록과 브로셔(brochure). 이 둘 모두 첩장본 사경의 디자인을 차용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실 브로셔는 언제나 '첩장본'의 모습이었던 것을! 도록의 말미에는 논고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초입에 놓인 박상국 문화재위원의 글이 개괄적 해설을 대신하고 있다. 이들 논고 중에서도 특히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사경의 서체가 지닌 서풍(書風)에 대한 이완우의 글과 사경에 사용된 사경지(寫經紙)에 대한 천주현의 글이다. '잡학'에 대한 나의 개인적이고도 고요한 열광이 스멀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 박상국, 『 사경 』, 대원사, 1990.
*) 사경에 대한 일반적인 개설서로 추천하고 싶은 작은 책. 위 도록에 수록된 박상국의 글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요약본으로 볼 수 있다. 덧붙여, 대원사에서 발간되고 있는 이 '빛깔 있는 책들' 총서는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매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귀여운 '실용서'들로서, 관심 있는 주제에 맞는 일독을 권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총서에 속해 있는 '불화 그리기', '신장상', '보살상', '지옥도'에 대한 책들이 유용했다는 팁(tip) 한 자락도 첨언해둔다.



▷ 위 책에 수록된 도판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사경들 중의 하나. 수려하고 호화로운 사경과 변상도들의 틈 사이로, 백지에 틈 나는 대로 틈틈이 써내려간 듯한, 범한(梵漢) 병기의 이 희멀건 조선시대 '사경' 한 자락은, 저 구겨진 백지만큼이나, 딱 그 만큼이나, 아름다웠다는 인상.

▷ 심재열(엮음), 『 초발심자경문 』, 보성문화사, 1986[재판].

7) 최근 일고 있는 '학력 위조 고백'의 대열에 얼마 전 '동참'한 한 스님에게서, 나는 어린 시절 한문을 배웠다. 1986년에 재판이 나왔던 저 심재열 선생의 책을 교재로 삼고서, 어린 몸의 나는 나만큼이나 작고 낮은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아, 이른바 불법(佛法)의 한역(漢譯)에 처음으로 입문했었다. 한자는 신기하고도 광대한 문자라는 사실을, 어린 나의 머리로써도, 조금이나마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게 있어 '외국어'라고 하는 '외부성'과의 첫 만남이었다. "부초심지인(夫初心之人)은,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하고, 친근현선(親近賢善)하며"로 시작되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나는 아직도 입 속으로 우물거릴 수 있을 정도이다(이 지극히 '유교적인' 글에 비하자면,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내뱉는 공자의 말은 또 얼마나 '불교적'인가). 그 당시 이 스님이 운영하던 작은 선원은 낡은 아파트 상가의 한 구석을 차지한 허름한 곳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다고 했던가, 지금 그 '선원'은 우면산 한 자락을 쥐고 틀어앉은 거대하고도 현대적인 사찰이 되었다. '육조 혜능은 까막눈이었다'는둥, '不立文字'라는둥, 최근 이 스님의 죄를 질타하는 시선이 점잖으면서도 따끔하다. 분명 그 말이 맞다,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간 승려의 길에서 학력이란 또 그 무슨 미망(迷妄)이란 말인가. 그러나 돌이켜보자면, 일종의 종교적 '비즈니스' 혹은 '자본화된' 종교의 입장에서, 그러한 위조된 학력이 교세의 확장에 미쳤던 '구조적' 영향은, 저런 점잖은 질책만으로는 해결되지도 해소되지도 않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 그랬을까? 사람을 미워해야 할 것이 아닌가, 죄를 지은 것도 사람이고 미운 것도 결국 사람 아닌가? 단순히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해야 한다는 말은 무책임한 '구조주의'에 해당한다. 하지만 죄 대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안타깝고도 아름다운[앓음다운] '인본주의'이다. 사람을 미워해야만 용서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모든 종교의 '용서'와 '화해'의 담론에서 가까스로 얻을 수 있는 전제는 바로 이것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사람을 사랑해야만, 그 죄를 미워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의 '인본주의'를 배경으로 함으로써만ㅡ이것은 결코 '당위'가 아니라 하나의 '가능조건', 곧 '인간의 조건'일 텐데ㅡ'구조주의'는 저 가공할 추상력을 다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용서'와 '구조'의 담론이 '저들'의 변명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며, 또 그래서도 안 된다.

8) 이 글은 단지 한 전시회로부터 촉발된 '잡생각'들의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글이라고 '잡스럽지' 아니 할까. 말하자면, 나는 다시금 저 '분류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이 글은, 내 글을 다시 '재귀적으로' 차용하자면, 단지 "한 전시회로부터 촉발된 잡생각"의 한 묶음이라는 의미로서만, 바로 그런 의미에서만 '미술과 비문증'이라는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 그러나 장르의 분류법과 병증의 목록을 결합한 나의 카테고리란,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더욱, 저 '비문증(飛蚊症)'이라는 병증을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안구(眼球) 위로는, 기다란 벌레의 사체(死體)들과 속된 분진(粉塵)들이 날아다니는데, 종일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그 모든 부유물(浮遊物)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도 아닐 터. 그러므로 '비문증'의 이 잡스러움이란, 일종의 천형(天刑)이라고 해야 할 것, 사경(寫經)을 논하다가 사경(死境)을 헤매는 꼴이 아닌가.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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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cinema 2007-08-2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님의 정성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아참! 한길사의 "정신현상학"은 믿을만한 번역인가요?



람혼 2007-08-2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약한 정성이지만, 꼼꼼히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임석진 선생의 헤겔 국역은 "믿을 만한" 번역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만 이번 '3차' 개역판(한길사판)에서는 '의역'이 조금 더 많아진 듯한 느낌입니다. 원문과 함께 보신다면 지식산업사판을 추천합니다.

philocinema 2007-08-2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답글 감사드립니다.

근데 주책 맞게도 람혼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지 궁금해집니다. ^^

람혼 2007-08-26 02:01   좋아요 0 | URL
risper3 님의 소중한 댓글에 더 감사드립니다.
직종은, 비정규직 예술노동자, 정도로 해두죠.^^

2007-08-26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7-08-26 02:17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대로 대부분의 사회과학 서점들이 많이 없어지긴 했어도 몇몇은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날이오면, 논장, 장백 등과 비교할 때 광장은 전형적인 사회과학 서점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만). 다만 '학교'라는 공간 근처에 가본 지가 참으로 오래 되어 현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소탈한 성격의 담임 선생님께서 "넌 나중에 할 거 없으면 뭐 할래?"(아무래도 걱정이 되긴 되셨던 모양입니다...)라고 물으시길래, "사회과학 서점이나 하나 열죠 뭐."라고 대답했다가 출석부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어지는 구타의 변: "굶어죽기 딱이다."

philocinema 2007-08-2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 감사합니다.
'비정규직'에서 가슴을 후비는 씁씁함이,
'예술'에서 가슴의 씁씁함을 쓸어내는 시원함이,
'노동자'에서 저와 손잡은 님의 따스한 손기운이 느껴집니다.

람혼 2007-08-2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을 '훈남화'하는 댓글, 감사합니다.^^

2009-06-04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tman00 2009-06-1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답글 감사합니다~

람혼 2009-06-11 14:40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좋은 하루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