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 변주 - 이 땅의 청소년들이 지금, 여기에서 건져올린 10개의 주제를 책에서 걸어나온 저자들과 경쾌하게 변주하다
인디고 서원 지음 / 궁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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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만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 태종대도 PIFF도 부산에만 있지만, 그 바다와 영화제는 어디에나 있다.

바로 허아람이란 대담한 여성이, 중소형 서점이 문닫는 이 괴물-자본주의 시대에 과감하게 <청소년 인문 서점>이란 구호를 내걸고 조그만 공간에서 <인디고서원>이란 서점을 열었다. 당연히 돈버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선생님의 애정과 열정과 책에 대한 사랑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2년이 된 일인데... 나는 관심만 가졌을 뿐, 찾아갈 생각을 놓고 있었는데, 인디고 서원에서 작가들과 대화를 나눈 기록을 <주제와 변주>라는 이야기책으로 펴냈다.

이 책을 읽어보면, 딱 알 수 있다. 인디고 서원이 이 땅에 필요한 이유를... 촌구석에 쳐박혀 있는데도 빛이 나는 이유를... 인디고 블루의 생각대로 스승을 능가하는 청년들의 형형한 눈빛이 살아 있음을.

이런 자생적인 운동이 이 땅의 곳곳에서 물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혁명은 언제나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할 일이다. 혁명은 늘 아래서, 가장 약하고 가장 버림받은 곳에서 싹트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말하고 싶은데 자기를 둘러싼 벽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 자기의 뺨을 내리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서로에게 의사표시를 미루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뺨을 내리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말할 수 있도록 벽을 허물어 드리겠습니다...

아, 한국 사회가 얼마나 허울만의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가를 이 젊은이들은 온 몸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말만으로 토론 문화를 이야기하고, 학급 회의를 떠들어 댄 <질서와 권위>에 물든 우리들에게 그들의 뺨때리기는 신선할 수밖에 없다. 나부터 뺨을 때려야 한다. 내 뺨을 때리고, 네 뺨을 때리자.

기탄없는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청소년들의 도덕적 품성과 예술적 감성 그리고 비판적 지성을 키울 수 있는 행사.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것이 혁명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 하나 꽃 피어
꽃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이런 시를 뜨거운 마음으로 읽을 줄 아는, 아니 자발적으로 읽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잡아 두고, 맨날 한용운이나 이육사를 떠들어 대는 국어 교사는 반성해야 한다.

철학이란 것이 '황혼에야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뒷북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부엉이가 <여명에 귀소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의 시선을 가질 수 있음을 배우는 청소년들은 얼마나 든든한가 말이다.

하루 하루 짜여진 생활과 쥐어짜는 성적의 무한 경쟁 속에서 삶을 <초월>하지 않고 니체처럼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 <포월, 감싸안고 넘어가는 抱越>의 삶을 이야기할 줄 아는 청춘은 얼마나 부러운가. 날마다 술에 쩔어서 토악질이나 하던 최루탄 가스 풍기던 나는 부끄럽고, 사랑스러워 두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고, 심장이 불뚝거려서 한참을 진정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나는 날마다 먼지 뒤집어쓴 책이나 뒤적거리고 있는 낙타같은 선생일 뿐이고...

강수돌 선생님이 <권위를 일부러 만들지 않는 선생님, 공부하는 선생님, 희망을 이야기하는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냥 전교조에 조합비만 내는 교사는 낡은 교사다. 권위를 거부하고, 끝없이 공부하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서 학교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살아 움직이는 진짜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 나는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 아이들 수백 명을 만날 수 있는 내가 그들과 희망을 나누지 못한다면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운 나를 손잡아 일으켜 주기까지 하는 책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던 어느 철학자의 말과, 작은 것에서 힘이 나온다는 강수돌 교수의 말은 어떤 집단도 내게 주지 못하던 힘을 북돋워 준다.

교육 희망을 모토로 내건 전교조란 조직이 너무 낡아버려 나는 늘 불만이었다. 그 조직은 <나>로 인해 존재하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늘 그들을 탓하며 희망을 접고 투덜대는 불평분자였다. 아이들이 후지다면서 늘 아이들을 탓했다. 내가 희망이 되고, 그들이 희망인데 그걸 잊고 살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닌 줄 안다. 희망을 갖고 교실에 가도, 금세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는, 분노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데는 0.1초의 시간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렇지만, 나도 나의 주제를 안고, 때론 시처럼 감미롭게, 때론 음악처럼 따사롭게, 때론 냇물처럼 찰랑거리며,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변주곡을 스스로 즐기는 길을 느긋하게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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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2006-10-19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긋하게, 느긋하게... 아 참 어려운 걸음...

글샘 2006-10-2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위한 주제와 변주, Theme and variations... 좋지 않나요?
느릿하고, 느긋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