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칼럼]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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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민주노총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본 김에 뜬금없는 용기를 내본다. 사형수, 그들이 다 강동원처럼 잘 생겼거나 한마디 말을 해도 심금을 울리는 말만 했다면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는 사형제도의 운명이 좀 달라졌을까.

내가 아는 사형수는 생긴 것부터가 엽기였고 한마디 말을 해도 꼭 정나미 떨어지게 했다. 저 사람이 유명한 노조위원장이었다면 생긴 거 가지고 환멸을 느꼈을까? 그의 말 한마디로 그 인간 전체를 싸잡아 부정했을까? 시시각각 내 쪼잔한 인류애를 모진 시험에 들락거리게 하던 사람이었다.

이름보다는 5010번이라는 수번으로 불리던 사람. 정부와 공모를 해서 남편을 독살한 사람. 그 천인공노할 범죄의 주인공이 내가 들어간 방에서 어서 오라고 반가이 맞아주며 자기 옆에 이불까지 손수 펴주며 친절을 베푸는 바람에 자세 한 번 못 바꾸고 고이 찌그러져 첫 징역의 첫 밤을 날로 깠다. 소내투쟁 때면 오랏줄로 똘똘 말아 징벌방에 쑤셔 박아 놓고 죽 한 그릇씩을 던져주고는 식구통으로 막대기를 넣어 내 몸을 이리저리 찔러보는 방법으로 생사를 확인하던 교도관들보다 이제야 말이지만 이 여자가 훨씬 더 무서웠다.

묶여 있으니 혓바닥으로 죽 그릇을 핥고, 입은 채로 싸는 주접스런 상황에서도 막대기로 찌르면 꿈틀거리며 생존을 확인해주던 징벌방에서 나는 참 많이 외로웠다. 이러다 죽으면 그걸 누가 알까. 그 징벌방에서 푸대자루처럼 끌려 나온 날, 내가 제일 먼저 들었던 말은 5010번이 내 이름을 부르며 며칠을 울었단 얘기였다. 아, 내가 그러고 있을 동안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사지가 풀리긴 했으나 묶여 있는 거랑 진배없어 손가락하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똥과 오줌으로 벌창이 된 내 몸을 닦아주면서, ‘살아있어서 참 좋다. 참 고맙다’는 말을 계속 주절거리며, 눈물 콧물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걸로 보아 충분히 진심으로 사료되었다. 그 눈물이 한 방울씩 내 몸에 떨어질 때마다 촛농처럼 뜨거웠다.

부모 잃고 가난한 숙부의 집에서 어려서부터 갖은 노동을 하며 매질을 밥으로 욕을 반찬으로 자라온 사람. 숙부의 집을 나와 식모살이를 하던 집에서 열네 살부터 주인아저씨와 아들의 몸뚱아리 밑에 밤마다 번갈아 깔렸다던 사람. 온종일 이어지던 숙모의 부지깽이 매질보다는 차라리 그 짓이 나았다던 사람. 남이 해주는 밥은 징역 살면서 처음 먹어본다던 사람. 공범이 돼버린 정부에게서 받은 머리핀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 받은 유일한 선물이었다던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았다던 사람.

내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던 날. 두고 온 딸내미 이름을 수백 번도 더 명토 박으며 그 아이를 꼭 좀 찾아봐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사람. 진숙 씨는 아는 사람 많으니까 탄원서를 꼭 좀 넣어달라던 사람. 천명쯤 서명을 받으면 나라에서 살려주지 않겠냐던 사람.

윤수가 죽던 날, 그도 죽었다. 짤막한 신문기사를 통해 그의 형집행 소식을 접하면서야 탄원서를 넣어주겠노라던 도무지 지킬 길이 없어져버린 그 약속이 생각났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는 허탈한 질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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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27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우행시는 영화가 책보다 낫더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 이분의 이야기가 가슴 저리게 합니다. 가져갈게요...

글샘 2006-10-3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나라죠.
노래방 도우미를 없앤다는 기사를 읽고, 아, 이 나라는 희망이 없구나 했습니다.
아직도 낮은 사람들의 의식은 까뭉개고,
높은 사람들은 최대한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나라...
고등학생들은 억압하면서, 성매매는 세계제일의 비참한 나라...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