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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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다. 한자로는 망양지탄이라고 한다.

인생에선 가 보고 싶은 길이 여럿 있다. 그렇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면 한 가지 길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무렵 가지 못한 길에 대해서 늘 아쉬움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우연히, 아주 우연히 지금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영어를 가르치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인데... 원서 쓸 때, 유학가기 어려우니 국어교육과로 가라는 단 한 마디에 과목이 바뀌어서 결과적으론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내 발음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장영희 선생이 영미 시를 가르치면서 나름대로 자기 이야기를 덧붙여 조선일보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조선'이란 고유명사가 맘에 안 들긴 하지만, 장영희 선생을 보아 넘어간다.

시를 읽는 맛은 역시 '단어와 단어를 통해 떠오르는 새로운 느낌'을 즐기는 데 있다.

여느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쓰지 않는 단어들을 쓰는 이들의 마음은 늘 색다른 면이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 학자들은 그걸 보고 <낯설게 하기>라고 하고, <앞으로 내세우기, 전경화>라고 하기도 한다.

밋밋한 우리 언어들을 새롭게 하고,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것이 시란 말이다.

이 책에서 <시 작법, Poetica>을 읽어볼 만 하다.

A poem should be palpable and mute
As a globed fruit,
Dumb
As old medallions to the thumb...
A poem should be wordless
As the flight of birds...
A poem should be equal to
Not  true.
For all the history of grief
An empty doorway and a maple leaf
For all
The leaning grasses and two lights above the sea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

시는 둥그런 과일처럼/ 만질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 / 엄지 손가락에 닿는 오래된 메달들처럼/ 딱딱하고/ 새들의 비상처럼/ 시는 말을 아껴야 한다. / 시는 구체적인 것이지/ 진실된 것이 아니다. / 슬픔의 긴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 /사랑을 위해서는/ 비스듬히 기댄 풀잎들과 바다 위 두 개의 불빛/ 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할 뿐이다.

시의 구체성을 요렇게 잘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The man and the child/ 어른과 아이

It is the man in us who works;
Who earns his daily bread and anxious scans
The evening skies to know tomorrow's plans;
It is the man who hurries as he walks;
Who doubt his neighbor and who wears a mask;
Who moves im armor and who hides his tears...

It is child in us who plays;
Who sees no happiness beyond today's;
Who sings for joy; who wonders, and who weeps;
Open and maskless, anked of defense,
Simple wiht trust, distilled ofall pretense,
It is the child in us who loves.

일하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어른/ 밥벌이를 하고 내일을 게획하려/ 근심스럽게 저녁 하늘을 훑어 보고/ 걸을 때 서두르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어른/ 이웃을 의심하고 가면을 쓰고/ 갑옷 입고 행동하며 눈물을 감추는 것은 어른./ 노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아이. / 미래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기쁨으로 노래하고, 경이로워하며 울 줄도 알고/ 가면없이 솔직하고 변명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잘 믿고 가식도 전혀 없이, / 사랑하는 것은 우리 속에 사는 아이.

계산 빠른 머리는 언제나 뻔히 아는 것을...
가슴은 늦게야 배운다는 것, 그것만 가여워 하세요...

이렇게 어른이 되면서 뻣뻣해 지는 가슴을 안타까워하는 시들로 가득한 책이다.

생일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말고도, 사랑을 찾게 된 날이라고 하는 장영희 선생의 말처럼,
세상은 그저 거기 있기도 하지만, 내가 새롭게 발견하는 그 날로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시를 쓰고, 그걸 읽고, 세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려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일게다.

인생의 8월을 발견한 시인과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작가는 인생을 보는 눈이 얼마나 매서운지...
조금씩 성숙하는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로서의 8월에,
갑자기 찾아온 들뜸, 열기의 축제로서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르는 크리스마스를 조합한 시리고도 신선한 눈매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시 시의 힘이 아닐까 한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영미시를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이렇게 자기 분야의 전문적 소재를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가벼운 책들이 21세기 문화 코드로 자리잡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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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6-09-0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사기를 망설인 책인데 사봐야겠군요.

글샘 2006-09-08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들이 많더라구요. 기회가 되시면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