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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ㅣ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표지는 손택의 주장을 적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야의 그림인데, 터번을 쓴 놈 하나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교수형 당한 이의 시신을 지그시 올려다 보는 그림이다.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매일 엽기적인 사건, 사고가 인터넷을 통하여 방송되며, 엽기적인 이미지들이 올라온다. 과거처럼 타인의 알몸을 훔쳐보는 관음증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이다. <엽기>란 말은 이미지 시대에 떠오른 말이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도 엽기이고, 지저분해 입에 담기 힘든 것도 엽기이며, 상식을 깨는 것도 엽기라는 말로 쓴다.
엽기 중에 시신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있다. 이것은 오랜 이야기다. 전쟁터의 시신, 부상자, 기아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기자들은 이미지로 남겨 두었다. 그런데 그들의 고통을 통해 그 이미지가 던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아는 생산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분배가 잘못 되어서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런 사진을 왜 찍는단 말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잔인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것이란 전제를 이 책에서는 깔고 있다. 손택은 그걸 반성하라고 하는 말도 아니고,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상한 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표지 그림으로 돌아가면, 목졸려 죽은 이의 정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터번을 쓴 녀석은 죽어가면서 발기되고 사정하는 장면을 느긋하게 관찰하고자 하는, 마치 만주에서 맹활약을 했던 731부대의 마루타와 같은 광경이 아닐까 한다. 오죽하면 그 소중한 관동군 부대의 자료를 얻기 위해 미군이 그렇게도 일본에 관대했다지 않은가.
작년에 달리 회화전이 열렸을 때, 달리의 스케치 중에서 목졸려 죽는 이의 발기된 모습과 사정하는 장면, 혀를 길게 뽑은 장면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아, 인간의 본성이란 이토록 잔인하고 지저분한 것일까? 진정 성악설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을까?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인간의 심리는 <정의>나 <폭로>의 그럴싸한 미명으로 치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 고통이 타인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일때, 그것을 보여주고 싶겠는가?
정신대 할머니들이 솔직히 털어놓기 힘들었던 것이 그런 것이고, 정신 나간 이승연이가 돈벌이를 하겠다고 발광을 했던 것도 인간의 그런 속셈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펜트하우스나 허슬러의 홀딱 벗은 여인네는 이제 인터넷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시시한 것이 되고 말았다. 더 짜릿한 장면은 좀더 강한 타인의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다.
진중권이 빨간 바이러스에서 <효순이와 미선이> 사진전과 <미군에 찔려죽은 창녀> 사진을 전시하는 것을 마구 깠던 적이 있다. 80년 광주의 사진을 들이미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광주는 전두환이가 죽으라고 막았던 사진이기 때문에 충분히 폭로했어야 하는 사진이었단 거다. (하긴 그 사진들에 보면, 전두환이 갈아 마시자...란 구호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효순이와 미선이 사진은 다 밝혀진 범죄인데 과연 그 아이들의 허연 뇌수가 드러난 사진을 전시한다고 해서 <주둔군 지위 협정>이나 <미군의 폭력>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인지를 문제제기한 것이다. 난 처음에 참 까탈스레 군다고 생각했더랬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진중권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었다.
폭력은 폭력의 피해자를 <사물>로 뒤바꿔 버린다. 광주에서는 피해자를 <폭도>로 몰아버렸고, <빨갱이>로 매도했다. <빨갱이>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물 아니던가.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라서 <삼청교육대>를 운영하면서 법 아닌 법을 휘둘렀던 광기의 시대였다. 내가 80년대에 경찰서에 몇번 가서 얻어터진 것도 <사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언제 <사물>로 둔갑할 지 모르는 정신적 광란 상태에 늘 빠져 있다.
FTA에 대한 기대를 잠시 내보내고, 그 외의 시간에는 붉은 악마 바이러스에 전염되어버린 텔레비전. 이 바리러스를 치료할 백신은 구할 수 없고, 오로지 확산 일로에 있는 빨간 바이러스. 빨간 바이러스의 확산에는 빨간 신호등이 없다. 오로지 푸른 신호등으로 신호를 조작하는 <검은 손>이 있는 것이다. 그 검은 손 이면에는 보수 꼴통과 미 제국주의자들의 음흉한 웃음이 자리하고 있다. 좌파 자유주의자라고 착각하는 보수 기회주의자들의 정권도 주체를 못하고 꼭두각시 놀음에 빠져 있다.
하긴, 조중동, 타워팰리스, 대한민국 1%, 기득권자들에게는,
농촌에서 지렁이들이 살려둔 흙을 만지며 봄을 파종하는 농부들의 마음이나,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의 가난한 심사와,
어떻게 들어간 직장인데, 금세 잘려버린 철도 여승무원들의 파업 따위는,
결국 FTA가 되든 말든 자기네들은 상관 없는데, 아니 성장률이 올라갈테니 지들은 이익이겠지...
<타인의 고통>은 고려의 대상이 아닐테지.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