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 영원한 진리의 말씀
김달진 / 현암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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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을 헌병대에서 했다. 우연히 행정병으로 빠져서 그런 험한 곳에서 살아본 것이다.
영창 안에는 미결수 방과 기결수 방의 두 칸이 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책은 성경과 불경 같은 책으로 제한된다.

덕분에 나도 법구경을 많이 구경했고, 성경도 여러 차례 읽을 수 있었다. 모두들 바쁜 행사가 있어서 캄보이라도 나가거나, 몽땅 체육대회를 나가거나, 사격 훈련이라도 나가는 날, 혼자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조용히 책읽을 기분이 난다. 그럴 때 손으로 베껴가면서 읽었던 책이다.

여러 번 읽은 책이지만, 오랜만에 읽는 감회는 색다르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 평생 다하도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어도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한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는 것처럼.

아, 찔린다. 어리석은 나는 날마다 수백 명의 천사들 속에 살면서 국맛을 모르는 숟가락처럼 멋대가리 없이 살고 있지 않는지... 오늘은 비마저 세차게 내리는데, 십오 년 전에 가르친 제자가 메신저로 언제 술 한잔 하자며 멀리서 연락이 와서 그나마 맘이 좀 덜 젖는다. 제자가 없는 교사는 영락없이 국맛 모르는 숟가락 신세다.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다루며
물 대는 사람은 물을 끌고
목수는 나무를 다루며
지혜있는 사람은 자기를 다룬다.

아, 얼마나 큰 지혜가 있어야 나를 다룰 수 있단 말인가.

깊은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여
다시는 사는 집을 즐겨하지 않느니
기러기가 놀던 못을 버리고 가듯
이 세상의 사는 것을 버리고 간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짐을 없애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그런데도, 또 책이 쌓이고 짐이 늘어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살덩이조차 거북해 하면서 말이다.

熱無過淫 음욕보다 지나친 불길 없고
毒無過怒 성냄보다 지나친 독 없으며
苦無過身 내몸보다 지나친 고통 없고
樂無過滅 고요를 지난 즐거움 없다.

꿈속에서도 떠오르는 삿된 음욕으로 저지르는 어리석음이란... 한국 사회의 음탕함이 도를 지나친 것이 아닐까? 내가 음탕함을 저지르지 않는 데서 시작할 일이다. 성냄의 독은 다스리기 어렵고, 내 몸, 나라는 상, 내 아이라는 섣부른 생각이 고통을 불러온다. 적멸의 경지를 얻는 것이 즐거움임을 책으로나마 읽는다...

인생이란, 큰 비가 쏟아지는 광야를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
달려 보아도 허덕거려도 비에 젖지 않을 수는 없는 것.
먼저 젖기를 각오한다면,
그리하여 비를 맞으며 유유히 걸어간가면,
젖기는 일반이나 고뇌는 적을 것이다.

빗방울 보배되어 더욱 생겨나 빈 공중을 가득 채우지만
어리석은 무리는 제 그릇에 따라 이로움을 얻을 뿐.

작고도 작은 존재로 살아가는 일의 이치를, 책에서나마 구하는 것은 비오는 날의 행복이다.

빗방울이 나의 스승이다. 내 그릇을 채우시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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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6-0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내린다.
하지만 비는 나를 한 방울도 젖게 하지 못한다.
그 비에 젖지 않는 나.
내가 있음이다.

법구경을 읽는 선생님의 마음으로 빗줄기를 타고 다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