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설렘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파멜라 심스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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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선물로 주는 책.

스승의 날, 주변에 아는 선생님이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 준다면 좋겠다. 교사의 소명 의식을 일깨워서 아름다운 교단을 힘들다고만 여기지 않고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다.

스승의 날 무렵이면, 교사들은 죄인이 된다.
선정적인 언론의 고발을 곧이곧대로 듣자면, 스승이란 말도 정말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교사이면서 교사의 속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학생들과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교직을 택했다는 것.
가난한 가정 형편에 떼밀려 무료로 다니는 사범대학을 선택한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도,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과 감동적인 만남을 맺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는 <초보 교사> 시절의 따스한 마음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직이 주는 고지식한 이미지에 물들고, 선배 교사들의 한탄에 껍질이 굳어지고,
아이들의 무기력에 같이 지쳐버리고, 세상의 백안시에 오기가 생긴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은 지금 연금을 계산하면서 계산기를 두들기는 노교사들도 젊은 시절 아이들을 위해 무심히 베풀었던 온정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광기에 젖었던 군사 문화의 교육>을 비판하면서 교사 퇴출과 교사 평가를 말한다. 지난 교육에 숱한 폐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교육이 이루어 온 것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교육>에 희망을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남을 이기려는 경쟁심만을 부추기는 교육이 일어나는 학교 현장, 학원에서는 경쟁을 부각시키지만, 학교에서는 인간들이 사는 공간임을 말한다. 그러자니 학원의 목소리가 현실에 부합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옳지 않음을 모두들 알지 않는가?

이 책은 교육 과정에 따라 수업을 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교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교사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한 면만이 아닌, 다면적 접근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교육계에서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5차원 전면 교육과도 맥락이 통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아래서 모두 평등하게 위대한 소우주인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부처인 존재들을 가르치는 데는 '사교육'도 '과외'도 필요 없다. 초심을 간직한 교사들과 스스로 발전하려는 학생들로 충분한 것이다.

조금 막연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희망을 주는 책이다.
어둡다고, 희망까지 버려서야 되겠는가.

한국의 교육이 어둡다고만 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우리'가 빛이 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용기를 주는 책이다. 밑줄을 따로 치기 싫어서 아래 적어 둔다. 아름다운 말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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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우리가 학생들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생들이 지닌 잠재력의 작은 일부를 볼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생들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대하지만, 틀릴 때도 많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과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교과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만드는 순간 구식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것은 영원히 그들을 따라다니는 문제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배려하고 감성적으로 후원하는 관계를 학생들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뭘 가르치든 소용이 없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좋은 교사’와 ‘위대한 교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좋은 교사는 학생들에게 읽고, 쓰고,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는 학생의 마음과 몸, 그리고 영혼과도 관계를 맺는다. 위대한 교사는 학생을 섣불리 단정짓지 않고, 자기가 보살피는 모든 학생들을 공평하게 배려할 줄 안다.


학생에게 등급을 매기는 대신, 학생들에게 성적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제시해야 해. 노력하는 아이에게 나쁜 점수라고 벌을 주거나  창피를 주지 말고, 하고 있는 공부를 더 잘 할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다.

일단 학교를 떠났는데, 자신의 발전을 평가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자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공부의 목적을 세워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할수록, 학생들을 수동적인 학생에서 능동적인 학생으로,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과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학생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다.

교사의 생각은 습관적이기도 할뿐더러 효과도 없다. 학생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목표와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면, 다시 말해 자신의 실패와 성공에 대한 권한을 그들에게 부여하면, 그들에게 운명이라는 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이런 깨우침은 <자존심>을 키우는 데 요긴하다.

“어느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해서 고귀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진정한 고귀함은 과거의 너 자신보다 더 우월해지는 데 있다.”


교사들이 교실에 있어야 했던 까닭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지 연금을 기다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교사의 희망은 학생들이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이루도록 도와 주는 것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랬다. 학생들에게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데 필요한 안정감을 주는,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를 돌보아 주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실패란,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일 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성공할 때까지 계속 노력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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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6-05-1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의 날 선물은 물론이거니와 꽃도 노래도 편지도 금지했습니다. 그냥 아무런 날이 아닌 것처럼 하루를 보내자고 아이들과 약속하고 알림장에도 써 줬습니다.
빨리 스승의 날이 없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스승의 날을 보고 교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 한편으론 아이들이 있어 우리가 직업을 가질 수 있으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감사해야겠지요._()_

석란1 2006-05-1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의 선물 풍속도가 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

글샘 2006-05-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스승의 은혜... 노래가 좀 구시대적이긴 하죠. 아이들의 편지나 선물도 구태의연하고요. 스승의 날 되면 학교 욕하는 기사 실리는 관행도 여전하지요. 아이들과 학교에서 지지고 볶는 건 그대로인데 말입니다. 전두환 시절, 아무 생각없이 만든 스승의 날이 역시 아무 생각없이 변질되고 만 현장입니다.
석란1님... 스승의 날 감동적인 선물도 있습니다. 정말 가난한 아이가 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300원짜리 불티나 라이터 하나를 연습장에 부랴부랴 포장해서 준 선물은 영원히 잊지 못할 선물입니다. 스승의 날 선물하는 이상한 관행은 없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