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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평점 :
미술과 음악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미술이 한눈에 시각적인 압도를 경험할 수 있는 반면,
음악은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미술 작품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야기를 듣노라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서양음악은 특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이야기와 경험이 필요하다.
서경식이 외로울 때 그림을 보러 떠나는 일은 혼자서도 가능했지만,
이런 음악 여행은 아내 F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특활 시간에 옆교실 도서실에 실내악반을 배치해 두었더니
요즘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No.2를 매주 듣는 호사를 누린다.
그의 삶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쿵작작 쿵작작 하는 가벼운 왈츠 리듬 위로 장중하게 흐르는 비감을 들을 수 있다.
무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의 삶의 의지가 들리는 것이다.
서경식에게 윤이상은 또다른 쇼스타코비치일지 모른다.
저 어둡고 서글프고 험난햇던 세월에
윤이상 선생은 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을 작곡하고 있었던 것이다.(196)
아내와 함께 세계 여러 곳의 음악제를 보러다니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클래식에 대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의 '문화'를 중국에서 굳이 '한때의 흐름'이라는 '한류'로 폄하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한국인인 듯한 사람을 발견한 적은 거의 없었다.
클래식음악이 일부 엘리뜨층의 즐거움,
중장년층의 향수의 대상,
성공 스토리만 꿈꾸는 사람들의 지위상승 수단 등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면 유감스런 일이다.
한국사람들도 좀더 자신의 감성을 개방해서 더욱 자유롭게 음악에 관해 이야기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322)
이전 가카의 시대에 음미체를 줄이고 국영수를 늘리도록 고무줄 교육과정을 만들기도 했더랬다.
한심한 일이다.
거꾸로 가는 일.
서경식의 의식 세계는 즐거운 음의 여행에서도 억압된다.
나는 음의 세계와 색의 세계를 즐기는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몸을 두어야 할 곳은 예컨대 한국의 감옥이 그렇겠지만,
음도 색도 없이 치열한 투쟁만이 있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처절할 정도로 고독했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보고 말았기 때문이다.(87)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면 차원이 달라진다.
현실을 잊게 만들기도 하고, 현실에서 유리시키기도 한다.
내 마음이 부르주아적 생활을 동경하는지,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몰랐다.
전자는 결연히 부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후자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62)
나의 대학 시절에도 '음악감상실'은 뜨거운 집회의 현장에서 불과 몇 미터 밖이었다.
대학 광장의 집회 소리가 울려퍼지는 따가운 햇살에서 불과 몇 걸음만 옮기면,
컴컴한 학생회관 1층의 홀에서는 바흐가 흐르고 있었는데,
편안하게 바흐를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개개인의 인생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찍 그 운명이 결정돼버리는 게 아닐까.
그 갈림길은 뭐니뭐니 해도 먼저 음악이나 미술 등에 대한 기호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53)
클래식보다는 민중가요가 우세하던 시기.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라고는
기껏 일본식 뽕짝이거나 팝송 같은 것들이던 나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엮는다는 일은,
지식인의 삶에서 허투루 놓치는 소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