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갈대를 다시 읽는다.

언제부터인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천상병의 귀천을 다시 읽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오세영의 그릇을 다시 읽는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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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3-11-2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가 바로 신경림 시인의 ''갈대''인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신경림시인초청강연회''를 주최하고 난뒤 그분 시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