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고전의 지혜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의 고통은 뜬금없이 시작해서 늘 변하는 데 있고,

또한 인생의 묘미 역시 그렇게 정해진 것 없이 변화해가는 데 있다.

그래서 인생은 흥미롭지만 불안한 것.

 

인생은 잠시 내 육신을 빌려타고 사는 것인데,

속도가 느리다고 불평이고,

위기가 닥쳤다고 불평하며 살게 된다.

그 안과 밖을 명명백백히 말할 수는 없으리라.

이 책의 표지인 <백지 위임장>을 그린 르네 마그리트처럼,

자신이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이 '진실'인지는 불명확함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나도 주역을 몇 권 읽어 봤지만,

이 책을 처음 읽었더라면 좋을 뻔 했다.

어떤 책은 괘를 풀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고,

어떤 책은 이해하지 못하도록 설명이 널을 뛰기도 했다.

64괘를 주르륵 설명하는 책은,

마치 전화번호부를 가~ 씨부터 읽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

전화번호부가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치킨집을 따로 묶어 놓고,

음식업들 안에 치킨집들을 또 주머니에 묶어 요목화 해야할 것이다.

 

이 책의 2권이 나와서 64괘를 설명해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을 정도로 설명이 마음에 든다.

주역은 단순히 점치는 책이 아니다.

 

주역이 전복적 사유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이런 뜻밖의 프레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73)

 

만화 '미생'이 인기를 끌었던 점은,

바둑의 용어라는 프레임으로 인생을 관조한 것도 한몫 했다.

 

인간은 지금까지 익숙했던 길로부터 과감하게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존재다.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익숙한 방식으로

빨리 결론은 내리는 것을 편하게 여기도록 진화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의 뇌는 불안한 상태에 빠진다.

창의적 사고를 결코 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창의적 인간이 극소수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주역은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보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주역의 매력이다.(78)

 

전혀 엉뚱한 프레임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뒤흔들어놓고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 주역점의 가장 큰 미덕.(83)

 

인간의 삶에서 변화만큼 불안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빌게이츠, 주커버그, 스티브잡스'를 훌륭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들이 훌륭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성공해서 훌륭한 것처럼 대접받는 것이다.

주식을 하는 이는 많지만, 대부분 처박는데 누군가는 대박이 난다.

그들은 훌륭한 것처럼 대접받는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하면 망한다.

 

그 불안에 대응하는 프레임으로 '주역'을 들이미는데,

공자라도 그 매혹에 빠지지 않았을 리 없다.

 

주역의 조언이 도움이 되는 것은 그 프레임을 해석하면서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자신은 이미 운명에 끌려 다니는 존재에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끌고 다니고자 하는 사람으로 변(95)하는 데 있다고 한다.

 

새로운 프레임을 앞에 두고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고 보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마음가짐을 먹도록 하는 책이라는 해석은 신선하다.

주역은 제왕의 학문이다.

 

우리는 왕과 같은 수준의 책임의식과 주체성을 가지고 점을 쳐야 한다.

운명을 대하는 태도가 왕과 같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운명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315)

 

말로만 '민주'를 외칠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의 주인임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주역은 좋은 얘기만을 들려주지는 않는다.

당신은 이런 덕을 갖추었는가.

당신은 이런 문제를 파악할 지혜를 갖췄는가.

당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용기와 역량을 갖췄는가.

주역은 아마도 당신에게 매번 이런 성가신 질문을 던질 것이다.(314)

 

남의 인생에 배놔라 감놔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역 따위나 사주명리 따위를 공부하는 것을 하찮게 여길지 모른다.

그렇지만 잘 새겨 들으면, 여느 자기계발서가 마약처럼 단기적인 진통 효과를 주는 데 반하여

지속적으로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주역이 요구하는 덕을 잘 갖추고,

지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때에 맞게 적절히 변화의 물결을 탈 수 있으면

점을 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덕과 지혜와 변화에 대해 자기를 부정할 정도로 무한한 경의를 표하는 것.

이것이 주역을 만든 사람들의 세계관.(294)

 

주역을 점서로 치기도 한다.

그 점치는 방법도 이 책에 나와 있다.

55개의 산가지로 하거나, 동전을 두 번 던져 효를 얻는 방식도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정성을 다해 얻게 된 풀이를 골똘히 생각하여,

삶의 막힌 곳을 뚫을 힘을 얻게 되는 프레임으로써 주역이 기능한다면,

이 책은 삶의 지혜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정조 : 자연 법칙과 인간의 주관 능동성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가?

신복 : 세상에 태평성대만 오랫동안 계속되는 경우가 없는 까닭은

   하늘의 운행이 번갈아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바뀔 때에 사람의 힘이 하늘을 이기기에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하늘의 운행만을 핑계로 삼아 변화와 지킴의 방도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하겠습니까.(260-261)

 

아~ 이런 임금과 신하라니.

가뭄에 소방차를 동원하여 물뿌리기 쇼를 벌인 사진을 뿌린 권력자와 비교하자면

그 격에 차이가 나도 많이 난다.

 

하늘이라고 좋거나 땅이라고 낮은 것만은 아니다.

 

<건괘>에서는 앞서나가는 강인한 리더십을 읽을 수 있고,

<곤괘>에서는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함께 배려하는 협력적 리더십을 읽을 수 있다.(232)

황색 치마를 두르라는 것은

지위나 자리를 목표로 삼는 대신, 동료의 지지를 얻고, 동지를 만들고, 사람을 얻으라는 뜻이다.

그게 되레 당신에게 크게 길하다고 <곤괘>는 말한다.(237)

 

이 책을 읽노라면 <되레>라는 말을 무진장 만나게 된다.

주역의 역할이 그런 것이다.

좋은 것이 되레 나쁜 것이 되고,

흉한 것이 되레 마음을 가다듬게 하니 말이다.

그런 역설적 진리를 설파하기 위한 지혜의 상징어법이 주역의 논법이다.

그러니 읽고 또 읽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공자가 위편삼절하던 주역의 의미는,

곱씹어 제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만약 당신이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면 계속 걸어라.

구덩이에서 빠저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다.(165)

 

이 책은 주역의 원리를 쉽게 풀어주는 역할도 하고,

변효를 찾고, 지괘를 푸는 법도 알려준다.

 

약한 사람은 행운을 믿는다.

강한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믿는다.(139)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다.

현재의 내 모습을 잘 관찰하면서,

지나온 과거의 원인행위와

나의 현재가 만들어갈 미래라는 궤적의 행로가

내 인생이라는 결과를 만든다.

 

주역은 불안한 인생의 운명에게

지혜의 목소리가 아닌

지혜를 차오르게 하는 역할을 하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콜린 2015-06-2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EBS에서 성태용의 주역강의재미있게 들었었는데, 이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