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 / 에이지21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실업계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처음에는 가난해서 실업계로 진학한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과 이 아이들도 환경이 실업계일 뿐이지, 인간성이 그 본성이 실업계인 것은 아니다... 이런 의지를 가져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의지가 무너지는 데는 몇 달 걸리지 않았다. 수시로 일어나는 지각, 조퇴, 결석, 결과에 소낙비가 내리는 결석부가 되어버린 출석부. 날마다 몇 명씩 흡연 지도로 학생부로 들락거리는 학급, 수업 시간에도 싸움질을 하고, 젊은 여선생님이 수업하면 휴대폰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끄기도 하고, 휴대폰을 압수당했다가도 살짝 되가져 온 뒤, 선생님이 잃어버렸다고 박박 대들기도 하고, 신입생의 책가방을 훔쳐가기도 하거나 교실에서 흡연을 하고, 복도나 계단에서 흡연하는 것은 예사이며, 실습실 앞에선 신발을 훔쳐가기도 한다.

정말 썩은 생선같은 아이들이 수두룩 했다. 그래서 빨리 이 썩은 생선같은 아이들을 만나는 환경에서 벗어나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작년까진 열심히 수업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좋아하고 따라주던 환경에서, 이젠 수업은 적게 할수록 아이들이 좋아하고, 열심히 수업하면 아이들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좌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즈타니 선생은 물론 우리 나라 교사는 아니지만, 우리보다 훨씬 약물 중독이나 폭력 조직의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서 밤의 선생님이 되셨다. 생선은 썩지만, 아이들은 썩지 않아. 이것이 그분의 유일한 신조다.

아이들은 썩지 않아... 그래.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서 조금 악취가 난다고 해서 아이들을 닦아 주거나 청소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썩어 빠진 아이들이라고 내팽개쳐 버리면 아이들은 정말 금세 썩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랬다. 실업계 아이들의 부모들은 일반계 아이들의 부모들에 비해 학력도 낮고, 소득 수준도 훨씬 낮다.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한 학교에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비투스를 운운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해서 가난한 학교에 온 아이들에게, '그래 너흰 평생 가난하게 살아라!'하는 포기의 말을 남기는 교사가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미즈타니 선생이 만나는 아이들은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은 아이들이 아니다. 마약에 중독되거나 가정에 심각한 결손을 가진 아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손가락도 바칠 수 있는 단순무식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그런 분이 우리 학교에도 필요하다. 난 내 손가락을 바칠 정도로 단순무식하지 않은 <나름대로의 지식인>이기 때문에 그런 용기는 없지만, 썩어빠진 생선이라고 욕하면서 벗어날 궁리나 하는 썩어빠진 정신의 교사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상해가는 냄새를 풍길 때, 이 한마디를 기억하리라.

생선을 썩지만, 아이들은 썩지 않아.

아이들은 늘 관심을 가지고 눈물을 닦아 줘야 하고, 밝고 깨끗한 환경에 놓아 두어야 썩지 않음을 기억할 일이다.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미즈타니 선생께 고마움을 전한다. 정말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이들에게 일깨우는 교사가 되기를 약속하면서...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각심 2005-09-2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비투스

문화적 취향, 옷맵시, 말씨에서부터 걸음걸이까지 한 번 몸에 배인 습관은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몸에 새겨진 습관, 행동양식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불렀다.
영어의 habit 과 어원을 같이하는 아비투스는 같은 철자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프랑스어로는 아비투스로 발음된다. 현대 철학을 가르는 기준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의식과 사회구조 중 어느 것이 본질적인가를 묻는 논쟁은 닭과 달걀의 그것 만큼이나 지리한 대립이었다. 부르디외는 양 진영을 모두 비판하면서, 개인의식과 사회구조를 통합한 ‘아비투스를 가진 개인’을 제시했던 것이다.


글샘 2005-09-24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죄송합니다. 아비투스란 말을 그냥 써 버려서요. 그리고 설명을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5-09-2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어 주시길... 첨 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