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1 한길그레이트북스 54
한비자 지음, 이운구 옮김 / 한길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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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온갖 더러운

오물을 가득 뒤집어쓴 채로...

 

오욕의 시간을,

캄캄한 암흑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살고 있다.

 

용산에서,

쌍용자동차 옥상에서,

천안함 캄캄한 해저에서,

사대강의 녹조 라떼와 이끼벌레의 썩은내와

온갖 자원외교란 이름의 국비유출로 복지는 짓밟힌채

다시 부정선거와 밀실정치 속에서

세월호의 참담한 침몰을 바라보면서...

통합진보당의 해산까지...

 

곰곰생각해보면, 이정희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말은 오류다.

태어난 적이 없는 존재가 죽을 수는 없는 법.

 

그러고 보면 정치라는 것은 태생적으로 '드러운 시대'를 통과하는 법이다.

어느 시대 한 순간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낙원이었던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국민이라는 것이 이렇게 모멸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녹이 슬어서 그럴 게다.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전대협 진군가)

 

이런 결기서린 노래가 불리던 시절도 있었건만...

 

중국의 이름 '차이나'는 최초의 통일국가 '친 秦 Chin'에서 왔다고 할 정도로 진시황의 영향은 컸다.

진시황이 통일국가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이사와 상앙의 국가정책 수립의 기반이 된 책, 한비자.

그렇지만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서, 동창생 '이사'의 음모로 죽고 만다.

서양의 마키아벨리즘의 할아버지뻘 되는 책.

 

사마천이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이라고 분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노자와 한비의 사상을 '정치 철학 계열'이라고 분류한 셈이다.

노자가 '정치가는 냅두는 무위를 실행해야한다'고 했다면,

한비는 '정치가가 신상필벌의 냉정한 법치를 실시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노자를 '무위자연'의 도피사상으로 보는 자들과는 딴판의 해석인 셈.

그러자면 강신주의 '노장은 상반된 생각'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신하를 귀하게 하지 말라.

그러면 군주와 맞먹으려고 할 것이다.

장딴지가 허벅다리보다 굵으면 빨리 달리기가 어렵다.

군주가 신같은 권위를 잃으면 호랑이 같은 악신이 그 뒤를 노린다.

군주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호랑이는 장차 소신인 개들을 모아들일 것이다.

군주가 빨리 그것을 막지 못하면 개의 수가 점점 늘어 끝이 없을 것이다.

호랑이가 한 무리를 이루게 되면 그 어미인 군주를 죽일 것이다.

군주가 법을 시행하면 큰 호랑이는 겁을 먹고,

군주가 법을 집행하면 큰 호랑이도 스스로 온순해질 것이다.

법과 형이 신실하게 실행되면 호랑이도 교화되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123)

 

군주는 신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신하에게 모든 권한을 주면 군주는 무너진다.

작금의 한국 정치가 보여주는 면모가 이것 아닌가 싶다.

호랑이와 개의 뉴스를 덮기 위하여 '땅콩 여사'가 열심히 눈물을 짜내고, 토막사체 사건으로 덮으려 하지만,

호랑이와 개의 뉴스는 하늘이고, 땅콩 여사는 손바닥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요즘 '사법기관'들은 '성범죄자'를 특별 우대하는 법을 시행하는 모양이다.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를 '성선호성 장애'라는 특수 명칭을 사용해 주시는 고귀한 법원은,

자기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단호하게 처단한다. 오늘의 판결 역시 호랑이를 키우는 '법 결정'이다.

 

듣기로는 옛날에 사람을 잘 부리는 자는 반드시 하늘을 따르고

사람에 맞추어 상과 벌을 명확히 하였다고 한다.

하늘을 따르면 힘을 적게 들이더라도 공이 서고

사람에 맞추면 형벌을 줄이더라도 법령이 행해지며

상과 벌을 명확히 하면 백이와 도척의 구별이 혼란해질 일이 없을 것이다.(용인, 419)

 

신상필벌.

이 단어는 법가의 금과옥조다.

잘못에는 반드시 엄한 벌을 내려야 하는 것.

땅콩으로 청와대 진돗개를 가리려는 일은 '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따름이다.

 

동물 가운데 훼라는 뱀이 있다.

한 몸에 입이 두 개 있어 먹이를 다투다가 서로 물어 뜯어 끝내 죽고 만다.

신하들이 권력을 다투어 나라를 망치는 것도 모두 똑같은 유이다.(설림 하, 387)

 

동물에 빗대어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설림.

이 '수풀 림'은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는 곳이다. 정글 이야기~로 정치를 비유하는 멋진 대목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훼와 같은 넘들이다. 상생을 모른다.

먹이를 다투는 데는 타협이 없다. 필연, 죽을 것이다.

 

군주가 일을 하고 싶은데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의욕만을 미리 밝혀 그것을 하는 경우 그 하는 일이 이익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자는 일의 원칙에 맡기고 욕심을 버린다.(256)

 

의욕만을 미리 밝혀,

적폐를 해소하고 계통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인사 참극을 낳고 만 사실을 지난 봄 여실히 보았다.

일에 원칙이 없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자가 정치를 할 때의 폐해다.

 

한비자라는 책은 참 많은 이야기를 자분자분 들려준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그 속에서 '분노'를 느낀다.

무능력한 군주가 제대로 정치를 못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기 그지없어,

이 두꺼운 글들을 피눈물에 먹을 찍어 기록했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릴 적에는 명확한 법을 설정하고 엄격한 형벌을 제시하여

장차 그것으로 모든 사람의 혼란을 구하고 천하의 재앙을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강자가 약자를 침해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학대하지 않고...(215)

 

정규직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이 안 된다는 '강자'의 논리는 약자를 침해한다.

국비로 운영되는 온갖 '보수단체'라는 이름의 테러집단은 떼를 지어 울부짖으며,

'소수를 학대'하는 데 참여한다.

비극이다.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런데 그 턱 밑에 직경 한 자 정도의 거꾸로 박힌 비늘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저촉하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라는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저촉하지 않으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 하다.(197)

 

역린.

지도자에게 자존심이기도 하고, 권위이기도 한 것.

이 두꺼운 책을 통해 한비자가 바랐던 세상은 무엇일까?

<법치>를 통해서라도 좀 '질서'잡힌 세상을 꿈꾸지 않았으려나?

<공자>처럼 말로만 '착하게 살자'는 문구는 '현학'으로 치부하던 시대.

사람들이 알아주면 뭐하나, 현실에 쓸모가 없는 것을... 이런 기분으로,

눈물을 참으며 이 책을 썼던 한비자...

그는 결국 어눌하여 진시황을 설득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고 만다.

 

성인이 정치수단으로 삼는 것은

이, 위, 명이다.

利란 민심을 얻기 위한 것이고,

威란 법령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며

名은 위와 아래가 함께 의존하는 것이다.(830)

 

이는 '복지'라는 말이 되겠고,

위는 '법치'라는 말이 되겠고,

명은 '명분'이란 말이 되겠다.

백성을 '이용후생'하여 잘살도록 도모하고,

법령을 엄하게 적용하여 휠체어타고 헌법위에 사는 넘이 없게 하고,

도덕적 명분 없이 치사한 정치놀음에 빠지지 말라는 말.

 

어린아이가 서로 장난치며 놀 적에

흙을 밥이라 하고 진흙을 국이라 하며 나무를 고기라 한다.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 밥먹는 것은

흙밥과 진흙국을 가지고 놀 수는 있어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저 오랜 옛날의 전설과 기리는 말을 외는 것은 말뿐으로 정성이 담기지 않았으며,

선왕의 인의를 말하더라도 나라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이 또한 놀이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통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571)

 

노친네들은 박근혜가 '어려서 부모 잃고, 그 불쌍한 것이...' 이러면서 찍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흙국에 흙밥'인 셈이다.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진 경제 발전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높이 살 만 하지만,

지금 '새마을 노래'를 소리높여 부르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아,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 금할 수 없으나,

한비자를 읽노라면,

그런 시대는 지금만이 아니었고,

그런 마음은 오늘만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던 어느 시인을 떠올려 본다.

 

세상이란 그런 것이다.

어쩌겠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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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꾸는꿈 2014-12-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교되서 골라잡은 책이었는데 한권짜리로 살껄 그랬나 싶군요;;

글샘 2014-12-22 21:2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두껍고 긴 책이지요.
그렇지만 부분부분 다양한 이야길 인용하는 부분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