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소설은 미국이라는 나라만큼이나 역사가 짧다.

그래서 미국 소설을 읽으면, 아무래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그 대표작이 '위대한 개츠비'나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 비극같은 심금을 울리는 운명의 장난도 없고,

세익스피어같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도 없고,

오랜 시간 검증된 '리얼리즘의 승리'도 없다.

 

그런데, 세계문학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듯,

미국의 팽창기를 틈나고 문학의 목록에 그득하게 들어앉아 있다.

그 저변에는 '노벨상'이라든지 '출판의 힘'이 뒷받침되어 있었을 것이고,

한국의 '문학 선집' 편집 위원의 많은 수가,

김동리를 위시한 '반공주의 문학'의 기수들로 독재시대에 편찬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창기에는 청소년들에게 읽혀서는 안 되는 소설이었다가,

이즈음에는 필독서로 꼽힌다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작품은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과 시기를 같이한다.

소위 '냉전의 시대' 산물인 '매카시즘'이 미국을 뒤덮던 갑갑하던 시대.

 

 

주인공 홀든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유명 사립학교에서 퇴학당하기를 밥먹듯하는 '반항아'이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여기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밥맛'이다.

 

스펜서 선생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기 시작했다.

그냥 코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사실은 엄지손가락이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20)

 

선생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말하고 있을 때는 남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21)

 

 

 

그렇지만, 그 꼰대들은 아주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는 홀든.

 

훌륭하다니. 난 정말로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그건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20)

 

'멋지다'라니. 내가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멋지다는 말이다.

너무 가식적인 말이기 때문이다.(144)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은 앤톨리니 선생에게서 극도로 표현된다.

 

갑자기 난 눈을 떴다.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뭔가 귀두에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 손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난 정말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런데 내 귀두를 만지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앤톨리니 선생의 손이었다.

선생은 어둠 속에서 긴 의자 옆에서 바닥에 앉은 채로 내 귀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하고 계세요?"

"별일 아니야. 그냥 여기 앉아서, 감탄하고 있었지..."(253)

 

늘 입으로는 도덕, 정의를 외치는 어른들의 속내는 이렇듯 추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홀든이 묵은 호텔의 맞은편 창으로 비치던 어른들의 우스운 몸짓은,

타락한 세상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247)

 

이렇게 그럴듯하게 말했던 선생님이,

갈 데가 없어서 찾아온 아이를 성추행하는 현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의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230)

 

 

이 구절은 자못 감동스럽다.

현실에서는 부적응하는 반항아가, 꿈으로 가진 것이 평화로운 세상의 지킴이라니...

그런데, 내가 삐딱하게 읽어 그런가,

홀든의 이 꿈에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는 미국의 모습이 비친다.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위험한 <악의 축>을 지키려는 평화의 사도 '미쿡'

슈퍼맨처럼, 배트맨처럼, 스파이더맨처럼, 지구를 구할 것인지...

 

지금 피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칼라에 코끼리 무늬가 새겨진 파란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 애는 동물 중에서 코끼리를 가장 좋아했다.(217)

 

호이트씨(택시 기사), 센트럴 파크에 있는 연못을 지나가 본 적이 있으세요?

센트럴 파크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연못이요.

아주 작은 연못이 있어요.

오리들이 살고 있는 곳 말이에요.

오리들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있잖아요.

봄에 말이에요.

그럼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오리 말이에요.

누군가 트럭을 몰고 와서 오리들을 싣고 가버리는 건지,

아니면 남쪽이나 어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건지 말이에요.(113)

 

피비를 묘사할 때,

또는 홀든이 오리를 떠올릴 때,

이 소설은 멈칫, 순수를 동경하고 지향하는 듯 하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

그토록 잔인했던 영화 '친구'에서

그 폭력배, 살인자들의 어린 시절,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이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기는지 아나?"

하면서 순수를 그리던 송도 앞바다의 묘사가 드리우는 씁쓸함을 떠올리게 된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 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 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278)

 

메리-고-라운다... 회전 목마는

신흥 부국 미국의 허상을 상징하는 번득이는 빈공간이 아닌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이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았다.

샐린저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도록 허락하지 않은 채 2010년 죽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사후 70년인가 지켜야 하니, 내가 생전에 이 영화를 보기는 글렀다. ㅋ

 

이 소설이 '고전'이라고 무작정 집어들고 읽었다가는 낭패보기 쉽다.

여느 고전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언어로 가득 넘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은 부모라면, 이 책을 자식에게 권해도 좋을까? 를 고민할지도 모른다.

 

존 레넌의 암살범이 이 책을 읽고 있더라는 유명한 일화와 함께,

이 책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영화도 숱하며,

전세계에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유명한 책.

 

이 책을 읽고는 싶으나,

아무래도... 몇 페이지 안 넘겨서 눈이 빙빙 도는 독자라면,

이유를 모르고 종영된 아쉬운 방송, ebs 고전읽기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어보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http://home.ebs.co.kr/humanandclassic/replay/3/view?courseId=BP0PHPK0000000050&stepId=01BP0PHPK0000000050&prodId=10316&pageNo=50&lectId=10147195&lectNm=&bsktPchsYn=&prodDetlId=&oderProdClsCd=&prodFig=&vod=A&oderProdDetlCls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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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12-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저는 하루키의 소설속에 언급되었기 때문에
호밀밭의 파수꾼과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요
그게..참...이런게 고전인가? 그런가? 하는 의문만 잔뜩 생겼었어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아서 제가 잘 읽을줄 몰라 그런가보다 했었네요....

글샘 2014-12-03 11:18   좋아요 0 | URL
호밀밭과 개츠비는... 워낙 `고전` 목록에서 많이 봤지요.
주어지는 것이 모두 고전이 아닌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독서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안 읽는 사람이 맨날 그러죠. `논어` 속에는 길이 있다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