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평점:)
글샘(mail) 2005-08-09 01:30

무위당 장일순. 무위당이 뭔가. 이름에. 이름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님. 필명이 이아무개다. 그야말로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名이다. 이름은 그가 아님을 역설하기 위해 이름을 아무렇게나 아무개로 지었다.

이 아무것도 아닌 두 사람이 만났다. 그래서 노자를 풀이한다.

원래 무위당 선생님과 이아무개님이 노자를 읽고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것을 녹음이라도 해서 나중에 이아무개가 정리를 한 것이 이 책일 것이다.

이 책은 원래 세 권이던 책을 한 권으로 합본하여 만들었다.

고등학생들이 보는 정석만큼 묵직한 책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술술 읽힌다.

내가 얼마 전에 이경숙씨의 노자를 웃긴 남자와 그의 도덕경을 읽었기 때문에 더 쉽게 읽히는지도 모르지만, 노자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목사였던 이아무개님의 탁월한 해석은 성경과 노자의 공통점을, 도와 하느님의 무위의 길을 멋지게 빗대어 놓는다. 가히 이십세기 최고의 절창이라 할 만하다.

우리 나라 인문학의 황폐함을 이런 책들을 보면서 깨닫는다. 아, 우리 나라에도 인문학이 아직 살아 있구나. 그러나 그 맥이 점점 끊어져 가는구나... 왜냐면 이런 책들은 대개가 도서관에서 봐도 깨끗하고, 알라딘 같은 데 보면 절판이라 나와있으니...

이 책은 노자의 풀이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다.

무위당 선생님이 푼 것을 이아무개님이 정리하는 것으로 노자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리고는 도와 관련된 대화들을 자유스럽게 풀어 나간다. 마치 장자가 갖가지 고사와 비유로 노자를 풀었듯이...

이 책이 뛰어난 점은 노자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두 분이 끈질기게 늘어 놓는 데 있다. 그래서 7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도, 마치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스릴러물을 읽듯이 단숨에 읽을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역시 더운 여름을 나는 데는, 화끈하지만 금세 꺼져버리는 모닥불같은 추리소설 종류보다는, 뭉근하지만 오래오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생각하는 책들이 어울린다.

잡스런 세상의 번사를 잊는데는 역시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큼직한 활자에 갇혀있으면서도 결코 갇히지 않는 노자의 수염을 스치는 맛도 일품이다.

몇 권 만나지 않은 노자지만, 이 책에 와서 그 의미의 확장을 맛볼 수 있었다.

내 부족한 능력을 늘 잊지 않으시고, 다음 책에로 이끄시는 그분, 바로 하느님이시고, 내안의 부처님이시고, 모든 아상을 잊게 하시는 그 도道에 늘 감사를 드린다.(평소에 아상我相에 사로잡혀 인상人相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라 하는 이들을 비웃었는데, 무어라 부르든 그 하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니 이젠 상관 않는다.)

다음 번 도서관에 가면 나를 어떤 책에로 이끄실지 늘 가슴 설레며 책을 접는 내 마음이 이렇게 뿌듯한 적도 드물다. 지난 번 금강경 이야기 읽은 후로, 정말 오랜만에 오래 남을 책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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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8-09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역시 좋은 책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군요..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05-08-1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달팽이님과 같이 읽은 책이 많아서 흐뭇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