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육학년 아들이 역사를 좋아한다. 글쎄. 역사 과목이 재미있다는 건지, 문제 푸는 게 체질에 맞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는 암기과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암기 과목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국사와 세계사는 별로였다. 반도 못 맞춘 적도 있었고... 국사와 세계사는 참 어려웠던 과목인데, 대학 시절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세계사, 한국사를 여러 방면으로 읽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시험을 치라면 모르겠지만, 국사를 싫어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내가 살아온 80년대 덕분인지 탓인지 그렇다.

츠바이크의 이 책은 역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 서사의 시대, 80년대에 역사는 진보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던 선배들에게 난 늘 회의적이었다. 과연 역사가 진보하는 것인지... 역사가 진보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우리가 맡은 피의 냄새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을 증거해 주지는 못했다.

늘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울면서 등교를 하고, 신문의 하단 1단 기사로 늘 작은 시위를 접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나는 그래서 역사 책을 자꾸 읽으려 했던지도 모르겠다. 특히 88년 해금이 되면서 북한의 역사 서술도 출판된 책을 통하여 만날 수 있었다. 이적지 배우던 것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던 기억은 나지만, 그것 역시 역사는 한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기술되어 있어서 실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얼마 전, 마이리뷰 당선 이벤트를 할 때, 어느 분이 이 책을 소개해 주셨는데, 이 제목을 보고, 내가 그토록 믿지 못하던 역사의 정체에 대해서 이제 조금이나마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에는 미친 놈과 우연의 점들이 끝도없이 이어지면서 마치 하나의 흐름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단 거다.

나는 늘 좀 삐딱한 편이어서 하나의 교조적인 지침을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캐들어가는 걸 좋아하느냐면, 그것은 또 적성에 안 맞다. 그냥 '저치가 저렇게 떠들어 대도 결국은 모르는 거잖아?'하는 냉소와 독설이 내 주특기라고 할 수 있다. 살아오다 보니 내 성격이 그런 걸 이제 알겠다.

이 책은 재미난 역사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소한 역사적 사건들과 중대한 역사적 분수령들이 어떻게 얽히는 것이며, 개인이란 얼마나 그 사이에서 우연하게 얽혀 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책으로서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한 달이 넘었는데, 중간에 한 이주 이상은 내 손을 떠나 있기도 했고... 이제야 절반 정도를 마저 읽었다.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만, 역사에 대해 나처럼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반가운 기회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