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6. 13

 

그 날도... 올해처럼 월드컵이 열리던 해였고,

여름날이었지.

 

이 땅의 일부분은 미국이 제 맘대로 쓰는 땅이어서,

너희가 살던 동네는 미군 탱크가 많이 다녔다지...

 

너희를 비명에 보내고...

참 아파했는데,

결국 사고를 낸 미군은 한국 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구나.

 

12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이 나라에는 법이 제대로 서지 못했구나...

그래서

또 수백 명의 아이들을 생매장하고도,

법으로 처벌하는 일에

많은 이들이 반대를 한다는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힘없는 백성들이지만,

잊지 않고 있을게.

 

너희가 얼마나 참혹하게 죽었는지 알기에

이번에 사고난 배에서도 얼마나 참혹했을지 알기에

절대로 잊지 않고 있을게.

 

연분홍 꽃들이 흩날릴 복숭아 나무 그 아래서,

너희 모두 꽃잎처럼 흩날리는 아름다운 존재들이었음을...

잊지 않을게.

 

잘 가.

편히 쉬길...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웬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 부셔 눈 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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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6-1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생일이라고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길이라 탱크소리를 못듣고 죽은거라고.
그러니까 미군 잘못이 아니고
애들 잘못이라고 말하는
이북에서 내려와 사우디도 다녀오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이상사'씨의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살의가 느껴지더군요.

월드컵은 그때도 지금도 참...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덮어버리는군요.


글샘 2014-06-13 17:37   좋아요 0 | URL
친일파를 공개숙청하지 못한 후유증이...
지금도 반복재생산되고 있죠.

일제 강점기가 '태평천하'였다던 소설이 현실로 드러나고...
12년이 지났는데, 한국주둔군의 지위는 하나님의 지위니 말입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