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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ㅣ 창비세계문학 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강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반 일리치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제법 잘 나가던 판사였다.
그럭저럭 고위직을 잘 누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병에 걸린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자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이전까지는 직위를 통하여 얻던 평가가 싸악 사라지고 이제는 불쾌한 병인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이 소설은 1886년 발표된 작품이니 작가가 환갑이 다되어 쓴 소설이다.
당시엔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통찰한 소설이 드물었을 것을 고려한다면,
발표 당시 톨스토이의 시선이 얼마나 통찰력있는 것이었을지 느끼게 된다.
사람은 죽음을 늘 남의 일로 여긴다.
손범수, 이순재가 보험의 앞잡이가 되어 외치듯이,
그래, 암은 내가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암보험을 안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음 앞에서 생각할 때, 내가 이제까지 누리던 행복과 자유의 근거가 얼마나 희박했던 그것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내 노력이든, 내 재능, 내가 물려받은 물적, 심적 재산들이 한 순간 무가 될 것이 명백해질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반일리치의 삶은 자신이 생각하고 기대한대로
그렇게 별일없이 즐겁고 나름대로 품위있게 흘러가고 있었다.(36)
누구나 다들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품위있고, 즐겁게...
그리고 몸은 피곤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빼어나게 연주를 해낸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리니스트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귀가하곤 했다.(46)
그래. 다들 이렇게 퇴근했을 것이다. 뿌듯해서.
그는 파멸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이해하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62)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이반 일리치라는 형상화된 사람의 삶과 죽음을 통해,
너도 이반이지? 그런 어리석은 바보지?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책에서 톨스토이를 '본래 여우였지만 스스로 고슴도치라고 믿었던 사람'으로 정리한다.
여우형 인간은 생각이 분산적이고 산만하지만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며 다채로운 경험과 본질을 포착하는 사람이다.
고슴도치형 인간은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과 연관시키는 사람이다.(124)
이 책을 통하여 여우형 톨스토이는 직장 동료를 통하여, 가족을 통하여, 그리고 죽음을 맞는 당사자를 통하여,
삶이라는 단선적 형식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렇지만, 그는 또 고슴도치처럼, 삶의 진실성을 명료하게 느낄 수 있게 지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제, 보지않던 jtbc 9시 뉴스를 보다가 엉엉 울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투박하게만 생긴 아버지의 울음에 전염되어서다.
그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팠다.
선실 안에서 죽음의 순간을 맞아야 했던 아이들의 가슴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보통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음을 5단계로 나누어 표현한다.
부인,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차츰 수용하게되는 정상적 죽음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이론이다.
급박하게 닥쳐온 죽음 앞에서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룬다.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죽은 것이다.
아프고, 그냥... 아프다.
150. 가장 중요한 연표의 출생 연도가 틀렸다. 1828년생을 1928년생으로 적었다.
러시아 이름은 아무리 봐도 헷갈린다. 주인공 이름도 한 페이지 넘기면 헷갈린다.
그런데, 창비는 등장인물 이름과 관계를 '책갈피'에 넣어 주었다. 멋진 아이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