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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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일이 때때로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쓰린 마음에 소금이 뿌려져 그야말로 소금밭이 되는 일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 움큼의 투명한 소금이야말로 가혹한 비바람과 격렬한 태양 아래서 마술적으로 응결된 것, 아니 단련된 것.

사각형의 책들을 순례하면서, 나는 사는 일을 경쾌하게 긍정하는 연습을 했으며,

더 나은 삶에 대한 질문을 거듭 던졌다. _<저자의 말> 중에서

소금.

박지원은 '민옹전'에서 이런 말을 한다.

 

"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보았소?"

"보았지. 달이 하현이 되어 조수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그 땅을 갈아 염전을 만들어 염분이 많은 흙을 굽는데,

알갱이가 굵은 것은 수정염이 되고

가는 것은 소금이 된다네.

온갖 음식 맛을 내는 데에 소금 없이 되겠는가?"

 

인간들은 왜 그렇게 얄팍하게도 '맛있는' 기름진 음식을 찾아 나서는가?

진실로 '맛'을 내는 데는 소금만 한 것이 없거늘.

그 소금의 생성 과정과, 소금의 용처를 생각한다면,

세계 미각으로 치는 푸아그라, 캐비어, 송로버섯을 우선 꼽는 세태에 망치를 휘두를 노릇이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서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보면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들에서 나는 서늘한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책의 소용은 그런 것이다.

책을 들척이다보면, 마음이 안심된다.

그 속에서 서늘한 정신을 만나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들 미쳐서 남을 추월하고, 더 높이 오르려 다툼질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축구가 야구가 다투고, 온갖 서바이벌로 다투고,

일박이일이 다투고, 시청률이 다툰다.

그 뜨거움 속에 사실은, 돈이 놓여 있다.

돈의 <매트릭스> 안에서 다들 정신줄 놓고 있다.

책의 서늘한 그늘 안에 들어서면, 정신을 조금 가다듬게 된다.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도 꽤 좋다.

 

삶은 아파하되 오래 견디는 것이며,

결핍이 오히려 희망의 꽃핀 자리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아닐까요.

당신의 고뇌가 더욱 향기로워지기를...

아, 벌써 가을이 목젖까지 차오른 것 같군요.(37)

 

좀 오버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십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는 문학이지만, 문학이란 사물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꽃은 아니다.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새'에게는 저만치 피어있는 꽃을 통해,

삶의 희열을 맛볼 수도 있는 것.

 

팍팍한 삶에서 뻐근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삶은 존엄한 것임에 틀림없다.(53)

 

소설 속에서 누구나 무언가를 길어 올리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 책이 올해 다시 출간된 것은, 좀 의외다.

이 책에서 다룬 책들이 별로 새책 냄새가 풍기지 않고, 흥미롭지도 않은 것들이 많아서다.

그렇지만, 읽어가노라면, 세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문제를 잘 짚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좌절에 대하여, 후일담 문학에 대하여,

시와 소설에 대하여, 번역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 사람의 이야기는 참 일관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공감을 많이 하게 된다.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간다.

인간은 빵이 산처럼 쌓였어도 죽음을 생각한다.(77)

 

삶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눈물이 내려가도 숟가락은 올라가는 법.

산 사람은 살아야지, 끙~ 하면서 또 하루 사는 것.

 

사랑 안에서 우리가 기적적으로 이타적일 수 있는 것은,

명랑한 낮의 이성이 성숙한 밤의 포옹 앞에서 무력해 지기 때문.

그때, 사랑하는 '나'는 없다. '당신'이 있을 뿐.(83)

 

작가의 글들은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을 가졌다.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돌아보기도 싫어할 맛도 나지만,

한번 입맛을 들인 사람들은 환장을 하는 홍어 삼합의 맛처럼 감칠맛이 독특하다.

 

'총각 딱지 떼기'로 일관하는 '동정 없는 세상'을 '탈 근대적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비평적 사기일 수밖에 없다.(112)

 

참 돌직구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성장소설을 통한 성장'보다는,

자기들의 이야기에 열광할 따름인 것을....

영화도 비평가가 저질이라 까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던가.

영화 감독들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싫어한다지 않는가. ㅋㅋ

 

이문열과 복거일의 웃기는 짜장 이야기는 워낙 자주 등장하여 식상할 지경인데,

아무튼, 한국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평론가도 드물다.

 

시인의 마음은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자기 바깥의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고 아파하며

기어이 큰 목소리로 꺼이꺼이 함께 어는 연민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을까,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몰라도...(126)

 

정호승에 와서도 '달콤하고 미끈한 당위적 사랑'이라고 비꼰다.

 

잘 만들어진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뼈아픈 고통은 아니다.

미끈한 잠언들은 고통을 휘발시킨다.

만들어진 시는 그래서 일급이 될 수 없다.(148)

 

정호승의 시를 이렇게 잘 표현한 구절을 만나긴 쉽지 않다.

 

십년도 더 전에 유행했던 '느낌표' 책에 대한 비평도 신랄하다.

이미 물건너간 시절이지만, 그렇게라도 대중적 독서 붐을 일으킨 일은 나름 신선했다.

역시 한두가지의 프로그램은 '시스템의 불구'를 극복할 수 없는 법이기는 하다.

 

불면의 밤은 실존을 밝히는 등불이다.(195)

 

이런 말을 만드는 걸 보면, 좀 잘난 체하는 구석이 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ㅋㅋ

그렇지만, 후일담 같은 것을 분석하는 그의 눈은 매섭다.

 

흔히 오해되듯 90년대는 80년대의 결여형으로서의 후일담의 시대가 아니다.

이 시기는 전통적인 소수자(약자겠지, 민중은 항상 다수였으니)로서의 민중의 존재와 함께,

새로운 일군의 소수자들 - 동성애자, 홈리스, 여성, 자발적 무위도식자, 반제도적 청소년들, 이주 노동자 등- 이

광범위하게 출현한 시기이다.

또는 이 시기는 이념적으로는 민중적인 것과 수구적인 것의 대립에,

신좌파와 신자유주의 대립이 더해져 사회적 갈등이 복수적으로 심화된 시기이기도 하다.(226)

 

그렇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로 뒤덮어버린 '문학 없음'의 현상을 그는 냉철하게 바라본다.

그가 지적한 '소수자들' 사이에는 '가정 파괴'로 인한 '집으로' 세대의 학교폭력도 들어가고,

컴퓨터에 몰입하는 히키코모리도 해당하고,

386이라던 80년대 사람들...이란 의식 역시 그렇다.

 

그런 시기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했고,

또한 이명박, 박근혜를 양산했다.

 

번역문학에 대한 비평도 날이 서 있다.

 

번역문학은 기원의 측면에서 보자면 외국 문학이라 할 수 있으나,

한국의 문학장에서 차별없이 유통,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평의 적극적인 검토대상이 될 필요가 있다.

대학 바깥에서 '비평가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 구축도 적극적으로 강구될 필요가 있다.

대학이란 제도의 보수성은 비평이 집중해야 마땅할 '전복성'을 약화시킨다.

오늘날 대부분의 비평가는 대학이라는 시스템에 직,간접적으로 포섭되어있다.

혁명적이면서도 전복적인 비평이 출현하지 못하는 것은

탈제도적 비평을 불가능케 하는 열악한 생존 조건의 영향이 크다.(237)

 

요즘 '새움'판 '이방인' 번역을 두고 논란이 많다.

이명원의 논점으로 보자면, 이정서의 번역은 '전복적인 비평'의 일종으로 보아야 하지만,

제도권 내의 비평가들로서는 용납하지 못할 도전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 역시 그 출판사 책이다.

 

80년 광주에서 벌어졌던 말도 안 되는 학살이 일어났던 시대에서 이제 35년 정도 떨어졌다.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 되었고 개혁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인간 해방, 민중 해방'의 측면에서 보자면 '구속'이 지나치게 많다.

이명원의 비평은 '해방'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들이다.

부디,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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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4-1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년전에 나왔던 책이 왜 갑자기 재출간을 하게되었는지 저도 좀 궁금했어요.

책 제목만큼 확 와닿는 구절이 별로 없어서 저도 별 네개였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