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 사람의 몸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다는 것일까?

그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이 맘에 든다는 것일까?

 

영어 '아이덴티티'와 '정체성'의 뉘앙스는 내게 사뭇 달랐다.

한국어에서 정체...는 '네 정체를 밝혀라' 같은 경우에나 사용하는 용어이다.

불교에서나 도학에서도 숱하게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아이덴티티...는 불교의 '상 相'이나 유사한 개념같기도 하니...

아직도 내겐 정체성과 아이덴티티의 거리는 만만하지 않다.

 

현실이 비현실로, 사실이 몽상으로 변했던 정확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 경계선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경계선이 있을까?(176)

 

나만의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나 혼자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의식, 구별의식, 차별의식이 아이덴티티를 구성한다.

구별, 차별이 '너랑 나랑은 틀려~'와 같이 쓰이는 표현에서 보이듯,

아이덴티티는 나라는 존재가 너 또는 너희와 얼마나 다른가를 뜻하는 거니까...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말과 동질감을 느끼기 힘들었던 게 이런 경계의식이 아닐까 싶다.

 

삶의 위대성은 어디에 있단 말이에요.

우리의 운명이 먹는 것, 성교, 생리대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고작 이런 것만 할 수 있다면

흔히 말하듯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에 어떤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요?(153)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가짜 연서와 핑크빛으로 물드는 마음,

이런 것들이 과연 올바른 아이덴티티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돌아볼 때,

진실한 자아를 찾기 위한 공부와 이 책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내가 어디 살고 있고, 무엇을 먹으며, 어떤 생활을 하는지의 총합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진실한 나의 아이덴티티란,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어떠한 '사상'이나 '정신, 마음'등을 함축한 개념이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내 장롱을 열어 나의 소지품을 뒤질 권리가 없어.

누구도. 내 말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거야. 그 어떤 사람도.(127)

 

뒤집어진 장롱과 속옷,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감추어둔 연서...

그 앞에서 드러나는 아이덴티티의 '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러나 사실 실재하는지 의심스러운...

확인할 수 없는 금... 사이를 이 소설은 이야기한다.

 

당신은 나의 제2의 자아요,

당신은 내가 우연에 의해 벗어난 운명을 겪고 있는 것.(91)

 

'너 날 수 있어?'라는 농담이 있다.

사람이 새가 아닌 바엔 날아갈 순 없는 일이지만,

너, 나일 수 있어?

난, 니가 마치 나의 다른 몸처럼... 가까이 느껴지는데...

하는 뉘앙스의 말이다.

 

사람을 진심으로 내 안에 들여 놓으면,

그와 나의 '금'은 의미가 별로 없다.

 

폭풍의 언덕에서 '그는 나보다 더 나야' 같은 대사를 가슴 저리게 읽을 수 있는 마음이어야,

당신은 '나의 제2의 자아'라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그의 개체성((36)

 

아들을 잃고 모성이 느끼는 대체불가능에 대한 한숨도 아이덴티티의 중요한 한 꼭지다.

이 책에서의 아이덴티티는 여러 사람 사이, 많은 관계들 사이의 문제를 다룬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거야.(51)

 

자아의 아이덴티티는 기억의 총합 이상이다.

정체성은,

자아를 만드는 모든 요소들의 총합에서 발현되는 어떤 것을 우리는 자아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정확한 기억이라 생각하지만,

우리는 오해와 착각 속에서 희미하고 화려한 꿈을 꾸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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