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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1편을 읽으면서, 김훈이 참 유려한 문장을 구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이런 유려한 글들을 쓰기 위해서는 허벅지에 가해지는 체인의 무게만큼 가혹한 정신적 압박을 동반했을거란 생각도 했다.
2편에서는 그의 유려한 문장 보다는, 그의 생각이 폭넓고 다양하다는 데 감격하게 된다. 일편만한 속편은 없는 법이라지만, 본편에서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다면, 속편에선 유려한 문장보다는 유장한 사고로 독자를 잡아챈다.
1편의 기행이 아름다운 곳을 찾은 것이고, 2편은 서울 주변의 분단의 현장, 갯벌처럼 삶과 밀착된 것이어서 이런 차이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강과 김포평야, 일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원래 수평의 삶, 2차원의 개미같던 인간의 삶이, 수직의 삶, 3차원의 삶으로 수직상승하는 변화를 바라보면서 아스라하게 좁아진다. 평야를 보며 그는 헤아린다. "인간에게 절실한 것들, 인간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아,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주관적이냐.
남양만 갯벌 이야기는 목이 메이려 해서 말할 수가 없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이런 부분이리라. 지금 내 배 불리자고 세상을 망쳐먹는 작태 말이다.
등대를 보면서 항해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은 감명깊다. "항해술의 핵심은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며, 지나간 모든 위치는 무효가 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삶의 좌표를 찾지 못해 부유하는 생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호는 나 자신을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슬픈 울음과도 같다."고 하는 글은 인간의 언어의 부질없음에 대한, 그러나 언어로밖에 살 수 없는 그 역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바다를 보며, "기미는 작은 조짐이다. 조짐은 거대한 현상을 이끌고 다가온다. 사소한 기미는 거대한 전체성을 예고한다. 조짐을 파악한 사람만이 예측 가능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는 주역의 말과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의 주제 의식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준다.
숲을 보면서, 숨과의 상통점을 찾아내는 점도 신선하다. 식물의 자족 앞에서 느끼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슬픔은 그의 예민한 촉수를 감지할 수 있게 하고, 부러진 노목의 나이테를 보며 인생을 읽는 안목을 보여준다. "나무 밑동에서 살아있는 부분은 지름의 1/10 정도의 바깥쪽이다. 그 안쪽은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상태인데, 무위와 적막의 나라이면서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수직으로 버티어 줌으로써, 무위는 존재의 뼈대"임의 역설을 생각하는 그의 뇌 구조는 아무래도 천재적인 <특이 체질>인 모양이다. 여름의 연못을 인상주의의 낙원이라고 하는 면에서는 그는 낭만주의자기도 하다.
수원 화성을 바라보면서, 수원화성의궤에 밝혀진대로, 임금의 마음을 읽어내는 그의 눈은 슬픔과 아픔으로 시리다. 이 부분을 읽는 나의 마음도 따라서 시리다. 정조 임금이 죽지만 않았더라도... 그 세도정치 혼란의 60년은 예방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연스런 근대화에 편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도 하며...
"성벽을 쌓는 일도 말하자면 올해 쌓아도 될 일이도 내년에 쌓아도 될 일이고 10년을 걸려서 쌓아도 될 일이지만 백성은 하루를 굶겨도 안 되고, 이틀을 굶겨도 안 될것이며, 한 달을 참고 지내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혹심한 더위가 이 같은데, 성 쌓는 현장에서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찌 잠이 편하겠느냐. 척서단(더위먹은 데 먹는 알약) 4천 알을 보내니 한 알이나 반알씩 정화수에 차서 먹이라. 병을 치료하는 방편에 각별히 유의하고, 더위를 씻을 수 있는 약재를 넉넉히 마련해서 한 사람의 기술자나 일꾼이라도 더위 먹는 일이 없도록 하라."
"동지가 내일이라 추위가 심하다. 일하는 저들을 생각하니 저들의 추위가 나의 추위다. 솜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한사람 한사람의 고통을 일일이 물어서 그 연유를 보고하라. 석수들에게 옷감과 모자를 보내주겠다."
"이제 듣자하니, 여장의 용마루에 사용할 벽돌을 아직 구워내지 못해서 내달 20일 후에야 비로서 구워낼 수 있다하니 그렇다면 내달 10일께 공사를 마치겠다던 경들의 말은 나를 기만한 것이냐! 어찌하여 이같이 해괴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경들은 다시 복명하라."
아, 든든하지 아니한가. 정조 임금의 그 든든한 목소리는 마치 강희제나 옹정제의 우렁차면서도 꼼꼼한 목청이 울리는 듯 하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는 우리말을 통하여,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작가임에 분명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에게 소설보다는 이런 고통스런 고행을 통한 기행문의 기록이 어울리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가 이 글을 적으며 얼마나 하얀 밤을 많이 새웠을까를 추측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의 글맛은 유홍준에 버금가는 걸작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