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처럼 읽는 세계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30
잔니 로다리 지음, 파올로 카르도니 그림, 이승수 옮김 / 비룡소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세계사 이렇게 읽어야 한다

 

세계사를 배운 기억 속에는 온갖 국가, 인물, 제도 등의 재료들이 마구 넣어져 있지만 맛깔나게 그 재료들이 아우러진 기억이 없다. 그래서 세계사는 내게 맛없는 음식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데, 그 몸에 좋다는 세계사를, 정신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세계사를 아이들에게 맛있게 먹여줄 수 없을까? 이런 문제 제가기 이런 멋진 책을 만들었다.

 

이 책에서 잔니 로다리는 간결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다음과 같은 개념을 반복 강조한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나게 되는 유명 인물들의 거창한 행동에 현혹되거나 감탄하지 말고,

보다 단순한 작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것.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대단한 정복자였다.

하지만,

그는 과연 자신이 정복한 민족들에 대해 무엇을 알았을까?

그가 일으큰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을까?

얼마나 많은 여인이 폭행당했을까?

그의 승리로 그의 백성들은 어떤 이익을 얻었을까?(183)

 

역사 속에는 위대한 인물들만 살았던 건 아니다.

아니, 역사 공부가 필요한 건, 위대한 인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작 역사의 그늘에서 살아가며 온몸으로 고난을 헤쳐나온 민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

 

모든 인류의 문제에 대한 호소를 외면하는 이유는

나와는 상관없다는 무관심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무지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매체, 그중에서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거짓 정보를 전하는 수단이거나 대중오락의 무기들.(185)

 

지난날의 역사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비슷한 비극을 재생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많은 매체들은 가진자, 권력자의 이익을 위하여 진실을 가리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는 방법을 쓴다.

 

내년 1~3월에 전쟁 위험이 있다.

 

이건 60년대 신문을 장식하던 대표 클리셰였다. 그런데, 이게 자그마치 오늘 뉴스다.

비극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이익을 나누는 문제로 자기들끼리 충돌이 벌어지자

애국심을 내세워 전쟁의 이유를 감추었다.

금고가 그려져 있는 개인의 깃발을 국기 뒤에 숨기려고 애쓴 것이다.(164)

 

제국주의자들의 속셈까지 읽어주는 세계사.

그래. 역사는 일어난 사실의 서술이 아니다.

객관적인 역사는 세상에 없다. 객관적인 체 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자의 횡포다.

대부분의 민중들에게 역사는 폭력을 당하고 피해를 당해온 기록이었다.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역사에 기록될 바는 상반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한번 치고 지나가는 파도가 아니라

화려한 거품을 품은 파도였다.

비록 암초에 부딪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돌아갔지만,

혁명은 프랑스 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혁명은 계속되었다.(146)

 

멋진 비유다. 혁명이, 나폴레옹이 가진 의미는 금세 퇴색되는 듯 했으나, 그 의미는 영원하다는 것.

  

혁명은 끊임없이 포도주를 내주는 술통과 같아서

포도주를 맛본 사람들이 포도주 맛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듯이

혁명에 관한 여러 의견이 나왔다.(133)

 

혁명은 정지된 의미가 아니다. 역사의 의미 역시 그러하다.

한 사람의 역사가가 의미를 확정할 수 없다. 다양한 의견, 그것이 세계사의 진미다.

 

인간은 오랫동안 지옥을 눈 앞에 두고 살았다.

교황은 황제를 파문하면서 인간이 지옥에 대해 갖고 있던 두려움을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황제로부터 등을 돌리게 했다.

교회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108)

 

중세의 어둠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지옥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의 두려움. 그리고 다른의견 표현의 두려움.

과거의 다른 나라의 역사만 그렇지 아니하다. 오늘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 어리석게도...

 

몇몇 고관들, 재정가들, 지주들의 손에 부가 집중되면서

수많은 민중들은 갈수록 극심한 빈곤에 빠져들었다.

가난한 민중들은 야만인들에 대항해 제국을 지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 주인이나 저 주인이나 매한가지였다.(93)

 

로마의 몰락을 이렇게 묘사한 책은 드물다.

로마 몰락의 주역은, 권력자의 낭비가 아니다. 민중들의 삶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공자를 통해, 역사의 태평성대라 어떤 세상을 추구하는지를 읽어준다.

이런 것이 작가의 세계관이자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귀족들이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탐욕을 버려야 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반항하지 않고 복종해야 했다.

나라가 태평하려면 백성들 각자가 개인 생활을 잘 다스리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것.

역사는 공자의 말이 잘못된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중국이 태평성대를 누린 것은 착한 사람들이 되었을 때가 아니라,

사회적 부정이 사라졌을 때였다.(44)

 

 

작가의 세계관을 민중적 세계관이라고 치부하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권력자의 부정부패는 정치적 혼란을 만들 뿐이다.

사회적으로 부정이 사라질 때만이 국가는 안정되고 융성할 수 있음을,

그 쉽고도 지난한 역설적 이치를 가진자들은 극구 부정하는 것 또한 역사의 이치다.

 

 결국, 역사는 아()와 비아(非我)의 투쟁인 셈이다.

그 투쟁의 현장을 이처럼 생생하게 읽어주는 책으로 세계사를 접한다면 재미도 느끼면서 편향되지 않는 관점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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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2-27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의 교회를 보면 중세의 카톨릭이 보이고, 점점 더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세계적 현상을 보면 인용하신 로마제정 말기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래서 더욱 역사교육은 국/영/수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