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니 참 좋았다
박완서 지음, 김점선 그림 / 이가서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내 평범한 그림을 예술로 만든 건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명품으로 치는 골동품도 태어날 때부터 명품이었던 게 아니라,

세월의 풍상과 사람들의 애정이 꾸준히 더께가 되어 앉아야 비로소 명품이 되듯이...(47)

 

박완서는 늦깎이 작가다.

마흔이 넘어서랬나.

나목을 써서 등단을 한다.

가난하고 혼란스럽던 시절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 무엇인지 한번 내어보이지도 못하고 어른이 되기 쉽던 시절.

신경숙의 외딴 방 이야기처럼... 성장의 아픔이 많던 시절...

 

그렇게 힘든 시기를 거친 사람들은 지긋하게 세상을 오래 바라보는 눈을 익힐 수 있었나보다.

박완서의 소설들이 노년의 심사를 잘도 그려내고 있는 것은 그 힘이 응축된 것일 게다.

 

이 책은 동화집이다.

아이들이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법하지만,

이 책은 삶의 너울에 쫓겨서 날마다 허우적대는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법한 이야기다.

 

시집가서 폭폭했던 시절의 삶의 이야기를 담은 '찌랍디다' 같은 이야기는,

똥과 꼬마신랑에 얽힌 거라서 애들도 재밌어 할 이야기지만,

시집살이를 호되게 했던 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박완서나 박경리 같은 작가들의 책을 읽노라면,

나이드는 것이 어둡지만은 않다.

비록 몸은 조금 더 삐걱거리고, 머리도 예전같지 않지만...

 

깜깜한 밤이 오기 전에

잠깐이나마 노을이 있다는 것은

참 놀랍고 아름다운 일입니다.(167,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중)

 

그 노을을 마음에 담으려면,

마음의 화폭에 노을의 순간을 담으려면,

화가의 소망은 피눈물에 젖은 물감을 써야하는데...

 

깜깜한 밤이 오기 전에,

그 깜깜한 밤이 올 것을 두려워하기만 하며 손놓고 사는 일은 더 놀라운 일 아닐까?

 

숨을 거둔 아내의 모습을 보고서야

이 미련하디미련한 환쟁이는

비로소 아내가 그의 그림을 위해

스스로의 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61)

 

깜깜한 밤...

누구에게나 올 것이다.

그 밤이 오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노을의 아름다움을...

그 노을 속에는 아내의 선혈이 가득 들어차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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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11-28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된, 그래서 더 깊은 맛이 우러나는 작품들을 써주시는 분들이죠. 이젠 그분들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