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 시인동네 시인선 1
김신용 지음 / 시인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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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물의 만년필,

오늘, 무슨 글을 쓴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 없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를 쓴 것 같은데 읽을 수가 없다

지느러미를 흔들면 물에 푸른 글씨가 쓰이는, 만년필

지금은, 잉어가 되어보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것이겠지만

잉어처럼 물속에 살지 않고서는 해독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잉어는, 오늘도 무슨 글자를 쓴다

캘리그래피 같은, 오늘도 무슨 글자를 쓴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사람의 얼굴을 닮은, 잉어의 얼굴

눈꺼풀은 없지만 그윽한 눈망울을 가진, 잉어의 눈

 

분명 저 얼굴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편지에 엽서에 무엇인가를 적어 내게 띄워 보내는 것 같은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오늘

나는 무엇의 만년필이 되어주고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몸속의 푸른 피로, 무슨 글자를 썼을

만년필,

수취인이 없어도, 하다못해 엽서라도 띄웠을

만년필

 

그래 잉어가 되어 보기 전에는 결코 읽을 수 없겠지만

내가 네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편지를 받을 수 없겠지만

 

그러나 잉어는, 깊은 잠의 핏줄 속을 고요히 헤엄쳐 온다

 

잉어가 되어보기 전에는

결코 읽을 수 없는, 편지가 아니라고

가슴에 가만히 손만 얹으면, 해독할 수 있는

글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몸에, 자동기술(記述)의 푸른 지느러미가 달린

저 물의, 만년필-     (잉어, 전문)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이 있다.

삶의 이치는 '사물을 궁리하는 일'에서 얻을 수 있단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를 높게 떼어 생각하면 도달할 수 없다.

특히 '나'라는 존재를 귀하게 여기면 거기 갈 수 없다.

눈을 낮게 떠야 한다.

인간의 눈이 바라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본다.

복안을 가지고, 복안으로 본다.

 

김신용의 이 시집은 '격물치지'로 가득하다.

사물을 바라보고, 인간의 언어를 살펴본다.

'자라'라는 사물을 발음하면, '자라고 있는' 과정도 느껴지고, '고만 자라'라는 말도 떠오른다.

자라라는 동물은 그렇게 느릿느릿,

굼뜬 눈으로 잠든 듯 자라는 듯 세상을 보게 한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버려야만 관조의 눈을 얻게 된다.

동물 속으로, 식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얻어야 한다.

그러면, 잉어의 꼬리 흔듦새까지도 캘리그래피의 만년필 풀림으로 느껴진다.

 

다람쥐가 나무에서 호두를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꺼진 상상력에 반짝 필라멘트를 켜는, 그 발걸음(호두까기, 부분)

 

을 보아내는 시선은 여간 몰입해서는 얻기 힘든 것이다.

 

11월의 쓸쓸함을 나무가 외로이 서있는 것과 융합하고,

양파더러 '외투 위에 외투를 껴입은 듯, 질문을 껴입고 뚱뚱해진' 녀석이라고 부른다.

 

그래, 풍자는 정글의 무늬

해학이라는 보호색 속에 발톱을 감춘, 눈빛의 무늬(얼룩, 표범 무늬, 부분)

 

이런 구절은 언어를 읽는 행위 자체를 숨막히게 한다.

관조가 언어 속에 무르녹은 경지를 눈 앞에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탁월한 경지다.

 

나뭇가지를 '전지'하는 일에서도 무언가 본다.

 

그 그늘에, 바람과 햇빛을 불러들이는 것이, 전지

얽힌 가지 사이사이마다 흔들의자를 놓아주는 것이, 전지(전지, 부분)

 

가지치기를 부정적으로 보긴 쉽지만,

그 의미를 이렇게 살려놓으니,

마치 혀를 궁글려 입 안의 공간을 넓혀 바람을 불어 피리를 부는

그래서 피릿소리가 맑고 투명하게 울려났을 때 느껴지는 청명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말맛이 있다.

 

그러니까 젖은 낙엽 같은 잎에서 엷게 스며 나오는 물빛이, 저물녘의 들길을 걸어오는 흙 묻은 놀빛 같기도 해

마음 흐뭇해지는, 이 저녁(등잎차 한 잔, 부분)

 

차 한 잔으로

시각적 미각적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힘은 관조에서 우러난다.

 

콩나물은 물만 주면 자란다. 뿌리에 흙 한 점 없어도

모두에 햇볕 한 점 없어도, 마치 음표처럼 자란다

 

지난날, 우리들의 희망과 너무도 닮은꼴이었던 콩나물은

아침 지하철에 실린, 졸린 눈의, 그 무뇌의 표정과도 일란성이었던 콩나물은(콩나물처럼, 콩나물 뿌리처럼, 부분)

 

관조가 추억을 불러 온다.

격하게 공감할 만한 추억이

어떤 심상으로 가득 가슴 속을 채운다.

 

마음 든든한 시집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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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3-11-20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시도 좋고, 글샘 님의 글도 참 좋습니다. 따뜻한 햇살을 마시는 듯해요^^

글샘 2013-11-21 16:05   좋아요 0 | URL
와 댓글이 시적이네요.
따뜻한 햇살을 마시는 듯하다니...

프레이야 2013-11-2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처음 보는 시인에요. 사물을 궁리하는 일! 담아갑니다^^

글샘 2013-11-21 16:05   좋아요 0 | URL
저도 흔히 보던 시인은 아닌데,
관조적 시선이 멋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