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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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적막한 기분...

 

이런 기분을 아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도시화가 일어나기 전, 농촌 사회는 사람들은 적지만, 아는 사람뿐이어서 늘 목말하했을 사람들이,

이제 도시에서 살면서 고독해진다.

 

도쿄는 3.11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

 

진흙탕 길을 포장하고,

하수도나 하천을 정비하고,

욕망의 리비도가 오로지 수직 상승하는 스카이 라인으로 '발기'로 비유되는 대도시.

그것이 한 순간에 다시 진흙탕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반성을 하게 한다.

 

잡지 '바일라'에 연재한 글들이라 간단하고 짤막하지만,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한 구석을 이렇게 돌아보는 일도 재미있을 듯 싶다.

<다시 서울을 걷다> 같은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여러분 중에도 '자기 찾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 같은 건 없습니다.

있는 것은 지금 거기에 있는 자신뿐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기 안의 모순을 그대로 껴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찾기'의 여행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각오와 담력입니다.(21)

 

자이니치(재일조선인)로 살아온 강상중이,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겪으며

필요한 것으로 꼽은 것이 '각오'와 '담력'이다.

이 '각오'와 '담력'은 이 책에서 제법 등장하는데, 그것이 '살아가는 힘, 고민하는 힘'일 수 있다.

 

인생의 드라마트루기(연출법)에도 저는 이 '거리'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것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때,

가족이나 배경 등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과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가요?

일단 거리를 둔 상태로 인생을 드라마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어딘가에 또 하나의 눈을 갖지 않으면 자신과 그 역할의 관계에 일정한 거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연출가처럼 조감할 수 있는 시점을 갖지 않으면 이야기를 잘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점을 갖기 위해서는 인생에서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뒤로 물리고 볼 수 있는 정신적인 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합니다.(54)

 

그는 남들이 흔히 가는 순례길이나, 전국일주를 택하지 않는다.

매일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는 도심의 어떤 골목들의 의미를 곰곰 궁리한다.

거기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오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면, 어디에나 '이것이 인생'은 있는 법.

그것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만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해주고, 자신을 옳게 보기 시작하는 여유를 갖게해준단다.

 

우리는 고민을 순수하게 사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며 그사람의 내면적 문제이므로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어떤 고통된 원인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사는 한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저는 좀더 고민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다시한번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살아가는 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형화된 행복감이 아니라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역시 고민하는 힘이 필요함니다.(75)

현대인은 고독하다.

그러나 현대인의 고민은 카프카의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처럼 이해받기 힘든다.

그 고민을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철학'일 것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한다면 '연대'일 것이다.

 

소세키의 '마음'에는 '선생님'이 '나'에게 "당신은 진지합니까?"하고 몇 번이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진지함이고, 진자하게 타자와 대면하는 일입니다.(76)

 

진지하게 타자를 대면하기 시작해야하는 일이 근대의 과업이었다.

그렇게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사람을 울리는 글이란다.

근대 이전의 <본질>에 주어진대로 살아온 삶들은 고민할 필요가 적었을 테지만,

근대 이후의 <실존>은 주체성을 확립하지 못하여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이방인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태양은 이글거리고, 자신이 총을 쏘고도 그 상황을 확정짓지 못한다.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은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 시대를 살아가는 자와 진지하게 마주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탄생된 또다른 나 '뫼르소'인 셈이다.

 

애초에 인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왜, 무엇때문에라고 묻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벌화에 따라 사회가 다양해지고 개인들의 자유가 강조되면서

무엇이든 개인의 판단에 맡겨지고,

인문학적 테마도 모두 내마음이지 하는 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인문학적 물음에는 정답이 없기때문에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해 고뇌해보았자 전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이란 것입니다.(122)

 

엊그제 수능을 마친 아이들의 머릿속에 한결같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도대체 무얼 위해 이렇게 달려온 걸까?

 

그리고 그들에 대한 진로 지도는,

소위 돈벌이가 된다는 '사'자 달린 직업군에 대한 쏠림이외의 기준을 달기 어렵게 된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시대...

 

'고민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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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11-1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자기같은 건 없다는 말이 딱 와닿네요. ^^ 지금 거기에 있는 자신에서 출발한다는 것.
요즘 온갖 멘토와 미래설계타령에 질릴 것 같은데 말이죠.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 고민하는 힘이 필요하다가 맞을 것 같네요. 저말 한마디때문에 이 책이 끕 땡깁니다. ^^

글샘 2013-11-11 13:3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토막글들인데, 생각이 참 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