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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ㅣ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평점 :
세계사 또는 국민윤리(ㅋㅋ 국민의 윤리라니... 근대국가에 봉건적 잔재가...) 시간에
노장사상... 그러면 '무위자연',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런 말을 아무 생각없이 외운 기억이 난다.
그리고 틈틈이 노자와 장자를 풀이한 책을 읽었는데,
이 두 책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쉽게
'알아 먹는 말'로 설명한 책을 만나긴 드물었다.
강신주가 '정치철학'으로서의 노자와, '소통'으로서의 장자를 풀이하면서,
이제까지 통용되던 닫힌 체제 내의 논의와 다른, 해체적 독법을 제시한다.
강신주를 읽으면서, 노자의 말들이 가진 함의가 구체적으로 다가서고,
장자의 우화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민중성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강신주에게 질투마저 느껴진다.
고전을 읽으면, 그 고전이 어떤 맥락에서 쓰여진 것이며,
그리하여 어떤 관점에서 읽어야 할 것인지를 그는 발견하는 혜안을 갖고 있는데,
틈틈이 시간을 내서 읽는 무지한 나로서는 언감생심, 질투를 느껴도... ㅋㅋ
질투는 나의 힘이 되진 못하니, 그저 샘만 낼 뿐이다.
장자의 이야기는 '대대 待對'의 관계를 보여준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들은 말일 게다.
사르트르가 세계대전 시기의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를 통찰하면서,
<우리> 민족... 같은 '개념'이 '인간 존재'를 압살하는 현실을 바라보며 비장하게 뱉은 말일 것이다.
한 인간의 존재는 어떤 '이념'이나 '주의'보다도 신성하다.
그러나 정치는... 인간의 실존을 이념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40년 넘게 감옥에서 사람을 풀어주지 않던 비극적 공간이 이 땅임을 생각하면,
노자나 장자가 살아가던 춘추전국시대의 피비린내는 아직도 여전하다.
그 '이념' 속에는 '터놓고 통하는(소통)' 동양의 개념보다는 '공동체에 속박하는(커뮤니케이션)' 서양의 개념이 짙다.
자기네 이념 외의 존재를 '엑스커뮤니케이션(파문)'하는 폭력적 방식.
존재의 상대성.
그 폭력적 상황은 수천 년을 거쳐 나아졌달 것도 없다.
노자는 '권력자'의 정치 철학에 대한 권유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미묘한 밝음이라고 한다.(101)
남음이 있는 사람(권력자)로서 지속될 수 있는 방도를 밝힌 것이다.
이 책에서는 초대, 만남, 대화, 이슈... 등으로 편집의 틀을 짰으나,
그 형식보다는,
강신주가 '노자'와 '장자'라는 텍스트가 오해받고 있는 현실을 밝히고,
두 텍스트가 가진 특성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는 데서 독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노자가 탁월한 지점은,
국가가 신비한 무엇이기보다 경제적 메커니즘으로 바라보았다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제가 중시하는 사람은 통치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찮게 여겨지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저는 통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이 소중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비천하다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통치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꿈과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그런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144)
노자와 장자를 '도가'로 묶어서 무위자연...으로 외운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맥락에서 그 텍스트들이 생겼으며,
지금의 시점에서 그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해야 유용한 것인지를 이 책은 밝히고 있다.
강신주가 활발하게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가 부디 건강하게 열심히 써주기를... 진심으로 건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