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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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일반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이것도 인생 중의 하나'라고 해야 옳다.

 

가장 전형적인 인생도 있을 수 없고, 전형적인 인간도 있을 수 없다.

뉴욕에 800만 명의 사람이 산다면, 800만 가지의 인생이 있고, 800만 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차이 - 개성을 몰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감옥, 군대... 이런 곳이 갑갑하고 무섭다.

 

매튜 스커더는 장르 소설에 잘 등장하는 전형적인 퇴직 경관이다.

그가 사건 의뢰를 받는 데 까지는 평범했다.

문제는 사건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는 챈스가 의뢰인이 되면서부터다.

 

이 소설을 관통하며 흐르는 알콜중독에 대한 강박은 소설에 몰입하지 못하게 흔든다.

독자의 머리도 같이 중독된 듯이 흔들린다.

 

챈스라는 포주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은 점조직과 같아서 독립적으로 영업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창녀라고 여기기보다는 미술이나 음악에도 나름 관심이 깊다.

그저 '매춘을 해 보는' 거라고 여긴다.

 

챈스는 코끼리 같아요. 그의 여자들은 장님들이고요.

우린 각자 다른 사람을 알고 있죠.(261)

 

마치 피카소의 큐비즘 그림을 만나는 듯,

한 사람의 얼굴은 다양한 방면에서 보이고,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하나의 줄거리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800만 명의 사람들이 800만 가지의 이야기를 수런거리듯,

이야기가 웅성거리고 사건은 더 미궁에 빠져든다.

 

이 소설의 실마리는 알콜중독 모임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그런 것을 읽는 묘미가 이 소설의 재미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 알콜의 힘에 쉽게 의존한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잠시 비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반드시 기분이 좋을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것은 내게 혁명이었어요.

전에는 초조하거나 걱정스럽거나 불행할 때마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분이 나쁘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요.

알코올은 나를 죽이죠.

하지만 내 감정이 나를 죽이지는 않아요.(357)

 

이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여느 추리 소설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그 실마리를 잡으면서 사건이 급물살을 탈 때 반전이 마련되어 있고,

이건 뭐지?

하는 동안 사건은 이미 해결되어 버린다.

 

이 소설 속엔 계속 알콜중독자의 불안감이 내재되어 흐른다.

지금은 금주 기간이지만, 어느 순간 한 잔을 입에 대면서 그 금기는 끝나버리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나 르네 마그리트 같은 이름을 만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그들의 그림들이 가지고 있는 대화의 많은 부분이,

인간 소외와 고독,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울음 같은 것이어서,

소설을 더욱 짠하게 만든다.

 

작가는 한 번 읽고 던져질 소설이라면 쓰지 않겠다는 각오로 소설을 쓴 것 같다.

사건 현장에 다시 가볼수록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는 것처럼,

거푸 읽는 동안 이 소설의 묘미에 빠져들게 되는 소설을 기획했다면, 작가는 천재다.

 

 

 

 

의미는 알겠지만, 어폐가 있는 구절...

난 왜 이런 게 눈에 밟히는 건지...

 

동료는 결국 뇌진탕으로 열다섯 바늘을 꿰맸다.(72) ... 뇌진탕은 '내과'고 '꿰매는'건 '외과' 아닌가?

 

250그램들이 잔에...(175)... 미국은 갤런을 쓸 듯... 갤런은 부피의 단위고, 온스는 무게의 단위인데... 술잔이라면... 부피의 단위인 갤런이 들어가든지... 옮기려면 CC나 ml 같은 단위를 써야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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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9-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그렇네요. 초초하거나 걱정스럽거나 불행하다고 해서 나쁜건 아닌데...
왜 꼭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억지로 해서 될일도 아닌데말입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그저 지나가는 감정의 일부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