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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CJK - 죽은자를 위한 미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5월
평점 :
죽음은 두렵다. 논리적으로 인연의 한 부분에 죽음이 있다고 하지만, 특히 갑작스런 죽음은 우리를 공포스럽게 한다. 우리에게 사흘이 주어진다면, 하루가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는 사흘 동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빠져 쇼크 상태로 지낼 것>이란 답을 얻기 쉬울 거라 생각한다.
전쟁은 무섭다. 전쟁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뒤따르기 때문이고, 그 죽음에는 선과 악, 미와 추의 구분이 없이 무차별적 광기에 젖은 피비린내만이 처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뒤덮는 포화와 초연 아래 고개를 들 수 없는 사람들의 대뇌 피질에는 <충격과 공포>에 대한 신경 회로만이 바쁘게 활동할 거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탈을 쓴 미국에 의한 평화는 부시에 의해 <악의 축>으로 증명되었다. 20세기 말에서 21세기에 걸친 신 십자군 전쟁은 父子 부시에 의해 <악의 변두리 국가> 이라크를 <악의 주축국> 미국이 쳤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슬람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종교를 미국이 치고, 다시 이슬람이 9.11 역습을 감행하고, 십자군 전쟁은 완성된다.
이 와중에 진중권은 <충격과 공포>, <이라크에 자유를> 주는 작전 속에서 죽음을 읽고, 그 죽음의 악취에 취해 준동하는 자유주의 내지는 애국주의자들의 미친 놀음을 논리적으로, 내지는 감상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의 글이 솔직하고 담백하여 잘 읽힘에도 불구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지는 못하는 부담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안식을 주라는 죽은 이들을 위한 장엄 미사곡인 레퀴엠이란 용어도 그렇고, 중간중간 쓰이는 라틴어들이 주는 무게는 한자 문화권인 우리에게는 우리말에 대한 한자어의 압도를 느끼게 한다.
아그네스 데이(신의 어린 양), 리베라 메(나를 구원하소서)... 이런 라틴어들은 뭔지 있어 보이지 않는가.
부산에 리베라 백화점이란 백화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중소 백화점은 롯데, 현대 백화점처럼 구색을 갖추기 어렵다 보니 어렵게 어렵게 운영하다가, 세이브 존이란 중저가 판매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말만 두고 본다면 리베라가 <구하다>고 세이브도 <구하다>니깐 말은 그 말이 그 말이지만, 백화점에서 할인매장 정도로 바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무게의 차이에서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 정도를 느낄 수 있다. 영어 포니(말)는 소형차같지만 라틴어 에쿠스(말)는 대형차 느낌이 드는 그런 것.
중요한 권세를 누리란 뜻의 이름으로 보이는 그의 이름을 굳이 CJK라는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문자로 적는 걸 보면, 그도 문화 권력의 라틴어 층에서 누리고 싶은 뭐가 있는 거나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는 나도 어지간히 삐딱한 생각을 가진 인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