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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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시인의 서랍'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지혜의 목소리를 빌린 시인의 넉넉함과 푸짐한 말재간에 흥미를 느꼈고,

'시인의 서랍'과는 많은 부분 겹치는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의 시심이 발단된 것이

어머니의 말씀이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거기 비하면, 이번 책은... 아무래도 먼젓번의 흔적에 묻어나는 '속편'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게라.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삶의 지혜가 풀려나오면서,

그 지혜가 담긴 그릇은 된장 항아리 같기도 하고,

메주 같기도 하고, 오토바이 타고 들렀다 사라진 빽구두 같기도 한 것인데,

이 책에 담긴 아버지의 목소리는,

고주망태가 된 아버지의 흐느적거림 속에서

사람의 목소린지 짐승의 울부짖음인지를 분간하기 힘든,

지나온 발자국의 삐뚤거림을 돌아보기조차 싫은 한 존재의 울분으로 가득하다.

 

  사내란 탁한 세상에서 탁발을 하고는 구름 너머 시린 하늘

로 마음을 씻지. 식구들 뱃속 채워주는 일이라면 시궁창에 발

담가도 되는 거여. 사내는 자고로 연지 蓮池 수렁에 서있는 왜

가리 흰 연꽃이여.(왜가리, 부분)

 

시궁창에서 피어나는 흰 연꽃처럼,

추악한 세상에서도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부정적 세상을 살아가는 부조리한 삶은,

부정의 부정을 겪는 듯,

어쩔 수 없이 긍정하게 된다는 목소리는

전작의 맑고 경쾌한 어머니 목소리는 다 어디 가고,

탁하고 걸쭉한, 그래서 어눌한 말소리도 다 해득하지 못하겠는,

아픔만이 전해지는 그런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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