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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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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는 사이,

나는 한 잎의 꽃잎이나 깃털, 한 장의 종이 같은 것이 되었다.

나의 손이 먼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다음에는 발등이, 손목과 팔이, 다리와 허리가, 가슴과 어깨가, 마침내 목과 얼굴이 사라졌다.

그 모든 '있음'들 뒤에, 모든 '없음'들이 온다.

그러니까 그 '있음'들에 대해, 일일이 다정한 이름을 붙여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후회라거나 슬픔이라거나 사랑같은 이름들,

다만 그저 이렇게,

이 하나의 문장으로,

마침내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 한다.

그가 여기 있었다.(232)

 

황경신은 그림을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라는 개체는 스르르 허공중으로 풀려나고,

그림 한 장 속에서 울먹임이나 어떤 따스한 감정, 분노, 질투, 역정이 솟아오르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때 그는 그 감정을 그대로 떠낸다.

그 감정은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독백이 되기도 한다.

 

"후회하고 있나요?"

여자가 묻는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혹은 하늘, 아니면 바다와 하늘 사이 어딘가.(201)

 

이 책의 이야기들은 쌈빡한 재미를 기대하거나,

달콤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는 이에겐,

밍밍한 이온음료처럼 별 맛 없는 것처럼 읽힐 수 있지만,

그림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목마름에 제격인 음료의 시원한 상쾌함을 만나는 이라면,

행복에 빠진 독서를 경험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식물같은 것이었어야 했네.

그랬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사소한 행복에 몸을 떨고 스스로 빛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을 텐데.(110)

 

황경신은 나이먹은 소녀같다. ^^

그런데 그런 마음이 참 예쁘다.

 

식물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옮겨다니지 않고도 사랑을 흠뻑 만끽할 줄 안다는 지혜로움을 가진 존재라는 걸 읽는다면,

식물인간처럼 불행한 말을 만들진 않을 텐데...

 

여자의 목소리는 석류의 속살처럼 붉고 탐스럽다.(102)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의 뇌수 역시 석류처럼 탐스런 사람일 게다.

 

괴물이 여자의 집에 머물게 된 것은,

여자가 괴물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불안은 불안을 부르고, 절망은 절망을 부르고,

고통은 더욱 극심한 고통을 불러냈다.

괴물의 녹색 눈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자꾸만 초라해졌다.

여자는 자신이 가엾어서 미칠 지경이었다.(85)

 

이런 것이 황경신의 내면이다.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가장 위태로운 자리에서

마지막 한 줄 남은 현의 악기를 부여안은 여인처럼,

희망을 온몸으로 느껴보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위태로움 앞에서,

가장 소녀다운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런 시선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것이 이 책의 '희망'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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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6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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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9 2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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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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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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