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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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지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탐구'에 애착을 가진 사람은,

그 시대가 고민이었을 게다.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전쟁을 하고 있었고, 그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전쟁의 속내는 밥그릇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뜨겁던 '지적인 시대'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지에 대한 사랑 - 곧 철학' 적 사유에 몰두했고,

철학에 따라 '실천'에 몸을 바쳤던 시대가 있었다.

한국의 1980년대가 그랬다.

 

전태일이 예수와도 같은 측은지심으로 제 몸을 불사른 이후,

이 땅에는 끝도 없는 전태일이 태어났고,

광주의 캐터필러 소리는 지식인의 책무를 일깨워 <청춘>을 운동에 바치는 세대가 탄생했다.

 

소위 엘리트 집단이라는 대학생 그룹이 노동운동의 지하로 잠입하여 노조를 결성하였고,

그 결과, 노동자 조직이 독재국가에서는 자라기 힘든 토양을 뚫고 강고한 노조를 탄생시켰다.

 

그 뜨겁던 청춘들이 바친 땀방울은... 그런데,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짓이겨지고 있다.

왕조가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주권국가를 수립하기 전에,

이 땅은 일본 대신 미소 냉전의 피비린내로 3차대전에 버금가는 전쟁터를 지냈고,

미소의 비호 하에 남북대립은 남북의 독재자를 온존케 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되었고,

결국 이 땅의 청춘들은, 달콤한 청춘이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 아래서 노동에 땀방울을 바쳤고,

취업 준비란 이름으로 땀방울을 흘렸고,

이제 대입 준비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죽음의 골로 몰아넣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세계의 경제적 구조 개편에 맞물려 들어가면서,

4.19 이후 거세져 오던 개혁, 개선의 의지가 '자본의 논리'에 무릎꿇는 역사를 눈 앞에서 보게 되고,

선거를 통하여 개혁의 고삐를 잡았다고 착각했던 시절이 꿈같이 지나고,

다시 선거를 통하여 민중의 힘으로 자본가의 권력에 국민 주권을 빼앗긴 현실...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역시, 유시민이다. 이런 느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일말의 예상과 맞물리듯, 역시나... 기대에 못미치는 실망감도 함께 한다.

 

그렇지만, 나는 유시민을 높게 친다.

그는 이 시대에 드물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자고 화두를 던진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진보당이 가진 가치조차도 권력 다툼에서 무너져 내릴 때,

총선,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국민정당으로서의 가치가 퇴색해버렸음이 확인된 이후,

어떤 대안도 없는 우울한 정치가 방향도 없이 좌초되고 있는 시대에,

그렇지만 나날이 우울하든 좌절하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 하나쯤 던져 주어야 하는 것은 옳다.

 

다만, 화두에 높은 점수를 주었을지언정, 그 대답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는 한계는 크다.

노회찬의 빈자리에 끼어든 안철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안 정치를 그가 꿈꾸고 있다면, 그 역시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 보인다.

물론, 그가 무언가 하려고 든다면, 그의 앞날에 자본의 힘으로 무자비한 태클이 작렬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일과 놀이, 사랑과 연대

 

그는 대구 남자다.

한국에서 가장 가부장적 냄새가 짙은 곳이 그의 유전자를 지배하고 있어 보인다.

그가 말하는 일과 놀이, 사랑과 연대에서 짙게 풍겨나는 '유교적 딜레머'를 감출 수 없다.

그가 '현실 정치'에 발 담그기 전,

그는 '리버럴리스트' 처럼 보였다.

어떤 구속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다.

그가 유치해 보이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고 국회에 들어갔을 때 욕먹던 모습도 그런 면모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같은 족속'이라고 여기던 사람이고, 그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노당 의원들의 점퍼나 한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연대하자는 말은,

참 아름다운 말이지만,

참 무책임한 말로 보인다.

 

일할 자리를 주지 않는다.

일할 자리를 얻기 위해서 초중고생은 오늘도 부모의 채찍 아래서 세계 최강의 학습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놀 시간과 노는 방법을 배운 적 없다.

노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진다. 놀 줄 모르는 민족이다.

자본주의가 다스리기 가장 적합한 민족으로 코드화되고 있다.

사랑? 이 땅에서 사랑은 '꿈'이거나 '불륜'이다.

가정 내 사랑이라는 불가능한 꿈에 대한 유교적 담론에서 아직도 사랑은 어지럽다.

현실은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내 사랑인걸요...'라는데 말이다.

연대? 연대는 '배부른 소리'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경주 최부잣집의 자본가 마인드가 박통의 영남대학교에 재산을 몰수당한 역사 속에서, 연대는 백일몽인가부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가 '자살'만이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단다.

결국, 왜 사는가? 그거 모르면 자살하는 게 옳지 않은가? 이런 냉혹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래. 그래서 한국은 가장 자살 많이 하는 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하고 답이 없을 때, 철학적 해답을 내린다. 자살.

 

카르페 디엠? 말은 참 좋지만... 불가능한 현실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나도 아이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참으로 답답하다.

 

유시민의 질문이 무지 중요한 화두인데 반해,

그의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 감싸기는 그 역시 영락없는 일상인임을 보여준다.

아니, 그 역시 이 사회의 상류층의 한 사람에 불과함을 보여주어 씁쓸하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

아빠가 부지런히 벌어서 영국 유학 보내줄게.

가서 스포츠 마케팅 공부하고 주말마다 프리미어리그 보고, 그렇게 최고의 축구 평론가가 되라!

 

이걸 읽는 순간... 이 작자의 책을 내가 왜 읽었나, 후회했다.

서울대를 다니고 있고, 학생회장도 하고 있는 큰딸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는 것인지,

그 딸이 외고를 졸업해서 (외국어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대를 가는 것 자체가 부조리 아닌가?) 대학생이 된 것은,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으나,

적어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가 인간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뇌'에 대하여 늘어 놓은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뇌'에 대해서는 아무리 연구해도 '이론'을 넘어서긴 힘들지 않을까?

인간의 '뇌'에 '거울 뉴런'(자칭 공감 뉴런)이 발달한 신경세포가 있다고 하는데,

인간의 타인의 기쁨이나 고통에도 감응하지만,

타인이 자신과 '같은지 다른지'에 대해서는 0.1초도 안 걸려 전존재적으로 파악한다.

이런 이론들이 인간을 설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설득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인간을 설득할 수 있는 글은,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그의 충심을 애도하는 그 끝도 없는 인파가 몰린 것은,

그의 위대함에 보내는 경의보다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에 표하는 경례였던 면이 큰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에 그같은 인파를 볼 수 없었던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일 수 있겠고...

 

 

유시민이 앞으로도 계속 지식소매상 역할을 자처할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조사, 연구' 해서 다뤄줬으면 좋겠다.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유시민이 가장 인기를 얻었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처럼,

다룰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리버럴리즘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큰 화두를 다루려 들거나,

웃자란 국민을 가르칠 들 때는,

현실 정치에서 완패한 경력처럼, 지식소매상으로서도 완패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책 중에서는 그래서 '청춘의 독서'나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같은 책이 좋아 보인다.

'국가란 무엇인가', '후불제 민주주의', '대한민국 개조론' 같은 것들이 갖는 한계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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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4-29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는 내내 뭔가 되게 불편했는데 글샘 님 리뷰 보니까 이거였군요.
뭐 틀린 말은 아닌데 나하고 또는 우리 현실하고는 별로 맞지 않는 소리를 삑삑하고 있다는 느낌.

글샘 2013-04-30 09:34   좋아요 0 | URL
뭐, 이거...라기 보담은... 제 느낌이 그렇다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