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9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9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보슈에 빠져드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겠다.

 

직업에 대한 전문성,

사건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통찰력,

맥을 짚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지적 번득임,

그리고 여자들을 사로잡는 섹시한 매력~

대담하게 부딪치면서 사람들과 연대하는 파워~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어떤 권력과도 불화를 서슴지않는 용기.

 

 

나약하게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그런 남자 하나쯤 선물한 작가가 고맙다.

 

장르 소설의 효용은 그런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에 역겨워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어질 때...

장르 소설 안에서만이라도,

권력도, 암투도, 어떤 검은 거래도 주인공이 날려버리는 속시원한 해결~

 

그런데 이 남자,

또한 무척이나 섬세하다.

터프하기만 하면 매력이 덜한 법인데, 한 섬세하는 이 남자에게 끌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노릇.

 

나는 손전등을 끄고 린델에게도 끄라고 하자 그가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잠시 끄라고."

그가 손전등을 끄고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암벽의 윤곽과 돌출면이 차츰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를 따라 들어온 불빛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지?"

"로스트 라이트. 난 로스트 라이트를 보고 싶었어."

"뭐라고?"

"잃어버린 빛이란 뜻이야. 어둠 속이나 지하에서도 항상 볼 수 있지."(401)

 

음... 이런 낭만이라니...

하지만 이 낭만을 되뇌는 장소는 FBI 대원의 시신을 찾으러 간 동굴임에랴.

 

현대인은 환한 불빛에 너무 의존한다.

세상의 사물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제각기 아주 약한 빛을 반사하고 품고 있는데도...

이 소설에서 '빛'이 상징하는 바는, 단순한 명암을 뛰어넘는 애수를 자아낸다.

아무리 캄캄한 곳,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곳이라도,

어둠이 간직하고 있는 빛,

숨어있는 빛, 잃어버린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해리 보슈는 일깨워준다.

 

속에서 불길이 두 줄기로 뻗쳐올랐다.

하나는 빨간 불길, 다른 하나는 파란 불길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쳤다.

하나는 분노의 감정, 다른 하나는 따스한 감정이었다.

하나는 내가 컵을 깊숙이 담글 수 있는 비난과 복수로 가득한 데블즈 펀치볼,

마음속 캄캄한 심연으로 나를 인도했다.

다른 하나는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끌어내어 천국의 길로 안내했다.

환하고 축복받은 낮들과 어둡고 성스러운 밤들,

로스트 라이트가 돌아오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가 잃어버렸던 빛.

...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410)

 

로스트 라이트는 파경을 맞았던 해리 보슈가 아내와 만나는 대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다함이 없다.

그렇게 은은한 빛으로 간직되어 있다가 삶을 다사로운 빛으로 인도한다.

 

매력남 해리 보슈는 은퇴한 경관이다.

그는 색소폰 레슨을 받는다.

그의 색소폰 선생 슈거 레이는 기억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음악이 있는 인생. 그리고 직접 그 음악에 참여하는 인생은, 빛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가 음악을 하는 이유 역시,

로스트 라이트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란 걸 나는 알겠다.

 

그가 전처 엘리노어 위시에게 느끼는 감정.

마음 속 깊이 담아둔 애정이 느껴진다.

 

나는 단발이론의 신봉자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빠져 여러 번의 정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자기 이름이 새겨진 사랑의 총알에 피격될 기회는 딱 한 번 뿐이다.

이 총알에 맞은 행운아는 영원히 아물지 않는 영광의 상처를 누린다는 것. 이것이 소위 단발이론.

내가 알고 있는 건 엘리노어 위시가 나에겐 그 사랑의 총알이었다는 것.

그녀는 나를 깊숙이 관통했다.

엘리노어가 내게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피를 흘리고 있다.

나는 그것이 영영 아물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144)

 

이 책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이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9)

 

작가의 마음 속에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애정으로 가득한 다함없는 인간에 대한 긍정은,

해리 보슈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는 혜안을 주었다.

마음속에서 간절한 것은 결국 뚝, 끊기지 않는다는 것을...

 

해리 보슈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400페이지의 두께도 아쉬워할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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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3-04-1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죠 어떤 경우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 얼마전 링컨차를 탄 변호사 후속편에 잠시등장 존재감을 과시 해주셨죠

글샘 2013-04-17 23:23   좋아요 0 | URL
링컨차 후속편도 나왔군요
참 멋지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