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장정일의 화두, 혹은 코드>를 읽다가, 갑자기 로즈마리 차가 마시고 싶어져서 물을 끓여 로즈마리 향을 맡으며, 갑자기 또 음악이 듣고 싶어서 그저 듣기 편한, 카페같은 데서 들을 수 있는 추억의 팝송을 틀어 놓고, 오랜만에 촛불도 켜 놓고 혼자서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창밖은 어둑어둑해 질 무렵이고, 산마루 십구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부산항과 영도 사이의 삼각 바다는 짙푸른 빛으로 어둠으로 스며들려 하고 있던 시각...

음악 사이로, 어디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소리쳐 부르며 우는 걸 보니깐, 엄마가 집을 비웠거나, 아니면 아이가 뭔가를 잘못해서 문 밖으로 내쫓겼거나... 뭐, 그런 거겠지. 금세 그치리라 생각했던 아이의 울음은 노래 두서너 곡이 지나갈 동안 그치지 않고 이어졌고, 더이상 '삼중당문고' 읽기에 빠져들지 못하게 했다. 한참 장정일을 멋지게 맛보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촛불도 켜고, 음악도 켰는데...

추리닝을 걸치고 문을 열고, 한 층을 계단으로 걸어올라갔다. 컴컴한 계단에 나의 체온이 감지되고 나서야 켜지는 센서등은 괴괴한 복도 계단을 을씨년스럽게 했다. 위층에도 없는 아이의 모습은 한 층을 더 올라가서야 나타났다. 엘리베이터 앞의 공간은 불이 꺼지면 깜깜해 져서 그런지 아이는 닫힌 문 밖 계단에 서서 컴컴한 공간에서 엄마를 소리쳐 부르며 울고 있었다.

일단은 아이를 데리고 자기 집 현관 앞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 문이 잠겼고, 엄마는 없단다. 난감하긴 하지만, 불안해 하는 아이를 계속 울릴 수도 없고 해서 말을 자꾸 시켰다. 알고 싶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과 나이 등속을 알게 되고, 어느 유치원 다니는지도 시시콜콜 알게 되었지만, 아이는 불안한 나머지 한 평 남짓 되는 두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훌쩍거렸다.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더니, 모르는 아저씨 집엔 안 간단다. 손을 잡아 보니 손이 차갑다.

그래서 우리 집에 가면 따뜻하고, 환하니깐 일단 가자고 꾀어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촛불을 켜 놓은 것이 아이에게는 신기한 듯, 저 촛불은 왜 깜박이냐면서 곧 아이 특유의 흥미를 보인다. 엄마 휴대폰을 물어서 전화를 해도 휴대폰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괜히 헛고생 시킬 수 없어서, 포스트 잇에다 "정0이가 하도 울어서 19**호에서 데리고 있습니다."하고 적은 뒤, 아이에게 자기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자필 사인을 마친 포스트 잇을 가지고 아이 손을 잡고 올라 가자니, 아이는 테이프가 있어야 문에 붙인단다. 제법 똑똑한 녀석이지만, 아직 포스트 잇의 세계까지는 모르나 보다. 어항에 그 종이를 한 번 붙여 보랬더니, 어, 그냥 붙네, 하면서 신기한 듯 만져 보며 올라가, 집 현관문에 붙여 두고 내려왔다.

아이에게 투니버스를 보겠냐고 물었더니, 컴퓨터를 하겠단다. 자기집 컴퓨터는 망가져서 새로 샀다고 오버하면서 떠드는 걸 보니 참 밝은 아이다. 내 스타일은 좀 아니지만, 그래도 내쳐 우는 것보다는 금세 적응하는 게 낫다. 컴퓨터를 켜서 뭘 할거냐고 물어 보니, 즐겨찾기를 하면 자기 오락이 나온단다. 일곱 살 짜리가 세상을 질러가는 법을 벌써 아는구나. 근데, 그 주소가 자기 집 컴퓨터에만 있는 건줄은 모르는 헛똑똑이 일곱살. 그런데 야후 꾸러기까지 아는 걸 보니 많이 해 본 솜씨다. 한 십분 컴퓨터를 했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나서 '정0아, 엄마 왔나 보다.'하면서 문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엄마가 한참을 운 얼굴로 새파랗게 질려서 서 있다. 아이는 멀쩡하게 엄마를 쳐다보다가, 엄마가 우니깐 품에 안겨서 '엄--마~~~'하면서 운다. 스피커에선 경비실에서 아이 찾는 방송이 나온다. 엄마는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수그리고 갔다.

엄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엄마의 머릿속은 얼마나 하얗게 변해버렸을까. 아파트 앞마당으로, 놀이터로, 경비실로 얼마나 당황해서 허둥거리며 허청거리고 걸어다녔을까... 아이와 엇갈린 그 삼십 분 정도 사이에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현실과 지옥 사이를 오락가락 했을까... 그 엄마의 멍한 얼굴의 번들거리는 눈물자국을 보면서, 하나 하나 소중한 아이가 무엇을 먹고 자라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잃고만 엄마들의 실패한 인생을 생각한다. 엄마에게는 아이가 전부다. 아이를 잃는 것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 그 엄마의 눈물자국을 보면서 애타게 자기 아이의 실루엣을 망막에 그렸다 놓쳐버렸을 안타까움을 생각하면서 동물과 본능에 대해, 그리고 사랑과의 간격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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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2-2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잃는 것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 망막에 그렸다 놓쳐버렸을 안타까움...
참으로 감질나게 쓰셨습니다..^^*
그럼 나는 꿈을 잃어 버린 것은 실패할 인생이다.... 라고 되뇌어 보렵니다..
이렇게 좋은글 많이 써주세요...~